2019년 5월 22일 수요일

[화학작용4] 함께-인터뷰 1탄: 콜렉티브 뒹굴, 프로젝트 하자, 丙 소사이어티


모든 ‘각자들’의 연극,
너와 나의 관계성

- 콜렉티브 뒹굴 × 프로젝트 하자


  콜렉티브 뒹굴(이하 뒹굴)과 프로젝트 하자(이하 하자)의 출발점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정극 중심으로 공연을 올리는 대학 극회에서 떨어져나온 이른바 부스러기들이 헤쳐 모여 만들어낸 집단이라는 점이다. 뒹굴은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극회에서 활동하다가 정극이 정말 재미있는지, 이 시대에 맞는 연극인지에 대해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모여든 팀이라고 한다. 하자 역시 비슷했다. 정극을 만드는 과정이 성향상 맞지 않는 데다 단체 생활마저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야합했다. 연극다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서도 연극을 하고 싶었던 두 팀의 결성, 때는 2012년이었다.

  대학 극회를 발판으로 삼아 연극계에 진출하는 청년들은 많다. 이 과정은 흔히 아마추어가 프로로 성장하는 서사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뒹굴과 하자는 세미-프로 양성소에서 착실히 연극수업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줄거리를 조기에 절단했다. 그럼, 이 절단된 단면에서는 과연 무엇이 자랄 수 있을까? 그래도 여전히 생장점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뒹굴과 하자가 삐뚤빼뚤하게 걸어온 길은 그런 질문들과 씨름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왜 항상 내 삶을 버려두고 예술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혹은 예술을 잘 하는 식으로, 혹은 잘 해서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내기 위해서 너무나 큰 압박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모이게 되었습니다.”
- 2012년 〈니나노 뒹굴〉공연 당시, 성지수 대표의 발언
  뒹굴과 하자의 다른 공통점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길 거부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무릇 연극이라 하면 텍스트든, 연출의도든, 극단 기조든 간에 구성원들의 신체로 하나로 끌어당기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뒹굴리안들은 초창기 〈니나노 뒹굴〉 때부터 이미 팀원들이 하나의 이상향을 향해 기-승-전-결을 거쳐 가는 작업 방식을 지양했다고 회고한다. 연극이 덩어리로 굴러가기 시작할 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상실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뒹굴이 예술이라는 이름의 덩어리로부터 꺼내오고 싶었던 것은 각자의 것이었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가져와서 좋은 점을 찾아보고, 그것을 재료 삼아 놀아보면서 발전을 이루는 형태로 작업해왔다고 한다. 2016년에 뒹굴은 그렇게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갖고 드나들 수 있는 팀, 혹은 어떤 움직이는 장소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콜렉티브collective를 달게 된다.

  덩어리 상태로 연극을 하지 않겠다는 포부는 하자에게도 중요했다. 단체를 만들지 않고서도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2012~2014년 대학 동아리로 활동하던 시절 하자가 도전한 것은 위계 서열 없는 수평적 상태였다. 무조건 창작극을 하고, 작업을 위해 모이면 먼저 서로를 인터뷰한 다음 맞물리는 부분을 가지고 주제를 도출한다. 이슈나 주제를 미리 정해놓지 않고 만나서 정해가는 방식을 고집한 것이다. 하자가 방법론적으로 중구난방을 취한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많은 공연팀에서 연출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듯이, 이슈 셋업이 가능한 누군가를 상정할 경우 필연적으로 목소리 비중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신생팀들이 자신들만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어떤 의식의 단일화를 꾀하는 것과 달리, 하자는 목소리의 다양성을 향해 팀원들의 관계를 느슨하게 풀어서 넓히는 방향을 취했던 것 같다.
  이른바 연극다운 연극들의 성소가 극장이라면, 뒹굴과 하자는 우선 극장을 놓아두고 밖으로 떠나는 방법을 취했다. 뒹굴의 첫 공연은 포이동 화재 재건 1주년을 기념하는 ‘벽돌문화제’(2012)에서 트럭 두 대를 놓고 짧은 퍼포먼스를 가진 것이었다. 초창기에 뒹굴은 관객이 어둠 속의 눈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권위적인 극장 공간을 벗어나 관객들과 가깝게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장소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것 같다. 같은 해 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열린 〈니나노 뒹굴〉의 경우에는 관객들과 음식을 나눠먹고 사진을 찍고 체조를 같이 하는 참여 코너가 포함되기도 했다. 이게 연극인지 사회적 프로젝트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논다면 관객과 함께 놀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그 이후로도 죽 이어져온 듯하다. 관객에게 배심원을 시켰던 〈바로 그 얘기〉(2016), 관객에게 요정을 돕는 베타테스터 역할을 시켰던 〈조커카드 베타테스터 파- 티〉(2017), 관객에게 흡연자 노릇을 시켰던 〈제2회 흡연자 인권대회〉(2019) 등등.
  관객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하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공터로 나갔던 하자는 이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거리극을 하기도 하고, 대안학교나 난곡동 태권도 학원 등등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관객들을 만났다고 한다. 하자는 관객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대신 1대1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1대1의 관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태로. 뒹굴이나 하자나 그들의 팀을 구성하는 원리를 관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해보려 노력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라는 덩어리로 보는 대신 너와 내가 가진 각자의 것들을 보고자 하는 노력, 혹은 관계성의 실험. 2012년으로부터 7년 간 지속하고 있는 두 팀은 여전히 초창기에 발견했던 생장점을 구불구불 옮기며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의 몸이
무대 위를 서성일 때

- 프로젝트 하자 × 丙 소사이어티


  프로젝트 하자와 丙 소사이어티(이하 병소)는 팀 이름에 이미 자기정체성이 투사되어 있는 팀들이다. ‘하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연극을 하고 싶은데 왜 못 하지, 하는 푸념만 나누다가 ‘하자!’ 라고 결의했을 때의 에너지를 담고 있기도 하고, 어딘가 조금씩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하자瑕疵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하자의 전서아 연출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비주류의 정체성과 감성을 지닌 팀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병소의 이름에도 그러한 비주류 정체성과 감성이 투사되어 이다. 병소 역시 2012년에 결성되었는데(2012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는 한창 병맛이라는 유행어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술병을 굴리며 지병持病을 앓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보며 하하하 우습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병맛 감성. 최종적으로는 갑과 을의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아예 병이 되겠다는 선언으로서 丙 소사이어티는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계적 중심을 배제하고 천천히 지속하는 팀들은 구성원들에 소속감을 강요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자와 병소 역시 고정적인 멤버를 거의 두지 않고 그때그때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체 상태의 집합체가 아니라 느슨하고 액체적인 풀pool의 상태로 놓아두었던 셈이다. 멤버들은 각기 자신의 삶을 살다가 그 시간만큼의 고민을 안고 돌아온다. 병소의 경우에는 6년 만에 돌아와 작업을 하게 된 멤버도 있었고, 하자의 경우에는 멤버들이 각각 졸업과 취직의 관문을 넘은 뒤 2년 만에 다시 만나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2016년에 다시 모인 하자는 창작극에 공을 들이다가 2017년 밴드 GRiN과 콜라보한 음악극 〈안녕〉을 선보이게 된다.
  하자의 성격이 다소 변하게 된 계기는 2018년 〈오르막길의 평화맨션〉이라는 공연이었다. 이사를 돕느라 해후하게 된 바이섹슈얼 여성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었다. 전서아 연출은 하고 싶은 얘기가 정확히 생겨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하자라는 팀에 처음부터 비주류 의식이라는 뿌리가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비주류 의식이라는 말을 달리 번역하자면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들, 딱 들어맞는 퍼즐을 이룰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끼리의 공존이 아닐까.

하나: 망가진 인간들끼리 위로가 되나.
유진: 망가진 인간들끼리는 위로가 된다. 난 아직 믿어.
- 2018년 〈오르막길의 평화맨션〉대본 중 

  갑도 을도 아닌 병들의 소사이어티를 자처한 병소는 집도 없고 돈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비주류의 모습에 주목했다. 〈노동집약적 유희〉 시리즈는 편의점, 식당, 서점 등의 알바 자리들이 늘어서 있는 커다란 부루마블 말판 위를 움직이며 생존을 꾀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말’의 역할을 하게 되는 참여관객들은 최저임금만큼의 자본과 일정한 체력 수치를 갖고 이 비정규직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남기를 도모하게 된다. 한시적으로 어떤 공간에 머무르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자신이 머무를 공간을 사야 하는 사람들. 그 모습은 터무니없이 적은 돈으로 극장들 사이를 전전하며 무대 위에서 잠시잠깐 현존했다가, 다시 도시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청년연극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노동집약적 유희〉는 애초에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했던 사업이 지원금에서 떨어진다든가,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는다든가 하는 우연한 계기들이 겹쳐 이 공연은 2015년~2017년에 걸쳐 총 네 번이나 상연되었다. 물론 모두 다른 극장, 다른 장소에서였다. 병소는 매번 새로운 무대를 만날 때마다 그 공간성에 맞게 공연성을 개조해나갔다. 가령 인천아트플랫폼 같은 단정한 블랙박스 무대를 만나면 방송 중계 현장처럼 만들었고, 연습실 공간을 만나면 관객과 함께 하는 레크리에이션을 삽입했고, 인터넷 공간에 Rodong.zip 파일을 흩뿌리거나 집회 신고를 넣고 보신각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을 현시하기 위해 절룩거리며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비주류 청년연극인들의 몸. 그것은 칸으로 나뉜 부루마블의 세계를 서성이고 있는 말들의 모습과도 같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하자는 그들의 창작 원천이었던 비주류 의식을 소수성에 대한 감각으로 옮겨놓게 된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소수의 소수의 소수이다. 다수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번역될 수 없는 일인칭적 감각에 대해 사고하기. 그것은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개인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 인식의 레벨을 옮겨가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공연을 치르면서 하자는 소수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관객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적어도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호출한 관객들이 무대 위에 앉아 있을 때, 어떻게 소수적인 것의 소통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병소와 마찬가지로 하자 역시 비주류의 몸을 어떻게 무대 위에 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자가 있는 사람들의 소사이어티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2019년 4월 22일 월요일

7번국도 단상

임승태

  무대 위에는 자동차 한 대가 해체되어 있었다. 뼈대를 앙상하게 드러낸 메인 프레임을 비롯하여 시트와 같은 큰 부품들은 뒷무대 구석에 있고 나머지 작은 부품들은 무대 바닥 전체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는 조명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무대는 무언가를 제시하기 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이미지를 스스로 떠올리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직 아이’ 그림과 같다. (지나간 유행을 비유로 든 것에 대해 젊은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공연에서 직접 사용하는 가장 주도적인 이미지는 길이다.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장면의 배경이 되는 7번 국도, 그리고 인물과 인물이 만나고 헤어지는 여러 상황 속의 길이 (특히 조명을 통해) 무대에 그려진다. 무대 바닥의 자동차 부품이 만들어 내는 격자를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그들의 절제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정해진 길로만 가다가 죽거나 죽여야 하는 체스판 위의 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크고 작은 기계 조각들의 배열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다른 이미지를 소환한다. 지영이 이야기를 할 때면 직접 언급은 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공장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혹은 그 반도체가 장착된 전자 기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주영이 이야기 때에는 밥먹으러 갈 때도 맞추어야 하는 군의 대오가 떠오른다.
  하지만 텍스트가 감추고 있던 모든 죽음이 드러나고 나면 앞서 일었던 기계에 대한 적대감을 계속 가져가기 어렵게 된다. 조각난 자동차의 잔해는 어느덧 마치 생명을 다한 유기체가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품들이 무작위로 놓여 있었다면, 혹은 어느 순간 대오가 헝클어진다면 그 느낌이 더 강하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무대 위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만지거나 들거나 옮길 법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8년 낭독극을 못 본 입장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공연은 거대한 무대 오브제 위에서 벌어지는 낭독극 같은 인상을 준다. 배우들은 부품들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 들어오고 나가며 거의 변함없이 부동 자세로 대사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격행대화(stichomythia)의 향연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많은 양의 대화가 오고가지만, (의도적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는 배우들이 고함치듯 내뱉는 대사들은 그것이 극적 대화이길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극단적인 부동성이나 배우들의 절규, 그리고 사이사이 긴 침묵은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아는 관객에게 희생자 및 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단한 방식이었고,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연극에서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관객을 힘들게 만드는 선택이기도 하다. 지루함, 피로함을 토로하는 관객 반응도 적지 않고, 나 역시 공연 후반 5분에 한번씩 핸드폰을 열어본 한 관객의 ‘관크’를 당해야 했다. 최소한 지난 5년간 연극이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왔고 이번 작품은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라 생각된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참사와 연극은 정확히 반대되는 사건이기에 전자를 후자에 담는 시도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를 다루는 건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해 다음 기회로 미룬다.

7번국도
2019.4.17~2019.4.28
남산예술센터
http://www.nsac.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