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일 일요일

웹진 연극in 폐간 대책위원회 성명서

웹진 <연극in>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서울연극센터와 현장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온 웹진 <연극in>이 서울문화재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잠정 휴간’에 이르렀다. 서울문화재단은 잠정 휴간의 근거로 “전체 사업 예산이 축소 또는 삭감되는 재조정”, “서울문화재단 경영9기의 사업 재편”, “기존 사업 전반에 대한 구조 재정비”를 들었고, 동시에 연극, 무용, 다원, 시각 예술 작품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재단의 새로운 포털 사이트 ‘스파크(Seoul Portal of Artwork Certified, SPAC)’를 홍보하며, <연극in>의 역할을 일부 수행할 것이라 덧붙였다.

2022년 ‘잠정 휴간’ 이후 그 어떤 복간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서울무용센터의 웹진 <춤in> 사례로 비추어 보아 웹진 <연극in>의 잠정 휴간은 폐간과 다름없는 결정이다. 더군다나 사업 예산의 축소를 이유로 기존의 매체를 폐기하는 동시에 상당한 예산을 들여 ‘잠정 휴간’될 매체를 대체할 새로운 포털을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된 사업 재편이다. ‘스파크’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들만을 다루는 플랫폼으로, ‘스파크’의 자료들은 “공유되고 정량화되어 다음해에 데이터로 쓰”이게 될 것이다. 공론의 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재단의 사업 성과를 홍보하는 포털이 들어설 것이며, 비평은 만남과 소통이 아닌 평가의 도구가 되어 예술가들을 줄 세울 것이다.

웹진 <연극in>은 2012년 창간 이래 창작자와 관객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으로, 연극 담론을 생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공론의 장으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의 장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웹진 <연극in> 편집부는 서울연극센터의 협력으로 창작자와 독자들의 목소리를 수집할 수 있었고, 동시대 연극의 아카이브이자 살아있는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서울문화재단의 일방적 결정으로 웹진 <연극in>을 ‘잠정 휴간’함으로써, 시민이 함께 만들어온 공공의 자산을 폐기처분하는 것은 공공 자산과 그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독단이다.

일방적인 휴간 결정 이후 서울연극센터의 대처는, 웹진 <연극in>의 잠정 휴간이 충분한 숙의와 합의, 정당성 확보를 외면한 채 결정권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실행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3년 11월, 웹진 <연극in>은 [리뷰] 코너의 고정 필자를 공개 모집했고, 공모를 통해 3인의 필진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2024년 한 해 동안 [리뷰] 코너의 고정 필자로 활동하면서 매달 한 편의 리뷰를 작성하고, [리뷰] 코너의 특별 기획(필진 프로젝트)을 수행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휴간 전까지 이들에게는 약속된 3편의 원고와 지면이 남아 있었고, 휴간으로 인해 3월부터 진행하던 ‘필진 프로젝트’ 역시 중단되었다. [희곡] 코너 또한 공모를 통해 운영되었는데, 2024년 희곡 공모에 선정된 14명 중 6명의 작가가 공모에 선정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채 웹진 잠정 휴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잠정 휴간’이 발표되는 순간까지도 이들에게 약속된 지면과 원고료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서울연극센터는 2024 리뷰 고정 필자들과 2024 희곡 공개모집 선정·미게재 작가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에서 미게재 원고와 희곡을 실은 특별호, ‘아카이브용 게재’를 제안했던 서울연극센터는 이후 작가/필자들에게 다시 ‘비공개 업로드 후 원고료 지급’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내부 행정 처리를 위한 절차로, 검색·공유가 불가능하며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이 방식은 책정된 예산과 명시된 약속을 해결해내기 위한 행정편의적 방안일 뿐이다. 별다른 기획 없이 약속된 원고와 작품들을 한 호에 몰아넣어 발행하는 특별호 제안이나, 별도의 편집이나 홍보 없는 아카이브용 게재 제안 역시 다분히 편의적이다. 서울연극센터는 원고, 작품 발표의 의미는 무시한 채, 행정 절차에 충실하여 현장 예술가들과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개별적 소통 방식으로 작가, 필자들을 고립시키고 이 상황을 개인의 가치판단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일방적으로 ‘잠정 휴간’ 결정을 통보하고, 공개질의서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 민원 제기에만 겨우 응답하는 서울문화재단의 태도를 마주하며,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웹진 <연극in>의 발행인은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다. 송형종 대표이사의 일방적 의사 결정이 다수의 실무자들과 창작자, 독자들의 신뢰와 협력을 무너뜨리고 공공의 자산을 훼손하고 있다. 송형종 대표이사는 웹진 <연극in>의 발행인으로서 웹진이 가진 공공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고 재단과 현장 예술가 간 신뢰를 회복하고 보호해야 한다. 


하나. 서울문화재단은 <춤in> 폐간 및 <연극in> 잠정휴간 사태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일방적인 추진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춤in>의 일방적 폐간과 <연극in>의 사실상 운영중단에 대해 공공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사과와 구체적인 경과보고를 요구한다. 운영 주체는 지금까지의 일방적 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책임 있는 입장을 표명할 것을 촉구한다.


둘. 예술현장과 공공이 함께 만든 자산에 대한 권리보장 방안을 마련하라.

<춤in>, <연극in> 등의 웹진은 현장의 예술가와 기획자, 관객과 독자가 함께 만들어 온 공공의 문화자산이다. 이에 ‘계약 관계’가 아닌 ‘협약 관계’로의 제도 전환을 요구한다. 더불어 공공성의 실제 주체인 예술가의 노력을 제도적으로 존중하고 명문화할 것을 촉구한다.


셋. 현장-재단 간 소통체계를 전면 점검 및 개선하라.

현장과 공공이 함께 만든 플랫폼의 경우, 정책 변경, 사업 개편 등의 과정에서 숙의와 협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개인이나 일부 단체와 선택적으로 대화하는 ‘기만적인’ 현장소통 방식을 중지하고, 예술가를 상대로 한 시간 끌기, 갈라치기와 같은 저열한 수법을 중단하라.


넷. 행정윤리를 망각한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경영진은 각성하라.

예술현장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 없이, 무소통・무책임・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재단 경영진의 태도는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윤리의식 결여를 보여준다.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고 공공성을 해친 책임을 자각하고, 즉각적인 사과와 공개적 입장을 표명하라.


다섯. 서울시–서울문화재단의 정치적 기생 관계를 단절하라.

문화예술 기관은 행정의 하부기관이 아니다. 서울시와 재단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인사개입, 그로 인한 문화자율성 침해가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문화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성과 거리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라.


웹진 <연극in> 폐간 반대에 연대해주세요. 

theaterintf@gmail.com/인스타그램 @theaterintf/페이스북 Theaterin TF/X @theaterintf

서울문화재단에 예술가의 이름으로, 시민의 이름으로 항의해주세요.

서울문화재단 본관 02-3290-7000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02-766-4835/02-758-2176

서울연극센터 02-743-9333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불안한 춤

임승태

인간이 사라진 무대에 로봇이 서 있다. 그리고 움직인다. (하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 그 말이 좀 어색하지만 작가가 그것을 '춤'이라고 부른 것은 정당한 것 같다. 춤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춤추는 풍선 인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 형상을 하지 않은 로봇의 움직임을 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아직 쉽지 않지만 받아들여 보겠다.  

나는 고든 크레이그가 이 광경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래, 21세기에는 내가 꿈꿨던 위버마리오네트가 마침내 인간 배우를 대체하는구나, 라며 무릎을 탁 쳤을까. 아니면 이마를 치면서, 아, 로봇도 인간 배우 만큼이나 통제가 안 되는구나, 라며 탄식했을까. 

관객과의 대화(관대) 시간에 작가의 말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로봇이 인간 배우를 대체하더라도 완전한 제어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로봇은 인간 배우와 달리 제어가 되지 않더라도 연출가가 로봇을 향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동시에 거기서 질문이 생긴다. 제어되지 않는 로봇의 의외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인간 배우의 의외성 역시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술관 '전시'에 더 적합한 퍼포먼스라고 느꼈다. 관람객이 자신이 보고 싶은 시간 만큼만 보고 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지연 시간 포함) 한 시간 가까이 객석에서 꼼짝 않고 봐야 할 공연이었는지, 끝까지 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는 불멍, 물멍하듯이 나는 로봇의 회전 운동을 마치 해파리의 춤을 보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고, 로봇을 움직이는 데 사용했을 법한 프로그래밍 언어, 혹은 수식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록 그것을 단 한 줄도 알지 못하지만.  

사실 음악은 공연장에서 듣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바, 그 음악은 공연 중 연출가가 직접 라이브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비인간을 내세운 공연에서 인간의 직접적 개입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가장 좋았다니, 내가 너무 낡은 '공연성'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관대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얘기가 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공연 도중 있었던 오작동, 걸려 넘어짐 등의 오류에 대한 해명이었다. 공연장에 불러 놓고 할 얘기인가 싶었다. 중간시연회도 아니고 그것도 무려 SPAF에서 말이다. 나중에 다시 보니 이 공연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아트랩코리아의 중장기 협력 프로젝트인 <예술 X 기술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는 사전 고지도 있었다. 그러니 미리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내 탓이지 미완의 공연을 나무랄 수는 없다. 게다가 '인간' 공연도 언제나 수정과 보완이 이뤄지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로봇이 하든 인간이 하든 공연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아직 인간이 무대에 있는 공연을 더 보고 싶다. 무서운 속도로 무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에서 '공연예술제' 만큼은 대세를 거슬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