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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6일 일요일

성기웅 + 타다 준노스케 <가모메カルメギ>

by 에스티

1936년 여름의 조선이랬다. 성기웅이 각색한 체홉의 <갈매기>의 배경 말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무대에는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명백한 시대착오에 무심하기에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게 버려져 있기에 또 그러하다. 사실 이 전자 기계들은 무수한 신문지 더미와 부서진 가구, 주저 앉은 의자, 휠체어 등과 함께 무대에 나뒹굴고 있다. 이게 뭘까. 쓰나미가 지나간 것 같았다. 여기서 첫번째 질문이 생겼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일본 연극은, 아니 타다상 자신은 어떻게 변했는가?

공연을 보면서 다른 질문이 생겼기에 연출과의 대화 시간에 이걸 질문하진 않았다. 작품과 동떨어진 얘기 같았고, 좀더 사적인 자리에서 물어봐야 할 질문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모임에서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하는 사람들이 얄미워 보였기 때문에. 고맙게도 연출은 묻지 않았지만 그 무대가 바로 그 ‘쓰나미’에서 영감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못한 질문에 답을 얻었다. <갈매기>의 무대라면 의례히 호수가 배경에 펼쳐지거나 뭔가 꿉꿉한 습기가 느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2007년에 러시아 연출가 카마 긴카스가 연출했던 <갈매기>에선 무대 주변에 물을 담았고, 배우들이 그 물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물 20톤을 썼다고 한다! http://avion.egloos.com/m/984050)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작고한 위르겐 고쉬 연출의 Die Möwe에서는 극 초반에 호수에서 멱을 감고 돌아온 야코프 일행이 무대 위에서 젖은 옷을 훌러덩 벗더니 옷을 갈아 입는다 (http://www.deutschestheater.de/spielplan/premieren_repertoire_2013_2014/die_moewe/).  이 느닷없는 노출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 또한 물이다. 그런데 타다의 무대는 바싹 말라 있어서 오히려 결여된 물을 떠올린다. 그에게 쓰나미가 일종의 트라우마임을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다.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외로운 피’를 위한 축제: 2013 한․일 공동제작 연극 <아시아온천>

‘외로운 피’를 위한 축제: 2013 한․일 공동제작 연극 <아시아온천>

6월 11일(화)~6월 16일(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정의신 작, 손진책 연출

by 이흔정

‘어제도’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아시아의 작은 섬. 이 작은 섬 마을사람들은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나름의 전통과 규율을 따르며 더불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평화롭고 조용한 섬에 느닷없이 외지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온천수가 솟는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이다. 이로써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욕망과 가치로 부딪히고 어제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섬에 리조트 사업을 시작하려는 외지인 아유무와 카케루는 이 마을의 중심인물 대지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척박한 황무지에 사탕수수를 기르며 땅과 함께 자라난 대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대지네를 비롯한 토착민들에게 어제도는 단순한 ‘토지’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연극 아시아온천은 이런 토착민과 외지인 사이의 갈등, 전통과 돈이라는 가치의 대립구도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나 메시지자체는 그다지 신선하지도 않고,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시아온천>을 스토리의 측면에서만 감상하는 것은 공연을 반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 글에서 다 풀어내지 못할 많은 얘기 거리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 먼저 정의신이라는 작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신은 1986년, 그가 29살 청년이었을 때 <사랑스런 미디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중견극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희곡집은 2007년에 겨우 한국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리 익숙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의신의 희곡들에는 대부분 신체장애자, 게이 등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등장하고, 그는 섬세하고 따스한 필체와 유머로 그들의 삶에 격려를 보낸다. 그가 마이너리티의 삶에 초점을 두는 것은 재일한국인이라는 작가의 배경이 작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배경이 그의 작품세계를 일면 편협하게 만드는 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그런 배경 때문에 그가 마이너리티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그들에게 보내는 격려가 더욱 설득력을 갖고 관객의 가슴을 울리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