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수
공연예술 작품이 막강한 힘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 ‘힘’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권위’란 단어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막강한 권위를 가진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에 대한 답은 근래에 상연되는 ‘고전’의 사례를 생각해보았을 때 잘 드러난다. 먼저 관객은 극장을 찾기 전부터 관극 경험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작품의 힘이 세니, 적어도 아주 망작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 말이다. 또 하나, 관객은 암묵적으로 약속된 관람 태도가 정해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서적으로든 인지적으로든 이런 장면은 이렇게, 저런 장면은 저렇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만 한다는 느낌. 약속되어 있는 것과 다른 관극 경험은 (예를 들어 감동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 아무 감흥이 없다거나) 공연 탓이 아니라, 철저히 ‘이 작품을 잘은 모르는 관객인 나 개인의 문제’가 된다. 이렇듯 관객은 권위 있는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뭘 좀 알아야’ 겨우 입을 뗄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꼭 ‘고전’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 받으며 10년 이상 장기 공연을 해 온 작품도 그렇다. ‘뭘 모르는’ 관객은 오랜 기간 그 작품을 사랑한 수많은 관객들과, 오랜 기간 같은 작품을 상연한 제작진 및 배우들 앞에서 감히 무어라 말하기 어려워진다.
뮤지컬 <빨래>를 보고 온 나의 입장이 지금 그러하다.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졸업공연으로 시작하여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상업 작품으로 정식 초연된 이래로 오픈 런에 가깝게 공연 중이며,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상 및 극본상,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작사, 작곡상 및 극본상을 수상했고, 하는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정보는 어렴풋이 알고, 오랜 공연 기간을 걸쳐 생겼을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와 추억 등등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공연장을 찾았던 나는, 지금 입을 다물어야 한다. 십여 년 째 꾸준히 극장을 찾는, 또는 다양한 캐스팅 조합 별로 같은 차수 공연을 몇 번이고 다시 보는, 그래서 어떤 자리를 예매해야 공연 도중 남자 주인공의 사인을 받기 쉬운지 등을 너무도 잘 아는 <빨래> 팬들 앞에서 나 같은 ‘빨래 초짜 관객’의 불평은 그 자체로 예의가 없는 짓이 된다. 그런 것들이 이미 창작 뮤지컬 <빨래>의 ‘힘’, 권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게 허락된 관람 평은 “좋았어요.” “감동 받았어요.” “노래들이 귀에 계속 맴돌아요.” “배우들이 멋져요.” 정도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한마디 하려고 드는 것은 현재 이 작품이 가진 결함 때문이다. 이 글은 공연이 가진 젠더 이슈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어떻게 작품 전체의 구성을 망가뜨리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부디 이 쓴소리, 아니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헛소리가, 뮤지컬 <빨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많이 아프게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빨래>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강조된 서사는 몽골 노동이주청년 ‘솔롱고’와 강원도 여자 ‘나영’의 러브라인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이 그려지는 과정에서 나영은 끊임없이 대상화된 여성으로만 그려지면서 나영은 하나의 인물로서 주체성을 갖지 못한다. 솔롱고와 나영의 ‘사랑’은 줄곧 솔롱고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솔롱고에게 언제부터 호감을 가졌는지, 이 호감이 언제 이웃사람에 대한 친절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이 친절이 도대체 언제부터 ‘사랑’이 되었는지와 같은 감정의 변화에 대해 나영은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할/노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두 사람이 상냥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참 많이도 나오지만, 그 정도 상냥함이야 살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영의 직장동료가 “무슨 좋은 일 있냐. 얼굴이 좋아보인다.”라고 하는, ‘썸’이나 연애를 시작할 때 주변인물들이 하는 스테레오타입의 대사에도, 그것이 나영이가 솔롱고와 좋은 관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연결고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관람한 날의 ‘나영’의 연기가 능숙하지 못해서 대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없지 않은, 그 섬세한 감정 변화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본 나영은 끝까지 솔롱고에게 ‘타인에 대한 친절’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옥상에서 함께 빨래를 널다가 솔롱고가 나영의 손을 덥썩 잡는 장면에서, 아 이제 따귀를 날리면 딱 좋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 주인공 솔롱고의 경우 배우 개인의 연기가 부족하더라도 <빨래>의 대표곡인 “참 예뻐요”를 솔로로 부르는 등 자기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는 반면, 나영에게는 그럴 솔로곡, 그럴 장면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사 처리를 어찌 하느냐에 따라 끝까지 상대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말 몇 마디만을 가지고, 나영은 러브라인의 여자 주인공 자리를 지켜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그러니 두 사람이 곧이어 키스를 하더니 살림방을 합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솔롱고의 노래 “참 예뻐요” 장면은 나영에 대한 대상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나영이 이사를 오다가 떨어뜨린 책을 솔롱고가 주워주었을 때 한 번, 옥상에서 빨래를 널며 인사를 했을 때 한 번 만나고 나서 그들이 세 번째로 마주치는 장면에서, 솔롱고는 공장장, 또 다른 이주 청년 ‘마이클’과 함께 슈퍼 앞에서 오징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무대 한켠에서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무대 다른 쪽에서 나영이 슈퍼에 가기 위해 등장한다. 나영이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슈퍼에 들어갔다 나오고, 그곳에 놓고 간 책을 슈퍼 주인으로부터 넘겨받는 그 시간동안 솔롱고, 마이클, 공장장은 나영을 빤히 쳐다본다. 여기까지야 나영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고, 그러므로 그건 칭찬이고, 이 정도면 시선 강간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시선 강간은 단순히 음흉한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훑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은, 사람은 ‘꽃’이 아니기 때문에 이유를 막론하고 충분히 가깝지 않은 타인을 대놓고 쳐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무례한 행동이다. 이 무례함을 무례함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여기에 젠더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후에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철저하고 명백하게 나영에 대한 대상화가 이뤄진다.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진다. 주변은 모두 어두워지고 무대 한쪽 구석의 솔롱고와, 막 집에 가던 중인, 그래서 무대 한가운데에 있는 나영에게만 국부조명이 떨어진다. 시간이 멈춘다. 음악이 시작된다. 솔롱고가 노래를 시작하며 홀로 움직인다. 나영은 동작이 멈춰진 채로 환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중앙에 ‘놓여있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솔롱고 뿐이니 동작이 멈춰진 사람은 나영 혼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마치 실험대에 올려진 것처럼 밝은 조명 아래에 타의(솔롱고의 의도)에 의해 고정되어 전시되는 것은 나영 뿐이다. 노래를 부르며 서서히 나영에게 다가가는 솔롱고는, 남성의 시선에서는 사랑하지만 가 닿을 수 없는 이를 향한 간절함을 표현한 것일 수 있지만, 여성의 시선에서는 폭력 그 자체이다. 몇 번 얼굴을 본 것이 전부인 사람이 나를 해부용 실험동물처럼 속박하고 전시하더니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 만지기라도 하려는 걸까. 마침내 그의 손이 거의 나영의 손에 닿을 때 쯤, 나영을 강조하던 조명은 꺼지고 나영이 먼저 솔롱고의 손을 잡는다. 솔롱고의 환상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나영의 움직임과 말은 주체적인 것이 아니다. 관객들은 나영의 말과 행동이 솔롱고의 기대일 뿐임을 안다. 이제 나영은 고정된 객체에서 남성의 환상대로 반응해주기까지 하는 (그것도 아주 ‘주체적으로’ 데이트를 이끄는 것으로 그려지는) 객체가 된다.
작품의 큰 소재 줄기인 연애에서 주체가 되지 못한 여자 주인공 나영의 입지는 자연스레 작품 내에서도 애매모호해진다. 아무리 직장에서 불의에 맞서려 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려 해도, 귀가만 하면 솔롱고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분명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 인물이 사용하는 동선 등을 보면 나영이 주인공임이 확실한데도, 과연 이 역을 주연이라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나영이 지워진 자리, 즉 주연이라는 자리에는 주인 할매, 희정 엄마, 그리고 솔롱고가 남는다. 그리고 이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조합은 상당히 이상하다. 차라리 솔롱고까지 사라져버렸다면 ‘참 열심히 사는 두 여자와, 그들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이렇게 되면 나영과 솔롱고는 조연이 됨), 작품에서 솔롱고의 자리는 여전히 견고하다. 연애라는 작품의 큰 줄거리의 유일한 적극적 주체이자, 이 감정을 솔로곡인 동시에 작품의 대표곡을 부르며 이끌어나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인 할매의 장애를 가진 딸이 한밤중에 많이 아팠을 때, 나는 당연히 솔롱고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야 중심인물인 세 사람 간의 끈끈한 관계 형성이 비로소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정말로, 나는 이 작품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렇지만 할매의 딸을 들쳐 업고 새벽을 달려 병원에 간 것은 희정 엄마였다. 솔롱고는? 철저히 대상화된 나영을 ‘얻는 데’ 성공할 뿐이다.
왜 나영 없이 솔롱고의 자리만 견고한 것이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남은 솔롱고가 다른 주연들과 어떠한 관계인 건지 작품이 섬세히 그려내지도 않기 때문이다. 솔롱고는 그저 주인 할매, 희정 엄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사이, 그들로부터 나영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얻는 데 도움을 받는 정도의 얕은 관계만을 유지한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굴곡진 인생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주인 할매와 희정 엄마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시켜야하는지, 이 셋의 관계는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 것인지 <빨래>는 답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솔롱고가 나영이를 ‘데리고 살게 되는’ 얘기(두 사람이 방을 합치는 것은 나영이가 솔롱고의 방으로 이사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상하다, 나영은 어쨌든 파주 공장으로 일을 나가고, 솔롱고는 또 임금을 떼먹혔댔는데... 솔롱고의 방이 더 넓은거겠지. 그래, 그런 것이어야만 하겠지, 하는 추측은, 무지한 관객인 나만의 몫으로 남는다)랑, 저 두 여인의 기구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삶의 이야기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작품에서 주체가 되지 못한 나영이 지워지고 솔롱고-주인 할매-희정 엄마라는 ‘연결고리가 미약한 조합’이 중심이 되어버린 <빨래>는 정리되지 못한 산발된 에피소드의 나열이 되어버린다. 관객이 이 서로 관계 없는 이야기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봐야 할 이유가, 그것도 결코 안락하다고 할 수 없는 의자에 160분 동안이나 앉아서 봐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로 <빨래>에 대해 무지한 관객이지만, 이 작품의 대본을 쓰고 작사를 한 사람, 이번 시즌에도 연출을 한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안다. 그에게 작품을 통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선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 연극인의 작/연출 작품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된 시선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 위태롭게 여겨지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여성 관객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약간의 조사를 통해 이 작품이 2003년 이후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0분이었던 공연 길이는 160분으로, 삽입곡은 7곡에서 18곡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 변화의 양상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상업화’ 과정에서의 러브라인 강화, 이로 인한 솔롱고 비중의 강화 등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슬펐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작품을 다듬는 과정에서 고려된 그 ‘많은 관객’이, 소위 ‘뮤덕’이라 불리며 흥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20-30대 여성 관객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 서나영을 지워버린 것은 여성 연극인 추민주 혼자가 아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는 헛소리에 가까울 관람평을 굳이 작성하고 굳이 게재하는 이유이다. 나는, 뮤지컬 <빨래>는 심각한 젠더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주요 인물 구성의 측면에 미숙함이 있어서 작품의 서사 구조의 안정성마저 떨어지는, 그래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취지와 치료를 넘어: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을 작품으로 보기
성지수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 논하기의 어려움
(1)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단원고 피해(희생, 생존) 학생 엄마들이 세상과 소통의 폭을 넓히고자 극단을 만들어...”
(2) “웃음을 잃었던 엄마들 파안대소...”
위의 두 인용문은 극단 노란리본1)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소개하는 기사들의 표제와 부제다.2) 프로그램 북에도 배우들이 “세월호 가족들”이란 사실이 표지에 명시되어 있으며,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오른 연출은 모든 배우가 ‘연극을 처음 해보는 세월호 엄마들’임을 밝힌다. 공연이 끝나면 “끝까지 밝혀줄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온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0반 00엄마”로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 그러니까, 외부의 시선으로 보나 내부의 시선으로 보나 이 연극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면서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세월호 엄마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는 것에 있다. 희곡 <그와 그녀의 옷장>은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참사 전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은 반박할 여지없이 ‘세월호 연극’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직접 당사자들인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을 본 후 그 기획 취지나 당사자들에게 미친 긍정적 심리치료 효과 이외의 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론 세월호 사건이 아직 종료(철저한 진상규명부터 책임자 처벌, 적절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까지)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이 연극을 ‘날카로운 관객의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이념 선전도구나 치료 프로그램 정도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서, 이 연극을 다른 공연예술과 동등하게 비평하는 것을, 하나의 개별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도하려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연극 작품으로서 극단 노란리본의 <그와 그녀의 옷장>에서 주목할 지점을 정리하였다.
1. 어색함을 스타일화하기
배우들의 연기는 아주 잘 한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어색한 연기가 부족함이 아닌 예술적 선택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었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은 참고 보아줘야 하는 것이 아닌 즐길 수 있는 양식이 되었다. 우선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대본이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에 큰 힘이 되었다.3) 웃음을 주기 위한 대사와 설정이 한 시간 반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처음에는 웃지 않았던 관객들도 어느 순간에는 어이없어서라도 받아들이고 웃게 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호남의 부탁에 순심은 관객 ‘정수기’에게 다가가 물을 뜬다. 이 관객은 극이 끝날 때까지 호남이 출퇴근하면서 수차례 말을 거는 ‘정숙이’로, 집회 현장에 나온 ‘정숙이 위원장’으로 불려 웃음을 자아낸다.)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방향이 관객을 향하고 사투리 등 특정 억양을 과장하여 살리는 양식적인 연기를 선택한 것도 좋은 지점이었다. 소위 말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였다면 더 크게 느껴졌을 연기 경험의 부족(대사 전달 실패나 ‘발이 바닥에 붙지 않는 것,’ 즉 부산스러운 몸놀림)이 많은 부분 노출되지 않았다. 배우들은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사 전달을 정확히 했다. 처음 해 보는 분들 치고 잘했다, 보다 더 좋은 찬사를 들을 실력이었고, 이는 적절한 대본과 알맞은 연극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취지와 표현 양식의 연관성
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은 배우들의 도전 취지이자 연출의도인 “세월호 엄마들이 배우가 되어 관객 앞에 선다”일 것이다.4) 이것이 실제 연극과 동떨어진 취지가 되었다면 연극은 그 의도와 달리 교조적이고 불편한 자리가 되었을 것이며, 관객은 ‘엄마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은 양식화된 연기,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거는 장면, 관객의 직접 호응을 유도하는 장면, 메타극적 대사 등 연극적 표현 양식을 통해 이를 작품 속에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배우들은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배우들이 상대 배우를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에 빠져 익살스러운 장면에 웃을 때는 크게 인식하지 못하다가 배우들이 시종일관 관객들을 마주하고 섰던 것을 상기하면 그들이 ‘세월호 엄마’이며, 정치적 주체로서도 사회가 강요하는 희생자 정체성에 스스로를 묶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주도해 나아왔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남성 배역임에도 여성임을 숨기지 않았던 점, 옷이 중요한 연극에서 팔찌, 손수건, 배지 등으로 세월호 표식을 한 것은 이 상기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박수와 함성처럼 관객들의 직접적인 호응을 유도하거나, ‘정수기-정숙이’를 관객으로 설정하여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희곡의 메타극적 대사들도 “관객 앞에 선 세월호 엄마들”을 잘 구현한 장치가 되었다. 순애에게 사랑에 빠져 매일같이 집회에 참석하는 수일을 보여준 후 “5분 만에 노동자 의식이 성장했구나! 이 연극은 뭐 이리 진도가 빨라!” 한다던가, 5번 이상 반복/변주되는 상황이 마무리될 때 “잠깐,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하는 대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주의 연극처럼 관객들에게 극중 상황에 몰입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들이 ‘연극’임을 환기하는 효과를 가진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에서는 이것이 모든 연기자가 ‘세월호 엄마들’이라는 사실과 만나면서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배우로서 그 대사를 발화한 세월호 엄마들’의 실존이 부각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3. 시선의 역전이 일어나는 순간
연극은 불균형한 바라보기가 극대화된 형태의 예술형식이다. 관객은 어둠 속에서 배우를 훔쳐본다. 관객에게 허용된 극장의 언어는 박수와 환호, 웃음뿐이다. 배우들이 ‘세월호 엄마들’일 때 이 불균형은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을 낳는다. 세월호 가족들의 다양한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볼 때면 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문구로 약속했던 것을 과연 내가 잘 지키고 있는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가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지만, 천일이 가까워지도록 자신의 아픔을 입증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과 재난은 비극적인 일인 동시에 관음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죄책감, 그 어쩔 수 없는 감정이 해소되는 시선의 역전 순간이 있었다. 세 개의 옴니버스 극이 모두 마무리되고 피켓을 든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나와 인사를 한 후, 연출까지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였다. 관객에게 함께 부르자고 청하는 노래는 민중가수 윤민석이 작사, 작곡한 <약속해>다. 관객들에게 가사를 띄워주는데, 그 처음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쉽게 부를 수는 없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잊지 않겠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참사를 당한 아이들의 가족이라는 선언(가족이 되겠다, 가 아니라)은 가사를 보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지게 만들었다.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부르도록 요청받은 순간, 이는 불편함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곧 자발적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왜냐하면 관객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준 배우들이 불 켜진 객석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동안 관객을 즐겁게 해 준 배우들에게 박수나 환호성 이상의 것으로 보답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그리고 성공적으로 좋은 공연을 보여준 배우들이 커튼콜 후 “0반 00엄마 000”로서 인사를 하고 소감을 밝힘으로서 ‘세월호 엄마들’로 사람들 앞에 선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작은 다짐을 담아 노래한다. ‘세월호 엄마들’이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본다는 이 바라봄이 역전되는 순간은 또한 연극을 ‘보면서’ 순간순간 느꼈던 시선 불균형의 죄책감까지 덜어주었다.
취지와 치료 너머를 바라보자, 취지와 치료의 성공이 보이다
글의 처음을 열었던 인용문으로 다시 돌아가 살펴보면, (1)은 이 연극이 ‘예술의 사회적 소통 기능’에 주안점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집회, 간담회, 단식, 삭발까지 해 봤지만, 한계를 느껴 더 자연스럽고 쉽게 국민에게 다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창작한 연극이라는 이어진 소개는 이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시민들이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월호 사건에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연극의 주된 취지이다.
이어서 (2)는 (‘배우’가 느낄 수 있는) 연극의 심리치유 효과가 이 연극에서 작용했다는 것을 말한다. 스브스 카드뉴스5)
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연극에도 도전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극에 나오는 여러 감정을 표현하면서 내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연출가는 프로그램 북에서 연출의 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피해 가족들이 억눌리고 외면당해왔던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상대 배우와, 관객과 나누는 과정에서 예술의 치료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 작품의 큰 의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극단 노란리본의 <그와 그녀의 옷장>의 기획의도이자 가장 큰 의의 앞에서, 세월호 사건의 직접 피해자가 아닌 시민(더 솔직해지자면, 참사 규명을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했던 나약한 소시민)인 관객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이 연극을 보면서 눈물 끝에 웃음을 보여주시는 ‘엄마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용기를 내 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까. 연극을 본 후에 ‘세월호 엄마들’만이 아니라 공연 전반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까.
첫 번째 의문점은 관람자가 상연자를 희생자 정체성으로만 규정해버릴 위험에 대한 염려를 담는다. 상연 전 연출가가 직접 관객들에게 곧 무대에 오를 분들 모두가 연극을 처음 해 보시는 분들이다, 작품 연습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코미디 연극이니 많은 웃음을 부탁한다 등(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많이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 주세요.’)의 멘트를 했을 때 이 염려는 증폭된다. 분명 그 분들의 용기는 놀라운 것이지만, 그들이 그 용기로 들고 나온 것이 연극 작품이라면 이를 관람한 관객이 그들을 배우로 보아야 하고, 용기뿐 아니라 연극 자체에 대해 논해야 한다. 무대에 오를 사람들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 혹은 기특한 마음만을 가지는 관객은 실제 작품의 가치와 상관없이 무대를 학예회로 전락시킨다. 때문에 그들의 용기에만 집중하고 용기만을 평가하는 것은 그 평가가 아무리 긍정적일지라도 명백한 폭력이다. 배우로 선 사람들을 배우로 이야기해야 하지, 불쌍하고 기특한 사람들로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의문은 창작자에 대한 선입견에 갇혀 창작물에 대한 평가를 절하하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정의신의 작품을 보며 재일조선인으로서 겪은 그의 개인적인 아픔만을 느끼고 돌아간다면 이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을 평가 절하하는 태도일 것이다. 누군가 애써 차려준 밥상 앞에서도 그 맛과 행복감은 표현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린 이의 정성만을 논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정성을 폄하하는 일이 된다. 또한 극장을 넘어서는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연극작품들이 놓치고 있는 것, 즉 취지만 좋다고 좋은 연극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미학적 의의가 있어야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원래의 취지 달성도 실패한다는 사실, 그러므로 창작자의 희생자 정체성만을 내세운 엉성한 작품을 통해 교조적으로 관객을 가르치려고 들거나 슬픔, 분노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관객과 연극의 의도 양쪽을 고립시키는 일이라는 것 역시 지적하고 싶다.
때문에 연극의 사회적 소통 기능이나 심리 치유 효과는 연극의 미적 가치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즉 비-세월호 가족 관객(‘일반’ 관객이라는 표현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용어)이 ‘세월호 엄마’를 한 명의 배우로, 이 연극을 개별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을 때, 좀 더 편안하게 소통하고자 했던 시도도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윤리적 문제라 할 수 있는 창작자-수용자 간 관계의 문제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모인 사람들(창작자와 수용자, 직접 피해자와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새로운 담론의 장을 형성하여 사회에 파급효과를 내고자 하는 연극들의 성패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무시되는 문제이기에 주요하게 다뤄야 한다.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은 작품의 의도가 형식으로 잘 녹아들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배우로 선 ‘세월호 엄마들’과 관객으로 찾아 온 사람들이 마주보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낌으로써 평등한 관계가 구축될 수 있고, 때문에 진정한 심리치료가 가능한 장이기도 하다. 공연을 본 후 연극의 부족함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취지나 노력만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연극 작품을 본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떤 사명감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관객들도 마주보고 함께 다짐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2017년 새해에 성미산 마을극장을 시작으로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이 작품이, 배우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수일에게 예쁜 목도리 선물을 받은 순애는 밤에 혼자 찾아 온 용역 깡패에게 밀쳐지고 물도 맞는다. 강한 여자와 심약한 남성의 연애 스토리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따르는 셈인데, (장르를 불사하고 여성은 이전에 강인한 캐릭터가 본격 연애를 시작하기 직전이 되면 갑자기 다른 남성에게 억울하게 봉변을 당하며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가 끝나가는 지점에 뜬금없이 등장해서 조금 황당하게 느껴진다. ‘여성성’의 부각, 맞서 싸우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 혹은 그저 둘이 한층 가까워질 계기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불필요한 전개다. 극단 노란리본이 현재로서는 세월호 ‘엄마’들의 극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굳이 극의 말미에 와서 그녀들이 ‘관객 앞에 배우로 당당히 선 여성들’이라는 점을 희석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작 오세혁 연출 김태현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2016년 12월 29일 19시 관람, 서울혁신센터 다목적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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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4일 수요일
《2016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에 다녀와서
성지수
그렇게 들어선 국립극단 마당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극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평소에는 부대시설이나 빈 공간이었던 곳에 저마다의 이름을 주고 약간의 조명을 세워 여러 개의 ‘극장’을 만든 것이다. 각 극장에는 ‘객석’도 있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 큰 세트를 놓고 세워진 ‘작큰극장’에는 캐릭터 방석이 깔린 원기둥 모양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등나무 아래 평상을 무대 삼은 ‘등나무극장’과, 담 사이 구멍으로 훔쳐볼 수 있었던 ‘느티나무극장’에는 층이 낮은 계단식 객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는, 극장 사이를 뛰어다니는, 주저앉아 블록놀이를 하는―하여간 자기 일에 매우 정신을 집중한―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저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2016>을 만난 것이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어린이청소년극 축제로, 1인극 작품 개발과 어린이청소년극 배우의 창작 역량 강화, 지역 예술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창작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작은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이다.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발된 배우, 이야기꾼, 독립예술가, 그림책작가, 예술교육자 등이 워크숍을 통해 이 ‘잔치’를 준비한다고 한다. 올해에는 어린이연극인 작은극장 참가작 11작품, 청소년 대상 연극인 청소년작은극장 4작품과 자발적 창작모임인 ‘씨앗모임’의 6작품, 그림책 작가들의 8작품 등등이 국립극단 공간 곳곳을 채웠다. 해를 거듭하면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져, 많은 가족들이 찾는 잔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야외공연에 한해서는) 공연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의무화되었던 ‘매너’들이 불필요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은 공연자에게 고정시킨 채) 누워서 보기도 했고,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을 먹으면서 보기도 했다. 한참 뛰어놀다 와서 공연의 중간부터 관람하기도 하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공연예술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름밤의 연극 잔치를 만나다
‘빨간 건물’을 찾아가는 길. 예매했던 공연의 시작은 30분이나 남았는데, 길을 건너기도 전에 음악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급한 마음에 괜스레 신호등을 노려보다가 파란 불이 들어오자마자 뛰어가 ‘빨간 담벼락’의 구멍에 눈을 대 본다. 가야금 옆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한복차림의 여자와 그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미니 야외극장! 도둑 관람을 계속 할까 하다가 가야금에 돛이 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정문으로 달려간다. ‘이건 제대로 봐야 한다!’그렇게 들어선 국립극단 마당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극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평소에는 부대시설이나 빈 공간이었던 곳에 저마다의 이름을 주고 약간의 조명을 세워 여러 개의 ‘극장’을 만든 것이다. 각 극장에는 ‘객석’도 있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 큰 세트를 놓고 세워진 ‘작큰극장’에는 캐릭터 방석이 깔린 원기둥 모양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등나무 아래 평상을 무대 삼은 ‘등나무극장’과, 담 사이 구멍으로 훔쳐볼 수 있었던 ‘느티나무극장’에는 층이 낮은 계단식 객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는, 극장 사이를 뛰어다니는, 주저앉아 블록놀이를 하는―하여간 자기 일에 매우 정신을 집중한―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저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2016>을 만난 것이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어린이청소년극 축제로, 1인극 작품 개발과 어린이청소년극 배우의 창작 역량 강화, 지역 예술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창작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작은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이다.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발된 배우, 이야기꾼, 독립예술가, 그림책작가, 예술교육자 등이 워크숍을 통해 이 ‘잔치’를 준비한다고 한다. 올해에는 어린이연극인 작은극장 참가작 11작품, 청소년 대상 연극인 청소년작은극장 4작품과 자발적 창작모임인 ‘씨앗모임’의 6작품, 그림책 작가들의 8작품 등등이 국립극단 공간 곳곳을 채웠다. 해를 거듭하면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져, 많은 가족들이 찾는 잔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축제다운’ 축제
함께 공연을 보러 간 친구도 도착하자마자 감탄사처럼 외쳤다. “여기 완전… 완전… 아비뇽이잖아!”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이 풍문으로나 주워들은 외국지명을 떠오르게 한 것은 그 자리가 “연극 축제”에 대한 특정한 기대들을 실현시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을 통해 충족된 기대 중 하나는 다양한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선 스쳐갔을 공간들 여기저기에서 많은 공연이 동시에 상연되었고, 각 공연은 판소리, 인형극, 가야금 등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자주 관람할 수 없었던 형태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며, 모두 무료였다. 입장료도 없이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짧게는 25분에서 길게는 50분 남짓 되는 여러 공연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 한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들 안내 피켓을 든 크루들이 관객들을 한줄기차로 세워 다음 공연의 ‘극장’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관객들은 여러 피켓 아래에서 다음엔 무엇을 볼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했다.(야외공연에 한해서는) 공연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의무화되었던 ‘매너’들이 불필요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은 공연자에게 고정시킨 채) 누워서 보기도 했고,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을 먹으면서 보기도 했다. 한참 뛰어놀다 와서 공연의 중간부터 관람하기도 하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공연예술을 만끽하고 있었다.
2016년 8월 10일 수요일
그래, 어떤, 평화
박종주
<어떤평화>
연출 성지수
조연출 심하경
드라마터그 백수향, 이준영
출연 김정은, 조민광, 진영화, 최희범
2016년 7월 7-9일, 연세대학교 푸른샘, 서울대학교 인문소극장
일상의 풍경風景들
불이 켜지면, 연극은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작은 사무실. 네 명의 직원이 등장한다. 대리가 두 명, 과장이 한 명, 그리고 인턴이 한 명. 역시나 평범하게, 그들은 맡은 일을 한다. 대리들은 업무를 진행하고 과장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인턴은 커피를 탄다. 역시나 평범하게, 그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여성의 몸매에 대한, 여성과의 교제에 대한, 여성의 꼬리침에 대한.
평범한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들을 하고 있으므로, 이렇다 할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래 명세서에 숫자를 잘못 써 넣거나 커피를 탈 때 물 양을 맞추지 못하는 실수조차 없다. 짜증을 내는 사람조차 없이 즐겁다.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는 퇴근을 하고 누군가는 야근을 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 다시 출근할 것이다. 숫자를 틀리거나 물을 쏟지 않는다면, 내일 하루도 즐거울 것이다.
일상에 풍경風磬 달기
도시 사람들은 바람에 둔하다. 뱃사람들은, 그리고 농부들은 바람에 예민하다. 도시 사람에게 바람은 잠깐의 시원함 혹은 추위일 뿐이지만, 뱃사람들에게 바람은 배를 뒤집는 힘이고 농부들에게 바람은 작물을 쓰러뜨리는 힘이다. 창문을 열어두고 나온 날, 혹은 베란다에서나마 여린 풀잎이 자라는 어느 날, 그런데 강한 바람이 부는 날, 그제야 도시 사람은 바람에 예민해진다. 바람이 자신의 일상을 흔들기 시작하므로.
장면이 바뀌면 네 명의 배우들은 아이들이 되고 사무실은 놀이터가, 집기들은 장난감이 된다. 시장놀이부터 병원놀이까지, 또 한 번 평범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 어떤 삶에서는 이 또한 평범하지만 ― 아이들이 뱉는 모든 문장 뒤에 욕설이 따라 붙는다는 점이다.
바람에 예민해지는 방법이 하나 있다. 풍경風磬을 다는 것이다. 창문가의 무언가가 쓰러지지 않아도, 베란다의 꽃잎이 떨어지지 않아도, 바람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의 풍경風景에 누가 풍경風磬을 달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선가 종이 울린다. 어떤 욕들 뒤에는 종소리가 따라 붙는다. 여성혐오적인 욕설들에 말이다.
하지만 종소리가 누구에게나 들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종소리에 귀를 막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자연히 그는 놀이에 섞여 들지 못하고, 아이들 사이에는 분란이 인다. 평범한 일상을 위해 사건은 봉합되어야 한다. 싸움을 벌이는 두 아이 사이에서 나머지 두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화해를 주선한다. 누가 왜 화났는지 따질 필요는 없다. 어색한 미소, 엉거주춤한 악수라도 좋다. 화해는 화해이므로.
다시 사무실, 일상은 반복된다. 다행히 종은 아직 매달려 있다. 여전히 평범하게, 그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여성의 몸매에 대한, 여성과의 교제에 대한, 여성의 꼬리침에 대한. 그러나 그때마다 종이 울린다. 사람들은 조금씩 날카로워 진다. 한 번 알게 된 것을 다시 모르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번 눈에 띈 얼룩이 계속 보이고 한 번 눈치 챈 생채기가 계속 아려 오듯 말이다. 다시 사무실, 일상은 변할 것이다. 머리를 울리는 종소리를 피하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 소리를 피하기 위해.
누가 병신을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이런 극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풍경風磬이 몇 개 더 달렸으면,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약한 바람에도 움직였으면 싶었다. 극의 주제인 여성혐오, 혹은 이른바 남성혐오와 관련된 발화들은 종을 울렸지만 “병신”이라는 말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종은 내 머리 속에서만 울리고 있었고, 나는 머리가 아팠다.
또 하나 신경이 쓰인 것은 ‘아이들’이 재현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동물 모양 모자를 쓰고 나왔다. 배우들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사무실 직원들을 연기할 때와는 다른 발성을 했다. 리플렛에는 “어린이, 상스러운 욕설, 밝고 맑은 종소리 등의 장치를 소재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기법을 사용”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다 ― 하나 가능한 추측이 있다면 욕설과 혐오를 아이들의 순수성과 대비시키는 것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를 표현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동물 모자를 씌우는 것이 ― 그리고 나의 추측이 맞다면 또한 아이들의 속성을 순수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긴 머리 가발을 씌우고 치마를 입히는 것과 무엇이 다를지 알 수 없었다.
여성혐오를 다루는 극에 어린이나 장애인의 재현에 관한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과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 여성, 장애 여성을 생각하면 여성혐오를 생각하면서도 이를 빼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풍경風磬이 몇 개 더 달렸으면,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약한 바람에도 움직였으면 싶었다.
<어떤평화>
연출 성지수
조연출 심하경
드라마터그 백수향, 이준영
출연 김정은, 조민광, 진영화, 최희범
2016년 7월 7-9일, 연세대학교 푸른샘, 서울대학교 인문소극장
2015년 9월 29일 화요일
'덕질'로 연극 읽기: <카포네 트릴로지>
글쓴이_성지수
‘오빠들’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물론 친오빠 얘긴 아니다. (친오빠 얘기였다면 ‘오빠 새끼’로 이 글을 열어야만 했겠지.) 누군가에게는 ‘서태지 오빠’이고 누군가에게는 ‘나보다 어린 여진구 오빠’인 그런 ‘오빠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사어로는 ‘우리 애기들’이 있다.) 우린 각자의 ‘오빠’를 사모하고 동경하여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누비며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을 긁어모은다. 무대인사, 팬 사인회, 음악방송처럼 직접 볼 수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신청하고는 디데이 전후로 몇날 며칠을 설렌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너의 ‘오빠’는 누구였었니, 라고 물어보면 눈빛이 아득해지고 목소리가 아련해지면서 “내가 중학교 때 말이야...”라는 말로 썰을 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썰은 “그렇지만 이젠 다 졸업했어.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따위의, 시크함을 보여줄 수 있는 대사로 끝이 나곤 한다.)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건져 동화 속으로, 환상 속으로 날 이끌었던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돌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 몇 백 만원씩 쓰는 십대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도 가만히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빠들’의 노래 테이프를 사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빠들 사진이 붙었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할 것도 없지만 값은 훨씬 더 비싼 다이어리를 덜컥 사고, 멋진 사진을 찾아 컬러 프린트한 후 그걸 코팅까지 해서 간직했던 자신의 ‘흑역사’가 뇌리를 스치게 마련인 것 같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는 나의 ‘오빠들’을 중학생 때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오빠들’이 내 인생을 “찾아왔다.” 내 십대 시절을 회상할 때 ‘오빠들’을 빼 놓고 얘기한다면 학교와 학원밖에 없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나날들뿐일 것이다. 나는 ‘오빠들’을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관리라는 걸 시작했고 ‘오빠들’을 한 번 더 보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오빠들’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십대 때의 나의 영웅(!), 나의 ‘오빠들’은 뮤지컬 배우들이었다. 당시엔 뮤지컬이 지금만큼 보편화된 장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뮤지컬은 ‘덕후’들의 세계이긴 하지만, 누군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얘기를 듣던 그룹 중 한 두 명은 자기도 뮤지컬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며 자기가 본 한 두 작품을 주워섬기는 근래와는 달리, 당시 열 서너 살인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적어도 2주일에 1-2편은 꼭 보러간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2주일에 1-2편!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연장에 갔던 셈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돈을 많이 받았던 것도 아닌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짓이었다. 나는 사연이 채택되면 초대권을 주는 라디오에 열심히 사연을 써 댔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갖가지 이벤트에도 응모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하면 뮤지컬 두 개 보여주기,’ ‘3000제(가능한 경우의 수의 문제를 다 모아놓았다는, 악명 높은 수학 문제집)를 일주일 만에 다 풀면 R석 예매 허락해주기’ 같은, 엄마와의 약속을 걸기도 했다. (아 어머니, 불효녀는 웁니다!) 뮤지컬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이야 요즘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것 같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당시 나의 정신을 빼 놓은 요소 중 하나는 공연이 끝나면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오빠들’이 나를 기억해주기까지 한다는 점이었다.
오빠들이 날 기억해준다! 나를 보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세계적으로 수억만 명의 팬이 있는 아이돌을 좋아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그러했다. 한 친구가 자기 ‘오빠’의 생일을 맞아 정성스레 ‘오빠’ 사진에 왕관과 케이크를 그려 넣다가 갑자기 휙, 모든 걸 집어 던지면서 (욕설과 함께) “XX! 이 새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데!”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내 맘속에서 ‘나의 오빠들의 특별함’을 부각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우리 ‘오빠’가 다른 팬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내게 자기 소지품을 잠시 들고 있으라고 맡겼던 어젯밤 일을 회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본인이 던졌던 것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았고, 자신의 더러운 성질 때문에 ‘우리 오빠’ 얼굴에 구김이 갔다며 아까보다 훨씬 더 슬퍼했다.)
고등학교를 입시 집중형 기숙학교로 가게 되면서 나의 팬질은 자연스레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내 방 한켠 리빙박스 속에는 그 때 모았던 프로그램, 시디, 사인북, 팬 아트 등이 빼곡히 쌓여있다. 십 년 넘게 지속된 엄마의 ‘이제 필요 없으면 버려라!’ 공격을 뚫고 살아남은 나의 추억인 셈이다. 하지만 난 확실히 ‘뮤덕’을 ‘졸업했다.’ 뮤지컬을 본 지도 참 오래됐고, 요즘 ‘뮤덕’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용어들도 참 생소하다. 누가 나온다고 하면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같은 공연을 또 보았던 것과 달리 이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인터뷰 기사나 페이스북 광고 같은데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여전히 잘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때 한창 애인에게 공개 프로포즈하는 걸 봤었는데, 벌써 애 아빠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강산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아련아련돋음’을 선물해주는 ‘그 때 그 오빠들’은, 참 어디 가서 얘기하기 쑥스럽고 민망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내게 참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오, 나의 ‘오빠!’
‘오빠들’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물론 친오빠 얘긴 아니다. (친오빠 얘기였다면 ‘오빠 새끼’로 이 글을 열어야만 했겠지.) 누군가에게는 ‘서태지 오빠’이고 누군가에게는 ‘나보다 어린 여진구 오빠’인 그런 ‘오빠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사어로는 ‘우리 애기들’이 있다.) 우린 각자의 ‘오빠’를 사모하고 동경하여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누비며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을 긁어모은다. 무대인사, 팬 사인회, 음악방송처럼 직접 볼 수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신청하고는 디데이 전후로 몇날 며칠을 설렌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너의 ‘오빠’는 누구였었니, 라고 물어보면 눈빛이 아득해지고 목소리가 아련해지면서 “내가 중학교 때 말이야...”라는 말로 썰을 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썰은 “그렇지만 이젠 다 졸업했어.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따위의, 시크함을 보여줄 수 있는 대사로 끝이 나곤 한다.)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건져 동화 속으로, 환상 속으로 날 이끌었던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돌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 몇 백 만원씩 쓰는 십대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도 가만히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빠들’의 노래 테이프를 사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빠들 사진이 붙었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할 것도 없지만 값은 훨씬 더 비싼 다이어리를 덜컥 사고, 멋진 사진을 찾아 컬러 프린트한 후 그걸 코팅까지 해서 간직했던 자신의 ‘흑역사’가 뇌리를 스치게 마련인 것 같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는 나의 ‘오빠들’을 중학생 때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오빠들’이 내 인생을 “찾아왔다.” 내 십대 시절을 회상할 때 ‘오빠들’을 빼 놓고 얘기한다면 학교와 학원밖에 없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나날들뿐일 것이다. 나는 ‘오빠들’을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관리라는 걸 시작했고 ‘오빠들’을 한 번 더 보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오빠들’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십대 때의 나의 영웅(!), 나의 ‘오빠들’은 뮤지컬 배우들이었다. 당시엔 뮤지컬이 지금만큼 보편화된 장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뮤지컬은 ‘덕후’들의 세계이긴 하지만, 누군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얘기를 듣던 그룹 중 한 두 명은 자기도 뮤지컬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며 자기가 본 한 두 작품을 주워섬기는 근래와는 달리, 당시 열 서너 살인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적어도 2주일에 1-2편은 꼭 보러간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2주일에 1-2편!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연장에 갔던 셈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돈을 많이 받았던 것도 아닌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짓이었다. 나는 사연이 채택되면 초대권을 주는 라디오에 열심히 사연을 써 댔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갖가지 이벤트에도 응모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하면 뮤지컬 두 개 보여주기,’ ‘3000제(가능한 경우의 수의 문제를 다 모아놓았다는, 악명 높은 수학 문제집)를 일주일 만에 다 풀면 R석 예매 허락해주기’ 같은, 엄마와의 약속을 걸기도 했다. (아 어머니, 불효녀는 웁니다!) 뮤지컬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이야 요즘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것 같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당시 나의 정신을 빼 놓은 요소 중 하나는 공연이 끝나면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오빠들’이 나를 기억해주기까지 한다는 점이었다.
오빠들이 날 기억해준다! 나를 보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세계적으로 수억만 명의 팬이 있는 아이돌을 좋아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그러했다. 한 친구가 자기 ‘오빠’의 생일을 맞아 정성스레 ‘오빠’ 사진에 왕관과 케이크를 그려 넣다가 갑자기 휙, 모든 걸 집어 던지면서 (욕설과 함께) “XX! 이 새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데!”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내 맘속에서 ‘나의 오빠들의 특별함’을 부각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우리 ‘오빠’가 다른 팬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내게 자기 소지품을 잠시 들고 있으라고 맡겼던 어젯밤 일을 회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본인이 던졌던 것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았고, 자신의 더러운 성질 때문에 ‘우리 오빠’ 얼굴에 구김이 갔다며 아까보다 훨씬 더 슬퍼했다.)
고등학교를 입시 집중형 기숙학교로 가게 되면서 나의 팬질은 자연스레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내 방 한켠 리빙박스 속에는 그 때 모았던 프로그램, 시디, 사인북, 팬 아트 등이 빼곡히 쌓여있다. 십 년 넘게 지속된 엄마의 ‘이제 필요 없으면 버려라!’ 공격을 뚫고 살아남은 나의 추억인 셈이다. 하지만 난 확실히 ‘뮤덕’을 ‘졸업했다.’ 뮤지컬을 본 지도 참 오래됐고, 요즘 ‘뮤덕’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용어들도 참 생소하다. 누가 나온다고 하면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같은 공연을 또 보았던 것과 달리 이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인터뷰 기사나 페이스북 광고 같은데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여전히 잘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때 한창 애인에게 공개 프로포즈하는 걸 봤었는데, 벌써 애 아빠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강산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아련아련돋음’을 선물해주는 ‘그 때 그 오빠들’은, 참 어디 가서 얘기하기 쑥스럽고 민망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내게 참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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