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5일 월요일

고시원의 햄릿공주

임승태

<햄릿>은 이제 거의 포화상태라고 해도 될만큼 많은 버전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도 해볼만한 게 남아서 일까, 아니면 하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만만하고 익숙하기 때문일까. 웬만큼 잘해선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걸 하나라도 가지고 있거나 또 관객이 건질 수 있게만 해도 나름의 성취를 이루는 게 또한 이 <햄릿> 판이다. 올 상반기에도 벌써 여러 <햄릿>이 공연될 예정이고 올 하반기,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공연될 <햄릿> 소식도 들려온다. 모쪼록 각각의 <햄릿>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고시원의 햄릿공주>(홍승오 작, 이상범 연출)는 햄릿을 제목에서 언급하는 게 적절한가 싶을 정도로 <햄릿> 텍스트의 사용 비율은 낮다. 하지만 원작의 핵심 대사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가 우리시대 청년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함량과 관계 없이 ‘햄릿 맛’이 나는 그런 작품이었다.
2010년대 <햄릿> 들에서는 “사느냐 죽느냐”로 시작하는 제4독백을 중심으로 다루더라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 후반부의 대사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단식농성 중인 임재춘 콜텍 해고노동자가 오필리아로 출연했던 <구일만 햄릿>이 그러했고, 구의역 김군의 죽음을 애도했던 <임영준 햄릿>이 또한 그러했다. <고시원의 햄릿공주> 역시 “(건물) 가진 자의 오만”을 장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같은 노선을 취한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햄릿의 제4독백은 삶과 죽음, 잠, 꿈을 언급하는 전반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삶을 이어가거나 죽음을 택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외부적인 요인이 있겠으나 결국 자기 자신이 선택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햄릿> 플롯을 취하는 이상 이 질문에서 극이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고시원의 햄릿공주>는 드문 선택을 한 사례에 해당한다. 초반 두 명의 저승사자(남태관, 김영호 분)가 코믹한 톤을 이끌어가서 그렇지 정소정(이새날 분)이란 인물은 처음부터 이미 사느냐 죽느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린 상태다. 청년 자살자가 급증한 바람에 저승의 영혼 수용 능력에 문제가 생겨 자살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이승에 내려온 두 저승사자는 정소정의 마지막 순간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개입해 보지만 그의 죽음에의 의지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저승사자(특히 공경)와 더불어 관객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 또한 한 인간의 존엄한 결정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공연이 마무리 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위험하다. 공공지원금 심사를 받았다면 자살을 미화한다며 우려를 표하는 심사위원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공연을 보는 순간에는 그런 걱정을 설핏했다. 하지만 이날 객석을 채운 20대 관객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청년들에게 헬조선, 지옥고(=‘지’하방 + ‘옥’탑방 + ‘고’시원)가 어느덧 일상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햄릿은 죽는 것은 잠을 자는 것이지만, 잠을 자면 꿈을 꿀 텐데 그 꿈이 어떤 꿈일지 알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하길 주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 뜨고 있는 현실이 이미 지옥인 상황에서는 현실보다 더 나쁜 꿈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이 작품이 재공연될 수 있었던 것은 정소정의 선택이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