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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일 금요일

답을 찾아 떠난 사람의 이야기, ≪생각은 자유≫


 박종주

1년. 그가 한국을 떠나 있었던 시간이다. “질문만 던지는 연극을 만드는 데에 질린” 그는 무언가 답을 찾기를 기대하며 독일행을 택한다. 150편이 넘는 연극을 보고, 독일,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그는 그 1년을 보낸다. 무언가 답을 주는 연극을 그는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은 자유〉(김재엽 작, 연출)은 그 1년의 성과 ― 인터뷰, 사진, 영상, 연극 리플렛까지 ― 를 모아 만든 연극이다. 두산아트센터 인문극장 “갈등” 시리즈의 하나로 상연되고 있다.
어떤 연극인의 (특별한) 일상에 관한 연극이므로 〈생각은 자유〉는 자연스레 연극에 대한 연극이 된다. 연극의 도시 베를린에서 연극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여주고, 베를린의 연극인들이 가진 생각을 들려주고, 그것들을 보고 듣는 한국의 연극인이 하는 고민을 풀어 놓는 그런 연극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연극인 동시에, 작가가 본 여러 연극들, 그리고 그가 만든 여러 연극들에 대한 연극적 비평이다.
〈생각은 자유〉를 이끄는 것은 거의가 주인공의 방백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읊는다. 그러고 나면 그 구체적인 상황이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된다. 그렇다 보니 무대 전환이 빠르고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맡는 일도 많다. 때로는 관객 일부를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다소간 산만한 가운데, 적지 않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

시작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세월호다. 그가 베를린으로 떠난 2015년의 사회적 화두였고 따라서 연극적 화두였던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이 연극은 연극의 사회적 소명을,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세월호만은 아니다. 전작의 소재였던 용산 참사나 민중총궐기를 주최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수감 소식 (마침 5월의 마지막날 그의 형이 확정되었다. 징역 3년, 벌금 50만원.) 등 몇 가지 사회적 이슈들이 언급된다.
공공극장에서의 작품 검열이 있는 나라에서 연극을 해 온, 용산 참사를 “그저 소재로 가져다” 연극을 만들었던 그에게 베를린의 연극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공극장 예술감독이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기획하는 모습도, 이주니 제 3세대니 하는 사회적 이슈들이 극장에서 직접, 그것도 당사자들에 의해 다루어지는 모습도 말이다. 〈생각은 자유〉는 그런 모습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에 1차적인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했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정확히는 ‘연극인’인 관객들에게 말이다. (전혀 우습지 않은 장면들에서 웃었던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배우나 언급되는 연출가를 알고 있는 연극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외의 연극을 접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혹은 한국의 연극 이상의 것을 상상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새로웠을지 모르겠다. 무대에서 반복되는 대사 중에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밖에 있으니 보인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그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되물음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 관심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물리적인 ‘밖에 있음’을 요구하는 어떤 것은 아닐 터이다.
그의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것을 “이주Migration”라고 표현한다. 돌아갈 곳과 돌아갈 날을 정해 둔 이에게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이주민”의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시각에서부터 그는 “세계시민”의 시각을 또한 배운다. 그러나 나는 의심한다. 그의 시각이란, 가장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관객의 시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안내서 한 권을 들고 극장을 찾아 골목골목을 돌아 다니는, 적은 노력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남이 찾은 답을 얻어 가기 위해 극장을 찾은 그런 관객 말이다.

극장과 광장

『연극과 정치』였던가, 그가 읽은 책은 그에게 고대 그리스 시민들에게 극장에 가는 일은 의무였다고, 이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그런 의무였다고 알려 준다. 극장이란 곧 국가의 대소사를 논하는 광장이요 토론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 정신이 오늘날 베를린에 살아 있음을 본다. 사회적 이슈들을 토론하는 곳으로서의 극장, 낯 모르는 이들이 말을 나누는 곳으로서의 극장을 그는 그곳에서 체험하고 돌아 왔다.
귀국을 앞두고 짐을 싸는 그에게 아내는 묻는다. 새로운 연극이 무대에 올라야 할 곳이 극장일지 광장일지를 말이다. 그의 답은 단순하다. 극장을 광장으로, 광장을 극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연극이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라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가 출국 전에 품었던 ‘답을 주는 연극’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소위 선진국의 사례를 알리는 이 연극은, 관객을 무대에 올리고서도 그들에게 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그 이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껏 제도화된 극장 안에서 이 연극이 만드는 공간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교실에 가깝다. 아는 (것으로 전제된) 사람이 모르는 (것으로 전제된) 사람을 상대로 혼자서 내내 이야기하는 그런 교실 말이다.
글쎄, 나는 그의 전작들을 보지 못했고 그가 얼마나 달라져서 돌아온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나 확인한 점이 있다면 한 장면 정도를 빼고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내내 엄마의 역할이었다는 점 정도다. 그 1년간 그가 연극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가 과연 충분히 경험하고 충분히 고민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연극만 따로 떼어 고민하는 것으로는 ― 연극과 이어질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 충분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새로운 종류의 광장을 열 준비가 되어 돌아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연극이 그러하듯, 광장은 연극이 끝난 이후에 열릴 것이다. 극장 바깥에서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 광장을, 책 한 권 (그가 읽은 『연극과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 이상을 하지 않은 채 끝나 버리는 (그 정보들을 물론 연극은 일종의 현장성을 갖고서 전하지만) 이 연극이 연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광장을 여는 것은 연극인들이 아니라 늘 관객들이었다. (그는 예술가들이 최초로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

한국 바깥에서 살아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극장 바깥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극장으로서의 광장, 광장으로서의 극장을 운운하지 않아도 이미 곳곳에 광장이 있다는 사실이라든가 하는 점들 말이다. (어느 정도는 겸손이겠지만) 그 스스로 그저 소재로 삼았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용산 참사를 갖고서 거리에서 싸우고 토론하고 노래하고 시를 읊었던 사람들이 있었듯 말이다.
극장이 광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교실의 꼴을 벗어나는 일일 터이다. 작가나 연출이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면, 극장에서 ‘가르침’은 일방향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혹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장에 모인다고 생각하고서 만들 때에야 연극이 광장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지는 연극을 만들고자 하든, 답을 주는 연극을 만들고자 하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해 본 적 없을 질문, 관객들이 갖지 못한 답이라는 믿음은 극장을 지루한 교실로 만들 뿐이다. 광장이라는 수사가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평등한 이들이 자신의 관점을 내세우고 서로를 설득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극장이 광장이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점은 그러한 평등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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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엽 작/연출
〈생각은 자유〉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2017.05.23.-06.17.
5월 30일 관람.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관객과의 대화 (11월 22일)

김재엽 작/연출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서" (2014.11.04-30,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1월 22일 공연을 마치고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눈 질문과 대답을 일부 소개합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김재엽 연출과 두 배우 (오대석, 김원정) 를 비롯하여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와 시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좌측부터 김재엽 연출, 맹문재 시인, 김현경 여사, 오대석 배우, 김원정 배우


백석 시인에 나타난 여인 나타샤 처럼 그런 중요한 의미셨을 텐데, 그게 지금 돌아가신 이후에도 엄청난 추억으로 삶의 힘이 되시는지, 선생님과 사셨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얼마만큼 행복한, 사실은 살아내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지금까지의 영향은 무엇인지요.

김현경 여사

김 시인은 하루가 똑같은 날이 없었어요. 매일매일 정말 좋게 말하면 충동적이고 또 그런가하면은 꼭 봄날같이 따뜻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같은 날이 없으니까 감동의 연속이었어요. 시에도 나타나지만 시를 똑같은 영감으로 쓰지 않으셨어요. 꼭 시는 그 다음에 쓰는 시는 거기서 벗어나야 된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시 한편을 쓰면 큰 산고를 겪었다 하셨어요. 시를 한편 쓰면은 초고를 쓰고 난 다음에 나한테, “여편네한테”  꼭 필사를 시켰어요. 원고지에다. 근데 하나, 무지무지 섬세하고 깐깐한 양반이에요. 그렇게 충동적이고, 술도 폭음을 많이하신 양반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쓸 때만은 그렇게나 엄숙했어죠. 딱 옆에다 앉혀 놓고 미리 원고지를 다 준비해놓고, 그 다음에 만년필까지 준비하고, 만년필을 특별히 말하는 건 잉크 빛깔까지도 이 양반을 신경을 씁니다. 잉크 빛깔도 맞지 않으면은 쓰지를 않으세요. 그러니까 그 파이로트 잉크를 사기 위해서 마포에서 충무로 체육관까지 나와야 해요. 그 정도로 준비가 단단해요. 그리고 제가 옆에서 쓰는데 그냥 이거 베껴라가 아니에요. 옆에 앉으셔가지고 내가 그 원고를 보면서 시 제목 쓰고 김수영 쓰고 그 다음 제가 베끼기 시작하면 꼭 한줄 띄고 점찍고 행 바꾸고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거의 다 썼는데 저 같으면 그동안 쓴 게 아까워서 틀린 데만 고쳤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됩니다.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하니까 몹시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니 말하자면 그렇게 엄숙하게 다루시거든요. 돌아가신 지가 벌써 50년이 가까워 집니다. 46주기에요. 저는 46년 동안 반세기를 뻔뻔스럽게 살고 있는 여편네죠. 그래도 아직도 제가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건 47셉니다. 돌아가신 나이가. 그 젊은 나이가 아깝고. 또 하나는 진짜 빈틈없는 공부벌레에요. 공부하는 태도 책읽는 태도 번역하는 태도 시를 쓰는 태도는 생활하고 일치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남편한테 어리광같은 거 부려본 적도 없어요.  그게 용납이 안되니까. 그리고 그때도 그것이 하나도 괴로움이라든지 무슨 생활고로 연결을 안시켰습니다. 그냥 대단한 양반을 둘도 없는 남편을 모신 데는 게 큰 자랑이었어요. 그 당시에 무슨 동창회 같은 모임에 나가면 야 너 학교 때 꽤 허영심도 크고 그랬는데, 어떻게 지금 이러고 사느냐. 닭을 기른다며 이러면서 무시를 하는 거에요. 그게 반발이 되어서. (그당시에는 1960년대만 해도 김수영은 그저 참여 시인이지 이렇게 위대한 시인이라는 걸 잘 인식을 못해요. 그 당시만해도 서정시 청록파 시인이 으뜸입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모든 관념이라든지 서정 같은 걸 다 부인하잖아요. 혹시 시 구절에도 조금 낭만적이고 흐름이 좀 조용하고 그래서 내가 옆에서 베끼면서 아 이게 좋다 하면 거칠게 또 고칩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한 말이 있어요.) 그래 내가 김수영 시인하고 사는데, 김수영은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시인이야 이렇게 큰 소리를 뻥 쳤어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40주기가 2008년도였어요. 그때 그 친구가 그 소리를 듣고 감명을 듣고 신문에서 광고를 보고 신문회관까지 찾아왔어요. 신문회관에서 40주기 학술대회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가 그 말을 다시 확인시켜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가 참 그런 말을 했지. 그런 긍지로 살았어요. 그러니까 더 없는 감동의 연속이고 정말 나를 이렇게 오늘날까지 지켜주고 또 그 에스프리로 나를 이렇게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는 거. 그러니까 상식적인 행복을 넘어서서 진짜 대단한 행복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섯 분한테 드리고 싶은 질문은 연극 보면 연출자가 배우들과 고민 많이 하면서 만든 연극 같아요. 준비하시면서 혹시 가장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다면 알려주시구요. 연출자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 두개가 있는데, 지난번 알리바이 연대기 때도 재엽님 역할을 정원조 배우가 하셨고, 이번에도 또 하셨잖아요. 혹시 굳이 재엽님의 역할을 정원조 배우에게 맡기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하고요. 대사중에 “재엽아 너는 연극을 왜 하냐”이런 대사가 있는데, 이번 연극을 준비하시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원정 배우

저희가 1월에 워크샵을 했을 땐 저도 시대적 배경을 많이 알지 못했어요. 그 당시엔 “거미”라는 시가 저한테는 되게 와닿았습니다.

오대석 배우

대답을 하기 전에 여기 다 계신 분은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어보셨을테고 좋아하시니까 남아계실 것 같은데요. 꼭 발화해서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꼭 정답은 없으니까 그날 느낌대로 시를 꼭 소리내어 읽다보면 저도 이번에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는데, 매일 매일 달라요. 제가 시를 계속 하잖아요. 저의 대사들은 거의다 산문에서 나온 말들이거든요. 이걸 매일 계속 발화를 하다 보니까 그때마다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근엔 “저 하늘이 열릴 때”가 그런 거 같은데. 여기 계신 분들은 집에 돌아가셔서 시를 한번 그냥 소리 내서 자기가 가장 편한 곳 있잖아요. 샤워하다가 아니면 술 드시다가 정말 그 시를 만끽을 한다는 건 눈이 아닌 거 같아요. 내가 말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오거든요. 그게 여러분들 안에 김수영을 찾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현경 여사

남편의 작품 중에서 최고 작품 같다고 생각하는 건 “도취의 피안”이라는 시에요. 그게 정말 시를 쓰는 시의 방법론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에스프리라든지 이런 것이 대단히 높은 시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이미지가 추상적이고 그래서 물어봤어요. 시가 감동이 큰데 정말 누가 흉내낼 수도 없는 정도의 시라 생각하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냐 했더니, 이건 이 양반이 사회주의에 대한 하나의 향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사회주의라는 게 인도주의에서 왔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양반이 의용군을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돌아와서 정말 사경을 헤매었어요. 정말 죽을 고비를 두 번 이상 넘기면서 살아남은 게 신통하죠. 물론 참여시도 많고 “풀”도 있고 하지만 정말 시작으로서 시 자체로서 평가 받을 때 제가 제일로 생각하는 게 “도취의 피안”이구요. 그리고 또 제가 그렇게 47세에 요절하셨지만 좀 아깝죠. 지금 4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젊은 나이와 그 공부 벌레, 진짜 시인입니다. 학문도 깊어요. 철학 서적도 칸트서부터 하이데거까지 원서로 읽으시거든요. 노는 걸 못봤어요. 늘 책만 들고 있었지. 그렇게 간단없이 열심히 공부하셔서 그런지 아쉽다고 하는 양반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더 좋은 시를 썼을까. 또 시절에 있어서도 경고를 많이 하셨잖아요.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글은 지금 읽어도 누구한테든지 영원한 시인에 있어서는 교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서도 제가 생각할 때는 초기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쓴 시 하나하나가 다 완성이에요. 미완성이라는 건 없습니다. 하나하나 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시인

저는 "눈"이라는 시를 제일 좋아합니다. 눈은 김수영 전집에 세 편이 있어요. 처음에 있는 시.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데고 기침을 하자. 눈 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을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뱉자.” 라는 시인데요. 제가 20대 때 김수영을 처음 보면서 저하고 시 같이 습작하던 친구가 저보다 이 시를 먼저 외워서 멋있게 낭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젊은 나이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80년대 상황이니까요. 뭔가 이렇게 망설이고 눈치보고 문학을 한다는 저도 뭔가 이렇게 어떤 사회적 발언을 했을 때 나에게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이런 걸 망설였을 때 친구가 이 시를 담담하게 낭송하는 걸 보고 제가 시쓰는 방향을 새롭게 가져서 외웠던 시입니다. 눈은 기침을 하자는 젊은이 다운 부르짖음도 좋지만, 김수영 시는 철저히 관념을 배격한 시여서 눈이라는 게 어떤 관념이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 눈을 보면서 김수영 자신이 눈에게 자신의 마음을 동화 내지는 투사한 인식의 산물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시를 문학사상에다 내가 읽은 한편의 시에서 그 때도 이 시를 소개하면서 저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김수영의 이 시를 읽으면서 시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시적인것 이런 것이 아니고 자기 눈으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주체성을 가지고 해석하고 나름대로 상징화할 수 있는 것 그런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를 준 시입니다.

김재엽 연출

저는 작품 쓰기 위해 여러가지 시와 산문을 읽게 됐는데, 희곡을 써야 하는데 자꾸 시를 읽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 때가 많았습니다. 연극에도 나오는데 제가 대본을―   보통 때도 늦게 쓰는 편이긴 한데―많이 지체가 돼서, 과연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많이 못 찾은 이유 중에 하나도 시를 한번 씩 읽고 나면 약간은 정지상태가 옵니다. 똑바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시인이 계속 이렇게 자기 삶에 대해서 투명해지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많이 나와서 그걸 타인을 보면서 자기를 반성하고, 다른 사물을 보면서 자기 마음을 투영하는 힘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강가에서”라는 시가 있는데, 자기 보다 남루해보이는 어떤 사내를 보면서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 이 사내가 가지고 있는 생의 어떤 건강한 기운은 도대체 뭘까. 자유롭고 그럴 수 있는 힘은 뭐지 이런 걸 반추하는 건데. 연극하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서 이렇게 곁눈질 하면서 만들어내는 건데 거기에 내 자신은 얼마만큼 정직한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던져줘서 고민만 하다가 공연이 이렇게 배우들 몫으로 고스란히 올려진 것 같아서 상당히 송구스러운 그런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저보다 훨씬 멋있게 생긴 정원조라는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구요. 정원조 배우가 사실은 두번째 제안할 때 부담스러운 제안이었는데, 흔쾌히 좋아해주었고 서로 오픈한 상태에서 얘기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라서 계속 해서 같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에 끝나고 나서는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다음에는 또 얘기를 새롭게 해볼 생각입니다.

저는 시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극을 사랑하는 청년인데요. 남산에서 하는 연극을 자주 챙겨보고 있는데, 작가님에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저와 같이 시와 김수영시인에 대해 잘 모르는 제 또래 관객층에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고 싶었는지 그리고 두 번째로 작품 중에 김수영 시인과 강신일 배우의 마지막 장면이죠. 철조망 뒤편에서 마지막으로 휴전협정을 맺은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는 변한게 없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반세기가 지난 이 시대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김재엽 연출

작품 초반에 광화문 광장이 나오구요. 광장과 청와대 앞을 시를 읽으면서 걷는 행위는, 지금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을 때도 우리는 결국 동시대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읽는다면 그런 모습일 거 같다는 측면에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와 소통을 해보려고 하는 이유가 지금 현재 많은 사회적인 모순이나 갈등들이 50년대 60년대 김수영 시인의 시대들의 갈등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미루고 미루고 못본척하고 지나쳐 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들이 분단이나 한국전쟁 언론의 자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시인이 몸부림치면서 얘기했던 부분들인데 사실은 우리는 50년이 지나서도 그때 당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거나 혹은 시인이 온몸으로 괴로워 했던 예술가의 모습들이 우리는 어떤 부분은 간과하면서 내가 예술하려고 하는 부분만 생각하고 있지 세상과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메시지라고 할 건 없지만, 이 시대 후배들 혹은 세상에 대해서 자기가 자신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나는 모르고 있다. 혹은 모른다라는 사실 때문에 위축되어서 말 못하고 있는 게 많은 거 같은데, 내가 느끼고 내가 아는 것 만큼 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느냐, 사실은 그게 큰 문제인거 같고요. 알아야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 궁금한 건 또 물어볼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시인한테서 제일 많이 발견했던 게 세상과 맞서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라기 보다도 내 자신한테 얼마만큼 솔직한지 내가 정당하지 못한 거에 대해서 내가 얼만큼 괴로워 할 줄 아는지 자기 양심의 문제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고 혁명을 꿈꾸는 것이 내 양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제일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혁명이란 말도 어릴 때는 사회적으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뭔가 부담스러웠는데, 사실은 그게 내 자신을 내가 속이지 않고 지내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맹문재 시인

우리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랑 격변의 시대를 온 몸으로 헤쳐나가려고 했던 시인이죠. 그래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김수영 시인이 온몸으로 지향했던 건,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적 모더니티를 추구했던, 한국적 근대화를 추구하려고 했던 시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외적인 환경들, 분단이라든가 언론의 자유라든가 기존의 유교적 인습이라든가 제도 이런 것들에 대항하려 했던 거 같아요. 오늘 김현경 여사가 여편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하나의 단어를 통해서 한국적 근대화를 추구하려고 했던 면모를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수영 시인이 여성을 일컫는 호칭 중에서 여편네가 가장 많아요. 여인 여성 그녀, 영자 등의 구체적 이름도 있지만, 여편네가 제일 많아요. 이 여편네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해서 여기 앉아계신 사모님을 보고 시에서는 여편네라 했지만 시인은 여편네를 하나의 시적인 상징체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만용에게”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는 양계장을 하면서 경영 적자가 나니까 여편네가 김수영 자신에게 나무랍니다. 계란 값이라든가 모이값을 가지고 나무라는데, 거기에 대항하는 시거든요. 나는 여편네에게 질 수 없다라고 외치니까 언뜻 그 시를 읽어보면 자전적인 이야기여서 사모님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때 여편네라고 하는 것은 그런 자본주의의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인 것이죠. 근데 이 자본주의라는 게 우리가 속물근성으로 따라가는 그런 근대화를 이루어선 안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근대화여야 하는데,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상으로서 여편네라고 칭한 거에요. 그렇다면 만약에 다른 언어로 예를 들어 사장놈이라든가 이런 말도 있는데 왜 여편네라고 했을까라는 것이 궁금한데, 바로 그런 점이 김수영 시인이 공부를 많이하고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하는 나름대로의 전략이죠. 왜냐면 자본주의라는 적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에 대항하는 전략도 단순해선 안되요. 사장 이렇게 쓰면 단순하잖아요. 사장이 어떻다라는 건. 여편네라는 말은 두 가지 속성이 있는데, 하나는 친밀하죠. 부모 형제보다도 친밀한 말이면서 또 여편네라는 말은 고용주와 고용인처럼 계약관계로 되어 있어요. 이혼을 하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여편네라는 말은 아주 친밀하면서도 아주 객관적인 언어인 거에요. 그랬을 때 여편네라는 말을 통해서 그 속성을 자본주의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침투되어 있어요. 우리를 속물근성으로 만들어 주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나를 옭가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칭할 수 있는 말로 여편네라고 하는 것이죠. 그 대항체로 객관화하니까 그 대항체로서 적으로 삼을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언뜻 읽으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김수영 시인이 그렇게 자유정신을 지향하고 근대적 시정신을 가지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반여성주의적 언어를 사용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김수영 시인은 여성을 비하하려 했던 게 아니라 자본주의 속성에 물들어 가는 자신에 순응하지 않고 대항하기 위해 여편네라는 호칭으로 저항하려고 했던 것이죠. 물론 여성주의 입장에서 보면 잠재된 내면의 남성주의적 면이 있다든가, 어디까지나 그것은 반여성주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지나쳐 보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김수영 시인은 한국적 근대화를 추구하려 했던 것이고 그것이 관념이나 추상화가 아니라 지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처럼 철저히 자기 반성적이고 자기 성찰을 통해서 나가려고 했던 점에서 구체성을 띄고 시적인 힘을 받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수영의 시어들은 명사들이 많지만 여운이 많이 남고 인상이 짙게 있는데, 그것은 김수영 시인이 쓴 시어들이 명사로 화석화된 게 아니라 다 움직이는 동사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몸으로 한 단어가 시대에 저항하려고 했던 근대화를 지향하려고 했던 산물이 아닐까 그렇게 봅니다.

직접 한번 확인을 해봐야 겠습니다. 그 사모님, 댁에서 김수영 시인이 사모님을 부를 때 여편네란 말을 한 적이 있는지요?

김현경 여사

집에서 여편네 소리는 안해요. 여보 소리 제일 많이 한 거 같고요.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죠. 정말 가슴으로 존경할만한 대시인입니다.

 요즘 언론의 중립성도 문제지만 그런 것들이 예술에까지도―광주비엔날레나 부산 국제영화제등 처럼― 침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작품을 준비하시면서 그런 고민은 없으셨는지요. 그리고 제목이 연극에서는 “내안의 김수영을 찾아서”라고 되어 있는데, 제목을 왜 지금의 시 구절로 바꾸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재엽 연출

“어느날 고궁에 나오면서”가 제일 강력한 모티브를 주었던 거 같아요. 작은 일에 분개한다는 게 서로가 조금 양립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분개한다는 건 솔직한데  작은 일에만 분개한다고 해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질문이 저는 결국 그게 그냥 답인 거 같았거든요. 그 말 자체가. 자기 모습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 문장에서 다 나와버린 것 같아서 그렇다면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인의 모습이 우리한테, 나한테는 있는가. 부제는 그런 면에서 붙여 봤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뭐 이 정도 작품하는 건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요새는 압박을 가하거나 할 때 대놓고 하지 않거든요. 지원금 신청하면 떨어뜨린다든지 6개월이 지났는데 기억하고 있다든지 이런 식으로요. 어떤 일이 있겠죠. 있을 거 같고. 지금도 연극계에서는 연극인들이 세월호 관련해서 천막 농성하고 단식을 길게 하는 바람에, 뭐 꼭 그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예술위원회 쪽에서 35년동안 멀쩡하게 해왔던 (서울)연극제를 대관 심사에서 떨어뜨린 일도 있습니다. 나란 되게 소심한 사람입니다. 대범하게 잡아가든지 이러면 확 눈에 띄기도 하고 관객도 좀 많이 올 것 같은데,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조선 일보 기자들도 보고 가셨는데 기사는 안써주시고. 사람들한테 대화할 수 있는 브릿지(bridge)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하자고 충동질하거나 제가 뭘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전혀 아니구요. 오히려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길로서 극장이란 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보고 가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면, 우리도 사소하게 뭔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정도의 차원이었지 이 작품이 대단한 걸 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없었습니다.


최근에 희곡아닌 문학작품들이 연극무대에 많이 올려지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소설을 연극화하고 또는 소설을 낭독하는 공연도 있고, 이번엔 시가 중심이 되는 그런 공연인데, 극작가이자 연출을 겸하시는 입장에서 극작가로서 시가 자신에게 주는 가능성 또는 무게감, 반대로 연출가로서 시가 가진 가능성들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재엽 연출

소설을 가지고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소진 소설가님의 『장석조네 사람들』이란 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소설은 내러티브에, 영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시가 오히려 연극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김소진 소설가의 작품은 대사가 구어체로 방언을 사용하셔서 언어 자체가 그냥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바로 연극이 되었던 거 같아요. 이번에 시 같은 경우는 세상이 하도 회귀를 하니까 정치라든지 세상을 통치하는 방식에서 너무 옛날 목소리가 나오니까 저희들 세대만 하더라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목소리 사고 방식이라서 여기에 대해 과거의 우리 선배 선생님들은 어떻게 외쳤고 어떻게 대응을 하셨는지가 궁금해서 옛 시인들의 시를 읽어 봤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부담스러운 목소리를 가졌던 어르신들, 접어 놓았던 시인들을 다시 꺼내서 봤는데, 그때 부담을 느꼈던 건 거기서 제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던 게 가장 컸던 거 같아요. 그들이 그 목소리를 내서 일종의 스스로 존재하려고 애썼다는 그 모습이 그때는 단지 하나로 어떤 수양의 관점에서 보였다면, 지금은 내가 하루를 살더라도 내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라는 그 목소리가 되게 실존에 걸린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가 좀 읽히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전에는 읽지 못했던 시들이 이제는 읽히는 걸 느끼면서 시가 만약 무대에서 발휘된다면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좋은 배우님들하고 같이 시가 공감대를 울릴 수 있으면 어떤 드라마적인 구성이나 잘 만들어진 연극 이런 거 말고 그냥 그 목소리 자체만 가지고도 충분히 우리에게 동시대적으로 살아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극 중에서도 김수영 시인의 시론이 소개되었습니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쓰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출 선생님께서는 이 몸이란 것이 어떤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고, 오대석 배우님께 그렇다면 연기라는 건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재엽 연출

全존재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존재 그 자체인 거 같아요. 머리나 생각을 하는 것과 느끼는 것 그것 자체를 구별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로서 사실은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를 말하는 것 처럼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 시를 쓴다는 것이고 예술 한다는 것도 사실은 예술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 예술이다. 이렇게 받아들여지더라구요.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런 상황을 겪었다라는 느낌이거든요. 과연 진짜 전존재로 온몸을 받쳐서 작품을 마주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그 말 속에서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오대석 배우

가장 중요한 기본은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기초가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연기에 대한 생각은, 우선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똑같다라는 건 예를 들어 인간의 성격이 백만 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모두가 똑같은 퍼센테이지로 태어나는 거죠. 흔히 우리가 보고 있는 나쁜 성질, 좋은 성질들이 백만 가지라 해도 모두 똑같이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디서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서 퍼센테이지가 옮겨지는 거죠. 그후에 사회적으로 해선 안된다는 게 있으면 그 비율을 바꾸게 될 거고, 물론 바꾸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그래서 지금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 것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전제하는 건 어쨌거나 사람은 다 똑같은 거에요. 우리가 길을 가다가, 저는 남자니까, 섹시한 여자를 보고 흥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나서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걸 한다는 것에서 내 안에 그 성질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거죠. 단, 내가 사회적인 제한에 따라서 그런 걸 감추고 있는 거라는 거죠. 그런 전제하에 제가 생각하는 연기를 하는 방법은 첫번째로 절 믿는 것인데 (예를 들면 살인자 연기를 하려면) 저도 살인자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그러면 살인자 역할을 맡을 때 저에게 남아 있는 0.0001 프로 남아 있는 이 살인자의 성질을 배우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프리즘을 통해서 백프로로 만드는 거죠. 백프로로 만들면 제가 무대에서 살인자가 되는 거에요. 그 다음에 공연이 끝난 다음에 분장을 지우면 그 프리즘을 통해서 다시 나로 돌아오게 되는 건데, 제가 후배 배우들이나 선배 배우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는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의 유일한 면죄부의 공간이 종교가 아니고 무대라는 겁니다. 여기서는 역할에 따라 살인을 잔인하게 할수록 박수를 받게 되더라구요. 이 시작점은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만큼 사람들을 믿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해요. 그래야 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키워서 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되게 극단적인 역할을 맡은 경우에 그분들이 그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하고 나서 길을 잃어버려서 잠깐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시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중간과정의 프리즘을 좀더 잘 끊임없이 연마하고 있다면 이 (프리즘을) 오고가는 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녹취 정리 임승태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공존을 위한 말걸기: <배수의 고도>

by 에스티



언제부터인지 소위 웰메이드 드라마에서 어떤 불편함을 가지게 되었다. 얼핏 보기엔 톱니가 딱딱 맞물려 매끄럽게 돌아가는 듯하지만 연결 부위가 되면 배우들의 동작이 왠지 어색해보이고 리듬이 흐트러지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연극들에 대한 괜한 반감이 작동해서 그런 부분만 주목해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올해 상반기에 가장 기대하고 있던 <배수의 고도>가 ‘사실주의적 문제극’의 외형을 갖추고 있음을 극장에서 확인한 순간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소재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위기와 절정에 이르기 위해 발단과 전개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을, 그것도 두번씩이나, 보고 있는 것은, 비록 그 사이에 코믹 릴리프가 적지 않게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한 일이었다. 쯔나미 직후를 시점으로 하는 1부와 그로부터 12년후를 배경으로 하는 2부 각각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까지 배우들의 잦은 등퇴장과 필수적인 정보들이 찔금찔금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있는 일은 아주 즐겁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나 자신도 그렇게 느꼈지만 많은 사람들이 1부와 2부를 두 편의 연극이 인터미션을 사이에 두고 연달아 공연되는 것처럼 보았다. 이 공연을 호의적으로 본 사람들에게서마저 2부가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드라마트루그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인터미션 없이 연달아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아마 이렇게 했다면 양 파트의 연관성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2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그 자체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너무 만족스럽게 끝난 1부 탓이 큰 것 같다. 특히나 1부 마지막에서 하성광이 연기한 노자키씨의 고백이 큰 울림을 만들어냈는데, 거기서 이미 충분한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인터미션 이후 다시 시작하는 듯한 리듬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정작 그렇게 시작한 미래가 머리를 건드리되 가슴으로 다가오긴 어렵다는 점 또한 작용한다.

안좋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것은 이 작품을 결코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저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재빨리 언급하고 본론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작년에 같은 극장에서 타다 준노스케 연출의 <가모메>를 보면서도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일본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후쿠시마 대재앙은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떻게 그들의 작품에 등장할 것인가? 타다의 <가모메>의 무대에서는 쯔나미를 직접 언급할 일은 없었지만, 그때 무대는 내 눈에 너무나도 건조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건조함은 쯔나미가 지나가고 나서 바싹 말라버린 것 같은 건조함이었고, 연출 스스로도 무대 구성에 있어서 쯔나미를 염두에 두었다고 밝힌 바 있었다. 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레어티즈의 첫 반응은 이미 너무 많은 물을 먹었으니 자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결핍을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이미 그것이 충분하다는 반증인 것이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보다가 놀란, 어쩌면 조금은 의아했던, 지점은 이 작품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6개월만에 초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놀라운 속도이다. 남들이 이 사건의 여파에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작가로서 자신의 임무가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있다는 것을 빨리 자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신속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작가는 3.11 이후 6개월만에 12년 후의 일본을 상상한다. SF 팬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미래 세계라는 설정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이패드의 세대 수가 두 자리가 충분히 넘어갈 시점이지만 여전히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아이패드를 사용한 것을 보면 연출이나 디자이너 역시 그 부분에 대해 특별한 비전을 가지진 않았던 것 같다. (안 한 걸 못했다고 하면 안된다. 하지만 더 잘못된 것은 안 한 걸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불변성이 2막이 보여주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1막에 등장한 인물들이 2막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의도적인' 억지 설정이다. 이 정도면 1막 이후 카타오카 다이고의 죽음으로 2막에서는 등장하지 못한 선종남 배우도 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런 엉뚱함을 받아들이고 나면, 작가가 인물을 선악의 구도로 나누거나 특정한 입장을 대변하는 꼭두각시로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옳고 그름의 대결이 아니라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이라는 연출의 표현대로 이 연극엔 악당이 없다. 있다면 쯔나미라는 거대한 괴수일테고, 이 괴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는 사람들만이 보인다. 노자키씨와 유우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일반적인 극 세계에서도 실제 세계에서도 용서받기 힘든 일이지만, 그 날이 다 용서한다. 노자키씨와 유우의 고백에 의해 먼저 관객이 용납하니, 이시즈카 선생님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정치인 오다기리마저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우리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실 갈등이 벌어질 수 있는 인물 구성이 아니다보니 1막이나 2막의 중심 사건은 사실상 처음부터 좋게 해결될 수 있는 수준에서 벌어지는 갈등이고, 이점은 사실주의적 드라마트루기로서는 약점일 수도 있다.

주제나 형식에 있어서나 입센의 문제극이 떠오르는 이번 작품은 특히나 <민중의 적>을 떠올리게 한다. 2년 전 샤우뷔네 베를린에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민중의 적>을 볼 수 있었다. 원작의 2막 2장에는 스토크만 박사가 온천 개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강연을 하는 장면이 있다. 원작에도 스토크만이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관객을 향해 직접 연설하도록 고안되어 있는데, 이날 공연은 이러한 방식을 따르면서 아예 관객들로 하여금 스토크만 박사에게 직접 질문하고 장내에서 즉석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이 시간은 다행히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독일 관객들에 의해 차고도 넘쳐났다. 2막의 타이요는 자신이 공공의 적이 될지언정 거대한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는 투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토크만 박사와 유사하다. 물론 그는 이 문제가 토론이나 데모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급진주의자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작가 자신이 타이요의 방식을 지지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극 전체가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는 발제문 같다. 여기에 연출가의 에필로그가 이 발제문을 읽고 토론해야 할 쪽은 이웃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전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고, 그 원전이 크고 작은 고장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새로운 원전이 지워지고 또 계획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우리들의 <알리바이 연대기>

by 산책



연극이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고, 나아가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고, 또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관객들이 그것을 불편해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연극을 멀리하거나 싫어 하지 않을까 때때로 걱정한다. 연극이 정말 좋고, 연극 안에서 나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떼기 어렵다. 연극은 비싸니까, 어려우니까,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나는 극장에 주로 혼자 간다. 이런 것을 알리바이라고 해야 할까? 알리바이라고 할 만큼, 잘못인 걸까?

  <알리바이 연대기>는 나와 다른 공부를 하는, 다른 관심을 가진 10명과 관극했다. 대부분 관극 경험이 많지 않은데다가, 작년에 여러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했더니 기대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소개한 나로서는 이 작품이 정말 좋은지, 모두가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 주위 사람들에게 재차 확인하게 되었고, 조금은 가슴을 졸이며 극장에 갔다. 2시간 30여분의 긴 공연 시간에, 시국이 시국인 만큼 마음을 언짢게 할지 모르는 내용 때문에 공연 중에도 때때로 마음이 불편했고, 공연이 끝나고는 이 작품에 대해서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설명과 변명을 하고 싶었고, 조금 그렇게 했다. 나의 걱정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린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게 들려주고, 보내준 그들의 감상을 최소한의 편집을 거쳐 함께 싣고자 한다.

  1998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193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2014년에서 끝난다. 그러나 무대 위에는 현재의 나(재엽)와 그 당시의 아버지 뿐 아니라, 그 과거를 회상하는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존재한다. 이 인물들은 무대 위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방 당시 어린 아이였던 아버지와, 그 시간을 회상하는 아버지, 그것을 다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재엽까지 우리는 동시에 세 가지 시간, 세 가지 시점을 만나게 된다. 지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버지에 의해 회상되면서 과거가 되고, 재엽에 의해 다시 전달되면서 과거 완료가 된다. 이렇게 겹겹히 쌓인 시간은 그들의 역사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대구에 살아 극중 지명들이 친근하며, 역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는 B는 이렇게 말했다.

인물에 대한 초점 전환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세대별로 이 작품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젋은층에게는 이전 세대들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그려보는 기회가, 노년층에게는 자신의 지난 세울, 커다란 꼭지들을 되짚어 보며 순간 순간 자신의 모습들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해방, 한국 전쟁, 4,19, 5,18, 1990년대까지 이어져 온 학생 운동은 나를 비롯한 젊은 이들에게는 지나간 과거, 글로 배운 과거이다. 부끄러운 과거도, 가슴 아픈 사건도 우리에게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분명 이 작품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옆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은 어렸을 때, 광화문 근처에 사셨고, 김재철이 다니는 거며, 시위 장면들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거리를 둘 수 없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보다 훨씬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고, 재엽의 아버지가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힘겹게 고백하는 자신의 알리바이 역시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이제껏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다소 냉소적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이 쉬이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알리바이에 대해 H는 죄를 지은 사람과 우리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만드는 것 같다고, 일부, 나쁜 사람들만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P는 아버지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알리바이 연대기임을 생각했고, 삶의 사실을 은폐하는 알리바이가 우리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P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버지의 고백이 알리바이인 것은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개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우리조차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또한 아버지의 연대기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사건들을 떠 올리게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생각했던 나의 알리바이들을 곱씹게 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라지 않은 K는 무대 위로 소환되는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역사의 거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선생님보다, 그 시대를 배워서 아는 우리들보다 멀리 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덕분에 그들의 감정과 이야기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 이야기에 선생님께서는 남명렬 배우가 유려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는 논평을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타는 자전거는 정말로 매끄럽고 우아하게 객석과 무대를 가로 질렀다. 이 자전거 장면은 K와 H에게는 더욱 특별한 것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객석 중간까지 들어 오는 배우를 보고 그들은 조금 놀랐고, 무대를 한층 가깝게 느꼈으며, 무엇보다 무대와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무척 희미하거나, 극단 뛰다의 <바후차라마타>처럼 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오는 파격적인(?) 공연들을 소개해주고 싶다. 이런 방식이 이제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연극은 아직 대중적인 예술이 아니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재엽의 아버지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여러번 되뇌었다. 이 땅에서는 뿌리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외국 책을 사 모으고, 아들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사람 많은 곳에 서라고 가르쳐 왔다. 우리는 이 의미심장한 충고도, 침묵으로 숨어버린 사람들도 비난할 수 없다. C가 이야기했듯이, 그들은 “다수”이며, 우리 역시 그 “다수”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사느냐”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고 말해준 P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어떻게”가 중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침묵해온 시간들은 애지중지 사랑했던 막내 아들에게 힘겹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 C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다는 외할아버지가 재엽의 아버지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로 홀로 상경해 대학을 다닌 75학번 내 아버지를 떠 올렸다. 아버지가 살아낸 그 시간은 어땠을까.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고백할까. 후에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고백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뒤늦은 후회도 소용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따라 자전거를 탄 재엽의 모습은 우리가 그 알라비아의 고리를 쉽게 끊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마지막 순간 관객을 바라보는 부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각자의 연대기를 되돌아 보라는 요청으로 느껴졌다. 극장을 나오면서 J는 이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건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알리바이 연대기는 재엽 부자의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극장을 나온 우리는 마음이 무거웠고,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미안했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마음에 남은 것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공동체적 경험이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났으며, 앞으로 조금은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5월 장바구니

by 산책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고,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마음의 생채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꼬박 일주일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여전히 쉽게 웃고, 떠들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5월의 장바구니도 무척 늦었습니다. 기다리시던 독자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4월에 예매해 둔 <노래하는 샤일록>을 겨우 보고 왔습니다. 도무지 웃고 싶지 않았고, “배”를 언급할 때마다 가슴을 꼭 여며야 했습니다. 공연도, 글도 다 재미없다고,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뷰티플 민트 라이트가 강제로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술은 대체 뭘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노래를 하고, 듣고, 공연을 하고 보는 것은 (강제로 취소 되어야 할만큼) 부적절한 일인걸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는 연극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굳게 믿습니다. 때로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때로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기력감을 떨치고, 힘을 내서 5월 공연들을 예매했습니다. 공교롭게도 5월에 고른 작품들은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입니다.



아버지 역의 남명렬 배우와 소년 재엽 및 재진 역을 맡은 지춘성 배우 (2014 서울연극제 연기상 수상)
사진제공: 국립극단

<알리바이 연대기>, 4월 25일 – 5월 11일,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 김재엽 작, 연출 

2013년에 제5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2013 제6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 무대예술상 2013상을 수상했고, 한국 연극평론가협회 공연 베스트 3, 월간 한국 연극 공연베스트 7로 선정되었습니다. 수상 내역, 선정 순위와 관계없이 2014년 지금부터 1930여년까지 우리 사회의 중요했던 사건들을 아버지의 삶, 형과 나의 삶과 연결시키며 새로운 방식으로 되돌아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장바구니가 게시될 때는 이미 막을 내렸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신 것 같지만,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이번 가을에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도 공연된다고 하니 조금 기다리시면 다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알리바이 연대기> 리뷰 보기




<황금용>, 5월 9일 – 18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윤광진 연출 

이 작품 역시 2013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김상렬 연극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베스트3', 한국연극지 선정 '베스트7', 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주위의 추천을 받아 예매하게 되었습니다. 극중 황금용은 식당 이름입니다. 이 식당은 불법체류자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당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냐, 그것도 아니랍니다. 이주민과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을 48개의 장면으로 보여주며, 배우들은 여자, 남자 뿐 아니라 곤충으로도 분한다고 합니다. 독일 극작가의 작품이지만 단일 민족을 자랑해 오던 우리 나라도 더 이상 이주민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푸르른 날에>, 4월 26일- 6월 8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 센터, 고선웅 연출 

이 작품은 작년에 이미 관극했습니다. 작년에도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고, 올해 역시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5. 18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이 시종일관 무겁거나, 윤리적인 판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삶이 역사 속에서, 또 사회 안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 그러한 질곡을 빗겨가지 못한 사람들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화해가 지금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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