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3일 금요일

우리가 비로소 진실을 내뱉을/삼킬 때: <빈센트 리버>

민예빈

  지난 7월 11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약 3개월간 공연된 연극 <빈센트 리버>가 막을 내렸다. 영국 극작가 필립 리들리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빈센트 리버>는 올해 국내에서 초연되었으며, 연극 <그을린 사랑>, <와이프> 등을 연출한 신유청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빈센트 리버>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빈센트 리버’에 대한 작품이지만, 빈센트 리버는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에는 빈센트의 어머니인 아니타와 빈센트의 죽음을 최초로 목격한 데이비(데이비드)가 등장하고, 두 인물의 2인극으로 진행된다. 데이비와 아니타의 대화는 ‘빈센트’로 시작해서 ‘빈센트’로 끝난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이유와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아니타 그리고 죽은 빈센트의 잔상에 시달리는 목격자 데이비. 두 인물에게 있어 대화의 쟁점은 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빈센트 리버이나, 연극은 치열하고도 은밀한 대화 속에서 변화하는 데이비와 아니타의 관계에 주목한다. 빈센트가 혐오 범죄로 살해 당한 날의 기억을 꺼내기까지, 두 인물의 이야기는 오래 전의 삶으로부터(아니타는 데이비의 나이였을 적, 데이비는 10대 초반이었을 적으로) 출발한다.

  아니타는 스무 살 남짓할 적에 유부남과 연애하여 빈센트를 임신하고, 이로 인해 엄마와 다툰 후 가출하기에 이른다. 빈센트를 임신하게 되면서 연인과 가족으로부터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 아니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아들인 빈센트뿐이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일종의 정신적 죽음을 한 번 경험한 아니타는, 아들인 빈센트에게 모자 관계 이상으로 집착을 보인다. 데이비의 대사 중 빈센트가 대학교에 합격하였지만 입학하지 않은 이유는 빈센트의 의지가 아닌 아니타의 의견이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아니타는 빈센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우려하고 필요 이상으로 그의 삶에 개입하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아니타의 정서적 결핍과 불안은 그녀의 아들인 빈센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안정적으로 의지할 수도 없고, 어머니의 품을 완전히 떠날 수도 없는 인물로 성장하는 환경을 조성했을 것이다.

  데이비 역시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 죽음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폭력적이며, 어머니는 데이비가 어렸을 때부터 암 투병을 했던 병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데이비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강요된 이성애주의의 피해자로, 부모에게 순응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숨기게 되어 스스로를 억압한다. 특히 건강하지 않은, 병든 어머니의 존재는 그가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심리적으로 분리되지 못하고 강요에 굴복하게 되는 요인을 형성한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연약한 어머니가 있는 가정 환경에서, 데이비가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원치 않는 약혼까지 자행하는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 가속화된다. 데이비의 아버지가 우리 사회에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폭력이라면, 어머니는 기존의 사회에 적응하여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써 은연 중에 존재하는 압박과 폭력이다.

   아니타와 데이비의 ‘사랑’은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측면을 갖는다. 아니타가 유부남과 연애한 것은 불륜으로,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와 사회적 관습의 지배를 받아 금기시되는 사랑의 형태이다. 데이비가 빈센트를 포함한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 역시 여전히 금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경향이 있으며, 동성애 혐오는 이러한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적으로 금기의 지배를 받는 불륜과 동성애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몰래 행해지며, 죽음과 버림받음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파멸의 결과는 사랑의 부산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규정한 금기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력의 경계선이다.

  금기의 지배를 받는 두 사람에게 중요한 오브제는 술, 마약, 진정제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아니타와 데이비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술, 마약, 진정제 역시 사회 내에서 금기의 지배를 받는다. 술은 연령이 제한되어 있고, 마약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진정제 역시 의사의 처방 없이 복용할 수 없다. 이 오브제들은 사회에서 건강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인데, 아니타와 데이비는 이 금기시된 오브제들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들을 결박하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탈피하고 서로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한다. 아니타의 술을 데이비가 함께 마시고, 데이비의 마약과 진정제를 아니타가 복용하면서 각자의 도피처를 공유하고, 각자의 가면을 하나씩 벗어버리며 빈센트에 얽힌 진실에 점점 다가간다.

데이비가 경험하는 반동성애적 금기는 빈센트에게도 해당된다. 빈센트는 30년의 삶 속에서 아니타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빈센트와 데이비의 관계는 열렬한 사랑 또는 따뜻한 우정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두 인물은 강요된 이성애주의라는 사회적 관습과 불안정한 가족 관계에 짓눌려 욕망을 숨기고 살아왔다.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가 경험하는 가족 관계 내에서의 억압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억압으로 인해 두 사람의 만남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특히 데이비는 안정적인 ‘집’이 아닌 자신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성관계를 갖길 원하였다.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의 시선과 병든 어머니의 곁에서 빈센트와 데이비는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숨겨야 했으며, 결국 억압된 심리는 서로를 향한 육체적 에로티시즘으로 표출된 것이다.

빈센트의 생전에, 아니타와 데이비의 심리 상태는 금기된 사랑으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라고 공통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빈센트의 죽음은 두 인물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형성한다. ‘빈센트’는 아니타에게 연인과 부모를 대신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데이비에게도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극 초반부에 데이비는 자신이 빈센트의 연인이었고 그가 살해당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부인한다. 또한 아니타는 빈센트가 소문처럼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며 그 소문을 회피한다. 그러나 두 인물이 부정하고 있던 진실이 점점 벗겨져 가며, 그들은 일련의 퇴행 과정을 경험한다. 각자 가지고 있던 기억을 퍼즐조각처럼 끼워 맞추면서 아니타와 데이비는 자신의 과거와 상대방의 과거를 공유하고 결국 빈센트의 살인 사건에까지 이른다. 데이비의 대사와 함께 텍스트의 공간은 이들이 서있던 집에서 빈센트가 죽은 날 밤 화장실로 이동한다. 그들은 빈센트의 죽음을 부인하며 불안해했던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 빈센트의 죽음을 똑바로 마주보고, 모든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아니타와 데이비는 서로에게 빈센트였으며, 빈센트가 존재하기 이전에 형성되었던 그들의 결핍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정서적 합일은 ‘키스’로 표현된다. 이 키스는 사랑과 에로티시즘에 관한 것이 아닌, 빈센트에게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낼 수 있는, 그리고 아니타와 데이비가 서로에게 보낼 수 있는 상처에 대한 애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빈센트 리버>는 2000년에 쓰인 희곡으로, 당시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동성애 혐오 범죄를 소재로 다룬다. 1989년 말과 1990년 초 사이에 런던 서부 지역에서 수차례 발생하였던 동성애 혐오 범죄 사실을 미루어 보면, <빈센트 리버>는 당대 사회의 혐오 문제를 직시하고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희곡이 쓰인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혐오 문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빈센트 리버>는 2021년 국내에서 초연되었지만, 20년 전이 아닌 현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혐오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13년 7월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2014년 이래로 동성 결혼이 시행되고 있다. 동성 결혼이 동성애 혐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에 대한 선택과 사랑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서구권에서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에서 동성 결혼과 동성애 혐오 문제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공연된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문제의 화두를 한 번 더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아니타가 데이비의 이야기를 따라가듯, 데이비가 아니타의 이야기를 따라가듯, 관객들은 두 인물의 대화를 좇아 몇 십 년 전의 추억부터 몇 달 전의 사건까지 일련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두 인물은 각자의 말을 내뱉고 서로의 말을 삼키며, 온 시공간을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작가는 상실을 경험한 아니타와 데이비에게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관객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빈센트 리버 사망 사건에 대한 일말의 기억을 들을 뿐, 그 이후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얻지 못한다. 데이비는 집을 나가는 것으로, 아니타는 집에 남는 것으로 끝맺는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기 보다는 배우의 입을 통해 말해진 사건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는 그 자체로 현재가 되어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앞으로’에 대한 해결책과 가시적인 희망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억압된 삶을 살았던 아니타, 데이비, 그리고 빈센트가 경험한 정서적 결핍과 그러한 삶의 방식이 서로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곱씹어 보게 하며, <빈센트 리버>를 보는 이들에게 ‘앞으로’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빈센트 리버>

극작: 필립 리들리
연출: 신유청
출연: 서이숙, 우미화, 전국향 (아니타 役), 강승호, 이주승 (데이비 役)
무대: 박상봉
조명: 강지혜
음향: 지미 세르
의상: 홍문기
소품: 노주연
분장: 김남선
관람일: 2021년 5월 9일
충무로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글쓴이 소개

민예빈은 연극과 영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존재과 시공간, 언어와 텍스트에 관심을 갖고 비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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