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4일 월요일

공개 집담회: 문화예술 검열 사태와 창작 주체들의 대응 양상, 그리고 검열의 심급

주 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공연예술학 전공
일 시 : 2015년 12월 3일
장 소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신양학술정보관 301호
참석자 : 이양구 작가, 윤혜숙 연출, 서울대 공연예술학 과정 구성원 등
정 리 : 김재영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사업과 ‘팝업씨어터’ 기획 공연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해 지원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공연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와 뉴스 보도 등을 통해 대중에 공개되었다.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 협동과정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 검열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검열이 창작자들의 창작 태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앞으로의 대응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위해 ‘대학로X포럼’의 이양구 작가를 초청하여 공개 집담회를 진행하였다. 이 글은 집담회에 참석한 공연예술학 과정 교수 및 학생, 그리고 문화예술 검열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부 참석자들과 이양구 작가, 윤혜숙 연출의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Q1. 팝업씨어터 피켓 릴레이 시위에 연극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소수의 관객들도 동참했던 것으로 알고 있구요. 그런데 문화검열 문제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과 지원을 받는 창작자 양 주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검열에 의해 다양한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지 않으면 관객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사실상 관객 또한 피해자로 볼 수 있고, 그래서 관객들이나 시민들이 이 문제의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피켓 릴레이 시위에 관객들이 얼마나 동참했는지 궁금하고, 만약 관객의 동참이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앞으로 관객들이 스스로 당사자임을 인식하게 하고, 이 문제에 동참하게 할 전략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양구 작가 : 관객들이 오시긴 했는데 연극인들의 지인들이 주로 오셨습니다. 누가 당사자인가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창작산실 지원사업에서 박근형 연출의 작품만 검열당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박근형 연출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다 검열의 대상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의 종용에 의해 지원을 포기해야 했던 박근형 연출만 검열 사태의 피해자, 당사자가 아니라, 창작산실에 지원한 다른 창작자들도 검열의 피해자로서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하는 당사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안은 공적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실은 시민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이 사태의 당사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박근형 연출이 앞에 나서고 안 나서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이 사태의 당사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관객들을 동참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경성 연출이 ‘관객에게 말 걸기’라는 글을 써서 관객을 동참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구요. 저는 오히려 역으로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관객분들은 혹시 동참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하구요.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와 논문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Q2. 창작산실이 어떤 지원 사업인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양구 작가 : 현재 순수 창작 연극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차년도 대본 공모에서는 다섯 개 작품을 선정하고 대상 한 작품은 5천만 원, 나머지 네 작품은 2천만 원씩 지원합니다. 한 해에 200편 정도가 지원을 합니다. 2차년도에는 낭독 공연 등을 통해 다섯 작품을 또 뽑고, 각 작품에 제작 지원을 1억 원 정도 해 주고, 좋은 공연이라고 평가받으면 그 이듬해에 다시 재공연을 위해 1억 원 정도가 지원됩니다. 통상 많이 받으면 2억 원 이상씩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극단 입장에서는 제법 재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따라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죠. 작년까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주관했는데, 올해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면서 검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Q3.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검열’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양구 작가 : ‘검열’은, 국가 권력이 정치사상적인 이유로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벽돌신문’, ‘복자’처럼 텍스트를 지우거나 잘라내는 것, 혹은 특정 작가의 작품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 등의 형태로 ‘현시적’인 검열이 존재했었구요. 1930년대 ‘아웃소싱’된 검열을 보면 인쇄, 출판 자본들이 원고를 검열하는 것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떤 작가의 글을 출판했는데, 납본한 후에 검열 당국이 ‘이 부분은 삭제하라’고 명령하면 그 부분을 수정해서 재출판해야 하는데, 이 때 비용의 부담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출판사들이 알아서 작가들의 원고를 검열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작가들도 출판되고 원고료를 받으려면 알아서 검열하게 되는 거구요. 전시동원체제가 되고 검열이 더 발전하고 되면 나중에는 작가들을 불러서 정치적 선전에 이용하는 형태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검열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1925년도에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경찰과장이었던 다나카 타케오가 <조선사정>에서 정리한 ‘다섯가지 차압기준’ 같은데 보면 조선민족독립사상 고취 등 정치 사상적 검열부터 풍속 검열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1936년도 출판경찰개관’에서 확인되는 일반검열표준이나 특수검열표준을 보면 검열 기준들이 아주 세세하게 여러 분야, 여러 관점에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검열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검열관이 작가의 무의식 깊은 곳에 들어오게 하는 것인데요. 검열이 내면화되어서 작가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작가 자신이 검열관이 되는 거죠. 검열은 또 모든 작품을 삭제하고 방해하는 형태가 아니고, 몇몇 샘플들을 골라내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그럴 경우 ‘이 단어를 쓰면 안 되는구나’, ‘이런 내용을 쓰면 이 극장에서는 공연을 못하겠구나’와 같은 생각을 작가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죠. 특정한 단어를 금지하는 것은 그 단어로 형성되는 개념을 금지하는 건데 일제 때도 이를테면 ‘대한’ 등 조선이라는 국토, 독립 등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은 금지되었습니다. 이번 팝업씨어터의 경우 ‘수학여행’ ‘노스페이스’ 등 ‘세월호’를 연상하게 하는 공연은 앞으로 공공극장에서 공연하기 어렵다는 신호가 된 거죠. 그럼 배가 나오는 공연은 괜찮나? 고등학생은 나와도 되나? 우습지만 공공극장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싶은 작가라면 이제 그런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겠죠. 그래서 검열은 창작자들의 창작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4. 연극인들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대응 시위를 하고 있는데, 차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양구 작가 : 연극인들은 시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 연극의 동시대성은 극장 안이 아니라, 극장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 검열 문제를 연극으로 담아내어 극장 밖,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의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첫 번째는 오동석 헌법학자를 모시고 강연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검열은 헌법상이 금지하는 중대한 문제죠. 헌법이란 게 국가를 만들 때 근본적으로 합의한 약속인데 여기서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같은 것을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한다’고 합의한 겁니다. 이런 얘기를 좀 다루려는 거구요. 두 번째 세미나에서는 식민지 검열 즉, 1900년대 초 러일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던 식민지 검열의 제도사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개별 장르들인 연극, 음악 등에서 검열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느냐를 살펴보고, 네 번째 세미나에서는 현재 검열이 어떤 문화예술 제도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2월 7일 처음 시작하여 부정기적인 세미나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검열의 법제사를 살펴보면서, 검열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연극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런 주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검열의 문제도 창작자들의 창작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서 다양한 형태로 연극에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5. 검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공연예술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영화 등과 같은 인접예술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의 예술가들과 연대를 할 계획은 있나요?

이양구 작가 : 예술인연대포럼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열 문제에 대해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토론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난 10월 5일 예술인연대포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연극인들이 활발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직접 작가를 찾아가 창작산실 지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연극인들에게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었죠. 마리 관장이 스페인에서 검열을 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미술인들의 항의가 있었고요. 그 밖에도 무용, 영화 등의 분야에서도 검열과 관련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세미나들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Q6. 검열주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요?

이양구 작가 : 몇몇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의 실명이 뉴스, 신문 등을 통해 보도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검열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죠. 저는 처음에는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니까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검열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령 1930년대 검열관들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 등 엘리트들이다 보니 자신들을 일종의 계몽의 주체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요. 지금 문화예술계에 있는 공무원 집단이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담당 직원들은 공연 예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해외로 유학을 갔다 온 경력도 있을 만큼 전문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로 연극 작품들을 수준 낮은 작품으로 인식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인들이 범죄자라는 인식도 거의 없는 것 같고, 본인들은 도리어 조직을 지키느라 자신들이 한 일에 비해 과도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조직을 지키느라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니까 자신을 일종의 희생자로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Q7. 지금 검열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검열을 하려면 무언가 기준이 되는 규정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창작산실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 기준이나, 내부적인 작품 선정 규정 같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누가 이러한 검열을 생각하고, 지시하는 것인지 궁금하고, 어떤 프로세스에 의해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이양구 작가 : 저도 윗선에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그는 과연 누구일까 고민해 본 적이 있고, 혹은 윗선에서 지시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검열을 하려는 직원은 누구일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몇몇 혐의자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검열의 주범이라고 단정 지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고요. 그래서 누가 검열을 지시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검열은 단순히 문화예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을 실행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가 있고, 그것을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검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8. 팝업씨어터의 당사자인 윤혜숙 연출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검열 사태가 창작자의 창작 태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공공 지원을 받으려면 이런 내용은 쓰면 안 되겠구나’, ‘이런 내용으로 쓰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판단을 통해서 공공기관이 원하는 작품을 쓰게 되는 것이죠. 윤혜숙 연출은 아마 이러한 자기 검열의 방식과는 반대로, 자기 검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방향으로 창작태도가 변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검열 사태를 겪으면서 본인에게 미쳤던 영향과 창작태도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윤혜숙 연출 : 팝업씨어터 공연 거부를 결정하기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창작산실 문제가 한참 시끄러웠는데, 그 때 저는 처음에는 분노했다가 점점 그 문제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칼이 비로소 제 목에 들어왔을 때, ‘내가 이제서야 이 문제를 당사자로 인식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타파에서 국정감사자료가 보도되었을 때에도, ‘내가 공연을 거부한다고 해서 무엇이 변화할까, 저들이 몇 개월 후에 다시 국정감사에 나가도 지금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중에라도 이 문제에 대해 똑바로 이의제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연 거부 직후에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후시기나 포켓또>를 ‘씨어터 까페’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연했는데, 그래서 검열 사건이 이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후시기나 포켓또>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일제 강점기의 아나키스트인데, 이 인물에 대한 연극을 만들면서 부당한 것에 입을 닫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구요. 다음 작품으로 오레스테이아 이야기를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검열 사건이 제 창작활동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대본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것, 예를 들면,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칠 때, 저주를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던 장면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든가 하는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자꾸 눈길이 가는 장면들이 하나 둘씩 생기는 것이죠. 연극에서는 창작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분명히 이 사건이 제 창작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구요. 차기작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검열 문제를 직접 다루는 공연을 바로 하지는 못하지만, 나중에라도 이 문제에 대한 연극을 만들어서 공연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관객들하고 어떻게 소통할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신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하자면, 공연을 만들어 놓고 관객과 소통하기도 힘든 처지에 이런 사태에 대해서 관객과 창작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디씨인사이드 사이트에 있는 연뮤갤 게시판에 ‘검열에 반대한다’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고 합니다. 대학로 연극 포스터에도 검열문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런 경로를 통해서 차츰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양구 작가 : 검열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안 했다’고 발뺌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라고 얘기할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고, 그것이 일탈로서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구요.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더라도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팝업씨어터나 창작산실 건에 대해서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를 밝혀보자, 그리고 그들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실히 얘기해보자는 것입니다.

Q9. 저는 이 사건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제 말이 외람될 수도 있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자면요. 대응 목표가 세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법의 문제와 법적 감수성의 문제를 구분해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들을 동참시키고, 문화적인 감수성으로 발언하는 경우와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모호하게 문제 제기만 하고 성과없이 끝나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양구 작가 : 이런 문제를 좀 더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게 된 것도,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런 가능성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10. 검열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고, 심지어 플라톤의 시대로까지 올라가는 문제입니다. 검열주체가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고, 공직자들에게 검열이 내면화되는 과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검열 문제에 대해서 반론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팝업씨어터에서 왜 그렇게 무거운 작품을 해야 하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반론들도 실제로 나오고 있구요. 일부에서는 ‘괜히 모든 것을 정치삼는다’는 식의 논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예술적으로 이 사태를 비평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의미나 가치를 평가해주고, 그래서 이 작품이 팝업씨어터에서 다뤄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었나를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두 가지의 작업이 같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검열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업이고, 두 번째는 검열과 관련된 작품에 대한 비평 작업이죠. 현장에서는 전자의 문제를 다루고, 학계에서는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가면 서로 보완해 가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비포 애프터》 이경성 연출, 전강희 드라마터그 인터뷰


드라마인에서는 지난 11월 20일 <비포 애프터> 팀의 이경성 연출님, 전강희 드라마터그님을 모시고 이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의 대화 내용 일부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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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태 : 어떤 관객이 얼마나 공연장을 찾았는지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정부에서 꺼리는 주제를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선택한 형세가 되고 말았는데, 극장이 얻은 수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산아트센터는 비영리 극장이기 때문에 전석이 만석이 되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올해 두산 작업 중에서 관객 점유율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두산은 일반적으로 20-30대 젊은 관객층이 많은데, 이 작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왔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임승태 : 연령층이 다양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경성 : 젊은 극단이기 때문에 특정 관객들이 몰리는 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세대 배우와 같이 작업하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이 넓어졌고 만날 수 있는 연령대가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세월호가 특정 연령에만 국한되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공연 오픈 전에 홍보하는 단계에서 세월호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을지 아닐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월호를 쓰는 것 자체에서 선입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세월호에 국한된 연극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사건들로 얘기를 했었는데, 진행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세월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도 관람했었나요?

이경성 : 안산에서 왔었고, 유가족은 안 왔는데, 유가족의 친구들이 왔었고, 윤일병의 어머니도 보러 왔습니다.

백인경 : 저는 미리 예매를 했었고, 세월호 때문에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산 도큐멘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때 보질 못해서 궁금한 마음에 예매를 했습니다. <남산 다큐멘타>처럼 이번 작품도 형식적으로는 다분히 포스트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극이 상당히 드라마적이고, 전통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햄릿>의 극중극을 사용하는 점이나, “연극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예상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공동창작을 하거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기존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탈피하는 시도라고 보이는데, 사건 중심의 전개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측면은 여전히 전통적인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성 : 일단 저의 배경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연극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강렬한 드라마로 연극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아마데우스>나 <오월의 신부>, <길> 등의 연극을 주로 했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드라마의 한계를 느꼈고, 이것들이 다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극단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적 관심은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 레만(Hans-Thies Lehmann)에 있었고, 논문에서는 두 사람의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비판을 시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레만이나 랑시에르는 연극이라는 것을 내용이 아닌 형식의 문제로 봤고, 감정의 재분할을 얘기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감각이 재배치되는 경험이 연극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으로서 연극의 정치성이 획득된다 그런 것들이 이들의 중심 생각이었고, 이런 것을 레만이 하나의 포괄적인 용어로 ‘포스트드라마’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제는 포스트드라마라는 형식으로 진행됐던 실험의 한계도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레만이 다루고 있는 작품도 시기적으로는 네오 아방가르드 이후 70, 80, 90년대 작업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포스트모던, 또는 포스트드라마적으로 해석을 열어두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으려고 했던 형식적인 실험은 그것이 다의적인 해석으로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든 맥락을 형성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무한정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영역에서 말을 걸려고 하는지에 대한 맥락들을 어떻게 형성하면서 다의적으로 열 수 있을지를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돌하고 상호모순적이지만, 그것을 굳이 드라마로 표현한다기 보다는, 컨텍스트를 구조 내에서 유지해 나가느냐, 그러면서 관객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이 각각의 요소나 재료들을 연결하면서 이 맥락 안에서 의미망들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포스트드라마, 포스트모던에서의 허무함이랄까 건조함이랄까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제 작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되게 포스트모던이라기보다는 모던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제가 드라마를 먼저 하고, 포스트드라마를 하고 그 다음은 어떤 형식적 실험을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전강희 : 바키의 배우들이 자기 얘기를 꺼내고 기승전결 스토리가 없는 연극을 만드는 방식에 점차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형식을 가지고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드라마적인 것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연습을 하면서 더뎠던 부분이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배우들 스스로 정리된 것이 있어서라고 생각되는데, 서로 반응이 오는 시간이 빨라지고 결과물도 빨리 나왔고,  감정도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드라이한 연극이어도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면 가지고 노는 것이 더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경성 : 감정보다는 정서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요. 이번 리허설 도중에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의 관계자가 와서 연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연극도 다큐적인데,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보다는 정서가 굉장히 짙게 배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정서가 생소하고 낯설면서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저 스스로도 생각을 해 보았고, 만들면서 내가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과, 이것을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이것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노력했습니다. 뭔가를 할 때 일부러 정서를 안 넣으려고 의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임승태 : 이번 작품이 특히 그런 건가요? 직전의 <남산 도큐멘타>와 비교해 보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산에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으나, 세월호나 배우들이 자신이 겪은 죽음을 얘기하다 보니까 객관화할 수 없고 객관화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지점이 생긴 것은 아닌가요?

전강희 : <남산 도큐멘타> 같은 경우는 소재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객관화시키기가 더 쉬웠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자기 이야기라서 그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연기하는, 배우라는 역할 수행의 측면에서 객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성수연 배우는 아버지에 대해서 썼는데, 그것을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에 말할 때에는 객관적인 거리를 두지 못했을 텐데, 연습실에서는 배우로서 거리를 두려고 했고, 대사를 쓸 때에도 ‘우리 아빠가’가 아니고, ‘관객에게 이것은’을 항상 떠올렸습니다. 배우의 태도에 있어서 객관적 태도를 잘 갖췄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내용 자체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는 것이라서 거기에서 이전 작품과는 다른 ‘정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인경 : 다큐멘터리 연극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건들에 얘기하거나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세월호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겪은 일이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안에서 숙성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라고 해도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의 관객들이 봤을 때에는 우리와는 다르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장면처럼 강렬함을 전달하는 경우에는, 사건이 해결되면서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직 사건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원한 느낌보다는 의문이나 아쉬움같은 감정이 더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이 아닌 의견 제시로 가게 되었네요.

임승태 : 이 의견을 받아서 질문을 하자면, 드라마가 없는 연극에서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전강희 : 이러한 작업이나 드라마가 강한 작업이나 드라마터그의 작업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가 없기 때문에 연습실에 더 많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가 A를 얘기하다가 이번에 B에 대해 얘기를 한다면 그 사이에 변화의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했다라는 것을 드라마터그가 얘기를 해줘야 해요. 스토리에 대한 것이나, 분석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은 다 하는 것이구요. 이번 작업에서는 연습실에 최대한 많이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바키는 연습을 한다기보다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고, 드라마터그는 런을 돌 때, 런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연습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나온다면, 그것이 맞다 안 맞다를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함께 있는 것이 이번에는 중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경성 :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요소 요소를 논리로 엮어야 하는데, 그것을 연출이 하지만 제3자가 필요한 것이죠. 당신이 봤을 때 이 진행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는가를 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연출의 요청에 따라서 수행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할 수 있었는데, 배우들이 연출과 바로 할 수 없는 순간에 드라마터그가 그 사이에서 배우와 연출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전강희 : 제3자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통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습실을 많이 안 가기도 하지만, 저는 연극의 과정을 알지 못하면 제3자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3자가 될 수 없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많이 가서 봐야 진짜 제3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바키 작업은 그런 면에서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계속 바뀌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김재영 : 연습 과정에서 많은 장면을 시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장면은 깎여 나가고, 어떤 장면은 공연의 큰 줄기 안에 포함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연습한 여러 장면 중 공연의 논리적인 구성에 잘 부합하는 장면들만이 살아남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졌을 것인데, 연습 과정에서는 훌륭하다고 느꼈지만, 공연의 논리적 흐름 상 배제된 장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공연에서 제외하기로 판단했을 때, 배우들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 장면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호흡과 감정에 대한 것인데요.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자극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워크샵을 통해서 호흡과 근육의 작동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노나 슬픔과 같은 외부의 자극이 배우에게 올 때, 그것을 배우의 내부에서 어떻게 바꿔낼 수 있는지를 연습했습니다. 모든 배우가 함께 모여서 분노, 슬픔, 화 등의 감정을 호흡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는데,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면들 사이사이에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들을 배치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웃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정이 화와 분노로 발전하고, 분노가 다른 방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연기 수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결국 공연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환대'와 관련된 장면이었습니다. 워크샵에서 내 옆의 사람, 나의 관련 없는 사람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는가, 어떻게 마주하고 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환대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배우 중 한 명이 백화점이나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예를 가지고 와서 그런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점차 감정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장면을 살리려고 했는데, 다른 장면들이 들어오면서 이 장면이 들어오면 공연 전체의 그림에서 너무 뜨는 느낌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배우들도 이 장면을 삭제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 했구요. 장면이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서 형태를 갖춘 시점에서 이것을 살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연출 입장에서는 장면을 포기할 때에 허탈하고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공연 전체의 맥락과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이러한 점에 대해서 배우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강희 : 저도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광고를 가지고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연습 기간 중에 보험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했는데, 특히 생명보험은 생명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상품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서 초기 워크샵에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동안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이 장면이 다 빠져있더라구요.

이경성 : 저는 라디오 광고를 듣다보면 나레이터가 금융상품을 신나게 설명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이런 건 안 되고, 저런 건 안 되고, 이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등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재밌게 느껴져서 그 부분을 살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장면을 만들면서 너무 꽁트처럼 흐르는 것 같아서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경 : 얼마전 광주에서 4시간짜리 연극을 봤는데, 연극 중간 중간에 배우가 퇴장하는 순간에 샴푸 광고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TV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생경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경성 : 오늘날 우리가 지각하는 방식이 어떤 건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샌들을 하나 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세월호 관련된 기사를 찾다가 샌들 광고 팝업이 떴고, 저도 모르게 기사 읽는 것을 중단하고 광고를 따라 샌들 상품을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각하는 방식이 그렇게 팝업되는 것처럼 바뀌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것이 극장에서는 무척 낯설게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지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강희 : 보험 광고 연습을 했던 것도,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을까라는 맥락에서 연습했던 것이었습니다.

임승태 : 사전 질문 8번을 여쭤보겠습니다(질문지 보기). 세월호에 대해서 연극에서 조금 더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과 동시에 과연 세월호라는 사건, 그리고 배우들이 겪은 고통의 경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경성 : 담길 수 있는지라는 말은 당위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임승태 : 세월호를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행위나, 그릇에 잘 담겨진 세월호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일종의 ‘순수한 미에 대한 추구’가 한편으로 굉장히 끔찍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신 손탁(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것처럼, 스펙터클을 원하는 관객의 욕망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구요. 제 경우 세월호 연극을 한다니 보러 가야 겠다는 것이 극장을 찾을 동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고통을 얼마나 “재미있게” 다루는지 보고 싶은 것이 이 연극을 보려고 했던 동기라는 점에서요. 그러면서 이경성 연출이나 바키는 왜 이것을 연극으로 만들려고 했던 걸까?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가? 라는 질문도 함께 들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분명 이러한 고민들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사실 저는 세월호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배우들 개인의 아픔이 들어와 있는데요. 내가 애초에 보고 싶었던 것은 세월호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 ‘나는 세월호의 죽음을 보고 싶은데, 내가 왜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생각해보니, 눈 앞의 사람이 말하는 고통에 귀기울이지도 못하는 내가 세월호의 죽음에 가지는 관심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세월호를 다루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실현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형식적으로 완결되지 않거나, 더 충분히 말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객관화할 수 없는 동시대의 문제이기 때문 아닐까요?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새로운 뉴스가 또 나와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작품 또한 미완결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경성 : 제가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사전 질문지에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통을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반(反)연극으로 보입니다.’라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요?

임승태 : 세월호의 죽음과 배우들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월호의 직접적인 희생자를 언급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죠. 온 국민의 관심사인 거대한 죽음이 전면에 있지만, 무대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배우가 직접 겪은 죽음이구요. 어떤 관객이 세월호를 보러 왔다면 이러한 개인적인 죽음의 경험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경성 :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생각했을 때, 저는 <다이빙벨> 같은 다큐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큐는 세월호에 대한 다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만든 것이구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남을 수 있는, 필름의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목적성을 획득했던 것이구요. 저는 오늘날 연극이 그러한 점을, 죽음의 숨겨진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나, 그 죽음을 가장 적나라하고 아프게 드러내는 방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영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이 연극에 세월호라는 라벨을 붙인 것은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붙인 것이지, 저희가 아닙니다. 제가 이 연극에 노골적으로 세월호 연극이라고 말하게 된 것도 그 후에 일어난 검열 사태와 같은 맥락 속에서 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세월호 연극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세월호를 다뤘지만, 그 너머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통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구요. 세월호가 일어난 원인, 죽음이나, 그 후에 국가가 실패한 것은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오는데, 그것을 연극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번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극을 할 때 연극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연극 자체가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이해하고 다가가는 효과적인 감정의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연극 한 편을 보고 전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내 일로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작품으로 풀어내려고 하는데, 세월호를 제쳐두고는 그 주제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렇게 때문에 세월호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저도 다른 걸로 얘기를 하고 싶었죠. 제 주제를 얘기하는 데 세월호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하나라고 생각하신 관객도 있을 수 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장소 자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어떻게 맞닿아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경험을 연습하기 위해서 극장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극작가가 쓴 어떤 인물의 이야기이든, 배우 자신의 실제 이야기이든 그 부분에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작품 만들 때에는 세월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해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관객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죠. 관객들이라고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개별적인 주체이고,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관객을 생각하고 만든다는 것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생각하면서 만들지만, 어떤 관객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하고 만들지는 않습니다.

전강희 : 준비 과정에서 달라진 감각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해서 무대화할 생각은 별로 없었고,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고, 나도 죽을 수 있다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예전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다가 갑자기 맞게되는 것이 죽음이었다면, 이제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감각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호흡, 분노, 감정 이런 것들도 그 맥락 안에서 연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안 풀리는 지점이 우리가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겠다, 감각에 초점을 맞추겠다 하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봐야 해결되는 지점이 생겨서 그 때 극중극이 들어간 것이구요. 어떻게 보면 세월호가 전체 작품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한 꼭지처럼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감정이 중시되었다면, 후반에는 가장 안 풀리는 것이 세월호이다보니, 나와 세월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자면 세월호가 전부는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이경성 : 초반에 세월호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와닿지 않고, 혼란에 빠지게 된 부분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의미와 해석을 읽는 것이 혼돈에 빠지게 하더라구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바라보자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라는 맥락 안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즉, 이 세 가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국가는 무엇이고, 그 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타인의 고통을, 인권의 유린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세월호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던 부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연극의 목적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매체가 많기 때문에 그 매체들에 양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심하경 : 저는 준비된 관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세월호가 굉장히 드리워져 있었다고 느꼈거든요. 처음 안전수칙 장면에서 그 장면을 바꿔버리는 효과도 있었구요. 극중극에서 저는 불편함을 느꼈는데, 국가에 질문을 하는 방식이 그 질문이 저한테 오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왜 나한테 이러지?”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실 국가는 우리 모두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국가 역할의 배우를 관객석에 앉게 한 것이 그런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백인경 : 우리 모두가 국가이고,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도 국가인데, 여기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난폭한 국가의 대립구도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져서 불편했습니다. 국가도 왕관을 벗고,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느낀다고 말하는데, 책임을 국가가 나서서 너네도 국가의 일부이다라고 밀어붙이지 않고, 마치 여기 극장에 모인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이경성 : 개념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국가라는 것이 맞지만, 지금 이 시점과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조중동의 프레임인 것이죠. 이것을 누군가에게 정확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고, 국가가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덮고 가려고 하는, 개념적으로만 도덕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국가라는 역할을 지정한 것이었구요.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은 그런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햄릿> 극중극 장면을 생각했던 것은 그 날 세월호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세월호를 기억하다>라는 책을 보니, 그 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저도 잘 모르고 있더라구요. 구체적인 팩트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책임 추궁을 해서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면서 또한 인격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얘기하는 것이구요. 실제로 국가는 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가 많이 바뀌니까요.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 박유하 교수가 욕을 먹는 것은, 그것은 국가가 제국주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한 것이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때에는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한 것이죠. 한 개인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국가라는 것이 기관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개인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배우를 국가 역으로 맡긴 거죠.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국가에게 질문을 할 때, 국가 역의 배우가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실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을 얘기하는 것이냐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구요. 객석에서 앉아서 보신 분들은 힘들셨을 것 같고, 배우나 연출도 힘들었습니다.

전강희 : 연습 때에도 많이 얘기를 나눴는데요. 특히 선원 캐릭터에 대해서 그를 개인으로 볼 것이냐, 시스템으로 볼 것이냐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관객들은 힘들었겠지만, 개인보다는 국가, 시스템이 문제이다라고 생각한 것이었구요. 처음에는 선원으로 얘기를 하다가 배우가 나중에는 나경민 개인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부분의 조율이 힘들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민주공화정으로 보면 나도 국가의 일부가 되겠지만, 군주국가로 이해한다면 국가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카메라를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불편을 덜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고, 관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객을 카메라로 찍을 때에도 발을 비춘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안심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무대가 객석을 넘어 들어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사한 주제의 다른 공연(무브먼트 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에서는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을 배우들이 나가서 얘기하고, 연출자가 배우들을 연결해주고, 마이크가 객석으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지 못하기도 했구요. 저는 마이크가 나한테 오면 어떡하지라는 긴장을 했던 것 같고, 나의 기억을 말한다면 그것이 가치가 있나라는 생각도 했구요. 짧은 시간 긴장을 하다가 결국 오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두 공연을 다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편했던 것이죠.

이경성 :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공연은 제 취향이 아니었고, 제게 마이크가 왔을 때 저는 얘기를 안 했거든요. 나는 관람자인데, 행위자가 관람자에게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프라이버시의 라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라인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이 공연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고민했던 것이고, 라이브 카메라가 영문없이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폭력적이고 강요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해 고려를 해야 하는데, 맥락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긴장감과 내가 일방적이고 행위자에게 당하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자는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취향의 문제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라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카메라가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에게 무엇을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터액티브라고 하지만, 정서적인 참여가 있을 수 있고, 피지컬한 참여의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인터액티브라고 해서 피지컬적인 참여를 1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져 있어도 충분히 인터액티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객석을 양면으로 하고 둘러싸지 않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앤다고 인터액티브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인터액티브가 일어날 수 있는 방식은 많은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할 때 아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가 실은 <햄릿>의 극중극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햄릿은 연출님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관람자를 참여시키잖아요. 자신이 설정한 관객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거죠. 연출님이 던지신 메시지는 관객이 직접 받는 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국가라는 캐릭터가 대신 받게 되는 것이니까 일종의 필터일 수도 있고, 간접적인 방식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출님의 취향은 그 쪽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내용은 <햄릿>이고, 그 중에서도 극중극이라는 점이죠.

이경성 : 그것은 하나의 연극적인 장치이고, 국가가 받을 때에도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긴장감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치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은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해서 극중극 자체가 햄릿이 “그래 연극이다”라고 하면서 햄릿이 연극을 통해서 현실에 파장을 미치는 하나의 방편으로 쓰는 것이잖아요. 햄릿이 “덴마크는 썩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햄릿이 인식하는 연극 밖의 현실이 드러나고, 연극을 통해서 현실을 겨냥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연극이 현실을 겨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연극의 무기력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구요.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것이 저의 화두였거든요. 그래서 <햄릿>을 사용한 것입니다.

전강희 : 김다흰 배우가 <햄릿>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온 것이기도 하구요.

임승태 : <햄릿>의 극중극을 다루고 있지만, <햄릿>의 또 다른 주제인 애도가 이 작품의 형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햄릿>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잃은 다양한 아들, 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이번 연극에서도 배우들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는 점에서요. 포스터에 대해서 짧게 질문드릴게요. 드라마터그와 배우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경성 : 먼저 어떻게 느끼셨는지 먼저 듣고 싶은데요.

김재영 : 저는 포스터를 처음 보고 당연히 배우, 중심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출님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럼 연출이 극에 등장하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연출이 극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예상을 깨는 재밌는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최희범 : 저는 양손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보면서 왜 연출이 여기에 있을까, 그리고 왜 배우 중 한 명은 빠져있고 대신 연출의 얼굴이 들어가 있을까, 왜 연출의 얼굴이 이렇게 의미심장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왜 이들의 얼굴을 왜 드러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터라면 공연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텐데 그러한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육성’하는 예술가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데 대한 나름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효인 :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저도 아무런 정보 없이 연극을 보러 간 사람인데요. 당연히 배우인 줄 알았고, 누구지 하면서 봤는데, 연출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연출이 배우로 등장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에게는 불친절하거나, 그러나 두산의 전략은 먹힌 포스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경성 : 두산과 포스터 때문에 충돌했습니다. 잘 포장된 상품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것을 깨는 게 저의 숙제였습니다. 처음 이 포스터에 대한 컨셉 제안을 받고 그 때 얘기했던 것은 일단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구요. 포스터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서 이해가 안 되었고, 제가 연극하는 방식을 절대 반영하지 못하는, 절대 예술가 한 명이 다 만들어내는 듯한 뉘앙스가 싫어서 마지막까지, 제작의 차질을 빚는 순간까지 갔었고, 그래서 내가 너무 신경쓸 일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놓아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두산 입장에서는 작품에서 파생된 시각 이미지를 쓴 포스터가 대학로에 깔려 있는데, 그게 홍보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이경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크게 나와야 하는가,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길러진 아티스트인가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렇게 브랜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해 두산 PD들도 중간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강문화재단의 사장님들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 고취가 더 큰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두산 이미지를 고취하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간에 껴 있는 PD들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구요. 배우들에게 내게 얘기를 직접 못하겠다 같이 얘기하자고 해서 알렸고, 저는 딜레마인 게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예술하는 방식을 어느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누가 순수하게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겠는가.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이란 말이 계속 걸렸는데, 저는 어떻게 이것을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하고 고결하게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기업 지원의 경우에 나는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를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만 제외하면 파트너십이 굉장히 훌륭하거든요. 작품에 대해서 신경쓰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잘 하는 PD들이거든요. 두산아트센터에서 세월호에 대한 연극을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고, 저희가 제안한 것이고, 시기적으로 두산아트센터가 상대적으로 득을 보았죠. 옆에서는 세월호 연극을 못하게 하는데, 두산에서는 하니까 두산아트센터가 필요한 얘기를 하는구나 라는 반응이 나왔고, 극장 측도 뻘쭘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포스터가 나온 것이구요. 합평회 때 저도 적나라하게 두산 측에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전강희 : 배우들은 PD, 극장의 입장을 이해했는데, 창작자 육성 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티스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PD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구요.

백인경 : PD와 창작자 사이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이끌어가기도 하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길들여지기도 하구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공공기관은 훨씬 그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나 개인이 해결할 수도 없고, 내가 투쟁한다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구요. 그런 것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얼마 전, 성북동비둘기가 했던 <망루의 햄릿>의 포스터가 공연이 시작되고  바뀌었습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물청소 하는 사진에서 문자 그대로의 “고성의 망루”가 그려진 포스터로 바뀌었었죠. 공연 관계자에게 포스터가 바뀐 이유를 물어보았었는데, 극장(국립극단) 측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스터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국립극단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타협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이고, 두산의 방식이 그런 것이죠. 현재 상황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랍고, 정부의 입맛에 맞추려면 축소되거나 할 수도 있을 이 시점에서 공연된 것이 놀랍습니다. 트위터 반응을 보면 두산아트센터에 경의를 표하는 반응도 많구요.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한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성 : 연극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구요.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을 한 작품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작품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구요. 그래서 저는 팝업씨어터 사태 난 것도 굉장히 안타깝고 힘든 일이지만 저는 세 연출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화려하게 입봉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이후에 연극의 형식 등에 어떻게 반영될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선배 연극인들이 그런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참여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가장 잘 나간다는 중견 연출가는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참 어렵고 민감한 것이구요. 어떻게 예민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되는 시점입니다.  

백인경 : 창작자 뿐만 아니라 행정가, 기획자 모두가 같이 고민을 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D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힘든 일을 겪고 튕겨져 나오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것에 무감한 사람들이 버티고, 그런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악순환이 벌어지거든요. 창작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측면보다 같이 연대해서 얘기도 많이 하면서 행정 일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서로 좋게 연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작품도 좋아질 것 같구요.

이경성 : 연대라는 것이 같이 싸우는 것도 있지만 검열이라는 문제를 더 넓은 의미에서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 근접 예술 분야와 시민사회까지 이 검열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누군가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것인지를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지가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승태 : 저희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 중인데, 이 문제는 뒤풀이에서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재영 :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경성 : 저한테 연극이란 어떻게 흥미롭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강희 : 저는 삶의 방식이 연극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희곡을 전공했고, 희곡을 하다보니 연극이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연극을 시작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검열과 같은 잘못된 문제에 대해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는 점이 좋고, 그것이 제 삶을 더 다양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단순히 돈을 벌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냥 할 수밖에 없는 것, 내 삶의 한 방식, 그것이 저에게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11월 19일 목요일

다양한 신체, 다양한 ‘이완’: 극단 애인의 <무무> 연습 참관기

글쓴이_최희범

지난 11월 7일 토요일, 극단 애인의 2015년 신작 <무무>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극단 애인은 “연기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극단이다. 연기에 대한 탐구는 애인 작업의 큰 축을 이룬다. 대표 김지수씨가 “배우가 성장하는 극단을 만들고 싶었다”고 극단 창단의 이유를 밝힌 것을 보면, 이 극단에게 장애인 단원들이 연기자로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연습 참관의 목적은 극단 애인이 작품 연습 이외의 배우 훈련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직접 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임박한 시기라서 그런지, 아쉽게도 장면 연습과 런쓰루(도중에 끊지 않고 전체 작품을 연습하는 것) 외에 내가 보고자 했던 기본적인 배우 트레이닝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에 (무려!) 두 번의 런쓰루와 연출과 배우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장면을 다듬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무무> 연습실, 내가 방문한 날이 극장에 들어가기 전 연습실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성 배우의 발전된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이번 연습 참관에서 얻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이 배우는 그를 무대에서 처음 본 2년 전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고, 표정은 풍성해졌으며,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신체적 특성들로 인해 “원활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것에 ‘장애’가 있는 그의 목소리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렁차지는 않았고, 발음도 부정확했다. 그가 갑자기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니고, 그의 근육들이 엄청나게 힘이 붙어서 전보다 확실한 제스처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 이런 성장을 만들어낸 것인가? 그는 무엇을 잘하게 되었기에, 나는 그가 연기를 더 잘하게 되었다고 느낀 것일까?

배우들이 트레이닝 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강예슬 연출에게 평소 배우 훈련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강예슬 연출은 주로 “이완”을 목표로 신체 및 발성 훈련을 한다고 답해 주었다. 특히 연습의 초반에는 연습 시간 대부분을 할애할 만큼 이완 훈련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훈련을 통해 배우들은 매 연습에서 실질적인 신체 및 정신적 이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된다. 공연이 가까워지면 신체, 발성 훈련은 배우 개인들에게 맡겨지는데, 초반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된 배우들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하지성을 비롯한 극단 애인의 배우들이 연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완’ 훈련 덕분인가? 관객 앞에 서는 배우가 마냥 몸이 늘어지는 식으로 “이완”할 수는 없을진대, 그렇다면 배우에게 있어서 이완이란 어떤 것인가?

<무무> 장면 연습, 오른쪽 뒤가 하지성 배우(스테판 역), 왼쪽 앞이 최종혁 배우(가브릴라 역)

이완 훈련은 극단 애인만의 독특한 훈련 방식은 아니다. 대부분의 배우 및 연출가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며, 많은 연기론이나 연기 훈련법들이 배우의 이완을 목적으로 명상, 호흡, 움직임을 접목시킨 트레이닝 방법들을 제시한다. 최초로 사실주의 연기 훈련법들을 체계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스타니슬랍스키(Constantin Stanislavsky)는 ‘신체 이완(physical relaxation)’을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연기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그는 스스로도 이완을 위해 요가 등을 훈련(수련)했으며, 이를 자신의 훈련법에 포함시킨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전통을 따르는 많은 사실주의 연기 방법론들이 ‘이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게, 코포(Jacques Copeau), 르코크(Jacques Lecoq) 등의 비사실주의 연기론들은 ‘중립(the neutr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데, 많은 연기 방법론들에서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적절한” 혹은 “좋은” 연기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다.

장애 퍼포먼스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캐리 샌덜(Carrie Sandahl)은 그녀의 논문 “중립의 독재: 장애와 연기 훈련(The Tyranny of Neutral: Disability & Actor Training)”에서 연기 양식과 상관없이, 한 배우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간주되는 ‘이완’, ‘중립’과 같은 개념들이 장애인 연기자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특히 “중립 상태”라는 비유적 표현이 신체 외형, 움직임의 아름다움과 유연함, 자연스러움 등 이상화된 신체적 지표들에 의해서 평가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선천적으로 비대칭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근육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혹은 후천적으로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몸은 “적합하게 이완할 수 있는 신체(a body able to relax properly)”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적절하게 이완할 수 없는 신체는 연기를 위한 기본 조건이 충족될 수 없는, “연기 불가능한(disabled) 신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연기 교육 방법들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논리가 장애인 배우들이 겪는 불평등을 “은밀하게” 심화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선천적인 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깊고,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완된 호흡”을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한 선천적으로 굽은 등을 가진 누군가는 아예 운동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고, 아무리 운동을 해도 유연한 근육이 있는, 그래서 아름다워 보일뿐 아니라 안정되어 보이는 어깨 라인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에게 ‘이완’이란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인가? 애인의 배우들이 하는 ‘이완’ 훈련은 정확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수행되는 것인가?

우리는 폴란드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연기론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여자의 흉곽이 길고 좁다면 그 여자는 연기를 하면서 대체로 횡경막을 시각적으로 통제하는 호흡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여자는 오히려 호흡에 척추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척추를 너무 의식하면 안 되고, 반응과 동시에 척추를 사용해야한다. 마치 뱀이 그러하듯이. 그것이 바로 생명의 반응이다. 척추를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경직시키면 결코 안 된다. 척추를 유연하게 하면 호흡도 자유로워질 것이다.”(예지 그로토프스키, 『그로토프스키 연극론』, 현대미학사, 2007, 나진환 편역, 84면)

이 부분에서 그로토프스키는 독특한 신체 조건으로 인해 연기자 호흡의 정석이라고 간주되는 복식 호흡이 불가능한 배우의 경우를 제시하고, 그녀의 신체에 맞는 호흡 및 발성법을 통해서 ‘생명의 반응’으로서의 자유로운 호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로토프스키는 연기 훈련 메소드를 고정시키고 “기술을 얻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그의 연기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장애인 연기자들을 위한 훈련법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모든 훈련은 연기자 개인의 신체, 정신적 조건에 맞추어 개별화되어야 한다는 것과, 궁극적으로 모든 훈련은 고정된 형태 혹은 방식의 신체, 목소리, 말투, 호흡, 움직임과 같이 이상화된 목표를 얻어내기 위한 반복 연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두 가지이다.

그로토프스키는 고정된 목표를 추구하며 자신의 신체 작동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을 기계화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기계화는 부자연스러운 연행이나 가식적인 허행을 낳을 뿐 좋은 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기계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유기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배우의 신체가 무대 위에서 “본래적”(혹은 “일상적”) 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는 ‘방해물(blocks)’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이 방해물은 배우 개인이 가진 신체적 “약점” 혹은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이 특정한 말투, 호흡, 이미지, 나아가 특정한 감정에 매몰되어 훈련이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것이 됨으로써 훈련 자체가 방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토프스키는 배우가 상투적인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자기폭로(self-revelation)’로서의 연기를 하려면, 매 순간 자신의 ‘방해’를 초월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배우의 연행에서 진정한방해 요소는 물리적 약점 자체가 아닌, 무대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신체, 심리, 정신적인 요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로토프스키의 연극론에서 연기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들 앞에서 자기-폭로를 실행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배우를 양성하는 것이다. 배우의 자기-폭로가 연극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연극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그로토프스키의 연극론은 종종 “다른 사람들 앞에 있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배우의 현존(즉, 자기-폭로)은 영적, 정신적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고 해석된다(Phillip Auslander, From Acting to Performance: Essays in Modernism and Postmodernism, London; Routledge, 1997). 비록 그로토프스키의 연기론은 불확실한 형이상학에 불과하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의 연기론은 여전히 다양한 연기 양식을 시도하는 많은 배우 및 연기 교사들에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그가 특정한 훈련법들이 절대적 효과를 지닌다고 간주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점은 기술 및 ‘메소드’에 매몰되어 자칫 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연기 훈련들에 제동을 걸며 연기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훈련법들은 장애인 연기자들에게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로토프스키와 작업한 배우들의 대다수는 비장애인이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그가 제시하는 훈련법들은 그와 함께 작업한 배우들의 신체 및 정신적 능력의 범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연기론은 이상화된 연기 훈련의 목표들, 방법론들을 거부하고 메소드의 개별화를 주장함으로써 다양한 특성 혹은 “약점”을 지닌 몸들 역시 이완된 무대 위 현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완’ 혹은 ‘중립’을 특정한 신체적 외형이나 소리, 말투 등의 시청각적 특성들에 국한시키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중립’, 각기 다른 ‘이완’의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장애인 극단들이 그로토프스키 연기론을 배우 훈련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한다거나, 하지성 배우가 틀림없이 이 같은 ‘이완’ 훈련을 통해서 연기자로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샌덜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그로토프스키를 포함한 기존의 연기 훈련들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고, 사용되는 용어들로 인해 장애인 연기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심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을 앞에 놓고 장애인 배우들 혹은 극단들이 취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기존의 연기론이나 훈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훈련법들이 다양한 신체를 고려하는 부분들을 눈여겨보고 재해석하여 연기 훈련의 방식과 대상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주변화(marginalization)’된 신체가 무대에 오를 때 찾아오는 인식의 변화야 말로 극단 애인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는 핵심적 가치이다.


애인에 의해 각색된 <무무>는 지적 장애인인 “게라심”(한정식 分)이 자유를 박탈당한 농노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길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 다른 농노인 “에로쉬카”(백우람 分)의 대사, “나는 한 번도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단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갖지 못한 건 사랑하는 마음이었어. 자유가 없었던 거지. 이 큰 저택에 몸만 묶여있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갇혀 있었던 거야.”라는 말이 여운을 준다. 배우들의 말과 몸짓이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와 만나, 삶과 연극 및 연기 예술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무>는 11월 13일 금요일부터 12월 5일 토요일까지 성북마을극장에서 공연된다.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몰래 먹는 사탕 같은 달콤함: 인피니트와 뮤지컬 <인 더 하이츠>

글쓴이_시뫄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뮤지컬이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전반적으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가끔 뮤지컬을 보고나면 내가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스펙터클에 현혹되기만 하지는 않았나, 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될 정도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인 더 하이츠>(이하 <하이츠>)라는 뮤지컬의 포스터를 봤을 때도 랩과 비보잉이 가미된 신개념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띠기는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그 작품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미 모든 요소가 자극적인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힙합의 자유로운 느낌이 잘 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가 오늘날의 한국 대중문화에서 방송을 통해 전에 비해 손쉽게 소비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뮤지컬에 힙합을 접목시킨다는 것 자체도 화제성과 관객몰이를 위한 전략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기대보다는 의심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금 13만원을 주고 결국 뮤지컬계의 소위 “듣보잡”이라고 할 수 있을 그 공연을 보고 왔다.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인피니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두 명이나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이츠>는 뉴욕의 히스패닉 할렘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빈곤하고 차별받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뮤지컬이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에는 인피니트의 메인보컬인 김성규와 래퍼 장동우가 각각 베니와 우스나비 역에 캐스팅되어 출연했는데(더블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콰드러플 캐스팅이었지만), 특히 주로 랩을 하는 우스나비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VIP석 예매를 감행하게 됐다. 인피니트는 힙합 그룹이 아닌 댄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더 분명한 그룹이고, 따라서 팀 내 래퍼의 위상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 (활동 다양화의 일환으로 래퍼 두 명이 유닛을 결성해서 따로 앨범을 두 차례 내기는 했지만.) 따라서 인피니트의 일곱 멤버들을 두루두루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노래의 파트가 많지도 않고, 연기활동을 병행하거나 예능에 활발하게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는 장동우에 대해 늘 어딘가 그리운 구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그가 주인공 격의 배역을 맡은 뮤지컬을 결국에는 보게 될 것이었는데, 비싼 티켓 가격에 한번, 그리고 보고 나서 실망할 걱정에 두 번, 그렇게 몇 번이나 예매를 망설이기는 했다. 결국 망설이다 뒤늦게 예매전쟁(피의 티켓팅을 줄여 “피켓팅”이라고도 한다)에 참전해 12열에 VIP 좌석을 구했다. 괘씸하게도 공연장 1층 전체가 VIP석이라서 내 자리는 성에 찰 만큼 무대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코입이 분명하게 보일 거리에서(“면봉”만 실컷 보고 오는 것은 면할 거리에서) 내 아이돌을 볼 수 있다는데, 종국에는 예매 전 망설임에 허비해버렸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아무도 캐스팅보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팬질하러 왔다고 머글(팬이 아닌 사람)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사실 인증샷이 필요 없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간 인피니트에 대한 나의 팬심을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여겨왔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다 보니 “좋은” 퍼포먼스에 대한 내 나름의 관점과 기준이 생기게 됐는데, 종종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로서가 아니라 멋지고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될 수밖에 없도록 자신들을 내보이는 것 같은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인피니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데뷔 초 내세웠던 칼군무 때문이었다. 사실 멤버 7명 중 2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몸치에 가까워서, 제작자는 깔끔한 무대를 위해 칼군무를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할 수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인지도도 없고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일곱 명 사이의 호흡뿐이었을 것이다.) 인피니트의 칼군무는 단지 일곱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박자에 맞춰 안무를 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절묘한 타이밍을 맞춰 무대 위에 하나의 유기적인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데뷔 6년차의 꽤 노련한 아이돌이 된 인피니트는 예전의 퍼포먼스와는 사뭇 다른 무대를 보여준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몇 번의 월드 투어를 거치며 안무 동작은 세련되고 여유로워졌지만, 안무 구성의 치밀함과 촘촘함은 예전 같지 않다. 화려해진 무대와 360도 카메라 같은 최신 기술을 사용한 최근의 “Bad” 뮤직비디오(https://youtu.be/BNqW6uE-Q_o에서 유튜브 앱으로 시청해야 체험 가능!)는 여전히 “칼군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만, 멤버 사이의 호흡과 퍼포먼스의 구성을 강조해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인피니트를 보여주기 보다는, 현란한 시각적 요소와 더불어 멤버 각각을 멋있는 모습으로 보여내는 것에 치중한다. 전보다 출연이 잦아진 예능 방송과 라디오, SNS 등 무대 밖의 연예활동 역시 멤버 각각의 귀엽고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데뷔 초에 인지도가 없는 상태의 신인가수로서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다른 내세울 것들이 많아졌다는, 그들로서는 긍정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멋있고 귀엽고 잘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과는 달랐던 인피니트의 무대를 기억하는 (세련되지 못한) 나는, 요즘 유행한다는 EDM 비트의 감각적인 사운드와 시크한 안무를 보면서 퍼포먼스보다는 인피니트 자체를, 보다 정확히는 인피니트가 대표하는 “멋지고 좋은 것”만을 보게 되는 현상에 오히려 죄책감이 든다. 아이돌 스타로서, 멋지고 귀여운 환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익을 창출하는 아이돌 산업의 논리 속에서 인피니트 역시 그럴 수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상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마찬가지로, 뮤지컬이 언제나 화려하고 멋진 이미지로 가득한 무대로 관객을 한바탕 홀리고 마는, 그리고 막대한 관객 동원력과 값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문화상품”이 아니라, 그 장르 고유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써 감동과 울림을 주고 관객에게 각인되는 “예술작품”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자주 좌절되어 왔다. 하지만 의심을 안고 잔뜩 경계한 채로 단지 인피니트를 보기 위해 관람한 <하이츠>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라틴계 이민자 캐릭터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랩과 비보잉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걱정했던 부분들을 눈여겨보았지만, 보는 내내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인피니트를 제외하고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이 노련한 연기로 납득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지나치게 화려하다고만 느꼈던 뮤지컬 무대가 <하이츠>에서는 작품의 배경에 걸맞게 비교적 소박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져있어서 좋았다. 까칠하고 말이 많지만 속정이 깊은 동네 미용실 원장 다니엘라 역을 맡았던 최혁주 배우는 작지만 다부진 외모와 특유의 된소리가 두드러지는 말투까지 완벽한 라티나latina를 구현해냈고, 주요 여자 캐릭터인 니나를 맡은 김보경 배우는 귀에 꽂히는 발성과 다듬어진 톤으로 뮤지컬의 정석 같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서는 장동우도 본인에게 맞는 가사를 스스로 써서 랩을 해서 그런지 억지스럽게 들리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어쩔 수 없이 김성규의 발성이 듀엣 중 상대역인 김보경의 뮤지컬 식 발성과 두드러지게 대조되기도 했고, 연기가 처음인 장동우의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등 인피니트의 연기가 살짝 튀게 되는 순간들은 있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비보잉은 아주 짧게만 삽입되고 대부분의 춤은 뮤지컬 특유의 군무로 채워져서, 힙합 뮤지컬을 표방하기에는 랩과 비보잉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고 심지어 구색 맞추는 정도로만 동원된 것처럼 보였다. 또 그 외에도 음향이나 안무의 사소한 부분들이 내 심장을 가끔 조여들게 했지만, 결국엔 학예회에 참석한 학부모처럼 그저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내 아이돌의 학예회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 나는 애초에 바로 그것을 하러 간 것이기도 했다.

  갈수록 많은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에 캐스팅되고 있는 요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그들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인피니트를 좋아하고 아끼면서도 무대 위의 김성규와 장동우를 보며 그들과 뮤지컬 배우들과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어쩌면 인피니트 팬이 아닌 다른 관객들보다 그 차이에 더 민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그 자체보다는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뮤지컬과 아이돌의 조합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단 무엇보다 뮤지컬 산업은 아이돌 캐스팅을 통해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회차에도 평타 이상의 관객을 확보한다. 나처럼 학예회를 본다는 마음으로 예매하는 팬들은 공연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연출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에 가혹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 번 이상 관람하는 팬도 많을 것이니, 뮤지컬 산업에서 아이돌 캐스팅이란 괜찮은 수익모델일 것이다. 나도 뮤지컬 자체에는 기대보다는 의심을 안은 채, 작품보다는 인피니트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게 된 <하이츠>는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연 형식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완화시켜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형식의 혁신은 없었고 엄청나게 매력적인 뮤지컬 고유의 예술적 순간도 없었지만, 다음에 또 보고 싶을 만큼 노래와 연기를 아주 잘하는 뮤지컬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보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우리 애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콘서트 무대나 예능 방송에서는 맏형이랍시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애교 같은 것을 잘 보여주지 않던 성규가 “기싱꿍꼬또”부터 인피니트 대표 개인기인 전갈춤까지 보여줄 때, 나는 성규가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우스나비가 복권에 당첨되어 귀향을 앞둔 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울 때, 나는 (비록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어도) 우스나비를 연기하는 장동우가 귀여웠고, (그 슬픈 감정에 동화되거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장동우가 자랑스러웠다. 다른 무대라면 메인보컬인 성규에 가려졌을 동우가 주인공이라니! 힙합 뮤지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할부 3개월로 예매까지 해가며 봤어도 그걸 봤으니 됐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나를 대중문화의 노예로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예술이 아니면 어떻고, 길티 플레저면 또 어떠랴, 이렇게나 달콤한데.

2015년 11월 1일 일요일

2015 SPAF 폐막작 <폭주 기관차> - “우리는 폭주하고 있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글쓴이_최희범



2015년 10월 30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스파프(SPAF) 폐막작인 <폭주 기관차>를 보고 왔다. 시작 15분 전 쯤 도착한 공연장 앞에는 2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각각 손에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내용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한 팝업 씨어터 공연의 검열 및 공연 방해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관계자가 관객 한 무리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3층으로 올려보냈다. 스파프 공연에서 처음 받아보는 마중 서비스였다. 공연장 로비 분위기는 이전 스파프 공연들에서와 사뭇 다르게 어수선했다. 객석에서는 시위 내용이 적힌 종이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오가고, 웅성거리는 소음 가운데서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반쯤 정신 나간 듯한, 자신이 희대의 범죄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기관사와 화부가 열차 전체를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였다. 스파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두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두 명의 범죄자는 음악과 긴박한 리듬으로 그들의 심리상태를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기관차의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가속되는 극의 리듬, 그리고 그 안에서 얽히는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모순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말로 이 공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미안하게도) 앞에 적은 간략한 줄거리 및 배우들이 피아노 연주를 통해 굉장히 시끄럽고 히스테리컬하게 광기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는 점 외에는 공연에 대해 그다지 생각나는 게 없다. 미숙한 한국어 자막 플레이가 이 공연이 과연 그런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인물들의 심리상태가 “탁월하게” 표현되었는지를 감상하기 힘들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담당자가 졸고 있는 게 아닌지 싶을 정도로 미숙했던 자막 플레이는, 얼마 전 본 로버트 윌슨의 <소네트> 공연보다 한층 심각한 수준이었다.

<폭주 기관차>는 대사의 내용과 발화의 리듬이 매우 중요한 연극이었다. 일단 대사가 굉장히 길고 많았다. 또한 작품의 서사 전달과 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가 주로 대사 내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더욱이 주최측이 강조하는 “긴박한 리듬”은 연주되는 음악의 리듬 뿐 아니라 배우들의 발화의 리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즉 인물들의 말과 연주되는 음악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작품의 정수를 느끼기 위해서는 한국어 자막 플레이와 배우 발화 간에 긴밀한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공연에서 자막 플레이와 공연 진행 싱크로가 계속 어긋나는데, 어찌 공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는가?

자막으로 인해 짜증이 치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관극은 흥미롭기도 했다. 반쯤 맛이 간 기관사와 화부가 자기들 멋대로 열차 전체를 폭주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묘하게 현재의 시국을 연상시켰다. 이러한 연상은 공연장 바로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로 인해 훨씬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검열 반대 시위 덕분에 이 공연은 일상적인 삶과 분리된 새로운 맥락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공연은 시위 덕분에 연행을 에워싸는 “축제다운” 맥락을 지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시위대는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에 진을 쳤다. 이로 인해 공연장에 들어와서 밖의 상황을 떠올릴 때 이 건물을 시위대가 공간적으로 에워싸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또한 공연 시작 전과 종료 후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시위함으로써, 관객들이 공연장에 들어와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전체 과정이 일상적 시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문화 인류학자로서 제의 및 축제성을 연구한 빅터 터너는 이 같은 시간적, 공간적 분리를 통해 ‘리미널(liminal)’한 영역이 형성되며,1) 이 영역은 문화적으로 고정된 형상들이 새로운 것과 결합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그 영역에 속한 사람은 구별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을 일상과 다른 맥락에서 읽게 된다. 터너는 이러한 특성을 ‘리미널리티(liminality)’라고 부르며, 이는 ‘축제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물론 어제의 공연장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규범들로부터 일시적 해방을 누리는 축제의 장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공연장 전체를 감싸는 긴장감과 어수선한 분위기를 통해,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왠지 모를 동요가 많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관객들의 관극 경험에 부여된 새로운 맥락은 연극 작품을, 공연장의 분위기를, 다른 관객들의 태도 등을 비일상적인 맥락에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일상의 구조적 상태를 전복하고 반구조의 상황을 만드는 가운데 상하, 우열, 대립의 장벽을 무너뜨리” 는 것으로서의 ‘축제성’을 경험한 것이다.2)

스파프 공연에서 이 같은 ‘축제성’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말인즉, 스파프는 해마다 나름의 테마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테마가 무엇인지, 그래서 각 프로그램들이 축제 전체의 어떤 맥락에서 기획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공연 관람을 통해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파프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이와 관련된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볼 때, 이 테마라는 게 주최측에게도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정보들은 각각의 공연 단체, 혹은 작품이 얼마나 유명한지, 유서 깊은지, 혹은 “핫”한지 등을 홍보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스파프라는 축제에서는 10월 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해외 유명한 작품 및 극단들의 공연을 대학로에서 볼 수 있는 기회로서의 “축제”성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최측의 기획 의도와는 무관할지언정, 시위대가 이 공연에 끌어온 정치적 맥락은 공연 감상의 경험을 보다 ‘축제’답게 만들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스파프는 하지 못하는 것을 혹은 하지 않는 것을 해낸 것이다.

이 작품을 만약 국내 극단이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노스페이스 잠바와 수학여행이 무엇인가를 연상시킨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공연 금지되거나 방해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연에서 대사를 다 빼고 배우들 피아노 연주로만 공연을 하라는 식으로. 그러면서 우리는 “무대를 노래하다”라는 테마를 가지고 이 축제를 기획했고, 그래서 폐막작에서는 “노래”만 나오고 쓸데없는 “말”은 안 나오는 것으로 기획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였을 수도 있다. 이 극단이 외국 단체였던지라 다행히도(?) 이런 혐의를 받지 않고, 무사히 그들이 기획한 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어제 자막 플레이의 어설픔으로 관객들의 인내심을 극단까지 몰아붙인 것은 적어도 고의적 방해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무쪼록 오늘 폐막작은 보다 나은 자막 플레이와 함께 무사히 마쳤기를, 또한 보다 대규모 진행된 예술 검열 반대 시위가 작품과 또 한 번 멋지게 협업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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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으로부터 빌려온 이 개념은 문지방이라는 의미의 ‘limen’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반 게넵은 전이 의례의 세 국면을 분리-전이-통합으로써 설명하며, 여기서 ‘분리’의 국면은 일상으로부터의 시간적, 공간적 분리를 의미한다.

2) Victor Turner, Myth and symbol. Crowell Collier and Macmillan, 1968, p. 277.

2015년 9월 29일 화요일

'덕질'로 연극 읽기: <카포네 트릴로지>

글쓴이_성지수

오, 나의 ‘오빠!’


‘오빠들’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물론 친오빠 얘긴 아니다. (친오빠 얘기였다면 ‘오빠 새끼’로 이 글을 열어야만 했겠지.) 누군가에게는 ‘서태지 오빠’이고 누군가에게는 ‘나보다 어린 여진구 오빠’인 그런 ‘오빠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사어로는 ‘우리 애기들’이 있다.) 우린 각자의 ‘오빠’를 사모하고 동경하여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누비며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을 긁어모은다. 무대인사, 팬 사인회, 음악방송처럼 직접 볼 수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신청하고는 디데이 전후로 몇날 며칠을 설렌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너의 ‘오빠’는 누구였었니, 라고 물어보면 눈빛이 아득해지고 목소리가 아련해지면서 “내가 중학교 때 말이야...”라는 말로 썰을 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썰은 “그렇지만 이젠 다 졸업했어.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따위의, 시크함을 보여줄 수 있는 대사로 끝이 나곤 한다.)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건져 동화 속으로, 환상 속으로 날 이끌었던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돌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 몇 백 만원씩 쓰는 십대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도 가만히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빠들’의 노래 테이프를 사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빠들 사진이 붙었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할 것도 없지만 값은 훨씬 더 비싼 다이어리를 덜컥 사고, 멋진 사진을 찾아 컬러 프린트한 후 그걸 코팅까지 해서 간직했던 자신의 ‘흑역사’가 뇌리를 스치게 마련인 것 같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는 나의 ‘오빠들’을 중학생 때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오빠들’이 내 인생을 “찾아왔다.” 내 십대 시절을 회상할 때 ‘오빠들’을 빼 놓고 얘기한다면 학교와 학원밖에 없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나날들뿐일 것이다. 나는 ‘오빠들’을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관리라는 걸 시작했고 ‘오빠들’을 한 번 더 보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오빠들’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십대 때의 나의 영웅(!), 나의 ‘오빠들’은 뮤지컬 배우들이었다. 당시엔 뮤지컬이 지금만큼 보편화된 장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뮤지컬은 ‘덕후’들의 세계이긴 하지만, 누군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얘기를 듣던 그룹 중 한 두 명은 자기도 뮤지컬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며 자기가 본 한 두 작품을 주워섬기는 근래와는 달리, 당시 열 서너 살인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적어도 2주일에 1-2편은 꼭 보러간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2주일에 1-2편!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연장에 갔던 셈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돈을 많이 받았던 것도 아닌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짓이었다. 나는 사연이 채택되면 초대권을 주는 라디오에 열심히 사연을 써 댔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갖가지 이벤트에도 응모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하면 뮤지컬 두 개 보여주기,’ ‘3000제(가능한 경우의 수의 문제를 다 모아놓았다는, 악명 높은 수학 문제집)를 일주일 만에 다 풀면 R석 예매 허락해주기’ 같은, 엄마와의 약속을 걸기도 했다. (아 어머니, 불효녀는 웁니다!) 뮤지컬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이야 요즘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것 같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당시 나의 정신을 빼 놓은 요소 중 하나는 공연이 끝나면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오빠들’이 나를 기억해주기까지 한다는 점이었다.

오빠들이 날 기억해준다! 나를 보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세계적으로 수억만 명의 팬이 있는 아이돌을 좋아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그러했다. 한 친구가 자기 ‘오빠’의 생일을 맞아 정성스레 ‘오빠’ 사진에 왕관과 케이크를 그려 넣다가 갑자기 휙, 모든 걸 집어 던지면서 (욕설과 함께) “XX! 이 새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데!”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내 맘속에서 ‘나의 오빠들의 특별함’을 부각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우리 ‘오빠’가 다른 팬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내게 자기 소지품을 잠시 들고 있으라고 맡겼던 어젯밤 일을 회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본인이 던졌던 것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았고, 자신의 더러운 성질 때문에 ‘우리 오빠’ 얼굴에 구김이 갔다며 아까보다 훨씬 더 슬퍼했다.)

고등학교를 입시 집중형 기숙학교로 가게 되면서 나의 팬질은 자연스레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내 방 한켠 리빙박스 속에는 그 때 모았던 프로그램, 시디, 사인북, 팬 아트 등이 빼곡히 쌓여있다. 십 년 넘게 지속된 엄마의 ‘이제 필요 없으면 버려라!’ 공격을 뚫고 살아남은 나의 추억인 셈이다. 하지만 난 확실히 ‘뮤덕’을 ‘졸업했다.’ 뮤지컬을 본 지도 참 오래됐고, 요즘 ‘뮤덕’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용어들도 참 생소하다. 누가 나온다고 하면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같은 공연을 또 보았던 것과 달리 이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인터뷰 기사나 페이스북 광고 같은데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여전히 잘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때 한창 애인에게 공개 프로포즈하는 걸 봤었는데, 벌써 애 아빠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강산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아련아련돋음’을 선물해주는 ‘그 때 그 오빠들’은, 참 어디 가서 얘기하기 쑥스럽고 민망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내게 참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겠다.


2015년 8월 16일 일요일

‘장애 연극’에서 ‘장애’ 문제를 보는 것과 말하는 것

‘장애 연극’에서 ‘장애’ 문제를 보는 것과 말하는 것
-“애인과 휠 산에서 만나다 1탄”, <제물포 별곡>

글쓴이_최희범

어린 시절에 가끔씩 길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마주치면, 우리 엄마는 나에게 “쳐다보지 마라”고 하셨다. 엄마 나름대로 그들을 배려하고,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교육하신 것이다. 하지만 쳐다보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그 찰나의 판단과, 서둘러 거두어버리는 시선에는 저 사람을 모든 시선에 쉽게 상처 받을 약한 존재로 여기는 전제가, 혹은 나와는 다른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겸연쩍음이 들어있던 것은 아닐까? 이는 물론 대상화시키는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대상화를 전제로 하는 통념적인 도덕 의식을 벗어나서는 어쩔줄 모르는 나의 어려움 혹은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봐도 된다.” 혹은 “보면 안된다”는 판단들을 넘어서면,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나는 아직도 차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는 것 이외의 다른 방식을 잘 모른다.

“어떻게 볼지”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장애인들이 만드는 연극을 볼 때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연기자들은 기본적으로 보여질 것을 전제하고 무대에 서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이것은 사실 “쳐다 보면 안된다”는 통념적인 윤리 의식에 완전히 반하는 기획이다. 또한 이러한 통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객이라고 해도, 연기자들이 재현하는 인물과 연기자 본연의 몸이 겹쳐지는 이중적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어떻게”에는 단순히 연기자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할지, 혹은 인물의 특성으로 포함시켜서 볼지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함께,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가 겹쳐져 있다. 그의 손상(impairment)을 보는 것이 옳은가? 혹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가?

이 문제를 연극을 만드는 입장에서 바꿔 생각하면, “장애인들이 무대에 서는 연극이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는 “‘장애’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하는 질문과 연결 될 것이다. ‘장애’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연극의 내용이 장애 혹은 이와 연관된 문제들을 다루지 않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애’라는 이름이 붙은 몸이 무대에 서는 연극은 당연히 ‘장애’와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연극들이 그 무대 위의 모든 몸들에 대해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결국 장애인들이 만드는 연극은 ‘장애’라는 요소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 입장은 의식적으로 취해지고, 의도적으로 표명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만드는 이들의 의도성과는 별개로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은근하게 숨겨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불명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작품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음, 곧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애인들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은, 어떻게든 ‘장애’에 대한 연극이라는 의미에서 ‘장애 연극(disability theatre)’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물포 별곡> 역시 장애인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작품으로서 ‘장애’에 대한 그만의 입장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작품의 이야기 자체는 ‘장애(의학적인 의미, 사회적인 의미 모두에서)’와 연관된 언급을 거의 담고 있지 않을 뿐더러, 대사나 지시적 행동과 같이 설명적인 요소들을 통해 연기자들이 지닌 특성들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무대가 밝아지면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무대 위로 들어선다. 이 둘의 다리는 심하게 꼬이고 휘청거린다. 다리와 함께 온 몸이 흔들린다. 이 둘은 술에 취해 있다. 이들의 몸이 흔들리는 것은 술 취한 상태를 연기하기 때문일까? 혹은 저들의 몸은 무대 밖에서도 상당히 지금과 비슷하게 움직일까? 술 취한 몸의 불안정함과 겹쳐지는 연기자들의 신체적 특성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불편함은 극중 인물 “긴 다케시”(백우람 분, 원작에서의 샤일록)가 구만석 일가가 자신을 “병신 취급”했으며, “몸과 마음을 망가뜨렸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이 대사는 직접적으로 ‘장애’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자의 신체적 특성과 강하게 결부되며 그렇기에 ‘장애’와 관련된 관객들의 문제 의식을 자극한다. ‘장애’라는 문제에 대해서 특정한 주장이나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의 현존이 드러내는 ‘장애’의 요소를 재현된 세계에 대한 관객의 인식 가운데로 소환하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 느끼는 재현과 현존 사이의 혼란스러움은, 이것이 쉽게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문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어쩌면 이 작품은 연기자들을,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극중 인물을 장애인으로 혹은 비장애인으로 결론지어 버리는 것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제물포 별곡>은 이렇게 무대 위 장애인 연기자의 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장애’를 이야기 한다. 답을 지시하지 않는 질문은 “어떻게” 볼지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질문들이 작품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 곳곳의 세부적인 요소들은 ‘장애’ 혹은 이를 포함하는 ‘소수성’에 대한 작품의 입장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 연극의 내용 자체는 ‘소수자’ 문제와 연관된 이야기들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같은 작품에 대한 앞선 리뷰인 “휠+애인+산, 제물포 별곡”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원작이 담고 있는 동성애 문제나 민족적 소수자의 문제를 작품의 서사에서 단순화시켜서 다루는 것은 창작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캐스팅이나 관객 참여 문제와 같이 관객의 연극 경험의 인상에 영향을 주는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장애인 연기자들과 장애인 연기자들이 협업을 하는 작품에서, 서로 사랑에 빠진 선남 선녀(조영운과 이정랑)의 역할을 모두 비장애인 배우들이 맡은 것은 캐스팅의 이유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불편한 사실이다. 또한 영운과 정랑의 결혼식 장면에서 관객 한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는데, 연기자가 굳이 중년 남성 관객에게 주례사를 부탁한 것은 소수자 문제에 대한, 결과적으로 ‘장애’라는 소수성에 대한 문제 의식 마저 약화시킨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애 연극’이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면, 더 일관된 입장을 취하길, 더 세심하게 그 입장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관객의 이기적인 욕심일까?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장애’의 문제를 대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리고 이 무거움을 연극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이 무게를 느낀다. 관객들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볼 것인가?” 그렇기에 어떤 종류의 장애 연극이든지 어느 순간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포기하면, 그 무게는 온전히 관객들의 짐이 된다. 반대로 이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연극은 이제껏 당연하게 여겼던 관객으로서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장애’라는 낙인을 찍으려고 하는 내 시선의 폭력성과, 재현과 현존을 무자르듯 나누는 데 길들여진 편협함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장애’라는 낙인은 장애 연극이 지닌 가능성이 될 수도, 자칫하면 내가 지각하는 연행자의 말과 몸짓을 퇴색시키는 색안경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제물포 별곡>과 같은 연극들에서 ‘장애’ 혹은 소수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장애’ 문제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는 선택에서 소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장애’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품을 틀짓는 것을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면, 이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관객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 연극은 시종일관 무겁고 심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어떤 거창한 메시지나 주제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틀짓는 모든 선택들에 대해 이 불편한 문제 의식을 적용하려는 노력과 그 순간들을 채색하는 세심한 배려에 그러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2015년 8월 8일 토요일

휠+애인+산, 제물포 별곡

제물포 별곡: 조선판 베니스의 상인
오유아트홀 (도곡2 주민센터)
2015.8.7

글쓴이_임승태

극단 휠과 애인이 함께 <베니스의 상인>을 한다고 했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minority’였다. 이 드라마에는, 작가 자신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반유대주의 정서가 뚜렷이 드러난다. 반면, 이 극의 타이틀 롤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친구 바사니오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정할만한 근거는 다분하다. 아무튼 서로 적대적인 관계인 안토니오와 샤일록이 채무관계로 얽히면서 이 극의 갈등은 시작된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극의 결말은 한쪽에서 보면 모든 문제가 행복하게 해결된 코미디로 보이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법관을 사칭한 채무자의 ‘제수씨’에 속아 재산을 몰수당하는 민족적 소수자의 서러움이 어려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원작이 1930년대 제물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전환됨으로써 샤일록의 이름은 긴 다케시로 바뀌었다. 뚜렷한 친일행적을 보이지 않는 그의 이름을 굳이 일본식으로 개명시킨 것은 관객들이 마음 놓고 그를 미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실 극중 인물이 원작의 인물 성격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는데, 새 한국식 이름을 암기하며 따라가려니 낯설고 불편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더욱 얄미운 이름인 ‘긴 다케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샤일록이든 긴 다케시이든 그를 마음껏 미워하긴 힘들다. “제물포 별곡”이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 또한 바로 긴 다케시를 통해서이다. 긴 다케시(백우람 分)는 구만석(안토니오, 호종민 分)의 부친에 의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마다하고 채무자의 살을 취하기 원하는 동기를 제공해준다. 그런데 "몸이 망가졌다"라는 말은 이 극에서 하나의 전환을 가져온다. 이전까지 관객이 배우의 핸디캡을 지우고 극적 가상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면, 배우가 이 대사를 반복해서 하는 순간 관객은 더이상 배우의 신체적 장애를 모른 척 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병신 취급”,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가”와 같은 대사 역시 단순히 극적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새삼스레 배우들의 몸을 지각하게 만든다. 긴 다케시의 대사는 그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 게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일 수도 있다는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제물포 별곡”을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에 있다. 이들의 연기는 비장애인 배우들과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어떤 측면에서 장애인 배우는 무대 위에서 비장애인 배우를 압도한다. 장애인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은 배우 자신에 의해 완전히 제어되지 않지만, 관객들은 이점이 그들로서는 불가항력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것을 문제삼기 보다는 매순간의 의외성에 경탄하게 된다. 그에 비하면 비장애인의 연기는 발성이나 표정 등에서 예측가능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투적이라고 느껴진다. 무대 위의 환상을 배격하고 몸의 현존에 주목한다면, 이들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극단 애인과 극단 휠이 풀어가야할 과제가 앞으로도 많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몸성(corporeality)이 관객을 매혹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재현과 현존을 오고가게 만드는 공연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배우가 행복한 극단 애인": 김지수 대표 인터뷰

글쓴이_최희범

2015년 4월 25일 부쩍 따뜻해진 토요일 오후에 구로구 오류동의 한 카페에서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를 만났습니다. 극단 애인은 장애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극단이며, 김지수 대표는 국내 장애 연극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애’만이 이 극단과 이들의 작품을 특징짓는 단어는 아닙니다. 2013년도에 게릴라 극장에서 본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진 특성을 무시하거나 무마하려 하지 않고, 끌어안아 작품에 녹여내려는 시도와 노력의 결과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연극과 연기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한 극단 대표의 진지한 고민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수 대표가 애인을 창단할 때부터 가지고 온 중요한 목표는 장애인 연기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는 극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인의 방향성에 맞추어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 문제를 중심으로 편집한 인터뷰 내용을 드라마 인에 소개합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서 주제 별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소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최희범: 원래 ‘휠’에서 활동하시다가 나와서 애인을 창단하신 이유가 ‘배우가 행복한 극단’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하셨는데, 혹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김지수: 휠이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사람도 많아지고 해야 할 일도 많아졌죠. 제가 보기에는 단체는 계속 커지는데 거기 있는 배우들은 역량 강화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단체가 커지는 것 보다는 배우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애가 있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장애인이라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휠의 방향이) 그것과 좀 다른 것 같아서 나오게 되었죠.

최: 연극을 할 때 처음 부딪히는 큰 난관이 같이 할 사람들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의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국토 종단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죠? (웃음) 국토 대장정이랑 연극이 그렇게 잘 연결이 되지는 않는데, 단원들을 찾고 힘을 모으게 만든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김: 제가 꿍꿍이를 가지고 갔죠. 처음에 단원들을 찾을 때 연기를 잘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나 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꼭 연기를 안 하더라도 서로에게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백우람 배우 같은 경우는 사진을 전공했거든요. 국토대장정에서 그 친구가 사진을 찍었어요. 생각하기에 저 친구와 연극을 하게 되면 연기를 안 하더라도 우리 극단이 연습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든 전시회든 그 친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친구는 장애가 굉장히 심한데 끊기 있게 하더라고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몇 분을 만났죠. 그 때는 연락처만 받고, 나중에 연락해서 연극을 할 생각이 있는 지를 물어 보았는데, 다행히도 다들 흔쾌히 함께 해 주었어요. 그 때 ‘내가 연극을 하게 되나보다…’ 생각을 했어요. 팀이 꾸려지니까.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최: 연기를 잘 할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배우 분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2013년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배우들이 뭔가 특별하다.

김: 그건 연출이 잘 끌어 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연주 연출님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계속 같이 해 주셨는데, 이연주 연출님을 만난 것은 저희 극단에 있어서도 그렇고 저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행운 같은 일이예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생각, 그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배우에 대한 생각과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 맞았어요. 사실 연출이 삼 년 동안 한 작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끝까지 매달려 주신 거죠. (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2010년부터 2013년도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 공연했다.) 제가 “올해도 다시 이거 가지고 하면 어때요?” 하면 그러자고 해주셨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연주 연출님의 노고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배우들도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정말 저희 배우들과의 작업은 기다려 주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연출님도 말씀 하세요. 애인이랑 작업 하면서 배우들을 기다려 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저희 극단이 알려지게 된 것도 <고도를 기다리며> 때문이고.. 배우들도 한 작품을 계속 하면서 자신들의 연기와 움직임을 생각해 보고 발전할 수 있었어요.

최: 이연주 연출과는 전속적으로 함께 하시는 건가요?

김: 그렇지는 않고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고, 2012년도부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이연주 연출님도 다른 작업들을 또 하셔야 하니까. 지금 이연주 연출님은 <노란 봉투> 조연출을 하고 계세요. 저는 초반에 외부에서 다양한 연출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어요. 왜냐하면 연출들마다 스타일이 있잖아요. 배우들이 자기의 몸이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알기 전까지 다른 연출들이 자꾸 개입을 해서 그 스타일에 맞추어 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만의 방식을 찾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저희는 비장애인을 따라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사실 편하잖아요. 내가 장애인이지만 우리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도 비장애인들의 움직임을 해야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있거든요. 여기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것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그런 것에서 생각을 같이 한 이연주 연출가가 있었고. 그래서 저희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지고 그런 것을 해보려고 했어요. 계속 그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다른 작품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요. 한 작품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배우들이 자기 몸에 대한 어떤 체득을 하기에 더 좋다고 생각을 해서요.

최: 배우에 대한 생각이 이연주 연출님이랑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인가요? 대표님께서는 <한국연극>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이 비장애인의 몸짓과 말을 흉내 내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몸, 호흡, 말투까지 자신의 것으로 녹여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몸과 호흡, 말투까지 녹여내는 연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예들이 있었는지?

김: 사실 이건 연출님이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웃음) 제가 생각한 것만 말씀 드릴게요. 예를 들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에는 다른 캐스팅으로 했었어요. 그 때 언어 장애가 있는 친구가 블라디미르를 했었거든요. 블라디미르의 대사가 많은데, 그 친구가 그 때 연극을 처음 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목소리가 작고 대사가 잘 안 들렸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연출님도 그렇고 언어장애 때문에 대사를 또박또박 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정서가 중요하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특히 이 대사들이 의미 있고 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되풀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그 정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더 신경을 쓰라고 했고요. 사실 관객들에게 대사가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물론 답답하실 수는 있는데, 저희는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가 꼭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비장애인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전달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처럼 대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가는 거죠. 함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몸을 이용해서 표현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침묵으로도 할 수 있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갔던 것 같아요. 또 배우들끼리 서로 기다려 주고 보완해 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에스트라공 역할의 정식 씨는 지적 장애가 있었어요. 언어 장애는 상대적으로 조금 있고. (블라디미르 역할의) 백우람 배우는 언어 장애가 있고요. 그러면 언어 장애가 있는 배우를 더 기다려 주는 거예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아요. 많이 싸우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완해서 전달 할 수 있는 거죠.

최: 그렇다면 극단 애인에게 있어서 좋은 연기란 어떤 것일까요?

김: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표현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애가 있는 내 몸과, 내 언어와 내 표현이 어떤지에 대해서 본인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그것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좀 힘들 수는 있어요. 관객들을 고문하면서 연기하면 안 되는데…(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연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는 내 몸도 배우의 움직임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것을 가지고 어떻게 대중을 만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거죠. 정서적으로는 역할에 공감을 잘 해야죠. 사실 장애인들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희곡을 읽었을 때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편은 아니에요. 그런 것들도 꾸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읽고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부단한 노력과 학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장애인 극단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장애인 배우들이 어디 가서 배울 데가 없다는 거예요. 단원들 중에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단원들은 연기 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일반 배우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만 특별지도를 해 줄 수가 없으니까 따라 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수강 (신청)을 하고서도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극 작업을 통해서 당연히 실력이 향상돼야 하지만, 자기 개발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자기 계발도 극단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제가 배우들은 평소에도 배우여야 한다. 열심히 책도 읽고 몸 관리도 하고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힘든 것 같아요. 나가서 할 데가 없기 때문에… 물론 배우들에게는 무조건 찾아보라고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는 순간을 너무 좋아해요. 자기가 배우라고 느끼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순간인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배우로서 살아가게 할 것이냐가 고민 이예요. 장애인 배우들의 경우에는 개인이 외부에 나가서 프리랜서 배우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한국연극>에 인터뷰 할 때만 해도 극단이 없어져도 배우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과정이 지나면서 ‘아 극단이 있어야지 배우들도 있을 수 있구나’싶어요. 그런 면에서 극단도 잘돼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이미지 출처: 비마이너(beminor.com)

최: 대표님께서도 연기도 하셨던 걸로 아는데, 대표님께서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저는 연기는… 아니지만..(웃음) 저한테도 고민이 있어요. 저도 역시 연기에는 두려움이 많아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에 막상 무대에 서면 표현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다는 걸 느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제 생각이 갇혀 있는 것 같아요.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갇혀 있는 저를 느껴요.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배우로서 전념하면 그런 과정이 있을 텐데 아직은 저에게 (그런 과정이) 없었고요. 이번에 <장애 제 3의 언어를 말하다>를 하면서,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듯이 장애를 가진 몸에서, 말하자면 “해방”되지 않으면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 역시도 해방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사실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도 굉장히 커요. 내가 배우로서 활동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몸을 해방 시키는 게 사실 제일 먼저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직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몸과 몸에 갇혀 있는 정신까지 해방을 시키려면, 그것도 치열한 싸움의 과정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공연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최: 단원들 모임이나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지?

김: 저희는 어차피 매일 모이지는 못하니까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데. 전에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만나서 뭐라도 했었어요. 그래도 꾸준히 스터디 형식의 모임을 해 왔는데, 공간이 없으니까 스터디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배우들도 사무실이나 연습실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고요. 저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공간 잡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배우들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 배우들이 연극을 하지 않을 때 이 사람들이 배우로서 자기를 계발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공간도 장도 없으니까 그게 안타깝고 미안해요. 어쨌든 매일 만나려고 해요. 요즘도 아카데미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있는데,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죠. 올해 두 번 공연을 해야 하는데 아직 공연장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초조해요. 공간을 잡아야 대관료 같은 걸 책정해서 예산을 정확하게 짤 수 있는데. 공간이 없어요. 연습실도 그렇고.

(*애인에서는 여전히 올해 8월과 11월 공연을 위한 공연장을 찾고 있습니다. 승강기나 경사로가 있어서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한 공연장이어야 하고, 적더라도 휠체어를 타는 관객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추천할 만한 공연장을 아시는 분들은 밑에 답글 하나 부탁드립니다!)

최: 접근성 문제가 있어서 더 그러실 것 같아요.

김: 네. 제가 휠체어를 타니까.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공간, 이런 건 정말 십년이 지나도 별로 해결이 안 되네요. 연습은 대본을 처음 받았다 하면, 1달 반에서 2달은 잡아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연습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초반에 대본 읽고 분석 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서 하다가, 실제로 움직임 연습 들어가면 한 달은 풀로 하죠. 다른 팀들 보다 연습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예요. 분명히 속도의 차이가 있고, 이해의 차이도 있고요.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랑 같이 작업할 때, 비장애인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있어요. 장애인 연극은 장애인 연극의 속도가 있거든요. 비장애인 배우들은 그런 속도를 같이 가는 걸 힘들어 해요.

최: 장애인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공연에서 장애 연극만이 가진 속도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공연은 다 나름의 템포가 있지만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신체적, 물리적 특성이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들의 특성으로서 작용해서 시간과 공간이 독특하게 구성되어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게 가능한 곳이 극장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작품을 더 보고 싶어요.

김: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건 제 생각 이예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라는 최인훈 선생님의 작품이 있는데, 제가 꼭 하고 싶은 작품 이예요. 거기도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대사가 별로 없고 움직임이나 표현이 많이 있어요. 어떤 연출을 만나서 이런 작품을 언젠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품을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되어 있는… 저희들과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최: 애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김: 어쨌든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은, 저는 고전에서 찾고 싶어요. <고도를 기다리며> 처럼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고, 저희 단체와 절묘하게 잘 맞는 그런 작품이요. 그런 고전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연극을 하나의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또 하나는 장애인 극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이야기예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장애인 극단이기 때문에 의무감과 책임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최: 올해 계획은 어떻게?

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휠, 애인, 산 세 극단이 협업으로 아카데미를 하고, 8월에 공연을 해요. 또 서울시에서 지원받아서 강예슬 연출이랑 <무무>라는 단편 소설을 하려고 해요.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 소설인데 작품이 참 좋아요.


이미지출처: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최: 지금 대표님의 삶에 연극이란 어떤 것일까요?

김: (웃음) 어떤 걸까…? 연극을 한 지 8년 되었는데, 점 점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대학로에 수많은 극단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장애인 극단도 최소한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꼭 우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화에 어떤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인이 아니어도요. 저희 이면 더 좋겠지만. 문화 예술의 한 축에 장애인 극단이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극단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감... 너무 의무로만 가는 것 같은데. 저는 연극을 통해서 저희 배우들이나 제 삶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연극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하잖아요.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연극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안 되더라도. 꿈같은 얘기이고, 서울에서는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일 년에 한 번 이라도 나이 들어서도 우리들끼리 모여서 공연 하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최: 단원 분들도 행복 하실 것 같아요.

김: 저 때문이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행복 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사실 연극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장애인들도 가난하죠. 돈이 없죠. 그 중에서 연극해서 더 돈이 없고. 배우들한테 사실 미안하기도 해요. 이번에도 공연하면서 개런티 전혀 없이, 오히려 저희가 돈을 내서 했거든요. 어쩌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는데. 배우해서 돈은 못 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돈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비장애인 단원, 강예슬 연출은 18살에 저희 극단에 들어왔는데, 지금 26살이 되었어요. 작년에 연출로 데뷔 했지만,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고 있죠. 아르바이트하고 연극하고 하니까. 그 친구에게도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어떻게 그 친구가 좋은 연출이 될 지, 여기 있었던 시간이 그녀의 삶에 어떤 방향성이 될지가요. 작년에 (공연 한) <너는 나다>는 이연주 연출가가 강예슬 연출의 데뷔를 위해서 저희 극단에 맞추어 써준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저는 되게 복이 많아요. 같이 했던 사람들이 어쨌든 저희 극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그런 기회들이 있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최: 그렇게 운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저도 ‘나도 좋은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만드시는 힘이 아까 국토대장정에서 극단 단원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최: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들은 거의 여쭤 본 것 같아요.

김: 그럼 제 고민을 조금만 얘기할게요. 사실 장애인 배우들의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늘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올해에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배우들 스스로의 신체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아까 말했던 해방도 필요하잖아요. 또 어쨌든 연출이나 작가나 대표가 공유하는 고민들도 필요하고, 여러 시도도 해 봐야 하는데, 그런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지금 팔 년 차인데, 올해가 저에게는 고비와 같이 느껴져요.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다시 그것을 토대로 우리가 우리만의 어떤 것을, 조금 더 나아진 어떤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되요. 이번 작품 <무무>를 만드는 일도 그렇고요.

최: 정말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아까 단원 분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교육 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화된 것일 수도 있는 시각이나 미적 관점이나 기준 같은 것들이 이런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항상 줄타기를 하셔야 하는 거잖아요. 어디까지를 훈련시키고, 어디까지를 연기자의 조건에 맞출 것인지를. 저도 사실 어디까지를 예술적 혹은 미학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어떤 틀, 어떤 시간과 공간의 틀을 짤 것인지와 어떤 훈련을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고 고민도 많이 되요.

김: 저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요. 어디까지 배우들에게 맞추어야 하고 어디까지는 대중들에게 맞추어야 하는지…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애기를 하는 게 맞는지, 또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실은 배우들이 더 많이 생각을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쉽지는 않고요. 배우들이 연극을 잘 안 보려고 해요. 연극을 보면 자기는 저렇게 못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대요. 저는 배우들에게 “그걸 버리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된다. 저 사람처럼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 극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다 거짓말이 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하는 것이거든요. “너의 눈도 비장애인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냐, 그 눈을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돌려서 우리를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게 사실 너무 힘들거든요. 외부에는 다 비장애인들의 것 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나의 몸과 나의 것을 가지고 표현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교감하고 소통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런 방법을 찾아 가는 게….

최: 저는 비장애인 배우들에게 장애 연극의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연기, 공연들이 좋은 자극과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많은 배우들이 와서 보면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장애인 배우들의 신체가 다르고, 그 중에서도 개개인의 신체가 너무도 다르지만, 사실 비장애인들도 모두 서로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모두가 어떤 특정한 이상적 신체나, 조건, 특성들을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자신의 특성을 말소시켜 가면서 까지. 물론 어디까지를 개인의 특성으로 볼 지,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런 가운데서 장애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큰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제가 (논문에서)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게 아직 설명이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그런 것이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연구를 하고 싶은 게 지금의 목표이자 꿈인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김: 잘 될 거예요. 열심히 해주세요. 저희는 그런 것을 행동으로 찾아가는 입장이고,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론으로 만드실 수 있는 거니까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또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웃음)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2015년 4월 장바구니

글쓴이_산책

생각해보면, 4월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부 시절 도합 10년은 중간 고사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날이 따뜻해지고, 꽃은 피는데, 독서실이나, 학원, 도서관에 앉아 책이나 들여다 봐야 하는 신세를 가끔 한탄하며, 그렇다고 나가 놀 용기도 없이 그렇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대학원 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이라는 지루한 체제에서는 벗어났지만 발표와 과제는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아르바이트로 했던 과외 때문에 중간 고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좋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2014년부터 4월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잔인한 달로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침몰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고, 유족들은 얼마 전 울면서 삭발했습니다. 보상금이 4억이니 말이 많지만 유족들의 억울한 그 마음들은 그 누구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듯합니다. 사실 이유도 모르고 자식 잃은 슬픔을 그 누가 제대로 보상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슬프고 무기력했지만, 아마 저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여 이럴 때, 연극이,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질문들을 던지다가도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서울에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것 같은, 그래서 표류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이번 한 달, 극장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골라 둔 작품을 보고 올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노란 봉투> 4월 3일 ~ 5월 10일, 연우 소극장

<노란 봉투>는 “’손해 배상 가압류’문제와 ‘세월호’사건을 다룬 작품’”이며, “잊지 않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연극은 무엇이고, 극장인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겠지요. 극장에 앉아 같이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돌아 온다> 4월 16일 ~ 4월 26일, 동양예술극장 2관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액자가 걸린 식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고 식당으로 몰려옵니다. 그런 식당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뻔한 기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습니다.

2015년 3월 28일 토요일

실체 없이 이름만 있는 그 무엇

글쓴이_산책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공연 내내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란 단어를 수없이 듣는다. 일반적이지 않게 긴 제목을 공연 제목으로 혹은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으로 부를 때마다, 그 집요함, 고의성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상한 제목이 귀에 딱 붙지 않아 어색하기도 하다. 뭔가 이상하다. 한편, 제목을 외칠 때마다, 지금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란 연극을 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긴 제목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서두부터 오락가락하는 것은, 작품이, 또 작품을 본 감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 공연에 버무려져 있다. 하나씩 맛보았다면, 나름 맛있었을지도 모를 음식이 그야말로 잡탕이 되어, 어떤 맛이 나긴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무대에 올라왔다. 짠 맛 좀 느껴보려고 하면, 매운 맛이 공격하고, 매운 맛을 느끼고 있자면, 시큼한 맛이 올라온다. 솔직한 심정은…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B급 코드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패러디 한 배달의 민족 광고
언제부터인가, B급 코드(혹은 병맛)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수 크레용 팝이나, SNL 코리아, “강남 스타일”, 배달의 민족 광고, 가끔 동생이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마음의 소리>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 <킹스맨>도 그런 맥락 안에 있다. 이런 B급 코드의 효과는 꽤 높다. 대중들, 관객들이 B급 코드의 가벼움, 유머, 신선함에 반응하고 환호한다. 다른 사람이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름표 떼는 것을 왜 봐야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젊고 어린 동생들은 병맛코드를 즐기지 못한다며 안쓰러워했다. 점잖은 체 하지 않는 B급 코드는 젊고, 신선한 것으로도 여겨지기도 한다.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은 포스터부터 B급 코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극중극 내의 감독은 우리 연극은 아무 생각없이 웃게 만들 것이라고 호언 장담을 하는데, 어떤 부분들은 실제로 그렇다. ‘싼마이 연기의 달인인 황백호의 연기와 대사는 기가막힐 정도로 저렴하며 가볍다. 극중 옹 순경과 황백호의 여자 친구(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하다니!)는 산티와 성적(sexual) 코드를 마음껏(?) 발산한다. “오빤 나의 핫도그야.”같은 성적 농담들도 군데 군데 심심치 않게 삽입되어 있다. 성적 코드는 1차적인 본능을 건드리며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강력한 것이지만, 관객들의 공감을 얼마나 끌어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B급 코드 속에, 소고기 개방과 같은 정치 문제, 경찰 수사 문제, 혹은 갑질 문제, 연극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을 숨겨 두고 있으니,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진짜 작가나 연출의 속내, 그 의도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저 맥락없는 섹시 여 경찰은 웃으라고 끼워넣은 것인지, 젠더 문제까지 다루려고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녀들은 섹시미, 백치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줄 뿐, 그것을 깰만큼 신선하지 않다. 그래서 웃음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판을 깔아 두고 마음껏 B급 코드를 보여주지도 않으면서(청소년 관람 불가 연극도 아니고), 이런 병맛 코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고 성찰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극중극의 감독은 소떼 퍼포먼스, 소뿔 장례식, 사람들의 시위 장면, 등이 재미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맥락없이 끼어드는 장면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될 뿐이다. 정부, 빨갱이, 민중과 같은 단어들을 외치지만, 그런 표현들을 굳이 가져다 쓰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vs 실체 없이 이름만 있는 

분명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형식을 통해 연극적 유희성을 획득”하겠다고 소개했다. 이 소갯말은 극중극의 감독의 입을 통해 한 번 더 공언된다. 공연을 보신 다른 관객들은 어떤 점에서 이런 면들을 발견하셨는지 무척 궁금하다. 필자는 만화나 영화를 즐기지 않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그래서 이 재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했다. 만화 캐릭터같은 인물들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는 것은 인정한다.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일진 여고생이라든가, 난데 없이 취조 중에 랩을 하는 인물이 있다. 이들은 B급 정서를 드러내면서, 전체 서사의 맥락을 끊어버려, 이야기를 말이 안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만화같은”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같은”이란 수사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극중극중극이 반복되면서 마치 플래쉬백이 되듯, 이미 본 장면을 반복하고, 관객에게 기시감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같은 형식이라 여긴 것일까? 이 작품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극중극중극의 형식은 영화같다기 보다는 연극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극이 극중극이 되고, 여기에 때로 실제 현실—극장 밖에 폴리스 라인을 치라고 지시하는 것 같은—이 난입하면서 (많은 리뷰가 소개하듯이) 무엇이 연극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척한다. 그런데 마치 현실처럼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것도 실제처럼 보이는 허구일뿐이다. 남산드라마센터에 폴리스 라인이 둘러져 있다 해도, 어느 누가 이것을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무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그것인 실제인 척 하는 허구, 자연인인척 하는 등장인물일 뿐이다. 현실과 공연이 다르지 않다고 선언하고, 현실과 공연을 혼동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대로 그것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 아쉽다. 진짜 B급 코드, 연극적 유희성을 달성하고자 했다면, 관객에게 그것을 애써 전하지 말고, 알아차려도 그만, 그 반대여도 그만이라는 대담한 태도를 보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다만, 첫 번째 극이 극중극이었음을 알게 되고, 극 바깥의 현실(인척하는 극)이라고 생각했던 겹이 다시 계산된 극중극중극이었음을 알게 될 때, 관객들은 자신이 본 것이 몇 번째 층위에 있는 것인지 다시 따져봐야 하는 인식의 즐거움은 누릴 수 있다. 

첫 번째 보고 있던 극이 연출과 작가가, 수사관이 등장하면서 극중극의 구조가 된다. 3번 층위와 2번 층위가 서로 교차하며 서사가 진행되던 중, '진짜' 수사관이 등장하면서 (3)번과 (2)번을 모두 극중극중극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마지막에 끼어 든 층위도 현실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에 비유했으나, 이 작품은 열면 열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이는 층위가 끼어들수록 그 구조가 점점 확장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연기도 못 바꾸는데 현실을 어떻게 바꿔?

공연 내내 갈피를 잡지 못했던 마음이 마지막 10여분 동안, 그 길을 찾았다. 다소 진부한 에필로그였으나, 작가의 속내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연기도 못 바꾸는데, 현실을 어떻게 바꾸냐는 한탄처럼 (내 글은 엉망이면서, 다른 작품에 대해서 뭐라 할 수 있겠냐는 지금의 내 심정처럼) 마지막 10분은 작가와 연출이 이 복잡한 구성, 구조, 인물들을 모두 빠져나오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 들려주고 싶었던 주제를 꺼내 놓았다.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당수로 소뿔을 자르고 도망간다는 기상천외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공연 중에 길을 잃었던 황백호는 길을 찾기 위해 공연장 밖으로 나간다. 그가 소뿔을 자르고 다니더라는 등의 소문만 무성하다. 사람들은 이름은 있으나 실체가 없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그것을 잡아 확인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체가 없기 때문에 힘있는 어떤 사람들은 꾸며내서라도 그 무엇을 현실화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힘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것은 무대 위의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재미가 주제라거나, 머리를 텅 비우라는 말들은 사실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그래서 두려워하는 그 존재가 과연 관객에게는 어떤 것인지 물으며, 공연은 끝난다. 아니, 극중극중극에 충실하게 위해 이 모든 것을 공연 연습인양 마무리하며, 휴식 시간을 갖자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배우들은 휴식이 끝나면 다시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극장 밖을 나서면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담소도 나누고, 담배도 피고 있다. 그 장면에서야 극중극중극중극의 재미가 느껴진다. 그들은 지금 자연인으로 드라마센터 밖에 서 있는 것일까, 등장 인물로 서 있는 것일까. ㉦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비행위를 번역하다: 《레르몬토프 희곡 전집》 번역자 신영선 인터뷰

2015년 3월 18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내 한 카페에서

임승태: 신영선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영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임: 자기소개는 신비주의를 위해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신: 아, 예. 별로 알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죠?
임: 책 표지에 나오기 때문에, 궁금하시는 분들은 서점에 가서 표지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책!

임: 첫 번째 책이 무려 전집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엄청난 작업을 하시게 된 건가요?
신: 제가 봐도 좀 미련한 짓인 것 같구요.
임: ㅎㅎㅎ
신: 여기서 웃으시면 안되죠.
임: 볼드체로 해드리겠습니다.
신: 누난 지금 진지해요. 궁서체로 해주세요. … 논문을 쓰면서 어찌됐건 저는 텍스트를 수십번을 읽어야 했는데, 저는 외국어 텍스트를 그대로 분석하는 건 잘 못하구요. 일단 우리말로 코딩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우리말로 코딩을 한 이후에 분석을 했던 거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산출됐습니다. 어차피 한번 읽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다시 읽어야 해요. 그래서 경제성을 위해서 한 거구요. 읽으면서 제가 읽은 대로 번역을 한 것이고, 물론 이제 출판을 위해서는 조금 더 검증 작업을 거쳤습니다. ‘가장무도회’ 와 ‘두 형제’는 배우들의 리딩을 몇 번 거쳤어요. 기성배우들의 드라이 리딩을 몇 차례 거쳤습니다. 희곡 번역은 어디까지나 공연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공연이 가능한 텍스트를 뽑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런 표현을 찾는 작업이 후반부에 들어갔습니다.


임: 죄송하지만, 레르몬토프는 저 또한 그렇고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작가잖아요? 물론 전집이 이제야 소개되었으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레르몬토프는 어떤 극작가인지요? 역자 선생님의 박사 논문 제목이기도한 “비행위에서 반행위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아주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신: 레르몬토프는 러시아에서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러시아에서도 극작가로 주로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는 소설의 저자로 국내엔 주로 알려져 있고, 시집은 절판이 돼서 거의 찾을 수가 없을 거예요. 희곡 번역은 제가 거의 처음이라 보시면 되고, 대표작인 ‘가장무도회’는 90년대에 번역된 게 있는데, 그 책도 절판되었습니다. 공연은 된 적이 없구요. 극작가로서의 퀄리티를 평가하자면, 초기작품은 16-7세에 나온 거예요. 사춘기의 소산, 사춘기에 연상의 여인들에게 구애했다가 차인 경험들이 대부분 반영되어 있고, 그래서 자기를 찬 여인들에 대한 복수심이 또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는 게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후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21-2세 때 ‘가장무도회’와 ‘두 형제’가 나오는데요. 전기 작품과 후기 작품 사이에는 군대가 있습니다. 남성 작가들은 군대 전후로 해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것의 의미는 상징계 진입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 전까지는 학생이죠. 구애했던 여성들도 작가를 어린애나 친구로 취급, 적어도 성인남성으로는 대접해주지 않았다고 하면, 2년의 사관학교 기간을 거치고 장교로 임관을 하고 뻬쩨르부르그 중앙 사교계에 장교복을 딱 갖춰 입고 진출을 하는 거죠. 무도회도 드나들고 유부녀들과 연애도 하고 이러면서 사교계에 정식으로 장교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진입을 하는 거에요. 그런 입장에서는 작가가 그린 주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앞의 세 작품의 주체는 행위를 결행하지 못하는 사춘기적 주체입니다. 앞 작품에서는 계속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양부건 친부건 하여튼 자기를 먹여주고 길러준 양육자의 존재가 항상 있어서 그들의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그들에게 반항해서 행위를 결행하고 싶은데 하면 후레자식이 되는 거에요. 그게 비행위에요.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나를 먹여주고 키워준 사람한테 반항해서까지 이 행위를 결행하기엔 내가 너무 고상한 존재란 자의식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희생하고 말겠다, 그래서 자기 목표를 주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가 재귀적으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그런 종류의 행위를 하는데, 이제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행위를 보면 미칠 것 같죠. ‘아니, 지금 저거 뭐하는 거야, 왜 죽여야지 안죽이고 니가 죽어?’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행위가 비행위입니다. 있어야 할 게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비행위를 마이너스-액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행위에 특별히 주목한 건 우리 세대랑 많이 닮아 있어서에요. 그러니까 니가 취직을 못하는 건 니가 자기 관리 못하고 스펙이 부족하고 니가 노력을 덜해서야. ‘자소서 좀 더 잘 쓰고 플픽도 다시 찍고 실력도 쌓고 토익 점수 지금 900이 넘어도 좀 더 올려봐’라는 식의 주체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하고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학생들 봐도 그래요. 어떤 사회 시스템이나 부조리에 대해서 항의 한다기 보다는 제가 열심히 안 해서 그렇죠 뭐. 더 잘해야죠. 연애도 외모를 좀 더 잘 가꾸고 스킬도 늘리고 좀 더 잘나고 매력적인 사람이 돼야 연애를 할 자격이나 가치가 생긴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그런 내향성, 자기 비난과 착취 그런 종류의 패턴을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있고, 작가도 그런 종류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권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항하는 대신에 수동 공격이나 공격성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는 패턴. 그런데 이런 건 19세기 이전 문학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현대적인 현상인데 저는 근 200년 전에 이런 현상을 어떤 어린 천재가 포착해냈다는 것, 이런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현대적인 방법으로 연출한다면 굉장히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런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목하실만한 작품은 ‘이상한 사람’이란 작품인데요. 주인공은 천재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지만, 주변사람은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그냥 이해 못할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너 진짜 이상하다. 널 정말 이해 못하겠어”라고 하는. 근데 그렇게 이상한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은 거죠. 저는 지금 우리 나라 20대의 40%가 그런 이상한 사람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 각자가 다 이상한 거예요. 그러면 그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들이 될 수 있겠죠.
임: 좀더 연령을 낮춰서 중2정도로 갈 수 있겠네요.
신: 그렇죠. 그러니까, 중2병이라는 건 결국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주체의 자기 정립을 위한 발버둥의 단계인건데, 독일로 치면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 질풍노도)식의 어떤 반항적이고 격렬하고 숨쉴 틈 조차 주지 않는 권위적인 세계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을 통해서 자기를 형성하고 과정이라고 본다면, 자기 형성이라는 건 슈투름 운트 드랑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아니고 제 해석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극작가로서의 레르몬토프가 많이 받아들였다고 봅니다. 쉴러 초기 희곡들이 슈트룸 운트 드랑에 해당하는데, 그를 포함한 쉴러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이 있어요. 그 시대에 해당하는 《간계와 사랑》 같은 작품들의 영향이 거의 직접적으로 들어옵니다. 이 영향의 의미는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독일이나 러시아의 상황에서 권위적인 정권에 불만을 품은 젊은 세대들이 정치적 행위로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문학적으로 자기를 형성하고 자의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소산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임: 신영선 선생님은 러시아 희곡 연구자이시면서, 동시에 등단한 극작가이시기도 합니다. 같은 극작가로서 레르몬토프의 장점이나 매력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그 반대도 좋구요.
신: 사실 저는 극작가로서의 저의 단점을 레르몬토프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본인이 들으면 울컥하겠는데요? 저와 제 주인공들도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유로 행위의 결행을 망설이는 편입니다. 욕망은 있어요. 다 죽이든가 저지르던가 하고 싶죠. 제 희곡은 대부분 죽어야 끝나는데, 그게 살인으로 못 끝나고 자살로 끝나요 대부분. 그게 뭐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비행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를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은 제 희곡과 이 번역본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들 해요.
어찌됐건 레르몬토프의 희곡이 공연이 잘 되지 않았고, 러시아에서도 굉장히 다루기 까다로운 작가로 취급해요. 그게 바로 비행위 때문이거든요. 연출가가 다루고 배우가 작업할 수 있는 건 행위 뿐이에요. 비행위를 어떻게 작업하겠어요? 난감하거든요.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 이상 비행위는 무대에서 형상화하기가 어렵거든요. 갑갑하죠. 관객들도 저게 뭐야? 그냥 저질러. 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내가 희생할게. 라고 하면 관객들은 미치는 거죠. 그런 종류의 답답함. 클라이맥스에서 극단적인 행위에 대한 욕망은 있어요. 저지르고 싶고 터트리고 싶은 욕망이 젊은 작가들에게 있지요. 저도 희곡을 20대 초반부터 썼는데, 사회에 대한 복수심도 물론 있고 개인적인 욕망도 있는데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르기엔 자의식적인 장애가 너무 많은 거죠. 비행위의 요인이 너무 많아서 주인공은 자기 파괴의 결론을 냅니다. 이 사회와 공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남을 해칠 수도 없어요. 그래서 비행위로 결론을 내는데, 이런 식으로 10년을 넘게 쓰다 보니까 아, 여기에 한번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생각하게 됐는데, 그런 지점에 제 박사 논문이 위치해 있구요.
장점에 있어서도 공유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발이에요. 말발과 서정성. 인정하실지 모르겠는데, 제 희곡에는 내용은 잔혹하지만 표현은 상당히 서정적인 편입니다. 레르몬토프도 시인이기 때문에 어쨌든 화려한 말발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진 않거든요. 그 긴 독백을 듣고 있다 보면 빠져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제 경우엔 요즘 시대엔 그렇게 긴 독백을 많이 쓸 수는 없지만, 어쨌든 유려한 언어, 제 입으로 이런 말 하려니 굉장히 민망합니다, 그 실제로 구어적으로 배우들 사이에서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단문의, 희랍비극에서 격행대화라고 하는 것 있잖아요. 반절씩 치고 받는 대화의 긴박감이라든가,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논리의 정연함이라든가, 한국어의 아름다움, 듣는 텍스트로서의 아름다움, 시극의 가능성, 낭송했을 때 들어줄만한 것인가, 소리로서도 들어줄 만한 것인가, 그런 측면들을 많이 고민합니다.


임: 그러면 행위가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 말이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치 《햄릿》에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신: 죽일 듯 죽일 듯 죽이지 않는 ...
임: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려면,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행위가 없으니 그 자리에 무언가 다른 게 채워져야 하는 그런 관계 ...
신: 어떻게 보면 지극히 근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고대 비극은 그런 고민이 없어요. 저지르죠. 복수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거든요? 근대 비극 같은 경우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라신 같은 경우도 순수한 복수극은 없어요. 말로 하죠. 그 정념을 말로 풀어내는 거라고 보시면 되는데, 그 대신에 내러티브의 정합성은 정밀하게 따지는 편입니다. 스토리는 진행이 되요. 긴박하게 진행되지만, 주인공이 메인 액션을 하는데 많이 주저하게 되는 거죠. 고대 비극이나 아니면 양식극, 이를테면 골도니 희극들의 주인공들은 망설임 없이 딱 저지르잖아요. 음모를 꾸미고 딱 실행하고 어떤 결론을 내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숙고가 들어가는 거죠.
임: 망설임이란 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비극적인 어떤 것 아닐까요?
신: 비극적인 계기 ... 비극의 원인이 되죠.


임: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체호프를 좀 더 익숙하게 생각할 텐데요. 비행위라고 하니까, 체호프의 작품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레르몬토프가 체호프에게 영향을 미친 게 있을까요? 《두 형제》와 《세 자매》와 무슨 관계가 있는 작품인가요?
신: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두 형제’는 러시아 문학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체호프가 레르몬토프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기는 했는데요. 그건 산문 작가로서였습니다. 레르몬토프의 소설 ‘우리시대의 영웅’에 보면 ‘따만’이라는 장이 있어요. 독립된 단편소설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구성이 굉장히 정교하고 문장이 아름다워요. 단편소설로 수준 높은 작품인데, 체호프는 그걸 높이 평가했습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이렇게 완벽한 단편 소설은 없었다. 그리고 체호프의 유명한 단편들이 레르몬토프를 모범으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긴 어려워요. 워낙 이 단편들이 미묘한 작품들이라서요. 극작가로서는 체호프가 레르몬토프를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제가 알기로는, 나온 증거는 없어요. 러시아에서 레르몬토프는 워낙 많이 연구 대상이 된 고전 작가인데, 제가 연구사를 검토했을 때 레르몬토프 전체 연구 업적에서 희곡을 연구한 분량이 5%가 안 됩니다. 너무 분석하기 힘들어요. 알려져 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레르몬토프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애정이나 평가를 생각하면 조금은 더 있어야 되는데, 지나치게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일차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텍스트를 소개하고, 기본적인 주석을 하고, 그리고 비행위와 반행위에 대한 저의 주장은 어찌 보면 그 다음 단계에서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박사논문이 요구하는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저의 독자적인 작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 세 가지 작업, 텍스트의 정밀한 독해와, 주석과, 적용 및 해석에 대한 부분까지 이것저것 다 하려다 보니까, 전부다 미비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임: 좋게 말하면, 블루 오션을 찾으셨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거 같구요. 하지만, 햄릿이 말한 것처럼, 풀이 자라기 전에 말이 굶어 죽는다고…
신: 저는 굶어 죽을 지경입니다.


임: 그전에 풀이 빨리 자라길 다 같이 기원하면서요. 이제 간단한 질문 두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러시아 희곡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호칭이 고약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누가 누구인지, 등장인물이 열 명이면 본문에는 한 삼십 명이 나오는 거 같아요. 그것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저만 하더라도 체호프를 두 번, 세 번 읽으니까 그제야 아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구나.
신: 걔가 걔였든가, 이제
임: 초보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신: 러시아 인의 인명 체계는 러시아 문학에 들어가기 위한 첫번째 문지방인데, 그 문지방이 조금 높아요. 체계가 이렇습니다. 세례명-부칭-성 이에요. 그래서 체호프라고 하면요. 안톤-파블로비치-체호프이에요. 체호프는 성입니다. 안톤이 세례명이에요. 파블로비치 이게 이상한 건데, 아빠이름이 파벨이란 뜻입니다. 파벨의 아들 안톤이고 체호프 집안 사람이에요. 여자의 경우에는, 누구로 할까요? 궁금한 여자 있으세요?
임: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가져간 소트니코바?
신: 소트니코바 같은 경우엔 예시가 약간 비호감 아닌가요? 소트니코바는 성이죠…. 제가 그 친구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요? 남성형은 소트니코프가 됩니다.


(질문자의 머리 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이름은 샤라포바였다. 이 경우엔 세례명까진 꽤 알려져 있으나, 부칭이 생각나지 않아 다시 통과. 인터뷰를 끝내고 복습 삼아 소트니코바의 이름을 찾아 보았다. 아델리나 드미트리예브나 소트니코바, 다시 말해 소트니코프 집안의 드미트리의 딸 아델리나이다. 이분은 요즘 뭐하고 계시는지?)


신: 제가 많이 예로 드는 건 도스토예프스키 부부입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에요. 미하일 아들 표도르. 그리고 마누라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그러니까 그리고리의 딸이에요. 아빠이름이에요. 그다음에 스니트키나. 스니트킨 집안의 여자.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와 결혼했으니까 도스토예프스카야라고 해서 여성형 어미가 붙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표도르는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사이에서 페쟈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안나 같은 경우는 아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안나에게 쓴 편지에 보면 아냐라고 호칭을 해요. 그리고 가장 마지막 단계인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이게 호칭입니다. 세례명하고 부칭을 붙인 게 정중한 호칭이에요. 이를테면 서로 인사를 할 때, 안녕하십니까, 전 OO입니다. 당신의 이름과 부칭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면 저는 OO입니다가 되는 거죠. 지인들 사이에서 부르는 정중한 호칭이에요. 반말은 아니고, 그런데 부칭을 알고 있고 이름과 부칭을 붙여서 부른다는 건, 안면이 있는 사이란 뜻이에요. 그리고 성만 부른다는 건 중립적인 호칭이에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번에 새로운 소설을 냈다고 할 때는 그냥 성만 쓰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제가 러시아에 가서 상대방에게 부칭 물어보면, 질색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 그러세요. 그냥 세례명만 불러주세요. 이렇게 되더라구요. 세례명은 대부분 서양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성인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그럼 카츄샤 같은 경우는 뭐냐, 여러분이 괴로워하시는 <갈매기>의 주인공, 콘스탄틴, 코스쨔라고 부르죠. 이게 이 애칭이에요. 콘스탄틴 트레플레프에서 트레플레프가 성이구요. 니나 자레예치나야에서는 니나가 이름인데, 니나 자체가 애칭입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나스타샤, 나타샤 … 이렇게 점점 짧아지는 거죠. 그리고 애칭이 있고 비칭이 있어요. 약간 하대해서 부르는 건데요. 예까쩨리나 여제 아시죠? 예까쩨리나가 풀네임 세례명이고 까쩨리나, 까쨔 까지 줄어듭니다. 그리고는 카츄샤, 카첸까, 까찌까 이런 식으로 비칭 라인으로 쭉 가요.
임: 그럼 짧아지는 게 점점 ...
신: 격의가 없어지는 거죠. 그러니 몇 십 명 처럼 보이죠. 한 사람인데.
임: 그렇다면은 《갈매기》에서 콘스탄틴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꼬스쨔라고 부르기도 하고 ...
신: 어머니는 꼬스쨔라고 부르죠.
임: 부르는 방식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신: 그렇죠. 우리는 《부활》에 나오는 그 인물을 카츄샤라고 기억하잖아요? 그건 그 인물의 신분이 낮다는 뜻이에요.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여주인공인데, “까쩨리나 이바노브나가 안에 계신가요?” 이렇게 물을 때 어감을 아시겠죠?
우리로 치면 존댓말에 해당하는, 하인들이 들어와서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누가 오셨어요.” 이 정도의 어감인거죠.
임: 보통 공연할 때 보면, 이름이 너무 어려우니까 다 자르고 하나로 통일해서 사용하는데, 그걸 잘못 선택하게 되면, 이런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군요?
신: 그렇죠. 줄이는 건 좋은데, 원래 뜻이 무엇인지는 알고 줄이는 게 좋겠죠.
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신: 이것만 넘어 오시면 재미있는 게 많은데 ...
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마도 이 문제 때문에 중간에 덮는 분들 많을 거에요.
신: 삼분의 일쯤에서 거의 낙오하시죠.


임: 마지막 질문은, 현재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로서 공연을 준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준비 중인 공연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신: 지금 번역본에 수록된 작품 중 마지막에 《두 형제》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메인 캐릭터는 다섯 명, 하인 한명 해서 배우 여섯 명으로 하는 소극장 작품입니다. 내용은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첫사랑, 남편, 불륜남이 한 여자를 놓고 싸운다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첫사랑과 불륜남은 형제지간입니다. 이 두 사람이 ‘두 형제’구요. 이 형제의 아버지, 뒷목 잡으시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거의 아침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 이상의, 영원한 막장이 연출될 거구요. 근데 배우들하고 작업해보니 배우들이 “이건 내 얘기다. 난 이 역할은 정말 해봐야 겠다. 나 그거 뭔지 알아.” 이래서 연습실 상황은 거의 난장판입니다.
임: 이걸 안단 말이에요?
신: 저는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은 알겠다네요. 이 작품을 저희 극단의 첫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구요. 첫 작업으로는 작년 겨울에 라디오 드라마를 한 편 같이 녹음했습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서 연기 톤을 서로 맞춰가는 상황입니다. 연출 컨셉은 현대적인 ‘당구장’입니다. 당구장에서 큐를 들고 벌이는 다섯 남녀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공감하시는 분 많을 거 같아요.
임: 언제쯤 공연을 생각하고 계신지?
신: 올해 하반기나 연말, 늦어지면 내년 초까지도 보고 있는데요. 그전에 여름엔 현대무용단하고의 협업을 구상하고 있어요. 작품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희곡인데요. 젊은 연출가 메이에르홀드에게 헌정되고 주연과 연출을 겸했던, 굉장히 과격한 실험극입니다. 저는 컨템포러리 댄스와 접점이 있다고 해서, 어떤 정형화된 춤이 아니라 신체의 자연적인 컨택, 접촉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그런 기법을 써서 한 안무가와 공동연출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런 건 현대 무용이나 현대 연출의 실험적인 작업으로 재미있을 거 같아요.
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공연일정이 구체적으로 잡히면 그때 다시 한 번 인터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그리고 러시아 문학 입문 원포인트 강의까지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