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Sfumato: Blurring of Borders

by Hakyung Sim


          The month of October was full of treats for theatergoers in Seoul. Along with the usual domestic performances, works of foreign directors and companies were brought to local stages by festivals such as SPAF (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and SIDance (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Though I’m not dance-savvy at all, the array of Western contemporary dance performances interested me.

          Above all, Sfumato, a work presented at SPAF by French choreographer Rachid Ouramdane and his company L’A, appealed with its slogan: “a sociopolitical dance-documentary about climate refugees”. It was introduced that Ouramdane's trip to Vietnam, where he witnessed refugees from a tornado, had inspired him. Sure, the widely anticipated use of water on stage was another appealing point. Seeing several productions recently with water on stage, however, had made “water” less sensational for me; I rather focused on how it was used, or what effects it gave on the overall experience.

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스즈키 다다시 <리어왕>

by 최희범

1.
몇 년 전에 스즈키 메소드 워크샵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무엇을 위함인지도 잘 모르면서, 몸과 마음의 중심을 아래로 이동시키는(grounding) 낮은 자세, 상하좌우 흔들림 없이 걷는 연습 등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이런 훈련이 실제 공연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궁금했었고, 워크샵 진행자들의 스즈키 메소드와 공연에 대한 열광어린 찬사를 보며 호기심이 더욱 커졌었다. 그 후 이번에 처음으로 스즈키 다다시 연출의 공연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오래 마음에 담아둔 호기심에 기대가 컸는데 나와 비슷한 기대를 품은 이들이 많이 있었는지, 공연 시작 전부터 객석의 분위기는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심지어 공연 시작 전 암전 상황에서 큰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는 해프닝(!? 이전에는 공연 시작 할 때부터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까지 벌어졌다.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흔들림 없었고, 극도로 정제되어 있었다. 그런 움직임을 하기 위해 몸 전체를 의식하고 통제하고 있을 배우들을 보며 그들이 자신의 몸 전체로 뻗치고 있는 에너지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그래도 키마이라는 불을 뿜는다: 言語, 소리, music의 창극 <서편제>

by 이진주
 
국립극장, 2013년 9월 18일 15시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가 영화와 뮤지컬을 거쳐, 이번에는 국립창극단의 품에서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공연 시작 전,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단장은 최초의 창극이 공연된 지 110여년이 흘렀으며 파격과 실험을 통해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 창극은 백여 년 전 그 탄생 시점부터 현재까지도 실험 중이다.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그리고 뱀의 꼬리, 서로 다른 형상을 한 존재들의 결합인 키마이라(Chimaira). 창극 <서편제>는 유서 깊은 판소리의 눈대목들로 이루어진 소리와 극작가 김명화가 써낸 탄탄한 대본, 그리고 전체 줄거리의 배경을 이루는 양방언의 아름다운 기악곡들이 각각 머리, 몸통, 꼬리를 이루고 있었다. 극작과 두 종류의 음악은 서로 역할을 분명하게 나눠서 맡고 있으면서, 각각이 가진 훌륭한 장점을 순간순간 충실히 드러내었다. 말로 된 대사는 사건을 발생시키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갔고, 판소리 대목들은 극중에서 음악이 필요한 부분에서 실제 음악으로 쓰였으며, 양방언의 음악은 배경을 이루면서 빈 곳을 메워주었다. 다만 세 요소가 역할을 분명하게 나눠서 맡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서로가 역할을 넘겨줄 때 충돌을 일으켜 매끄럽게 맞물리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했다. 이 때 생기는 균열들은 창극이 이종 세포들 간의 혼종임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만 놀고 있다고 여겨지던 혹은 서로 불협하고 충돌한다고 여겨지던 각각의 요소가 조화롭게 만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고 그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앙상블로 큰 감동을 주었다.

2013년 10월 8일 화요일

웃기기 참 힘들겠지만, 웃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 작, <구름> , 남인우 연출, 남인우, 김민승 공동 극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by 산책

화창한 휴일 오후, 보조석까지 놓인 극장은 관객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좋은 휴일에 아리스토파네스를 보러 왔을까, 조금 의아했다. <구름>은 2500년 전의, 그리스 희극인데다가(작가의 말 처럼 “비극도 아니고 희극”), 전작인 <개구리>는 이런 저런 말도 참 많았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공연은 쉽게 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티켓이라도 선물해 주면 모를까, 도대체 누구에게 자기 돈 내고 이런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해야 할 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날이 좋은 휴일 오후, 애써 햇빛을 즐기며 극장 마당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온다. 아니,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렇게 유명한가? 이 사람들은 다 자기 돈 내고 스스로 극장을 찾은 유료 관객들인가? 그러는 나는 여기 왜, 혼자 앉아 있는 건가?

2013년 10월 6일 일요일

성기웅 + 타다 준노스케 <가모메カルメギ>

by 에스티

1936년 여름의 조선이랬다. 성기웅이 각색한 체홉의 <갈매기>의 배경 말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무대에는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명백한 시대착오에 무심하기에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게 버려져 있기에 또 그러하다. 사실 이 전자 기계들은 무수한 신문지 더미와 부서진 가구, 주저 앉은 의자, 휠체어 등과 함께 무대에 나뒹굴고 있다. 이게 뭘까. 쓰나미가 지나간 것 같았다. 여기서 첫번째 질문이 생겼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일본 연극은, 아니 타다상 자신은 어떻게 변했는가?

공연을 보면서 다른 질문이 생겼기에 연출과의 대화 시간에 이걸 질문하진 않았다. 작품과 동떨어진 얘기 같았고, 좀더 사적인 자리에서 물어봐야 할 질문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모임에서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하는 사람들이 얄미워 보였기 때문에. 고맙게도 연출은 묻지 않았지만 그 무대가 바로 그 ‘쓰나미’에서 영감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못한 질문에 답을 얻었다. <갈매기>의 무대라면 의례히 호수가 배경에 펼쳐지거나 뭔가 꿉꿉한 습기가 느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2007년에 러시아 연출가 카마 긴카스가 연출했던 <갈매기>에선 무대 주변에 물을 담았고, 배우들이 그 물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물 20톤을 썼다고 한다! http://avion.egloos.com/m/984050)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작고한 위르겐 고쉬 연출의 Die Möwe에서는 극 초반에 호수에서 멱을 감고 돌아온 야코프 일행이 무대 위에서 젖은 옷을 훌러덩 벗더니 옷을 갈아 입는다 (http://www.deutschestheater.de/spielplan/premieren_repertoire_2013_2014/die_moewe/).  이 느닷없는 노출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 또한 물이다. 그런데 타다의 무대는 바싹 말라 있어서 오히려 결여된 물을 떠올린다. 그에게 쓰나미가 일종의 트라우마임을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