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종주
0.
의아했다. 이런 주제로 무슨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 뻔한 고통의 나열이 아닌, 무엇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연극의 1부는 참신했다. 1부 내내 배우들이 하는 일이라곤 무대를 이리 저리 뛰고 걷고 기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국경을 넘고 중국과 베트남과 태국을 거쳐, 마지막으로 문턱을 넘기까지, 배우들은 움직이다가, 숨었다가, 또 움직였다. 무리를 이끄는 이는 이따금 외국어로 협상을 했다. 그 동안 무리는 숨을 죽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움직이기만 할 것인가 싶을 때까지,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1.
극장 입구를 통과하자 무대의 뒤가 나왔다. 덧마루를 쌓아 만든 더미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돌 더미 같기도 했고 참호 같기도 했고 끊어진 도로 같기도 했다. 무대를 가로질러 객석을 향했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어슴푸레한 무대 뒤편의 높은 곳에서 수상스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허리를 숙인 채 걷거나 뛰는 배우들, 계단인지 비탈인지를 내려와 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배우들. 무대가 밝아지고, 누군가 허공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무리는 따라서 허우적허우적,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소리는 뒤늦게 흘러 나왔다. 첨벙거리는 물소리.
몇 번인가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울리면 무리는 몸을 낮추었지만, 결국 누군가는 총에 맞고 말았다. 팔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는, 여러 개의 국경을 넘었다. 끊임 없이 숨고 도망치는 여정이지만, 사람들은 할 일이 많았다. 몰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짐을 버릴 수도 없었다. 총에 맞은 팔을, 결국 도끼로 잘라내는 순간에, 누군가는 똥을 누었다. 그렇게 살아 남은 이들이, 마지막 국경을 넘었다.
누군가는 만둣집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노래를 할 것이라고, 누군가는 춤을 출 것이라고 했다. 꿈을 안고, 국경을 넘었다. 가족을 두고, 고향을 벗어났다. 팔을 잃고, 희망을 구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다. 남한이라는 땅은.
2.
2부가 시작되고, 드디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뻔한 고통의 나열이 아닌, 무엇이 가능할까. 작가에게도 연출에게도 뾰족한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얽혔다. 만둣집을 열어 자리를 잡은 부부의 이야기와, 그 만둣집에서 서빙을 하며 쌍꺼풀 수술비를 모으는 이의 이야기와, 밤무대에서 돈을 벌어 북에 남은 가족의 치료비를 대고 학비를 저축하는 자매의 이야기와, 그 중 하나를 좋아하는 택시기사의 이야기와, 북한에서 전사를 했던 총잡이 실력으로 주유기를 잡고 싶었지만 일을 구하지 못한 이의 이야기가 얽혔다. 만둣집 주인 쯤의 삶은 넉넉했던 모양이지만, 다른 삶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당하고, 남한 물정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사기를 당하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 당하고, 남한에서 달리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장의 폭언을 듣고, 이런 이야기들이 얽혔다. 산만하다는 점만이 참신했을 뿐, 상상했던 그대로의, 우려했던 그대로의 고통의 나열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그들은 말했다. 남한에서 쉬운 일이라곤 숨쉬기 뿐이라고. 뿌연 서울 하늘을 생각하면 숨쉬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딱 그 정도였다.
“사선을 넘어 우리나라에 새로 터잡은 북한이탈주민. 생존을 위해 넘어왔지만 또 다른 생존과 싸워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라는 공연 소개를 읽었다면, 그리고 티비에서 한 번쯤 탈북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면, 2부는, 산만하다는 점을 빼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다.
3.
나는 중국어도, 베트남어도, 태국어도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 있다면, 무리들이 국경들을 넘는 동안 등장했던 중국인과 베트남인과 태국인의 입에서 나온 그들의 언어가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 정도다. 중국인들은 청대의 모자 같은 것을 쓰고 판관 포청천 주제가를 불렀다. 베트남인은 알 수 없는 짧은 문장을 반복했고, 태국인은 코꾼 깝 똠얌꿍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탈북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출은 중국인과 베트남인과 태국인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던가, 얼마나 두려웠던가, 얼마나 급박했던가 ― 무대에서 이루 재현하기 힘든 격렬한 정동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로 일부로 삐걱거리고 산만한 서사를 구성했는지도 모른다. 이 연극을 관람한 후에도 당사자의 감정은 여전히 알 수 없도록, 알량한 간접 체험 같은 것은 할 수 없도록,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들 가운데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조각난 서사들 사이사이에는 쉽사리 하나로 이어지는 뻔한 고통의 서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맥락 없는 웃음거리로 만듦으로써만 표현할 수 있었을 리는 없다는 점이다.
4.
뻔하게도, 재앙은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만둣집을 운영하는 부부, 남편은 함께 사선을 넘은 동료들을 믿고 돈을 척척 빌려주는 호인이다.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을 올려주마는 약속도 한다. 가계를 걱정하는 것은 부인의 일이다. 악역을 자처하며, 삶을 견디는 것이 그의 업이다. 팔을 잃은 남편을 위해 성매매를 하던 이는 임신을 하고 만다. 사기를 당하는 것은 꿈을 품었던 자매 중의 한 명이다. 이 사기는, 자신의 자매를 배신하는 일과 동시에 벌어진다. 뻔하게도, 그들은 밤무대 가수 일을 잃고서 ‘2차’를 하는 가게로 넘어간다. 가장 비참할 수 있도록, 옷을 갈아 입는 것은 텅 빈 무대 위에서다. 이들은 표현할 틈조차 없었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자매 중 한 명을 사랑했던 택시 기사다.
극이 끝나갈 무렵, 자매는 서로에게 묻는다. 괜찮으냐고. 자매는 서로에게 답한다. 괜찮다고. 택시 기사는 마음에 없던 다른 이와 결혼한 후다. 그가 맡는 일은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걱정하는 정도다. 괜찮은, 괜찮아야만 하는, 그래야 슬픈 자매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관객들의 감정을, 뻔하게나마, 움직이는 일은 그들에게 맡겨진다. 풍금을 치던 이는 손을 떨게 된다. 포주는 새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말한다. 무대는 텅 비고 만다.
이 삶들이 바닥에 가까운 곳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닥 또한 고르지는 않다. 팔을 잃은 전사가 의수를 얻는 동안, 전사의 친구가 그 의수를 선물할 만큼의 돈을 버는 동안, 자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기로 잃었던 돈을 메우는 정도다. 그 돈으로 데려 오고 싶었던 아비는 이미 죽은 뒤다. 쌍꺼풀 수술만 하면 정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줄 것이라 믿었던 이는,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택시 기사의 아내가 되었다.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이 누구의 몫이 될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5.
의아했다. 어디가 파격적이고 어디가 실험적인지, 나로서는 알기 어려웠다. 1부는 연극에 서사를 가진 재현적 연극에 익숙한 내겐 참신했지만, 어떤 이들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지난한 탈주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 지난함이 와 닿은 것은 아니었다. 재현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면 받아 칠 말은 따로 없지만, 재현불가능성을 잘 지시하고 있지조차 않았다. 적어도 하나의 실험인 1부와, 단순하고 뻔한 고통의 나열인 2부가, 어떻게 하나로 묶여있는지, 무대에서 펼쳐지는 일들만 보고서는, 알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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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 날숨의 시간〉
박찬규 작, 고선웅 연출
2016.12.09. ~ 12.25. 국립극장 KB청소년극장
2016.12.18. 15시 공연 관람.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2015년 3월 장바구니
글쓴이_산책
설연휴, 지난 장바구니에서 소개한 대로 <해롤드&모드>와 <비극의 일인자>를 보았습니다. 새해는 시작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는데 죽음에 대한 연극을 하루 걸러 두 편 관극해서 그런지, 생이라는 것이 그저 허무하게, 연극의 허상이 그저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강하늘 배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박정자 배우는 정말 귀여운 팔십 노인 그 자체였으나, 죽기 딱 좋은 80세 생일 곱게 죽음을 맞는 모드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해롤드의 이야기는 현실과 너무 먼 것이었습니다. 설 연휴에도 요양원에서, 혹은 홀로 집에서 지리한 생을 이어가는 노인들을 생각해봤습니다. 모드처럼 자유롭게, 세상의 질서나 통념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모드처럼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비극의 일인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고일봉이 죽은 아내로부터 전해 듣는 충격적인 두 가지 사실은 “자신이 죽는 것으로 썼던 극중 인물이 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과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생각한 "고일봉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식스 센스 급 반전은 공연 중반 이후 지루하게 예측되었고, 특이하게 삽입된 연극적 표현들은 어떤 의미를 포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툭툭 튀어나오며, 극에 몰입하는 것도 그런 장면을 통해 다른 무엇을 상상하는 것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연극은 허구이지만,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면서 실제감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그들의 연기,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진 후 내쉰 한숨으로만 그 심정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꾸물거리다 3월 작품 예매가 늦었더니 보고 싶은 작품은 두 작품 뿐이네요. 부디 고르고 고른 이 작품들이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산 예술 센터의 2015년 첫 작품입니다.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이 B급 정서를 오롯이 보여줄 것 같습니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 들며 극중극중극을 이어간다는 소개는 이제 익숙한 수사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또 성공할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유치하고, 과장된 새로운 장르”,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형식을 통해 연극적 유희성을 획득하는 한편, 관객들에게는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고자”한다는 소개도 마음에 드네요.
초연도 재연도 놓쳐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재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예매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호평을 받는 작품인데,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지 저도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사실 2013년 <안티고네>에서 만난 신구 배우의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 분들이 보여줄 그 깊이를 기대합니다. <소뿔>과 달리 연극 본연의 표현과 관습(convention)을 유지하는 작품일 것입니다. 두 작품의 관극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습니다. ㉦
설연휴, 지난 장바구니에서 소개한 대로 <해롤드&모드>와 <비극의 일인자>를 보았습니다. 새해는 시작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는데 죽음에 대한 연극을 하루 걸러 두 편 관극해서 그런지, 생이라는 것이 그저 허무하게, 연극의 허상이 그저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강하늘 배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박정자 배우는 정말 귀여운 팔십 노인 그 자체였으나, 죽기 딱 좋은 80세 생일 곱게 죽음을 맞는 모드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해롤드의 이야기는 현실과 너무 먼 것이었습니다. 설 연휴에도 요양원에서, 혹은 홀로 집에서 지리한 생을 이어가는 노인들을 생각해봤습니다. 모드처럼 자유롭게, 세상의 질서나 통념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모드처럼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비극의 일인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고일봉이 죽은 아내로부터 전해 듣는 충격적인 두 가지 사실은 “자신이 죽는 것으로 썼던 극중 인물이 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과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생각한 "고일봉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식스 센스 급 반전은 공연 중반 이후 지루하게 예측되었고, 특이하게 삽입된 연극적 표현들은 어떤 의미를 포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툭툭 튀어나오며, 극에 몰입하는 것도 그런 장면을 통해 다른 무엇을 상상하는 것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연극은 허구이지만,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면서 실제감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그들의 연기,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진 후 내쉰 한숨으로만 그 심정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꾸물거리다 3월 작품 예매가 늦었더니 보고 싶은 작품은 두 작품 뿐이네요. 부디 고르고 고른 이 작품들이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3월 12일 ~ 3월 29일, 남산 드라마센터
![]() |
| 공연정보 보기 |
남산 예술 센터의 2015년 첫 작품입니다.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이 B급 정서를 오롯이 보여줄 것 같습니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 들며 극중극중극을 이어간다는 소개는 이제 익숙한 수사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또 성공할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유치하고, 과장된 새로운 장르”, “만화보다 더 만화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형식을 통해 연극적 유희성을 획득하는 한편, 관객들에게는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고자”한다는 소개도 마음에 드네요.
<3>, 3월 13일 ~ 3월 29일, 국립극장 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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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정보 보기 |
초연도 재연도 놓쳐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재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예매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호평을 받는 작품인데,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지 저도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사실 2013년 <안티고네>에서 만난 신구 배우의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 분들이 보여줄 그 깊이를 기대합니다. <소뿔>과 달리 연극 본연의 표현과 관습(convention)을 유지하는 작품일 것입니다. 두 작품의 관극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습니다. ㉦
2015년 2월 9일 월요일
2015년 2월 장바구니
글쓴이_산책
2015년의 두 번째 달입니다. 계획하신 일, 소망하신 일들은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저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는 오락가락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싶어 피자며 떡볶이를 열심히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드레싱도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먹기도 합니다. 마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복하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월요일 아침, K-POP star를 다시 보기로 시청하며 한 시간 지하철을 탑니다(마음의 근육을 키우고자 지하철에서는 책만 읽으리라 다짐했는데, K-POP star가 너무 궁금합니다. *_*). 어제는(2015년 2월 8일 방송분) 전소현 참가자가 최종탈락했습니다. 마지막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소절에서 제 마음은 무너졌는데,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얻지 못했나봅니다. 탈락자로 호명되고 무대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순간, 유희열 선생님과 주고 받은 눈인사에 또 한 번 마음이 왈칵합니다. 화면 저 너머의, 그 두 사람만의 시간과 감정에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은 그 마음이 진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월 한 달 간 보게 될 작품들에서도 “진짜”인 마음들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고양이라서 괜찮아>, 2월 10일 ~ 15일, 예술 공간 혜화
이 작품은 극발전소 301의 신작으로, 낭독극 형태로 공연될 모양입니다. 극발전소 301 작품 중 <병신 삼단 로봇>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극했기 때문에 이 작품도 예매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데려 온 고양이가 섹시한 여성으로 변신하고, 남자 주인공은 결국 그녀에게 반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고양이, 인간, 고양이를 오갈 배우의 연기 변화(게다가 낭독극 형태에서)가 기대되고, 고양이가 어떻게, 왜 인간이 되어 인간을 유혹하게 될지 그 이야기 전개도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여러 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사랑이야기라는 내용, 초연부터 함께 하고 있는 박정자 배우 뿐 아니라, 영화 <쎄시봉>과 드라마 <미생>에 출연한 강하늘 배우까지. 특히 강하늘 배우의 출연은 많은 일반인(?)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대학로가 아닌, 국립극장을 처음 가봤다거나, 뮤지컬이 아닌 연극을 처음 봤다는 후기들이 눈에 띄네요. 지난 달 <리타>에 쓴 것처럼 모쪼록 유명한 스크린 배우의 좋은 무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 생의 끝자락에서도 보여주는 희망이나 에너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느끼는 사랑같은 것, 좀 간질간질하지만 그런 마음이 그립습니다.
+ 언젠가부터 양정웅 연출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은 어떻게 보여줄지… 홍보 문구대로 양정웅의 "World class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을지…
2월에 볼 세 작품을 고르고 보니, 세 작품이 서로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비극의 일인자>는 죽음, 삶의 의미를 다룬다는 점에서 <해롤드 앤 모드>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문학성을 살린 텍스트’라는 공연 텍스트는 낭독극인 <고양이라서 괜찮아>와 재미있게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 영원, 존재, 기억과 같은 단어들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지만, 사실 제가 예매한 이유는 공연 소개에 낚여서(?)인데요. 주인공인 고일봉이 죽은 아내로 부터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는다는데, 한 가지는 “자신이 죽는 것으로 썼던 극중 인물이 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밝혀주고 있으나, 더 충격적이라는 나머지는 그 내용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 나머지 비밀이 무엇일지 정말 정말 궁금합니다.
2015년의 두 번째 달입니다. 계획하신 일, 소망하신 일들은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저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는 오락가락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싶어 피자며 떡볶이를 열심히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드레싱도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먹기도 합니다. 마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복하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월요일 아침, K-POP star를
<고양이라서 괜찮아>, 2월 10일 ~ 15일, 예술 공간 혜화
이 작품은 극발전소 301의 신작으로, 낭독극 형태로 공연될 모양입니다. 극발전소 301 작품 중 <병신 삼단 로봇>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극했기 때문에 이 작품도 예매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데려 온 고양이가 섹시한 여성으로 변신하고, 남자 주인공은 결국 그녀에게 반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고양이, 인간, 고양이를 오갈 배우의 연기 변화(게다가 낭독극 형태에서)가 기대되고, 고양이가 어떻게, 왜 인간이 되어 인간을 유혹하게 될지 그 이야기 전개도 궁금합니다.<해롤드 & 모드>, ~ 3월 1일,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이 작품은 여러 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사랑이야기라는 내용, 초연부터 함께 하고 있는 박정자 배우 뿐 아니라, 영화 <쎄시봉>과 드라마 <미생>에 출연한 강하늘 배우까지. 특히 강하늘 배우의 출연은 많은 일반인(?)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대학로가 아닌, 국립극장을 처음 가봤다거나, 뮤지컬이 아닌 연극을 처음 봤다는 후기들이 눈에 띄네요. 지난 달 <리타>에 쓴 것처럼 모쪼록 유명한 스크린 배우의 좋은 무대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 생의 끝자락에서도 보여주는 희망이나 에너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느끼는 사랑같은 것, 좀 간질간질하지만 그런 마음이 그립습니다.
+ 언젠가부터 양정웅 연출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은 어떻게 보여줄지… 홍보 문구대로 양정웅의 "World class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을지…
<비극의 일인자>, 2월 5일 ~ 2월 21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
2월에 볼 세 작품을 고르고 보니, 세 작품이 서로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비극의 일인자>는 죽음, 삶의 의미를 다룬다는 점에서 <해롤드 앤 모드>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문학성을 살린 텍스트’라는 공연 텍스트는 낭독극인 <고양이라서 괜찮아>와 재미있게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 영원, 존재, 기억과 같은 단어들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지만, 사실 제가 예매한 이유는 공연 소개에 낚여서(?)인데요. 주인공인 고일봉이 죽은 아내로 부터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는다는데, 한 가지는 “자신이 죽는 것으로 썼던 극중 인물이 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밝혀주고 있으나, 더 충격적이라는 나머지는 그 내용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 나머지 비밀이 무엇일지 정말 정말 궁금합니다.
2015년 1월 5일 월요일
2015년 1월 장바구니
글쓴이_산책
얼마 전(이라고 하지만 벌써 작년) <힐링캠프>에 소설가 김영하씨가 출연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감성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은 소설가니, 책을 읽는 것으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작년 이맘때, 장바구니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쓰리라,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리라고 다짐했으나, 그 약속을 저 자신에게도, 또 독자들에게도(스크린 너머 어딘가 누구 있는 것, 맞죠?)지키지 못했습니다. 극장에 가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제가, 모든 일에 관심이 없어졌던 건, 김영하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 마음의 감성 근육이 모두 쓸모없는 지방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사다난한 2014년을 보내면서 각각의 사건들을 쉬이 흘려 보내지 못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무기력하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근육을 다시 키워보려 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켜본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 상상만 했던 일, 닥치지 않을 것이지만 두려운 일들에 마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요.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전, 워밍업 하는 심정으로 가볍게 예매한 장바구니를 소개합니다.
가볍게 예매한 마음과 달리 내용은 가볍지 않을 것 같은 <치킨 게임>입니다. 두산아트센터는 아래와 같이 공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치킨 게임에 대해 처음 배운 것은 학부 시절, 협상의 이해와 실제라는 과목을 수강할 때였습니다. 무척 치사한 방법이라고, 북한이 이런 방법을 많이 쓴다고 했던 교수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런 작품은 무엇보다 재기 발랄한 유머를 꼭 가지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물은 희화화될 것이고, 상황은 우스꽝스럽게 흘러가겠지요. 그 안에서 어떤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는지 기대됩니다. 1인 1매 한정이지만 무료로 공연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두산 아트 센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연말에 많은 분들이 이미 관람하신 것 같은데,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는 뒤늦게 궁금해져서 예매했습니다. (벌써) 작년 여름에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도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재치있게 작품을 풀어냈고, 적절한(?) 수위 조절로 많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작품입니다. (무려) 마당 놀이의 세대 교체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이 작품에서 마당놀이라는 형식과 익숙한 <심청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극장식 마당놀이가 성공한다면 또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을 어떻게 재기발랄하게 담아내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공효진, 강혜정 배우 때문에 한껏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리타>를 예매했습니다. 꽤 긴장감 넘치는 예매였는데요, 다들 여배우의 무대 연기가 궁금한가 봅니다. 물론 저도 최화정씨가 출연한 초연 당시 이 작품을 관극했는데, (그리 인상깊은 내용도 아니었는데) 또 예매한 것은 두 여배우가 궁금해서입니다. 그래도 과거와 다른 질문을 품어 봅니다. Educating Rita를 왜 이전에는 <리타 길들이기>라고 번역했을까요? 배움에 관심 없던 여성이(그것도 미용사라는 여성적인 직업을 가진 리타)가 학문과 배움에 눈을 뜬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21세기 한국에서도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이라고 하지만 벌써 작년) <힐링캠프>에 소설가 김영하씨가 출연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감성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은 소설가니, 책을 읽는 것으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작년 이맘때, 장바구니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쓰리라,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리라고 다짐했으나, 그 약속을 저 자신에게도, 또 독자들에게도(스크린 너머 어딘가 누구 있는 것, 맞죠?)지키지 못했습니다. 극장에 가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제가, 모든 일에 관심이 없어졌던 건, 김영하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 마음의 감성 근육이 모두 쓸모없는 지방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사다난한 2014년을 보내면서 각각의 사건들을 쉬이 흘려 보내지 못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무기력하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근육을 다시 키워보려 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켜본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 상상만 했던 일, 닥치지 않을 것이지만 두려운 일들에 마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요.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전, 워밍업 하는 심정으로 가볍게 예매한 장바구니를 소개합니다.
<치킨 게임>, 1월 8일 ~ 10일, 두산 아트 센터, 스페이스 111
가볍게 예매한 마음과 달리 내용은 가볍지 않을 것 같은 <치킨 게임>입니다. 두산아트센터는 아래와 같이 공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극단 파랑곰의 연극 <치킨게임>은 2014 두산 빅보이 어워드 선정작으로 사회, 정치적 이슈를 방송 토론쇼 형식을 다룬 블랙코미디이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정치학 용어로 극 중 진행되는 토론쇼 이름이기도 하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게임과 대국민문자투표로 공연은 하나의 ‘쇼’처럼 진행된다. 국가정보원 원장과 야당 국회위원이 출연하여 설전을 시작하고 출연자들은 ‘치킨게임’을 하며 점점 토론보다 게임과 승부에 집착한다.
치킨 게임에 대해 처음 배운 것은 학부 시절, 협상의 이해와 실제라는 과목을 수강할 때였습니다. 무척 치사한 방법이라고, 북한이 이런 방법을 많이 쓴다고 했던 교수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런 작품은 무엇보다 재기 발랄한 유머를 꼭 가지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물은 희화화될 것이고, 상황은 우스꽝스럽게 흘러가겠지요. 그 안에서 어떤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는지 기대됩니다. 1인 1매 한정이지만 무료로 공연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두산 아트 센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 1월 11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연말에 많은 분들이 이미 관람하신 것 같은데,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는 뒤늦게 궁금해져서 예매했습니다. (벌써) 작년 여름에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도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재치있게 작품을 풀어냈고, 적절한(?) 수위 조절로 많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작품입니다. (무려) 마당 놀이의 세대 교체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이 작품에서 마당놀이라는 형식과 익숙한 <심청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극장식 마당놀이가 성공한다면 또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을 어떻게 재기발랄하게 담아내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리타>, ~ 2월 1일,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효진, 강혜정 배우 때문에 한껏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리타>를 예매했습니다. 꽤 긴장감 넘치는 예매였는데요, 다들 여배우의 무대 연기가 궁금한가 봅니다. 물론 저도 최화정씨가 출연한 초연 당시 이 작품을 관극했는데, (그리 인상깊은 내용도 아니었는데) 또 예매한 것은 두 여배우가 궁금해서입니다. 그래도 과거와 다른 질문을 품어 봅니다. Educating Rita를 왜 이전에는 <리타 길들이기>라고 번역했을까요? 배움에 관심 없던 여성이(그것도 미용사라는 여성적인 직업을 가진 리타)가 학문과 배움에 눈을 뜬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21세기 한국에서도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사물의 반란’: 문화역서울284 <최정화-총천연색>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 <불쌍>
이흔정의 DRAMATIC.CITY
이렇게 일상적인 사물들 혹은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미술관이라는 제도 혹은 상징적인 공간에서 유명한 작가가 한 것이라면 뭐든 예술이 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되물어보자. ‘예술이 별거 아니다’라는 낮은 시선을 취한 유명한 작가의 작업이 우리의 잡다하고 조악한 일상을 다시금 소중하게 바라보게 하지는 않을까. 사실 전시된 물건 중에는 딱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다소 흉측한 것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형광색과 원색의 물건들을 계속 보고 있자면 아름답기보다는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또 우리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 실수와 허점투성이인 스스로가 때로는 미워지고 쳐다보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따뜻하게 봐주면 어떨까. 미움과 분노, 자책과 실망이 무엇보다 쉬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꽃 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은 사실 큰 용기가 필요한 외침이니까 말이다.
<불쌍>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유쾌했던 부분은 공연 초반부에 만들어진 ‘콜라주’였다. 무용수들은 동서양을 막론한 온갖 종류의 문화 아이콘을 무대에 끌고 나오고, 그것들을 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서 콜라주한다. 슈렉, 아톰, 심슨 등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예수상, 불상 등의 종교적 상징물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싸우고, 키스한다. 불상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무대 위에서 하나의 ‘소도구’ 혹은 ‘장난감’이 된 것이다. 머리에 이고, 팔에 끼고, 손을 쓰다듬어 보고, 무릎을 베고 눕고. 무용수들의 손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불상과 예수상 등의 종교적 상징물들은 종교적 의미, 신성함, 아우라 같은 것은 모두 잃었고, 말 그대로 ‘가벼워’ 졌다. 무대에서는 조명이라도 받고 있지만 이 무용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저 불상들은 얼마나 굴러 다니고, 온갖 방식으로 수모(?)를 겪었을까?
동서양의 상징물을 콜라주하는 것은 시각미술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무대 위에서 무용수의 몸동작으로 콜라주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전시장이나 일상에 놓여있을 때와 달리, 무대 위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 움직임, 리듬, 속도감이 더해짐으로써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가 오브제에 덧입혀지고, 역으로 오브제의 성격과 영향에 따라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이 생겨났다. 사물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몸’과 ‘오브제’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해질수록 불상들은 더 초라해졌다. 움직이는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고정된 조형물의 대비 때문이기도 하고, 무용수들이 조각에 신체를 겹쳐서 발을 빨리 움직인다든지 하는 동작을 함으로써 우스꽝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서로 전혀 연관성 없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사이에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나고, 달라지고, 없어졌다. 예를 들면 캐릭터 가면을 쓴 무용수들의 몸이 엉키고 경합을 벌이면서 서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지거나 서로의 몸에 매달림으로써 위아래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이를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드는 지속적이고 단일한 관계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서로 교환되는 유동적인 관계가 만들어졌다.
무대에 특정한 소도구나 오브제를 등장시킨다면, 여기에도 ‘무용수’나 기타 요소들 못지않은 그 오브제만의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불쌍>에서 등장하는 최정화 작가의 설치물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최정화 작가는 이번 전시 기간에 서울역 앞의 노숙자들과 함께 소쿠리를 이용하여 빛을 조절할 수 있는 거대한 등을 설치했는데, 그 형형색색의 소쿠리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성격을 보여주었다. 무용수들은 소쿠리를 ‘던지고, 몸에 쌓고, 징검다리처럼 밟고 지나가기, 무대에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등’ 하나의 오브제를 한 가지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했다. 그로써 오브제의 성격이 풍부해졌고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리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도 그 자체로 화려한 오브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스티로폼 도시락을 연결해 만든 무대 배경도, (콜라보레이션을 위해서 억지로 무대에 맞지 않는 오브제를 우겨 넣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등퇴장로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공연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조명이나 프로젝션된 영상 없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스티로폼 도시락들의 높이가 서로 다르게 설치되어 영상이 투사되었을 때 입체감을 만들어내었고, DJ의 음악이 어우러져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상의 사용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오브제만큼이나 무술, 브레이크 댄스 등 여러 가지 다른 움직임들이 안무에 활용되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공연으로 직조되기보다는 나열만 되는 듯한 인상이었다. 재치 있는 제목과 ‘하이브리드 놀이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으나 잘 놀았다기 보다는 경직된 느낌이었다. 라이브 디제잉이 무대 한 구석에 있으면서 디제잉 다운 면모를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국립무용단이지만 조금 더 젊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그래서 관객도, 비록 앉아있지만,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오히려 서로 독이 되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래도 <불쌍>은 무용과 시각미술, 음악, 의상 등의 콜라보레이션이 서로를 보완하며 따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더욱 과감한 시도를 기대한다.
공연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wQo6TQFj28
*이 글은 문화역서울284 모니터링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전시 <최정화-총천연색>
여전히 바쁘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유독 쓸쓸한 서울의 가을, 문화역서울284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꼭 닮은 전시가 열렸다. 최정화 작가의 <총천연색(總天然色)>이다. 그는 누군가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시선’을 주지 않으면 지나치거나 버려질 것들로 꽃을 피워냈다. 편하게 말하자면 ‘잡동사니’들로 말이다. 그래서 처음 전시를 보면 어딘가 어색한 기분이 든다. 너무 흔한 플라스틱 접시, 빗자루, 장난감 왕관 같은 사물들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그럴싸한 작품명으로 조명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쩌면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기 보다는, 작가처럼 세상과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열심히 보태어 감상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았다. 애초에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을 만든 사람, 사는 사람, 선물하는 사람, 버리는 사람, 그걸 다시 주워오는 작가까지 각자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 해본다. 그러자면 많은 사람과 삶과 이야기가 끌려 들어온다. 어렴풋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 간의 무수한 관계와 삶의 역동이 느껴진다. 이렇게 ‘별게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관객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
| <꽃의 만다라> |
![]() |
국립현대무용단 <불쌍>
전시를 보고난 며칠 뒤, 최정화 작가의 설치 작품을 전시장이 아닌 ‘무대’ 위에서 만났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최정화 작가가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을까? 전시장에 있을 때와 무대에 있을 때 그 작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재치 있는 공연 제목 <불쌍>은 종교적 상징물인 ‘불상’이 여러 세대와 문화권을 이동하며 일상 속에서 고유의 신성함을 잃고 변형되어 속되게 사용되는 ‘불쌍’한 처지에 놓였음을 말하는 언어유희이다. 이 공연이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불상의 변형은 여타 문화, 전통, 종교, 인물 등의 ‘세속적인 상품화 및 변형’을 함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공연에서조차 불상은 불쌍하게 또 하나의 ‘기호’이자 ‘은유’가 된 것이다.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프랑스 파리의 ‘부다 바(Buddha Bar)’
<사진출처: Buddha Ba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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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상징물을 콜라주하는 것은 시각미술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무대 위에서 무용수의 몸동작으로 콜라주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전시장이나 일상에 놓여있을 때와 달리, 무대 위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 움직임, 리듬, 속도감이 더해짐으로써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가 오브제에 덧입혀지고, 역으로 오브제의 성격과 영향에 따라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이 생겨났다. 사물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몸’과 ‘오브제’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해질수록 불상들은 더 초라해졌다. 움직이는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고정된 조형물의 대비 때문이기도 하고, 무용수들이 조각에 신체를 겹쳐서 발을 빨리 움직인다든지 하는 동작을 함으로써 우스꽝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서로 전혀 연관성 없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사이에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나고, 달라지고, 없어졌다. 예를 들면 캐릭터 가면을 쓴 무용수들의 몸이 엉키고 경합을 벌이면서 서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지거나 서로의 몸에 매달림으로써 위아래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이를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드는 지속적이고 단일한 관계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서로 교환되는 유동적인 관계가 만들어졌다.
무대에 특정한 소도구나 오브제를 등장시킨다면, 여기에도 ‘무용수’나 기타 요소들 못지않은 그 오브제만의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불쌍>에서 등장하는 최정화 작가의 설치물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최정화 작가는 이번 전시 기간에 서울역 앞의 노숙자들과 함께 소쿠리를 이용하여 빛을 조절할 수 있는 거대한 등을 설치했는데, 그 형형색색의 소쿠리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성격을 보여주었다. 무용수들은 소쿠리를 ‘던지고, 몸에 쌓고, 징검다리처럼 밟고 지나가기, 무대에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등’ 하나의 오브제를 한 가지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했다. 그로써 오브제의 성격이 풍부해졌고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리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도 그 자체로 화려한 오브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 사진제공: 국립현대무용단 |
스티로폼 도시락을 연결해 만든 무대 배경도, (콜라보레이션을 위해서 억지로 무대에 맞지 않는 오브제를 우겨 넣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등퇴장로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공연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조명이나 프로젝션된 영상 없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스티로폼 도시락들의 높이가 서로 다르게 설치되어 영상이 투사되었을 때 입체감을 만들어내었고, DJ의 음악이 어우러져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상의 사용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오브제만큼이나 무술, 브레이크 댄스 등 여러 가지 다른 움직임들이 안무에 활용되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공연으로 직조되기보다는 나열만 되는 듯한 인상이었다. 재치 있는 제목과 ‘하이브리드 놀이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으나 잘 놀았다기 보다는 경직된 느낌이었다. 라이브 디제잉이 무대 한 구석에 있으면서 디제잉 다운 면모를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국립무용단이지만 조금 더 젊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그래서 관객도, 비록 앉아있지만,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오히려 서로 독이 되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래도 <불쌍>은 무용과 시각미술, 음악, 의상 등의 콜라보레이션이 서로를 보완하며 따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더욱 과감한 시도를 기대한다.
공연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wQo6TQFj28
*이 글은 문화역서울284 모니터링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Bodily Movement in La Divina Commedia by Han, Tae-suk
By Hamsta
***Note: this article contains spoilers for Snowpiercer (2013), directed by Bong, Joon-ho
I suppose it cannot but be a challenging work to make a well-known literature into a theatre performance, as one very crucial question may quickly arise; Why should it be staged when it seems just as good enough to be read?* To this question, Edward Gordon Craig would have answered; No, you shouldn't. This modernist theatre-maker thought that Shakespeare’s great plays shouldn't be staged at all. Besides the discrepancy between the staged Hamlet and the imagined Hamlet, what he indeed meant by negating the idea of ‘staging’ is that theatre is not merely the staged text but the reality on its own.
It seems for Han, Tae-suk, her answer in La Divina Commedia is that she tries to go beyond the ‘mere staging’ of this Western classic by means of theatrical devices such as scenography, musicalisation and bodily movement: The huge structure on stage which fully occupies one of the biggest stages in Seoul (it can even revolve!), alternating dialogues and songs with live orchestral music accompanied all the way, and abundant display of bodily dynamics. It will be great if I can deal with each of those, but to my painful realisation, I am not such a capable writer. So I would rather, in this essay, focus my discussion to the bodily aspect, which mostly appealed to my interest.*No, please don’t tell me you want it to be staged because you gave up teenage-reading and never tried picking it up again from the bookshelf!
http://www.youtube.com/watch?v=s-fLnBfmD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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