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8일 금요일

광기(狂氣)가 물성(物性)을 만났을 때: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햄릿> (2008,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 2021)

글: 조혜인 (https://brunch.co.kr/@hichotheatre)

ⓒ Arno Declair, 2008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은 1947년 처음 개최되어 여름이면 인구 약 8만 정도 밖에 안되는 프랑스 남쪽의 조그만 도시 아비뇽에서 열렸다(임혜경, 76). 아비뇽은 변변한 공연시설 하나 없는 지방의 소도시였는데 유명 배우 장 빌라르와 제라르 필립, 몇몇 뜻을 같이하는 연극인들이 내려와 파리 연극과 차별화하면서 일반인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연극을 선보였다(임혜경, 76). 포스트코로나(post COVID-19)시대를 맞이한 올해, 이러한 아비뇽의 기운을 담아 LG아트센터에서 기획공연으로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를 선보였다. LG아트센터는 아비뇽 페스티벌과 본 기획공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매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코로나로 발이 묶인 한국 관객들을 위해 LG아트센터 무대로 찾아온다. 올해로 75회를 맞이한 아비뇽 페스티벌은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양대 공연예술축제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 축제로 인해 작은 도시 아비뇽은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예술가와 관객들로 북적이는 예술도 도시로 변화한다. (...) LG아트센터는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와과 함께 한국 관객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공연 5편을 필름으로 준비했다. 독일의 연출가 오스터마이어의 파격적인 <햄릿>, 벨기에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안무가 안느 테레사와 로사스 무용단의 <체세나>를 비롯하여 발표하는 창작극마다 몰리에르상을 휩쓰는 극작가이자 대표 연출가인 조엘 폼므라의 <콜드룸>, 프랑스 오데옹 국립극장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아비뇽 페스티벌 총 감독을 맡고 있는 연출가 올리비에 피의 <리어왕>,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프랑스 연극계에 떠오르는 신예 연출가 토마스 졸리의 <티에스테스>까지. 이름 하나만으로도 쟁쟁한 세계 공연예술계 대가들의 작품 5편을 5일간 LG아트센터 무대 위 대형 스크린으로 만나게 된다. (LG아트센터)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는 LG아트센터 대극장 규모의 스크린을 통해 아비뇽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필자는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햄릿>과 조엘 폼므라 <콜드룸> 두 편을 관람했다.   그 중 <햄릿> 을 중심으로 본고의 논의가 펼쳐질 것이다. 한국 관객인 필자는 아비뇽의 공연과 어떻게 관계 맺었을까?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극’을 선보였다. 아비뇽의 무대 위, 지극히 연극적인 인물들을 통해 필자는 무엇을 감각했으며, 쓸 수 있을까? 이들은 무엇을 위해 연극 속의 연극을 하였을까? 샤우뷔네(Schaubühne)의 <햄릿>에서 드러나는 특성과 극중극은 어떠한 만남을 가질까?

우선 <햄릿>의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Thomas Ostermeier)’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스터마이어는 “연극은 삶의 방식에 도전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는 곳이다.”라고 언급하며, 선대 연극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아르또(Antonin Artaud), 메이예르홀드(Vsevolod Emiljevitsch Meyerhold)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성장해나갔다. 이는 <햄릿>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실현해 내었다. 오스터마이어가 작품을 다루는 태도는 원작을 투명하리만큼 해석하고, 원작이 가진 이야기를 ‘지금, 이곳(Here and Now)’의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서 발견된다. 그는 배우에게 연기적 접근에 있어서 심리적 요구를 하기 전에 작품에서 어떤 장면이 매력있는지, 발전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며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연출가로서 배우에게 작품이 어떻게 해석된다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흥미로운 텍스트의 부분과 만나게끔 지원하며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오스터마이어는 독일의 동시대 연출가연극(Regietheater)을 공고히 하였지만, 연출가의 컨셉이나 지시에 대한 요구가 아닌 배우가 가진 표현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있어 또다른 의의가 있다. 오스터마이어는 그가 고집하는 미학을 반복하지 않으며, 매번 텍스트마다 발명을 하듯이 작품을 개발한다. 텍스트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그 텍스트의 내용을 핵심 삼는다. <햄릿>의 ‘햄릿’ 역을 맡은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Lars Eidinger)’는 오스터마이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오스터마이어에게는 희곡의 바닥을 헤집는 일종의 편집적 집착이 있다. 투명해지도록 해석을 한다. 배우에게 세밀하게 설명을 하고 배우는 배역의 역할에 대해 안전하게 느낀다. 그 설명은 리듬과 다이나믹한 구조로 된 일종의 악보와 같다. 거기에 희곡이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재료를 강조하고 아로새길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주어진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명료하고 정확한 과학적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Eidinger)

또한 오스터마이어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예를 들어,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언급한 바 있다. 

한번은 오스터마이어가 입센에 관해 말했다. “그러나 입센은 나에게 잘 만들어진, 플롯으로부터 촉발된 희곡을 제공해주는데, 이것은 나의 목적을 위해 다시 쓰기와 적용을 가능케 한다.”  

Ostermeier once said of Ibsen. “But he provides me with well-made, plot-driven plays, which I can rewrite and adapt for my purposes.” (Crawley)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작품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오스터마이어의 작품관이 반영된 <햄릿>은 과연 어떤 공연이었을까?

공연은 햄릿의 아버지인 ‘햄릿 왕’의 장례부터 시작한다. 무대의 온 바닥에는 흙들이 충분히 깔려 있고, 장례식에 내리는 비는 스프링쿨러에서 발사된다. 흙 위에는 앞 뒤로 이동할 수 있는 사각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는 가로로 된 긴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황금색 체인으로 된 투명막이 내려와있다. 장례 중 햄릿은 손으로 흙을 집어본다. 아버지의 관이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장례가 막 끝나자마자 연회가 시작된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의 결혼이다. 햄릿 왕의 죽음으로 인해 애도로 침통해야 할 국가와 왕실에 ‘절제된 마음’이라며 그와 상반되는 분위기의 결혼식이 열린다. 흙, 땀, 물에 흠뻑 젖어 구석에 조촐하게 앉아 은박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햄릿만이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을 겪는 국가 및 개인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머지 인물들은 게걸스레 식사를 한다. 클로디어스는 거트루드와의 결혼을 선언하는데, 햄릿은 말한다. “전 이런 친자관계 필요 없습니다.”

거트루드의 노래가 이어진다. 괴상한 음색을 내는 거트루드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투명막에 이미지로 투사된다. 일렉기타 소리가 삽입되며 그 기괴함은 절정에 치닫는다. 거트루드의 음성은 찢어지고, 햄릿은 거트루드의 위선적인 눈물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거트루드는 베일을 벗자 ‘오필리어’로 변신한다(1인 2역).

햄릿의 국가인 덴마크는 감옥과도 같아졌으며, 햄릿은 실성한 듯 절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 곁에서 디제잉을 이어나간다. (실제로 햄릿 역의 아이딩어는 실제로 DJ 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다시 공연으로 돌아와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햄릿의 기이한 행동에 심히 당황한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나간 식탁 위, 햄릿은 올라가 독백을 한다. “Sein oder nicht sein, das ist die Frage”[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독일에서 흔히 살 수 있는 ‘Ja!’(영어 ‘Yes’에 해당) 우유를 마구 흔들어 뿜어내며 광기에 휩싸인 채 햄릿의 명대사를 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햄릿은 그들이 여기로 오게 된 까닭을 말해준다. 오늘 저녁에 연극이 있을 거란 소식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Sein oder nicht sein, das ist die Frage.”는 다시한번 이어진다. 이번에는 엄숙하게, 비이성적인 햄릿이 아닌 이성적인 햄릿으로 되돌아온 듯 독백을 이어 나간다. 햄릿의 온 얼굴에는 흙이 묻어 있으며, 오필리어는 햄릿을 지켜본다.

햄릿은 오필리어와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때, 햄릿의 광기는 또 한번 그 수위가 치솟는다. 필자는 희곡 및 타 <햄릿> 공연으로 오필리어를 접했을 때, 실연으로 인한 오필리어의 자살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둘이 얼마만큼 사랑했기에?’ 라는 물음을 충족시켜주는 공연이 필자에겐 없었다. 그러나, 오스터마이어의 <햄릿>을 보고 나니 왜 오필리어가 죽음을 선택했을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햄릿은 순백의 옷을 입은 오필리어를 흙 속에 파묻으면서까지 저주하고, 냉대하고, 또 키스하며 자신의 사랑표현을 진심으로 하는 것 같다가도, 또 오필리어를 흙 위로 내동댕이 친다. 흙 위에서 난장을 벌이며 오필리어가 가진 순백의 사랑을 철저하게 더럽히는 장면은 흙이 가진 ‘때묻음’의 속성으로 인해 비극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햄릿이 만약 미치지 않았다면, 그러한 가학적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가했어야 할 햄릿의 아픔이 진흙처럼 묻어 나온다.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수모를 당했으니 오필리어가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감정적 이해가 되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면이기에 여성 필자로서 조금은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흙이 가지고 있는 물성(物性, Eigenschaft der Materie)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만나 배우의 몸에 뒤엉켰을 때 폭발적인 광기(狂氣, Wahnsinn)가 발산되는 장면이다. 이러한 햄릿의 광기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임과 동시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내적 투쟁의 대상이기도 하다”(임승태, i). 

햄릿이 연극배우들과 만나 연습을 한다. 특히 연극에서 죽음 이야기를 할 때 숙부를 잘 관찰하라고 당부한다. 연극의 이름은 <쥐덫>이다. 연극을 보기위해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가 등장하고, 이 때 관객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혀 투명막에 투사된다.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들 또한 같이 <쥐덫>을 보고 있는 관객이라는 점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이야기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창출한다. 햄릿 역의 아이딩어는 거트루드로 상징되는 역할로 등장한다. 두 젖꼭지에는 주스를 흘려 마치 피흘림을 연상시키고, 랩으로 왕 역할의 배우의 몸을 마구 감싼다. 왕비 역은 왕 역의 몸에 우유를 붓는다. 왕 역은 괴로워한다. 이어 붉은 피가 부어진다. <쥐덫>의 모든 이야기는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의 양심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다. 왕이 곤히 자고 있을 때 독살당하는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 역은 결국 죽고, 그의 왕관은 왕비 역에게 간다. 독살 장면에서 배우와 클로디어스의 눈이 마주친다.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는 도망가고 햄릿은 기쁨의 춤을 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은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할까?

<햄릿>에서 배우들은 직접 카메라를 잡는다. 이런 카메라는 일종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덴마크 왕실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장치이자 햄릿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햄릿이 계획한 연극 <쥐덫>이 끝나고 배우 아이딩어가 왕비 역에서 햄릿 역으로 전환할 때 햄릿의 배불뚝이 몸매를 위한 속옷을 착용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분장실 뒤에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이것은 연극이다’라는 사실을 관객으로 하여금 고스란히 인지시킨다. 이러한 극중극에 대해서 심정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의 연기 스타일에서는 ‘가식과 위장’이라는 기본적 원칙으로 반영된다. 그가 뚱뚱보 의상을 입고 뚱뚱한 왕자로 나왔다가, 극 후반에서 뚱뚱이 의상을 벗어 던지는 것도, 가식과 위장의 세상적 현실을 조롱하는 하나의 오브제적 장치다. (심정순)  

이인순 또한 이러한 전환의 사이를 "‘연극적 행위를 감추려 하지 않기에 오는 행위의 진실’로 다가왔고, 또 소외효과가 가져오는 ‘연극놀이’의 자유로움이 있었다”고 평가했다(이인순, 254). 또한 극중극은 “허구와 현실, 과정과 결과, 그리고 내용과 형식의 공존 및 이중성에 대한 연극적 사유인데, 이중성은 햄릿의 광증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이기도 하다”(임승태, 43). 광기는 ‘비규범성’과도 맞닿는다. 햄릿은 엉뚱하게 신부복을 입은 채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때 거트루드 앞에서 폴로니어스를 총살한다. 거트루드는 말한다. “Was habe ich getan?”[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Was ist mit dir?”[너에게 무슨 일이 있니?] 특히 거트루드가 오필리어로 전환되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필름이 곧 끊길 듯한 영상이 앞뒤로 반복되듯 배우 ‘예니 쾨니히(Jenny König)’는 반복동작을 취하며 오필리어로 변한다. 무대 위의 흙을 온 얼굴과 몸에 뭍이는 행위를 하고, 오필리어의 마지막은 ‘몸에 생수를 부어’ 표현한다. 흙과 물, 즉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사의 본질을 통해 오필리어의 죽음이 다가온다. 오필리어는 익사하는 장면에서도 대사를 하는데, 그 대사의 리듬마저도 영상이 끊길 때 나는 소리처럼 들린다. 온전히 익사하자 더 이상 오필리어의 말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치 CD가 불안정하게 튕겨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노래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햄릿은 덴마크로 돌아온 ‘레어티스’와 결투를 치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햄릿의 광기 때문이다. 이 때 배경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햄릿은 다시한번 소리를 치며 “Musik ausmachen!”[음악 꺼!]를 외친다. 음악이 꺼진다. 햄릿의 적은 그 자신의 광기인 점을 다시한번 주지시킨다. 드디어 레어티스와의 결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레어티스는 검을 뽑아 들고, 햄릿은 식탁 위의 숟가락을 집어 든다. 그 사이에 클로디어스는 잔에 독을 타게 되고, 거트루드는 그것을 마신다. 계획에 의해 레어티스의 검에 독이 묻어 있다. 햄릿은 검에 맞는다. 숟가락을 놓은 햄릿 또한 레어티스를 찌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로디어스를 찌른다. 광기에 어린 햄릿의 복수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죽어가는 햄릿과 무대를 채우는 진공소리가 남는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달라는 아우성을 친다. 햄릿의 절규는 온 덴마크를 찌르고 마지막까지 광기의 동아줄을 붙잡는다.

필자는 오스터마이어의 <햄릿>을 보며 햄릿의 ‘광기’에 집중했다. 과연 햄릿이 정신이 멀쩡하지만 끝까지 미친 척을 하는 걸까? 혹은 햄릿이 미친 척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과정 가운데 정말 미쳐갔을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직 ‘햄릿’만이 그 진실을 안다. 또한 2021 아비뇽 시네마 페스티벌의 <햄릿>은 흙, 물 등 물질이 주는 감각을 스크린을 통해 함께 느끼게 하면서 배우의 감각을 더욱 상상하게 했다. 비록 스크린이라는 겹이 있었지만, 만약 <햄릿>이 공연이 아닌 ‘영화’를 위한 상연이었다면 그만큼 배우의 감각에 대한 상상력에 함께 동참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햄릿이 흙을 먹는 장면이나, 오필리어가 흙을 뒤집어쓰는 장면 등에서, 만약 영화였다면 흙이 주는 냄새나 질감 같은 물성에 대해 간과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물성이 두드러지는 공연일수록 객석에 앉아서 배우와 함께 호흡할 때,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가 물질을 감각하는 것을 함께 더 상상하고 반응하게끔 해주는 것 같다. 만약 실제 아비뇽 객석에 앉아있었다면 그 감각들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을 것이다.

오스터마이어는 우리들 가까이로 와서 느끼고, 감각하게끔 하는 소통방식을 실천해냈다. <햄릿>의 배우들이 심리적 연기를 지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과 ‘몸’을 통해 또다른 소통방식을 만들어냈다. 특히 흙, 물질은 이미지라는 정반대의 질감과 충돌한다. <햄릿>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신체와 만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연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처럼 <햄릿> 공연이 보여주는 다양한 물성은 ‘햄릿’이 가진 지독한 광기가 인물들에게 전염되며, 또 다시 공연이 가진 물성이 전염된 광기들과 만나며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경험을 선사해준다. 특히 오스터마이어의 <햄릿>은 현대인의 고독이 잘 표상화 된 공연으로 아래와 같은 평가는 2021년 현재에도 유효하다. 

객석의 관객은 고통의 열병에 들떠 있는 광기의 청년 햄릿에게 때때로 감정이입이 가능해지고, 햄릿의 동시대적인 거친 언어는 일상에 억압되고 축소된 젊은이들에게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 공연은 포스트모던적인 신체 중심의 감각적 표현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문화적 파스티쉬(pastische) 스타일”(심정순), 그리고 신사실주의가 만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내재된 보편적인 주제 – ‘삶과 죽음’, ‘삶과 연극’, ‘허상과 실제’ – 에 작금의 청년문화가 함께하면서 글로벌한 ‘대중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인순, 264)

이와 더불어 필자는 <햄릿>에서의 극중극은 단순한 복수를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고, 감정이입을 통한 보는 이의 양심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검’과 같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선악을 판단하게 하고, 극 속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생각과 골수를 쪼개는 힘’이 바로 연극에 담겨있다는 반증이다(히브리서 4:12). 이상으로 2021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 리뷰를 마무리한다. 두드러지는 광기와 물성으로 인해 2000년대 초반 공연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스터마이어의 <햄릿>을 2021년에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았다.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공연예술 관계자들 및 관객들이 아비뇽으로 ‘몸(Körper)’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LG아트센터에 방문해 거리두기를 하며 아비뇽의 옛 공연들을 관람했다. 특히 코로나가 어서 종식되어 <햄릿>과 같은 공연으로 많은 관객들이 배우와 물성을 더욱 가깝게 감각할 수 있는 공연예술계로 나아가길 소망해본다.

참고문헌

심정순.「오스터마이어 <햄릿>: 몸, 감각, 이미지의 포스트모던적 미장센」. 『오늘의 서울연극』제1호, TTIS 편집부, 2020. 10.

“아비뇽 시네마 :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햄릿>”. LG 아트센터, http://www.lgart.com/UIPage/perform/calender_view.aspx?seq=252591

이인순.「공연분석: 오스터마이어의 <햄릿>(프랑스 2008, 한국 2010)」, 『한국연극학』 Vol.1, No.52, 2014, 229-270. 

임승태.「한국 <햄릿> 상연에서의 광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임혜경.「60주년이 된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과 이론』Vol.- No.23, 2006, 78-86.

Crawley, Peter. <Ostermeier’s ‘Hamlet’: what did you expect?>. THE IRISH TIMES. 2014-08-23, https://www.irishtimes.com/culture/stage/ostermeier-s-hamlet-what-did-you-expect-1.1901339.

<햄릿(Hamlet)>.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 라르스 아이딩어, 예니 쾨니히 출연. 샤우뷔네 제작.  2008. 2021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 LG 아트센터, 2021. 5.

Eidinger, Lars. 인터뷰.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연기예술학과 연기양식론 수업자료 (교수자: 최영주),  조혜인 정리, 202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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