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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일 월요일

몰래 먹는 사탕 같은 달콤함: 인피니트와 뮤지컬 <인 더 하이츠>

글쓴이_시뫄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뮤지컬이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전반적으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가끔 뮤지컬을 보고나면 내가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스펙터클에 현혹되기만 하지는 않았나, 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될 정도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인 더 하이츠>(이하 <하이츠>)라는 뮤지컬의 포스터를 봤을 때도 랩과 비보잉이 가미된 신개념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띠기는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그 작품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미 모든 요소가 자극적인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힙합의 자유로운 느낌이 잘 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가 오늘날의 한국 대중문화에서 방송을 통해 전에 비해 손쉽게 소비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뮤지컬에 힙합을 접목시킨다는 것 자체도 화제성과 관객몰이를 위한 전략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기대보다는 의심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금 13만원을 주고 결국 뮤지컬계의 소위 “듣보잡”이라고 할 수 있을 그 공연을 보고 왔다.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인피니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두 명이나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이츠>는 뉴욕의 히스패닉 할렘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빈곤하고 차별받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뮤지컬이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에는 인피니트의 메인보컬인 김성규와 래퍼 장동우가 각각 베니와 우스나비 역에 캐스팅되어 출연했는데(더블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콰드러플 캐스팅이었지만), 특히 주로 랩을 하는 우스나비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VIP석 예매를 감행하게 됐다. 인피니트는 힙합 그룹이 아닌 댄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더 분명한 그룹이고, 따라서 팀 내 래퍼의 위상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 (활동 다양화의 일환으로 래퍼 두 명이 유닛을 결성해서 따로 앨범을 두 차례 내기는 했지만.) 따라서 인피니트의 일곱 멤버들을 두루두루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노래의 파트가 많지도 않고, 연기활동을 병행하거나 예능에 활발하게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는 장동우에 대해 늘 어딘가 그리운 구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그가 주인공 격의 배역을 맡은 뮤지컬을 결국에는 보게 될 것이었는데, 비싼 티켓 가격에 한번, 그리고 보고 나서 실망할 걱정에 두 번, 그렇게 몇 번이나 예매를 망설이기는 했다. 결국 망설이다 뒤늦게 예매전쟁(피의 티켓팅을 줄여 “피켓팅”이라고도 한다)에 참전해 12열에 VIP 좌석을 구했다. 괘씸하게도 공연장 1층 전체가 VIP석이라서 내 자리는 성에 찰 만큼 무대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코입이 분명하게 보일 거리에서(“면봉”만 실컷 보고 오는 것은 면할 거리에서) 내 아이돌을 볼 수 있다는데, 종국에는 예매 전 망설임에 허비해버렸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아무도 캐스팅보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팬질하러 왔다고 머글(팬이 아닌 사람)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사실 인증샷이 필요 없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간 인피니트에 대한 나의 팬심을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여겨왔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다 보니 “좋은” 퍼포먼스에 대한 내 나름의 관점과 기준이 생기게 됐는데, 종종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로서가 아니라 멋지고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될 수밖에 없도록 자신들을 내보이는 것 같은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인피니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데뷔 초 내세웠던 칼군무 때문이었다. 사실 멤버 7명 중 2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몸치에 가까워서, 제작자는 깔끔한 무대를 위해 칼군무를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할 수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인지도도 없고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일곱 명 사이의 호흡뿐이었을 것이다.) 인피니트의 칼군무는 단지 일곱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박자에 맞춰 안무를 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절묘한 타이밍을 맞춰 무대 위에 하나의 유기적인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데뷔 6년차의 꽤 노련한 아이돌이 된 인피니트는 예전의 퍼포먼스와는 사뭇 다른 무대를 보여준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몇 번의 월드 투어를 거치며 안무 동작은 세련되고 여유로워졌지만, 안무 구성의 치밀함과 촘촘함은 예전 같지 않다. 화려해진 무대와 360도 카메라 같은 최신 기술을 사용한 최근의 “Bad” 뮤직비디오(https://youtu.be/BNqW6uE-Q_o에서 유튜브 앱으로 시청해야 체험 가능!)는 여전히 “칼군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만, 멤버 사이의 호흡과 퍼포먼스의 구성을 강조해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인피니트를 보여주기 보다는, 현란한 시각적 요소와 더불어 멤버 각각을 멋있는 모습으로 보여내는 것에 치중한다. 전보다 출연이 잦아진 예능 방송과 라디오, SNS 등 무대 밖의 연예활동 역시 멤버 각각의 귀엽고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데뷔 초에 인지도가 없는 상태의 신인가수로서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다른 내세울 것들이 많아졌다는, 그들로서는 긍정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멋있고 귀엽고 잘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과는 달랐던 인피니트의 무대를 기억하는 (세련되지 못한) 나는, 요즘 유행한다는 EDM 비트의 감각적인 사운드와 시크한 안무를 보면서 퍼포먼스보다는 인피니트 자체를, 보다 정확히는 인피니트가 대표하는 “멋지고 좋은 것”만을 보게 되는 현상에 오히려 죄책감이 든다. 아이돌 스타로서, 멋지고 귀여운 환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익을 창출하는 아이돌 산업의 논리 속에서 인피니트 역시 그럴 수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상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마찬가지로, 뮤지컬이 언제나 화려하고 멋진 이미지로 가득한 무대로 관객을 한바탕 홀리고 마는, 그리고 막대한 관객 동원력과 값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문화상품”이 아니라, 그 장르 고유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써 감동과 울림을 주고 관객에게 각인되는 “예술작품”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자주 좌절되어 왔다. 하지만 의심을 안고 잔뜩 경계한 채로 단지 인피니트를 보기 위해 관람한 <하이츠>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라틴계 이민자 캐릭터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랩과 비보잉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걱정했던 부분들을 눈여겨보았지만, 보는 내내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인피니트를 제외하고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이 노련한 연기로 납득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지나치게 화려하다고만 느꼈던 뮤지컬 무대가 <하이츠>에서는 작품의 배경에 걸맞게 비교적 소박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져있어서 좋았다. 까칠하고 말이 많지만 속정이 깊은 동네 미용실 원장 다니엘라 역을 맡았던 최혁주 배우는 작지만 다부진 외모와 특유의 된소리가 두드러지는 말투까지 완벽한 라티나latina를 구현해냈고, 주요 여자 캐릭터인 니나를 맡은 김보경 배우는 귀에 꽂히는 발성과 다듬어진 톤으로 뮤지컬의 정석 같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서는 장동우도 본인에게 맞는 가사를 스스로 써서 랩을 해서 그런지 억지스럽게 들리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어쩔 수 없이 김성규의 발성이 듀엣 중 상대역인 김보경의 뮤지컬 식 발성과 두드러지게 대조되기도 했고, 연기가 처음인 장동우의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등 인피니트의 연기가 살짝 튀게 되는 순간들은 있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비보잉은 아주 짧게만 삽입되고 대부분의 춤은 뮤지컬 특유의 군무로 채워져서, 힙합 뮤지컬을 표방하기에는 랩과 비보잉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고 심지어 구색 맞추는 정도로만 동원된 것처럼 보였다. 또 그 외에도 음향이나 안무의 사소한 부분들이 내 심장을 가끔 조여들게 했지만, 결국엔 학예회에 참석한 학부모처럼 그저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내 아이돌의 학예회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 나는 애초에 바로 그것을 하러 간 것이기도 했다.

  갈수록 많은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에 캐스팅되고 있는 요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그들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인피니트를 좋아하고 아끼면서도 무대 위의 김성규와 장동우를 보며 그들과 뮤지컬 배우들과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어쩌면 인피니트 팬이 아닌 다른 관객들보다 그 차이에 더 민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그 자체보다는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뮤지컬과 아이돌의 조합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단 무엇보다 뮤지컬 산업은 아이돌 캐스팅을 통해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회차에도 평타 이상의 관객을 확보한다. 나처럼 학예회를 본다는 마음으로 예매하는 팬들은 공연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연출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에 가혹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 번 이상 관람하는 팬도 많을 것이니, 뮤지컬 산업에서 아이돌 캐스팅이란 괜찮은 수익모델일 것이다. 나도 뮤지컬 자체에는 기대보다는 의심을 안은 채, 작품보다는 인피니트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게 된 <하이츠>는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연 형식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완화시켜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형식의 혁신은 없었고 엄청나게 매력적인 뮤지컬 고유의 예술적 순간도 없었지만, 다음에 또 보고 싶을 만큼 노래와 연기를 아주 잘하는 뮤지컬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보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우리 애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콘서트 무대나 예능 방송에서는 맏형이랍시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애교 같은 것을 잘 보여주지 않던 성규가 “기싱꿍꼬또”부터 인피니트 대표 개인기인 전갈춤까지 보여줄 때, 나는 성규가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우스나비가 복권에 당첨되어 귀향을 앞둔 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울 때, 나는 (비록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어도) 우스나비를 연기하는 장동우가 귀여웠고, (그 슬픈 감정에 동화되거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장동우가 자랑스러웠다. 다른 무대라면 메인보컬인 성규에 가려졌을 동우가 주인공이라니! 힙합 뮤지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할부 3개월로 예매까지 해가며 봤어도 그걸 봤으니 됐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나를 대중문화의 노예로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예술이 아니면 어떻고, 길티 플레저면 또 어떠랴, 이렇게나 달콤한데.

2014년 7월 9일 수요일

[K-POP & 퍼포먼스 1] K-POP에게 라이브를 요구한다는 것

by 시뫄

최근 한 공중파 음악방송의 책임프로듀서가 립싱크 가수에 대해 출연을 제재하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립싱크 불가 방침은 이미 수 년 전에 생겼었고 쭉 있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화면 구석에 테이프 표시가 보이면 립싱크 무대, 없으면 라이브 무대라는 구별 방식을 알고 있었고, 어느샌가 테이프 표시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찬 무대를 꾸며내면서도 라이브로 노래까지 소화하는 요즘 아이돌들은 그만큼 고강도의 트레이닝과 준비 기간을 거쳐서 그렇겠거니 한 것이다. 하지만 립싱크 불가 선언을 한 프로듀서에 따르면 요즘에는 무대용 라이브 버전 AR(All Recorded) 음원이 따로 있어서, 시청자들은 립싱크 공연도 라이브 공연으로 알고 본다고 한다. 그는 립싱크 무대를 시청자 기만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이 뉴스는 "금붕어 가수 퇴출"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K-POP, 또는 아이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장르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팀들 중 대다수가 아이돌일 뿐더러, 음원차트 순위나 해외수익율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립싱크 제재 방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장르 또한 K-POP이다. K-POP은 그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안무와 퍼포먼스 등 음악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완전히 라이브로 공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없다면 K-POP은 음악 자체로도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K-POP은 듣는 음악보다는 보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을 비롯해 가수의 외모, 의상, 안무, 무대구성 등 모든 비주얼 컨셉과 연출적 요소들까지도 K-POP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히 K-POP을 음악의 한 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 전반으로 확장해서 본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연을 사건(event)으로 보는 공연예술의 기본 전제 하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결국은 중점이 되는 노래가 정작 무대 위의 순간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라면 K-POP 퍼포먼스는 공연이 될 수 없는가?


퍼포먼스를 빼놓고는 EXO를 말할 수 없다! (출처: EXO “늑대와 미녀” M/V)

K-POP을 존재론적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을 저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음(liveness)에 대한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의 논의를 빌려오기로 했다. 아우스랜더는 연극학에 뿌리를 둔 퍼포먼스 이론을 음악, 매체, 기술에 관련시켜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오늘날처럼 매체화된 문화에서 매체화된 공연(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아이돌 가수의 퍼포먼스)로부터 그 권위를 얻는다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 즉 라이브 공연의 권위는 그것의 매체화된 버전으로부터 다시 얻기 때문에, 분명히 대치되는 것으로 보였던 두 항들 사이의 도식은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 속의 공연은 그 가수가 실제로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가치를 얻는 것인데, 촬영되고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이브 공연은 결국은 텔레비전으로 보여질, 그것의 연출된 이미지로부터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랜더는 텔레비전으로 보여지는 시각 이미지가 녹화된 것이든 실황중계이든 간에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며 텔레비전에 있어서 반복 재생이나 재방송과 생방송 사이의 직관적인 구분은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공연의 재생산이나 반복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공연이라고 주장한다.

아우스랜더의 논의에 빗대어 K-POP 퍼포먼스를 보면, 그 공연을 위해 실제로는 노래, 안무, 연기, 무대 구성이 한번에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매체화되어 텔레비전 이미지로 송출되는 순간 그것은 라이브 공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에서 K-POP 가수들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리고 노래에 있어서 라이브가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는 시각은 여러 단계에서 부적절하고 심지어 불공평하다. 앞서 언급했던 뉴스가 논란이 되었던 이유에는 한 아이돌 가수가 SNS에 올린 코멘트가 있었는데, 그는 방송 무대의 음향에 대해 일침을 놓으며 무작정 가수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하는 것만이 좋은 공연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처럼 방송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살아있는" 음악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 가치는 단지 노래만 라이브로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주도 실제 세션들이 라이브로 해야할 것이고, 음향 장치가 좋아야 할 것이며, 방송 상태가 원활하고 균일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집 텔레비젼의 사양이 최고급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것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라이브에 대한 가치판단적 강박은 전통적 음악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물론 공연장의 구조나 여타 조건들에 따라 음향은 늘 달라질테고, 그래서 같은 연주자라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한 연주의 녹음본이 다른 것보다 높게 평가되곤 한다. 애초에 최적의 음향으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그러한 감상의 조건들과 미적 가치가 K-POP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K-POP의 존재의 이유는 보여지는 것에 있고, 그것도 심지어 "예쁘고 멋있게" 보여지는 것에 있다. 매 공연마다 그 순간에 고유한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시각적 미를 희생해야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는 가수들과 그들의 (혹은 그들 자체로서의) 상품으로 돈을 버는 방송국이 계속해서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K-POP은 그 특성 상 수용자/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상품(이미지, 퍼포먼스)을 내놓게 되는데 수용자/소비자들이 K-POP 퍼포먼스로부터 원하는 것을 클래식 음악 감상에서와 같은 미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극도로 매체화된 시대와 문화에서 우리는 시각 이미지와 그에 따른 변화들을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에 대한 침해나 오염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요구가 전통적 음악 미학까지 운운해야 할 문제라면 퍼포먼스로서의 K-POP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술의 정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사안이 되겠지만, 사실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미적이지 않을 때가 많은데, K-POP은 그렇게나 많은 이들에게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데 말이다. ㉦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한토끼의 문화잡식 1] 엑소(Exo)의 성공을 보며 생각하는, 스엠(SM)의 영광과 비극

by 한토끼


2012년 엑소 케이(Exo-K)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SM(SM 엔터테인먼트. 이하 스엠)이 드디어 감이 떨어졌구나 했다. 엑소플래닛(Exo-Planet: 태양계 외행성)에서 온 애들에다가 초능력 컨셉이라니... 농담이겠지. 그러나 무대에서 진지하게 라틴어로 아그네스 마그네스를 외치며 흔히 말하는 에셈피(SMP: SM식 퍼포먼스)를 장엄한 선율로 보여주는 걸 보니 정말 미는 콘셉트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엑소케이는 범접치 못할 분위기를 휘감고는 코어한 팬덤 인기와 대중적 비웃음을 얻고 사라졌었다. 그리고 일년 후, 엑소 케이와 엑소 엠으로 나눠져 있던 멤버들을 합체시켜 돌아온 완전체 엑소는 놀라운 앨범판매량과 함께 대중적 인기까지 올리며 2013년의 가요계를 휩쓸었다.

Exo-M, Exo-K로 나누어 활동한 첫 데뷔앨범 [MAMA]의 MV 중 한 장면.
http://www.youtube.com/watch?v=KH6ZwnqZ7Wo

이 결과에 대하여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결국 스엠의 계획이 먹혔다. 엑소의 초능력 컨셉도 훌륭한 전략이었다 등으로 평가하며 스엠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다. 포카(멤버들의 포토 카드. 따조처럼 랜덤하게 13개가 들어있다.)로 팔았든 사인회(앨범을 사면 추첨해서 사인회에 갈 수 있다.)로 팔았든 나누어서(엑소의 앨범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버전과 중국어버전 두 가지이다.) 간에 이 앨범 불황기에 1,430,000 여장이라는 앨범판매량이다. 팬덤도 어마어마해져서 또다시 에셈의 농노가 되었다는 왕년 수니들의 한탄이 엑소 플래닛까지 닿았다는 평이니 그럴 만도 하다. 스엠은 최초의 아이돌 판을 견인한 기획사답게 3세대 아이돌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셈이다. 스엠 역시 엑소에 투자한 바가 크다. 5년 만에 고심하여 만들어낸 남자 아이돌 그룹이 엑소이다. 그런데도 야심차게 데뷔 티저만 12편을 풀며 준비한 첫 앨범 MAMA는 스엠이라는 메이커에 비해 빈약한 성과를 거두었고, 엑소는 2013년 완전체로 복귀하기 전 1년간의 긴 재준비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다시 낸 앨범 [으르렁]의 히트 중에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니 스엠에서도 엑소의 성공을 위해 기나긴 절치부심의 기간을 가졌을 것 같다. 엑소의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단 그렇게 준비하고도 왜 그리도 부끄러운 초능력을 주어서 데뷔시켜야만 했을까부터가 궁금해지는데.... 당시 2세대 아이돌들의 끄트머리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던 아이돌 시장의 특색을 먼저 살펴볼까 한다.

멤버들의 초능력에는 멋진 로고도 있다.


1세대 아이돌에서 3세대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엑소를 3세대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있는데, 그럼 1, 2세대 아이돌들은 누굴까.

일단 1세대 아이돌들은 아주 쉽고 당연하게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시장을 연 최초의 아이돌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키운 대중가요 시장을 넘겨받아 등장한 HOT, 젝스키스, 신화, 핑클, SES의 시대로, 에스엠(SM)과 대성(DSP)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2세대 아이돌의 시작은 그 기준은 정확치 않지만 대체로 2004~5년경, 1세대 아이돌들이 해체하거나 수명을 다하여 부진해지고, 새로운 그룹들이 나오기 시작한 무렵으로 본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F(x), 샤이니, 빅뱅, 원더걸스, 2PM, 2AM 등이 2세대 아이돌에 속한다. 이 시대에는 새로운 기획사 YG와 JYP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아이돌시장에 명백한 삼파전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2세대 아이돌 시기는 소위 ‘한류’와 ‘K-pop’이 위세를 떨치며 많은 해외 팬덤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반에는 2세대를 이끌던 대형 아이돌 그룹들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비스트, 인피니트, 틴탑, 빅스 들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2세대 아이돌의 삼국시대와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면서, 아이돌은 한국 가요계의 한 축이자 K-pop으로 랜선이라는 21세기의 축복을 타고 해외 팬들까지 넘볼 가능성을 지닌 확고한 시장이 된다. 팬덤에는 문화와 법칙이 자리 잡히고, 일반 고등학생이라면, 한 아이돌의 한 팬이 되는 것이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일상에 자리한다. 한국에서 좀 안되더라도 괜찮다.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해도 톡톡한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기본적인 수요가 자리 잡혔으니 대형 기획사인 SM, DSP, YG, JYP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획사들도 키워낸 아이돌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결과 아육대(아이돌 육상 체육대회)에 출전한 아이돌 그룹 멤버 수는 100명을 넘는다. 물론 아육대에 발을 넣어보지도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명멸한 아이돌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의 특산품을 아이돌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튼 이러한 기간 속에서 결국 아이돌을 키워내는 노하우와 시스템 역시 한국 가요계와 기획사 사이에 자리 잡혀갔다.

  따라서 수많은 아이돌이 나오던 2세대 아이돌의 끝 무렵에, 살아남기 위해 각각의 아이돌들이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는 확실한 “콘셉트”였던 것 같다. 음악중심 방송에 4분 출연하더라도 소비자의 눈을 붙잡을 개성이 더욱 필요해진 것이다. 그저 상큼 발랄하고 끼를 보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런 아이돌들은 너무나 많아졌다. 각각의 아이돌들은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를 한번에 각인시켜야했다. 2PM은 짐승돌이라는 닉네임을 걸고 아크로바틱을 선보였다. 스엠 역시 기본적으로 소녀와 소년의 이미지를 깔고 있던 소녀시대, 샤이니 등의 후속 작업들에서 앨범마다 콘셉트가 뚜렷이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앨범이나 무대 콘셉트에 그치지 않고 확장되기도 하였다. 아예 뱀파이어 콘셉트를 아예 멤버들 자체에 씌우며 강한 개성과 퍼포먼스로 주요 기획사가 아님에도 확실히 새로운 아이돌을 인지시킨 ‘빅스(Vixx)’의 케이스가 이를 입증한다. 아이돌에 대한 기획이 연예인으로서의 자체적 재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