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뫄
“적의, 잔인함과 박해, 습격이나 변혁이나 파괴에 대한 쾌감 - 그러한 본능을 소유한 자에게서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 이것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1)
보통의 도덕관념을 가진 인간은 죄의식, 혹은 양심의 가책을 갖게 마련이다. 그 양심의 가책은 우리로 하여금 소위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를 억제하게 한다. 우리가 그러한 양심의 가책을 가지는 것은 문명의 발달에 의한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양심의 가책은 인간이 결국 사회와 평화의 구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압력 때문에 빠져드는 심각한 병이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적인 과거를 강제로 떼어놓은 결과이며, 말하자면 새로운 상태나 생존조건으로 뛰어들어 추락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한 희생을 기반으로 이루어낸 “이성, 진지함, 감정의 통제, 숙고... 인간의 이러한 모든 특권과 사치”2)는 다시 말하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획득해낸 우리의 문명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노다 히데키 작, 연출의 <THE BEE>3)에서는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린다. 잔인함과 폭력성만 남은 이 폐허에서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문명이란 것은 새빨간 거짓말과 같다.
일본의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극에서, 평범한 회사원인 이도는 귀갓길에 경찰들과 기자들이 자신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탈옥범인 오고로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니 스트리퍼로 일하는 오고로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것에 분노한 오고로는 탈옥 후 아내를 만나려 하지만 거부당하고, 무고한 이도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자신의 가족을 만나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도는 오고로의 집을 찾아가 그의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오고로와 만나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찰과 자극적인 스토리에 몰려드는 언론에 분노하여 자신도 오고로의 가족을 인질로 잡게 된다. 시종일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예의 바르고 신중한 모습이던 이도는 순식간에 단호한 인질범의 모습을 나타내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어린아이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원리로 시작되었던 이도의 폭력은 어느새 그 순환에 선행하게 되고 스스로의 악순환을 만든다. 결국 서로의 가족을 먼저 풀어줄 것을 두고 오고로와 대치중이던 이도가 먼저 상대의 아이를 해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폭력성을 발화시킨다. 즉 이도의 폭력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게 되며, 결국에는 길 잃은 그의 폭력성이 이도 바로 자신까지도 대상으로 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