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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9일 수요일

[K-POP & 퍼포먼스 1] K-POP에게 라이브를 요구한다는 것

by 시뫄

최근 한 공중파 음악방송의 책임프로듀서가 립싱크 가수에 대해 출연을 제재하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립싱크 불가 방침은 이미 수 년 전에 생겼었고 쭉 있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화면 구석에 테이프 표시가 보이면 립싱크 무대, 없으면 라이브 무대라는 구별 방식을 알고 있었고, 어느샌가 테이프 표시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찬 무대를 꾸며내면서도 라이브로 노래까지 소화하는 요즘 아이돌들은 그만큼 고강도의 트레이닝과 준비 기간을 거쳐서 그렇겠거니 한 것이다. 하지만 립싱크 불가 선언을 한 프로듀서에 따르면 요즘에는 무대용 라이브 버전 AR(All Recorded) 음원이 따로 있어서, 시청자들은 립싱크 공연도 라이브 공연으로 알고 본다고 한다. 그는 립싱크 무대를 시청자 기만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이 뉴스는 "금붕어 가수 퇴출"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K-POP, 또는 아이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장르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팀들 중 대다수가 아이돌일 뿐더러, 음원차트 순위나 해외수익율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립싱크 제재 방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장르 또한 K-POP이다. K-POP은 그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안무와 퍼포먼스 등 음악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완전히 라이브로 공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없다면 K-POP은 음악 자체로도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K-POP은 듣는 음악보다는 보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을 비롯해 가수의 외모, 의상, 안무, 무대구성 등 모든 비주얼 컨셉과 연출적 요소들까지도 K-POP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히 K-POP을 음악의 한 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 전반으로 확장해서 본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연을 사건(event)으로 보는 공연예술의 기본 전제 하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결국은 중점이 되는 노래가 정작 무대 위의 순간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라면 K-POP 퍼포먼스는 공연이 될 수 없는가?


퍼포먼스를 빼놓고는 EXO를 말할 수 없다! (출처: EXO “늑대와 미녀” M/V)

K-POP을 존재론적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을 저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음(liveness)에 대한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의 논의를 빌려오기로 했다. 아우스랜더는 연극학에 뿌리를 둔 퍼포먼스 이론을 음악, 매체, 기술에 관련시켜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오늘날처럼 매체화된 문화에서 매체화된 공연(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아이돌 가수의 퍼포먼스)로부터 그 권위를 얻는다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 즉 라이브 공연의 권위는 그것의 매체화된 버전으로부터 다시 얻기 때문에, 분명히 대치되는 것으로 보였던 두 항들 사이의 도식은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 속의 공연은 그 가수가 실제로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가치를 얻는 것인데, 촬영되고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이브 공연은 결국은 텔레비전으로 보여질, 그것의 연출된 이미지로부터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랜더는 텔레비전으로 보여지는 시각 이미지가 녹화된 것이든 실황중계이든 간에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며 텔레비전에 있어서 반복 재생이나 재방송과 생방송 사이의 직관적인 구분은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공연의 재생산이나 반복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공연이라고 주장한다.

아우스랜더의 논의에 빗대어 K-POP 퍼포먼스를 보면, 그 공연을 위해 실제로는 노래, 안무, 연기, 무대 구성이 한번에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매체화되어 텔레비전 이미지로 송출되는 순간 그것은 라이브 공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에서 K-POP 가수들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리고 노래에 있어서 라이브가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는 시각은 여러 단계에서 부적절하고 심지어 불공평하다. 앞서 언급했던 뉴스가 논란이 되었던 이유에는 한 아이돌 가수가 SNS에 올린 코멘트가 있었는데, 그는 방송 무대의 음향에 대해 일침을 놓으며 무작정 가수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하는 것만이 좋은 공연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처럼 방송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살아있는" 음악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 가치는 단지 노래만 라이브로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주도 실제 세션들이 라이브로 해야할 것이고, 음향 장치가 좋아야 할 것이며, 방송 상태가 원활하고 균일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집 텔레비젼의 사양이 최고급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것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라이브에 대한 가치판단적 강박은 전통적 음악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물론 공연장의 구조나 여타 조건들에 따라 음향은 늘 달라질테고, 그래서 같은 연주자라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한 연주의 녹음본이 다른 것보다 높게 평가되곤 한다. 애초에 최적의 음향으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그러한 감상의 조건들과 미적 가치가 K-POP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K-POP의 존재의 이유는 보여지는 것에 있고, 그것도 심지어 "예쁘고 멋있게" 보여지는 것에 있다. 매 공연마다 그 순간에 고유한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시각적 미를 희생해야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는 가수들과 그들의 (혹은 그들 자체로서의) 상품으로 돈을 버는 방송국이 계속해서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K-POP은 그 특성 상 수용자/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상품(이미지, 퍼포먼스)을 내놓게 되는데 수용자/소비자들이 K-POP 퍼포먼스로부터 원하는 것을 클래식 음악 감상에서와 같은 미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극도로 매체화된 시대와 문화에서 우리는 시각 이미지와 그에 따른 변화들을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에 대한 침해나 오염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요구가 전통적 음악 미학까지 운운해야 할 문제라면 퍼포먼스로서의 K-POP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술의 정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사안이 되겠지만, 사실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미적이지 않을 때가 많은데, K-POP은 그렇게나 많은 이들에게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데 말이다. ㉦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랑랑 라이브 인 런던>: “무엇이 나와 랑랑 사이를 갈라놓는가?”

by 이진주
메가박스-코엑스에서 2014년 3월 26일 저녁 7시 30분 


1. 목적이 서로 다른 관객들

  어찌하다보니 ‘장애인․노인과 함께하는 GV’의 초대권이 아직 장애인도 노인도 아닌 내 손에 들어왔다. 극장 안을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 연주회를 공연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가진 듯했다. 얼음 섞인 음료수의 남은 양을 용감하게 후루룩 거리거나 랑랑이 잘생겼다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콘서트홀에 앉아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을 매섭게 쏘아보면서 곡이 끝날 때마다 뜨겁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부류였냐 하면…그냥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라이브 공연을 녹화해서 영화관에서 다른 관객들과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2. 옆 상영관의 포탄소리

  그러던 중에 계속해서 들리는, 피부까지 울리는 초저음.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고, 연주회 도중에 천둥이 울려서 녹음된 것도 아니다. 돌연 궁금해졌다. 옆방에서 도대체 무슨 흥미진진한 영화가 상영 중일까? 뭔가 ‘구궁’하고 계속 반복되는데… 건물이 무너지거나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었을까?

  실제 공연장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면, 나는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혹은 들을 수밖에 없는) 소리들 중 일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분명 영화관 측의 ‘배려 없음’에 의한 ‘사고’이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음악 연주회를 상영하는 방에 다른 사운드가 침범하도록 허용하도록 한 것은 어이없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잊어버릴 만하면 들리는 이 초저음이 나를 자꾸만 랑랑으로부터 떼어 놓았다.

지구를 구하려면 약간의 소음은 어쩔 수가 ...

3. 화려한 카메라 워크

  피아노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자기 나름의 취향의 각도가 있기 마련이다. 연주자의 표정을 보고 싶다면 오른편을 선호할 것이고, 연주자의 들썩이는 뒷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하거나 손가락과 페달 퍼포먼스를 보고 싶다면 왼편이 유리할 것이다. 또 가운데 좌석에서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촬영한 이번 영상에서는 연주 모습을 왼편, 오른편, 가운데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공연장 내부의 구조도 자세히 볼 수 있고, 다른 관객들의 표정도 카메라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다각도로 랑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손놀림도 다 자세히 볼 수 있었지만, 정작 그의 음악과 소통하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시로 움직이는 앵글은 분명히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콘서트 영화는 모든 각도의 그림을 ‘강제로’ 제공함으로써, 나의 감각이 시각에 더 많이 집중되도록 했다. 청각은 그만큼 주의력을 빼앗겼다. 그리하여 앵글이 이동할 때마다, 즉 화면이 끊어질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소리도 같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4. 쇼맨십의 왕+클로즈업 샷

  랑랑의 쇼맨십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노는 손을 지휘하듯이 살랑거리는 버릇이나 크게 움직이는 몸, 그리고 자신의 연주에 스스로 심취한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관객석으로 얼굴을 돌려 동의를 구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자주 비추는 클로즈업 샷이었다.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눈을 뒤집거나 좌우로 굴릴 때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키득거렸다. 설사 랑랑이 아닌 유아인이었다 해도 그렇게 큰 스크린에 클로즈업된 얼굴이 예쁘긴 어려웠을 터. 더구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동안에 드러나는 다른 이의 표정을 클로즈업 화면으로 보는 일은 강하게 부담스러웠다. 이유는 물론 내가 그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또한 그것이 지시된 극중 연기가 아닌 실제 행위라고 인식하는 데서 오는, 관음적 상황에 대한 불편함일 수도 있다. 나는 차츰 랑랑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목 위로는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클로즈업은 실제 연주회장에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가장 비싼 티켓을 산다고 해도, 혹은 랑랑과 친분이 있어서 피아노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도 그렇게 확대된 랑랑의 얼굴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다른 영화에서 클로즈업 장면과 달리, 이것은 생생하기보다는 내가 실제 연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재생되는 화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5. 영상과 소리의 미스매치

  클로즈업 샷과 더불어 다소 느끼하고 사색적으로 해석된 듯한 모차르트를 용케 참아내고 드디어 랑랑의 화려한 기교를 볼 수 있는 쇼팽에 이르렀다. 첫 발라드가 끝나고 드디어 나는 한숨을 크게 내뱉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쇼팽의 중반부 쯤, 화면이 살짝 삐끗하더니 어느새 소리가 랑랑의 연기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 그 상태로 1분간은 웃겼지만, 더 이상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상영관을 나와서 땀을 삐질 거리고 있는 관계자에게 “저 영상이랑 소리가…”라고 말하고 있는 사이 몇 사람이 더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티켓 값이 무려 2만원이라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