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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4일 월요일

공개 집담회: 문화예술 검열 사태와 창작 주체들의 대응 양상, 그리고 검열의 심급

주 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공연예술학 전공
일 시 : 2015년 12월 3일
장 소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신양학술정보관 301호
참석자 : 이양구 작가, 윤혜숙 연출, 서울대 공연예술학 과정 구성원 등
정 리 : 김재영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사업과 ‘팝업씨어터’ 기획 공연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해 지원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공연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와 뉴스 보도 등을 통해 대중에 공개되었다.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 협동과정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 검열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검열이 창작자들의 창작 태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앞으로의 대응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위해 ‘대학로X포럼’의 이양구 작가를 초청하여 공개 집담회를 진행하였다. 이 글은 집담회에 참석한 공연예술학 과정 교수 및 학생, 그리고 문화예술 검열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부 참석자들과 이양구 작가, 윤혜숙 연출의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Q1. 팝업씨어터 피켓 릴레이 시위에 연극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소수의 관객들도 동참했던 것으로 알고 있구요. 그런데 문화검열 문제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과 지원을 받는 창작자 양 주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검열에 의해 다양한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지 않으면 관객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사실상 관객 또한 피해자로 볼 수 있고, 그래서 관객들이나 시민들이 이 문제의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피켓 릴레이 시위에 관객들이 얼마나 동참했는지 궁금하고, 만약 관객의 동참이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앞으로 관객들이 스스로 당사자임을 인식하게 하고, 이 문제에 동참하게 할 전략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양구 작가 : 관객들이 오시긴 했는데 연극인들의 지인들이 주로 오셨습니다. 누가 당사자인가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창작산실 지원사업에서 박근형 연출의 작품만 검열당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박근형 연출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다 검열의 대상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의 종용에 의해 지원을 포기해야 했던 박근형 연출만 검열 사태의 피해자, 당사자가 아니라, 창작산실에 지원한 다른 창작자들도 검열의 피해자로서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하는 당사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안은 공적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실은 시민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이 사태의 당사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박근형 연출이 앞에 나서고 안 나서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이 사태의 당사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관객들을 동참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경성 연출이 ‘관객에게 말 걸기’라는 글을 써서 관객을 동참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구요. 저는 오히려 역으로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관객분들은 혹시 동참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하구요.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와 논문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Q2. 창작산실이 어떤 지원 사업인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양구 작가 : 현재 순수 창작 연극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차년도 대본 공모에서는 다섯 개 작품을 선정하고 대상 한 작품은 5천만 원, 나머지 네 작품은 2천만 원씩 지원합니다. 한 해에 200편 정도가 지원을 합니다. 2차년도에는 낭독 공연 등을 통해 다섯 작품을 또 뽑고, 각 작품에 제작 지원을 1억 원 정도 해 주고, 좋은 공연이라고 평가받으면 그 이듬해에 다시 재공연을 위해 1억 원 정도가 지원됩니다. 통상 많이 받으면 2억 원 이상씩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극단 입장에서는 제법 재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따라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죠. 작년까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주관했는데, 올해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면서 검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Q3.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검열’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양구 작가 : ‘검열’은, 국가 권력이 정치사상적인 이유로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벽돌신문’, ‘복자’처럼 텍스트를 지우거나 잘라내는 것, 혹은 특정 작가의 작품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 등의 형태로 ‘현시적’인 검열이 존재했었구요. 1930년대 ‘아웃소싱’된 검열을 보면 인쇄, 출판 자본들이 원고를 검열하는 것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떤 작가의 글을 출판했는데, 납본한 후에 검열 당국이 ‘이 부분은 삭제하라’고 명령하면 그 부분을 수정해서 재출판해야 하는데, 이 때 비용의 부담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출판사들이 알아서 작가들의 원고를 검열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작가들도 출판되고 원고료를 받으려면 알아서 검열하게 되는 거구요. 전시동원체제가 되고 검열이 더 발전하고 되면 나중에는 작가들을 불러서 정치적 선전에 이용하는 형태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검열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1925년도에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경찰과장이었던 다나카 타케오가 <조선사정>에서 정리한 ‘다섯가지 차압기준’ 같은데 보면 조선민족독립사상 고취 등 정치 사상적 검열부터 풍속 검열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1936년도 출판경찰개관’에서 확인되는 일반검열표준이나 특수검열표준을 보면 검열 기준들이 아주 세세하게 여러 분야, 여러 관점에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검열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검열관이 작가의 무의식 깊은 곳에 들어오게 하는 것인데요. 검열이 내면화되어서 작가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작가 자신이 검열관이 되는 거죠. 검열은 또 모든 작품을 삭제하고 방해하는 형태가 아니고, 몇몇 샘플들을 골라내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그럴 경우 ‘이 단어를 쓰면 안 되는구나’, ‘이런 내용을 쓰면 이 극장에서는 공연을 못하겠구나’와 같은 생각을 작가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죠. 특정한 단어를 금지하는 것은 그 단어로 형성되는 개념을 금지하는 건데 일제 때도 이를테면 ‘대한’ 등 조선이라는 국토, 독립 등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은 금지되었습니다. 이번 팝업씨어터의 경우 ‘수학여행’ ‘노스페이스’ 등 ‘세월호’를 연상하게 하는 공연은 앞으로 공공극장에서 공연하기 어렵다는 신호가 된 거죠. 그럼 배가 나오는 공연은 괜찮나? 고등학생은 나와도 되나? 우습지만 공공극장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싶은 작가라면 이제 그런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겠죠. 그래서 검열은 창작자들의 창작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4. 연극인들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대응 시위를 하고 있는데, 차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양구 작가 : 연극인들은 시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 연극의 동시대성은 극장 안이 아니라, 극장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 검열 문제를 연극으로 담아내어 극장 밖,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의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첫 번째는 오동석 헌법학자를 모시고 강연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검열은 헌법상이 금지하는 중대한 문제죠. 헌법이란 게 국가를 만들 때 근본적으로 합의한 약속인데 여기서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같은 것을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한다’고 합의한 겁니다. 이런 얘기를 좀 다루려는 거구요. 두 번째 세미나에서는 식민지 검열 즉, 1900년대 초 러일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던 식민지 검열의 제도사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개별 장르들인 연극, 음악 등에서 검열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느냐를 살펴보고, 네 번째 세미나에서는 현재 검열이 어떤 문화예술 제도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2월 7일 처음 시작하여 부정기적인 세미나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검열의 법제사를 살펴보면서, 검열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연극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런 주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그랬던 것처럼, 검열의 문제도 창작자들의 창작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서 다양한 형태로 연극에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5. 검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공연예술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영화 등과 같은 인접예술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의 예술가들과 연대를 할 계획은 있나요?

이양구 작가 : 예술인연대포럼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열 문제에 대해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토론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난 10월 5일 예술인연대포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연극인들이 활발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직접 작가를 찾아가 창작산실 지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연극인들에게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었죠. 마리 관장이 스페인에서 검열을 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미술인들의 항의가 있었고요. 그 밖에도 무용, 영화 등의 분야에서도 검열과 관련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세미나들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Q6. 검열주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요?

이양구 작가 : 몇몇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의 실명이 뉴스, 신문 등을 통해 보도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검열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죠. 저는 처음에는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니까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검열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령 1930년대 검열관들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 등 엘리트들이다 보니 자신들을 일종의 계몽의 주체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요. 지금 문화예술계에 있는 공무원 집단이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담당 직원들은 공연 예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해외로 유학을 갔다 온 경력도 있을 만큼 전문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로 연극 작품들을 수준 낮은 작품으로 인식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인들이 범죄자라는 인식도 거의 없는 것 같고, 본인들은 도리어 조직을 지키느라 자신들이 한 일에 비해 과도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조직을 지키느라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니까 자신을 일종의 희생자로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Q7. 지금 검열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검열을 하려면 무언가 기준이 되는 규정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창작산실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 기준이나, 내부적인 작품 선정 규정 같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누가 이러한 검열을 생각하고, 지시하는 것인지 궁금하고, 어떤 프로세스에 의해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이양구 작가 : 저도 윗선에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그는 과연 누구일까 고민해 본 적이 있고, 혹은 윗선에서 지시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검열을 하려는 직원은 누구일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몇몇 혐의자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검열의 주범이라고 단정 지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고요. 그래서 누가 검열을 지시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검열은 단순히 문화예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을 실행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가 있고, 그것을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검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8. 팝업씨어터의 당사자인 윤혜숙 연출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검열 사태가 창작자의 창작 태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공공 지원을 받으려면 이런 내용은 쓰면 안 되겠구나’, ‘이런 내용으로 쓰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판단을 통해서 공공기관이 원하는 작품을 쓰게 되는 것이죠. 윤혜숙 연출은 아마 이러한 자기 검열의 방식과는 반대로, 자기 검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방향으로 창작태도가 변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검열 사태를 겪으면서 본인에게 미쳤던 영향과 창작태도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윤혜숙 연출 : 팝업씨어터 공연 거부를 결정하기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창작산실 문제가 한참 시끄러웠는데, 그 때 저는 처음에는 분노했다가 점점 그 문제에 대해 둔감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칼이 비로소 제 목에 들어왔을 때, ‘내가 이제서야 이 문제를 당사자로 인식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타파에서 국정감사자료가 보도되었을 때에도, ‘내가 공연을 거부한다고 해서 무엇이 변화할까, 저들이 몇 개월 후에 다시 국정감사에 나가도 지금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중에라도 이 문제에 대해 똑바로 이의제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연 거부 직후에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후시기나 포켓또>를 ‘씨어터 까페’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연했는데, 그래서 검열 사건이 이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후시기나 포켓또>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일제 강점기의 아나키스트인데, 이 인물에 대한 연극을 만들면서 부당한 것에 입을 닫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구요. 다음 작품으로 오레스테이아 이야기를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검열 사건이 제 창작활동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대본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것, 예를 들면,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칠 때, 저주를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던 장면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든가 하는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자꾸 눈길이 가는 장면들이 하나 둘씩 생기는 것이죠. 연극에서는 창작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분명히 이 사건이 제 창작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구요. 차기작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검열 문제를 직접 다루는 공연을 바로 하지는 못하지만, 나중에라도 이 문제에 대한 연극을 만들어서 공연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관객들하고 어떻게 소통할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신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하자면, 공연을 만들어 놓고 관객과 소통하기도 힘든 처지에 이런 사태에 대해서 관객과 창작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디씨인사이드 사이트에 있는 연뮤갤 게시판에 ‘검열에 반대한다’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고 합니다. 대학로 연극 포스터에도 검열문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런 경로를 통해서 차츰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양구 작가 : 검열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안 했다’고 발뺌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라고 얘기할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고, 그것이 일탈로서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구요.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더라도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팝업씨어터나 창작산실 건에 대해서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를 밝혀보자, 그리고 그들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실히 얘기해보자는 것입니다.

Q9. 저는 이 사건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제 말이 외람될 수도 있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자면요. 대응 목표가 세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법의 문제와 법적 감수성의 문제를 구분해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들을 동참시키고, 문화적인 감수성으로 발언하는 경우와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모호하게 문제 제기만 하고 성과없이 끝나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양구 작가 : 이런 문제를 좀 더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게 된 것도,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런 가능성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10. 검열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고, 심지어 플라톤의 시대로까지 올라가는 문제입니다. 검열주체가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고, 공직자들에게 검열이 내면화되는 과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검열 문제에 대해서 반론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팝업씨어터에서 왜 그렇게 무거운 작품을 해야 하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반론들도 실제로 나오고 있구요. 일부에서는 ‘괜히 모든 것을 정치삼는다’는 식의 논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예술적으로 이 사태를 비평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의미나 가치를 평가해주고, 그래서 이 작품이 팝업씨어터에서 다뤄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었나를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두 가지의 작업이 같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검열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업이고, 두 번째는 검열과 관련된 작품에 대한 비평 작업이죠. 현장에서는 전자의 문제를 다루고, 학계에서는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가면 서로 보완해 가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키스 앤 크라이> -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by 김재영

영화는 ‘과거'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비춰준다. 영화 제작은 영화 상영 이전에 발생한다. 영화관 스크린 속 인물은 지금 내 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거 어느 시점에 이미 카메라 앞에서 움직였다. 나는 항상 카메라보다 늦게 영화를 보는 것이다. 설사 그 영화가 미래의 사건을 다룬 SF영화라 할지라도 그 이미지가  ‘과거’에 속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공연예술이 관객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함으로써 현재의 사건을 보여준다는 점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그리고 ‘상영’된) <키스 앤 크라이 (연출 : 자코 반 도마엘)>에서는, 카메라맨이 무대 위에서 찍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관객은 카메라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사진출처 : LG아트센터)

일반적인 영화 상영이 카메라의 녹화, 재생 기술을 이용하여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키스 앤 크라이>의 카메라는 피사체를 보기만 할 뿐, 본 것을 녹화한 후, 재생하지 않는다. 이는 곧, 공연이 매회 반복될 때마다 카메라맨이 매번 같은 움직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번째 씬에서 카메라맨이 트랙 인(track in)하여 피사체에 접근했다가 좌상향으로 움직이고, 다시 우하향한 후, 트랙 아웃(track out)하여 피사체에 멀어졌다면, 카메라맨은 매 공연의 첫번째 씬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해야 한다. 카메라의 녹화, 재생 기술이 제거됨으로써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화 이미지는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며, 관객은 스크린의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카메라맨의 디테일한 동작을 공연의 일부로서 바라보게 된다. 이는 비단 카메라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존재하는 영화 스탭들, 이를테면 조명 스탭, 콘솔 컨트롤러, 연출가와 같은 이들의 영화 찍는 행위 자체가 공연의 일부로서 관객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관객의 눈은, 스크린 상의 영화 이미지와 무대 위  ‘수행자’들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게 된다. 무용수들의 손가락 춤은 카메라에 의해 매개되어 스크린 상에 나타나는 동시에, 미디어의 도움 없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무대 위 동작으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소품 담당 스탭이 물 속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동작은 무대 위의 행위로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동시에, 카메라에 포착되어 스크린에 나타난다. (물론 이 경우에, 소품 담당 스탭의 움직임은 카메라 프레임 바깥으로 숨어버리고, 스크린 상에는 화면을 가득 메운 물 속에 잉크 방울이 떨어져 서서히 섞이는 장면만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무대 위 사물들 역시 공연과 영화의 일부로서 동시에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그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나레이션에 맞추어 장난감 기차가 무대 위에 미리 세팅된 트랙 위를 따라 움직이고, 장난감 기차의 측면에 부착된 초소형 카메라는 트랙을 따라 배치된 여러 오브제들, 조그마한 나무, 가로등, 도로, 동물 등의 모형을 포착하여 스크린 상에 투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카메라 프레임 바깥에 존재함으로써 스크린 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스탭들이 이제 자신들이 찍고 있는 영화 이미지와 동일한 무대 공간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다. 영화 이론가인 장 루이 보드리가 지적하듯이, 카메라와 영사기라는 기계 장치의 작동 때문에 관객들은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 있는 소재(피사체)로부터 완성된 영화 작품으로의 변형을 볼 수 없다. 관객은 영화관에서 완성된 작품을 볼 뿐이며, 촬영 단계에서의 화면분할과 후반 작업 단계에서의 편집 과정을,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소재(“객관적 실재”)가 완성 작품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진행 과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에서 관객은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존재하는 재료들이 어떤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겨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으며, 비록 이 경우에 편집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적어도 촬영 단계에서 스탭들이 조명과 소품,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의미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영화의 경우와 달리, <키스 앤 크라이>에서 카메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관점(피사체를 보는 위치)조차도 독점적으로 점유하지 못한다. 관객은 언제라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무대 위 스탭들과 무용수들, 오브제들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환영적인 이미지로부터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제 카메라의 시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무대 위 움직임과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출처 : LG아트센터)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관객들이 스크린과 무대 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더라도, 스크린을 통하지 않고서, 즉 직접 무대 위 공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연이(무용수들의 춤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무용수들의 손가락 춤은 조명, 특수효과와 더불어 스크린 상에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그들의 손가락은 매우 작기 때문에 관객이 스크린을 통하지 않고, 직접 그들의 손가락 움직임을 보기에는 불편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LG아트센터의 2층과 3층에 앉은 관객이 무용수의 손가락 움직임을 세세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공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야만 한다. 관객은 영화 이미지가 생산되는 ‘과정’ 자체에 대해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공연 자체의 내용과 무용수의 미세한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이는 스크린에 표현되는 이미지에 매혹되어 공연을 만족스럽게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움직임들을 영화가 아닌 공연으로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여전히 피사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상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관객이라도 무용수의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관절의 떨림, 힘을 줄 때마다 변화하는 손등의 핏줄 등을 카메라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무용수의 손가락은 관객을 향해서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카메라 프레임에 갇혀서 움직이는 것이다. 카메라맨이 매 공연마다 같은 카메라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듯이, 무용수의 손가락 역시,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혹은 안으로 혹은 바깥으로 움직이며, 이는 매 공연마다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수는 카메라가 포착하는 사각틀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용수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마지막에 가서야 없어진다. 영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나게 된 남녀의 손가락으로부터 카메라가 트랙 아웃하면서 배우의 팔과 가슴, 몸통 전체가 드러나며, 별안간 영화 이미지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제 카메라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두 남녀 무용수는 더 이상 카메라의 화면을 의식하지 않고, 관객석 쪽으로 시선을 두면서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카메라 화면 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무용수의 움직임이 그 프레임을 깨고 나와 관객 앞에 섰을 때, 나의 시선이 꽁꽁 묶여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대 위에 존재하고 있던 배우들이 마지막 순간 영상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연극 <홍당무>와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http://www.drama-in.kr/2014/02/carotte.html) 그리고 무용수들 역시 자유로워 보인다. 작고 미세한 세계로 한정되었던 사각형의 틀이 무한정 줌 아웃(zoom out)되면서 공연장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틀로 바뀌었다고 할까. 아주 잠깐의 장면이지만, 작고 세밀한 세계를 포착하여 스크린 상에 확대시켜 놓았던 카메라가, 이제 거대한 공연장 전체 뒤로 물러나 무대 위에 작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세워 놓았다는 점에서 연출가의 영화와 공연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난다. 혹여나 이 공연이 카메라의 시선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을 관객조차도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연극 <홍당무>, 무대 위 영상을 바라보는 시선

by 김재영

연극을 보고 나와서 길을 걷는 내내 단 한 가지의 장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주눅들어 보이고 부끄러워 하는 듯한 홍당무의 클로즈업 된 얼굴이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홍당무’ 동화책 속 어느 삽화에선가 봤을 법한 그런 그림체로 된 홍당무의 얼굴 말이다. 하지만 연극에서 클로즈업 된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무대 정면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영상이 아니었다면 홍당무의 그런 묘한 분위기의 표정은 내게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홍당무 역을 번갈아 가며 연기했던 두 명의 남녀배우의 표정보다 그리고 그들의 몸짓과 대사보다 연극의 마지막에 맞딱드리게 되었던 애니메이션 영상 속 홍당무의 표정이 내게 더 인상적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영상 이미지에 너무 쉽게 압도당할 정도로 배우들이 관객과 교감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영상은 어디까지나 배우의 연기를 보조하는 역할 즉, 극의 배경 정도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지막 영상 이미지가 내게 그토록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천천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극단 청년단 <홍당무>
민새롬 연출


  연극이 시작되면, 홍당무 역을 맡은 배우들은 각각 좌측과 우측의 관객석에 앉아서 번갈아 가며 자신들의 과거 에피소드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관객은 한번은 좌측의 배우(박수진)를 보며 이야기를 듣고, 그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측의 배우(왕보인)를 보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 동안 무대 정면에는 홍당무 가족의 가족사진이 정지된 애니메이션 영상 화면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상 속 가족은 총 4명이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홍당무의 가족은 아빠, 엄마, 형, 누나 그리고 홍당무 자신까지 총 5명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관객은 가족사진에서 홍당무가 빠져있음을 알게 되고, 영상 속에 부재한 홍당무가 지금 우리의 좌측과 우측에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관객에게 들려준 후, 배우들은 관객석으로부터 무대 위로 이동하여 가족사진 영상이 위치해 있던 무대정면에 앞뒤로 위치한다. 연극의 첫부분이 주로 가족과 관계된 홍당무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소설 ‘홍당무’에서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들이자, 홍당무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두더지’, ‘붉은 뺨’, ‘르픽씨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 배우들은 이제 관객에게 회상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소년 홍당무를 직접 연기하기 시작한다. 이 때 영상은 극의 전개에 따라 학교 기숙사 공간이 되었다가, 학교 창문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한다. 영상은 주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의 배경으로서 기능하지만, 때론 배우와 상호작용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배우가 두더지를 영상에 대고 던지는 액팅을 하면 영상에는 두더지의 피가 튀는 이미지가 나타나는 식이다.

 이러한 영상의 활용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영상은 극 전개 과정에서 장소를 나타내는 배경으로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른다. 반면, 배우들은 마치 빛바랜 가족사진으로부터 뛰쳐 나와 우리 앞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보이며, 자신들의 가장 강렬한 이야기들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낸다. 두 명의 배우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번갈아 가며 연기하는데, 하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느꼈던 서운한 감정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와의 편지 교환에서 느꼈던 씁쓸한 감정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고 두 개의 에피소드가 묘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겹쳐지면서 어린 소년의 분노가 비뚤어진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표출될 때 극의 긴장감은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있던 두 배우는 무대 정면에서 만나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데, 이 장면에서 두 배우가 서로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위로하고 도닥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 전달된다.

 이 에피소드가 끝나고 나면, 배우들은 연극의 첫 부분과 마찬가지로 각각 좌측과 우측으로 돌아가 관객석에 앉고, 영상에는 다시 홍당무의 가족사진이 정지화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홍당무의 앨범’ 이야기가 마무리될 쯤, 가족사진의 정지화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속 가족들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화면이 서서히 가족들 사이의 틈새로 클로즈업되기 시작한다. 앞에 서 있는 아버지와 형, 누나를 지나 그들의 뒤로 화면이 움직이면, 형과 누나 사이에 어깨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홍당무의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 나타난다. 연극 내내 영상 속에서 부재하고 있던, 배우의 몸을 통해 영상 밖 관객들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던 홍당무의 모습이 그 순간 영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영상 속 홍당무의 이미지가 배우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바로 그 때였다. 클로즈업을 통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홍당무의 표정이 왜 그렇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그것은 배우들이 발산했던 사춘기 소년의 질풍노도와 같은 격정적인 감정들이 바로 그 표정 안에 완전히 각인되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보이지 않았던 어떤 공간을 들춰내었을 때, 그리고 영상 속에 부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홍당무가 모습을 드러낼 때, 그가 실은 가족들 사이에서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앞서 두 배우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볼 때 전달되었던 뜨거운 감정의 교류같은 것들이 영상 속 홍당무와 나의 눈 맞춤으로 인해 내게도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 하나의 표정이, 그것도 거친 질감으로 그려진 옛날 동화책 속 그림과 같은 이미지 하나가 그토록 많은 의미들과 감정을 한꺼번에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엔딩 장면은 아쉬움을 또한 남긴다. 배우들의 말과 몸짓에 집중되어 있던 관객들의 마음을 너무나 쉽게 영상 속 이미지에 빼앗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무대 위 배우들의 존재는 마치 영상 속으로 별안간 사라져 버리고 없어진 것처럼 느껴졌으며, 배우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저 영상 안에 있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연극 무대가 한없이 작아 보였고,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차라리 배우들이 연극을 마무리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영상으로 비춰지는 가족들 틈 사이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무대 한 가운데 서서 관객과 마주보고 있는 홍당무의 모습이 더욱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특별 기획] 《손님》 합평

기획 및 정리: 산책


드라마인 필진들이 함께 <손님>을 보았습니다. 심하경이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함께 공부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서로의 의견에 반박하고 함께 투덜거리며 같이 감동하기도 합니다. 공연예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공연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글을 읽고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동의하지 못했을 독자들에게는 이 글이 또 다른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드라마인은 이미 <손님>에 대한 에스티의 리뷰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리뷰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각자가 주목한 방식으로, <손님>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선택의 문 앞에 서서 - 바냐아저씨

 by 김재영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에 대하여

 연극의 마지막 장면. 바냐와 소냐는 무대 중앙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다. 둘은 꽤 오랫동안 침묵한 상태로 타자를 두들기거나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들의 일에 무척 몰두해 있는 것 같다. 무대 왼편에는 유모인 마리나가 늘 그렇듯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뜨개질을 한다. 무대 뒤로 의사 아스트로프가 그들의 모습이 생경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퇴장한다.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 1막에서 바냐가 얘기하듯이 그들은 예전의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돌아간다는 것,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를 떠올려보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당신은 이 가사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애초에 ‘제자리’라는 것이 정해져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곳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다’는 시도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좌표축 위에 누군가의 ‘제자리’를 일방적으로 설정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당췌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완전하지는 않지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이 ‘믿음’은 일종의 ‘체념’ 상태를 동반한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며, 도리를 깨닫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사람은 그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무대 뒤로 퇴장하다가 멈춰서서 일에 몰두한 바냐와 소냐를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스트로프의 시선을 생각해 보라. 바냐와 소냐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이 예전의 그들의 모습과 전혀 닮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레드마리아>, 여성의 삶은 배에서 시작된다.


by 김재영

<레드마리아> (2012, 경순 감독)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

 <레드마리아>는 한국, 일본, 필리핀에 살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사실, 여성의 몸과 노동의 문제를 남성인 내가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노동한다는 것’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하자는 목소리에 공감해 본 적도 없다. 여성의 몸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쯤으로 넘겨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무관심은 여성의 문제를 사회, 정치적인 차원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한 여성의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남성인 내가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이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이러한 선입견과 피해의식으로 인해 나는 정작 여성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흑백영화에서 과부의 피를 만나다: 영화 <열녀문 Bound By Chastity Rule, 1962>

by 김재영

한국영상자료원은 ‘최은희 특별전(2013년 6월 13일 ~ 30일, 시네마테크 KOFA 1관)’을 통해 영화배우 최은희의 영화 25편을 상영하였다. 그녀는 1947년 <새로운 맹서>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로맨스 빠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1978년 북한으로 납치되어 남편인 영화감독 신상옥과 북한에서 <불가사리>, <소금> 등의 영화를 제작한 후, 198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녀의 굴곡 많은 삶의 흔적은, 마치 한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영화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과 남북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시대까지 격변하는 시대에서 충돌하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그 속에서 반목과 화해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62년 개봉하여 제2회 대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열녀문(감독 신상옥)> 역시 과부의 정절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여성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통해 여성의 행복한 삶은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도시에서부터 농촌으로 빠르게 개화가 진행되고 있던 1920년 무렵, 어린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평생 과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양반집 아씨(최은희 역)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아씨의 시할머니(한은진 역)는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재가하지 않고 절개를 지켜 나라로부터 열녀문을 하사받는다. 시할머니는 아씨에게 ‘신불사이군 여불사이부(臣不事二君 女不事二夫) 즉, 신하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고,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유교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며, 외부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릴 때마다 허벅지를 은장도로 찌르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가르치는 전통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이 집안의 머슴인 성칠(신영균 역)은 아씨를 연모하고 있는데, 그는 여성이 자신의 사랑과 욕망에 충실해야 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근대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결국 아씨는 성칠과의 동침으로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양반의 체면을 중시하는 시아버지의 반대에 막혀 재가하지 못하고 성칠과 아이를 다른 마을로 떠나보낸다.

이 영화에서 아씨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속하고, 대상화한다. 시할머니와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등 양반 가문의 어른들은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아씨의 고독한 인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녀의 고통과 희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마을의 남성들은 그녀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새참을 이고 논을 걸어가는 아씨에게 홀아비인 남성이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알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지’라는 노래를 읊조리며 수작을 부린다. 아씨가 새참을 성칠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숲길에서 다른 남성은 아씨를 강간하려고 하다가 성칠에게 맞고 도망간다. 시동생은 비교적 아씨를 잘 따르고 위하지만, 상사병에 걸린 소년처럼 형수를 사모하는데, 형수가 성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배신감에 그녀를 괴롭히고, 모욕하려고 든다. 성칠은 그녀를 가장 아끼고 그녀의 삶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이지만, 그 역시 남성 중심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기나긴 가뭄으로 논이 바짝바짝 말라가던 어느 여름날, 때마침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는 환희에 젖은 채 아씨를 부둥켜 안게 되고, 이를 거부하며 뿌리치는 아씨를 쫓아가 반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