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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9일 월요일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혹은 언제인가?

임승태

성공한 건축가 마틴(박윤석)이 50세 생일을 맞아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TV 진행자인 로스(이준영)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 마틴은 놀라운 이야기를 꺼낸다. 실비아라는 이름의 염소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잘못 읽은 게 아니다. 염소다. 그리고 마틴이 말하는 사랑은 여느 반려 동물과 보호자의 관계가 아니라, 성관계를 포함한 것이다. 로스는 이 사실을 마틴의 부인 스티비(김수아)에게 편지로 알리고 그 결과 마틴과 스티비, 그리고 그들의 아들 빌리(박지훈)가 누리던 평화는, 무대가 난장판이 되듯, 산산조각난다.

아들 빌리가 게이라는 설정이 곁들여 있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충격적일지언정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틴과 스티비 부부는 아들의 게이 정체성을 존중해왔고 그것은 이 가족에게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이렇게 읽힐 수 있다: 남자가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수간도 허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마틴이나 그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수 있지만, 작가가 이 말을 하기 위해 작품을 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틴의 어떤 말도 스티비의 반론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비아에 대한 마틴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되지만 그 관계에 염소가 동의했음을 마틴은 입증할 수 없고 그래서 그 관계는 일방적이고 진지하기에 더욱 병리적이다.

이 논쟁이 동성애에 대한 ‘메타포’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 같다. (메타포라는 단어가 실제로 대사로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작가가 혹시라도 이 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염려한 노파심의 반영일 수 있다.) 전선이 이종간(異種間)의 사랑에서 펼쳐짐으로써 동성간(同姓間)의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쿠쉬너의 <미국의 천사들>이 그 전선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면 <실비아>는 마치 원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 평화롭다.

하지만 여전히 이 작품이 2000년에 쓰인 작품이란 점을 감안해야 수간-동성애 메타포가 유의미하다. 20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 특히 미국을 비롯하여 가까이는 대만까지 동성간의 결혼이 허용된 시점에서 보자면 마틴/스티비 같은 부모가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에서 이런 부모는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이 작품의 논점이 살아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이 극을 마틴이 아니라 빌리를 위해 (어쩌면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을 위해) 썼다고 말할 수 있다.

공연은 작품의 메시지를 충분히 잘 전달했다. 다만 지난 20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가 많이 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대를 특정하는 작업이 동반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공연 초반 로스가 인터뷰 녹화를 위해 꺼내는 카메라가 DSLR 카메라가 아닌 ENG 카메라였으면 어땠을까. DSLR가 설치되는 순간 동시대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 이야기가 동시대라고 하면 특별히 새로울 게 없고 그래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홍석천, 난 “호모다””라는 헤드라인이 스포츠신문 첫면을 크게 장식한 2000년 혹은 그 이전 어느 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면 모든 상황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올비는 의문사 WHO를 유난히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이 공연에서는 WHEN이 더 중요하다.


***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에드워드 올비 작, 라성연X베타프로젝트
2019년 8월 7일-11일 선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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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월요일

질투는 나의 힘, <배우 할인>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가라던 간절한 요청을 뒤로 하고(사람들이 망설이는 통에 한참을 자리에 앉아 나가지 못했다, 그 요청은 간절했지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극장을 나오며 극중 선배 역의 장만달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처지는 꽤 안타까웠다.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후배는 그가 버텨온 20년의 대학로 생활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연극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노래와 춤은 기술일 뿐이라고, 뮤지컬은 간지러워서 볼 수 없다고 큰소리 치는 그는 질투에 휩싸여 사실 노래가 되는 배우들을 부러워 하는 음치임을 고백한다. 후배에게 아는 척 하면서도 체홉과 입센을 헷갈리고, 사실적 마술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 중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땀과 소금, 바다를 연결시키는 그의 분석은 (아마 <노인과 바다>에 대한 내용인 것 같다) 어디에서 공감해야 할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그는 밤에는 잘 안 먹는다고 큰소리 치며 매일 술을 마시고, 숙취때문에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 버리기도 한다. 그의 연기는 더욱 문제인데, 20년간 대학로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연출 또는 극단의 대표가 맺고 끊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연기 못하는 배우가 하나쯤 있다 해도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배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부러 과정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장만달의 무대 위 연기는, 정말 이런 연기를 만나게 될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과장되고 어색한 연기를 하던 선배는, “마님, 안방을 따끈하게 데워뒀구만요”라는 한 줄 짜리 대사를 벌벌 떨며 하던 후배에게 점차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후배 최현우가 죽고 자신이 살아 남는 결말은 첫 공연 이후 후배가 살아 남는 것으로 바뀌고, 후배에게 점점 비중있는 배역을 빼앗기고(<맥베스>에서 맥베스보다 맥더프가 더 비중있는 역할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어 장만달이 안방을 데워 두는 하인을 연기하고, 후배가 그 때 자신의 역을 연기하는 상황까지 맞게 된다(이 작품은 <맹진사 댁 경사>인 것 같다). 물론 장만달이 그냥 지켜보지는 않는다. 대사를 헷갈려 하는 후배의 대본을 몰래 찢어 버리고, 자신과 붙는 장면에서 (선배의 권위를 내세워) 살살하라고 요구한다. 선배의 찌질함은 최현우가 <맨 오브 라만차>에 캐스팅되었을 때 극에 달한다. 뮤지컬 넘버를 연습하는 후배를 몰래 찾아가 연습을 지켜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아 후배의 연습을 방해한다. 그에게 질투는 돌파구 없는 삶을 버텨낼 힘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b.com/baewoo


이렇게 <배우 할인>의 이야기는 장만달의 질투로 시작되고, 그의 찌질한 행동들 때문에 진행된다. 그의 질투가 <배우 할인>의 서사가 버틸 수 있는 힘처럼 보인다. 장만달은 연기 못하는 배우, 질투에 몸서리치는 나이 든 꼰대, 공연을 망치고 창피함에 손목을 긋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간으로, 그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점점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너무 착하고 순진한 최현우는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선배의 유치한 행동에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배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연을 엉망으로 만들고 손목을 그은 선배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며, <맨 오브 라만차>에 캐스팅 된 상황에서도 연기 못하는 선배와 무대에 서서 손을 잡는다. 우리는 이런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선배가 아무리 찌질하게 행동해도 부르르 한 번 화를 낼 뿐, 다시 한 번 선배를 어르고 달래는 후배는 정말 성인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런 후배, 이런 사람은 존재할까? 이러한 의아함이 극중 공연 장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최현우가 대기실 장면에서는 과장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이 작품은 사실 (포스터 어디에도 원작 표시가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지만) 데이비드 마멧(David Mamet)의 <A Life in the Theatre>를 번안, 각색한 작품이고, 극단 인어가 2013년 2인극 페스티발에 <극장 속 인생>으로 출품하기 전, <라이프 인더 씨어터 (연극 열전)>라는 제목으로 2008년 공연된 바 있다. 이 작품이 대기실과 무대의 빠른 장면 전환, 이순재, 전국환 배우를 내세워 노배우의 질투 뿐 아니라 가르침, 극장에서 살아온 그들의 인생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면, <배우 할인>은 이십대와 사십대 배우를 기용함으로써,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은 두 배우를 질투라는 감정(만)으로 움직이게 한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아들을 낳았다면 너 같았을 거야”라는 대사를 이순재 배우가 홍경인 배우에게 했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장만달이 최현우에게 했을 때, 그것은 선배가 보여주는 질투의 억지스러움을 더욱 강조하고,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백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보았던 자신(아마 우리 모두)을 반성(reflect)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질투에 휩싸인 장만달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은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지 않은 것들, 미처 설명되지 않은 그의 삶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를 이해하기에는 극중 힌트가 너무 적다. 그래서 그는 우스꽝스러운, 찌질한 선배로 남아 버린다. 그의 질투가 극 전반을 지배하는데, 이런 캐릭터의 단조로움은 전체적인 극 전반을 단조롭게 만들었다. 장만달과 최현우의 갈등이 보다 복합적으로, 또는 첨예하게 상호작용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지점들은 충분하니, 배우로 살아가는 것, 또 나이가 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훨씬 감동적일 것 같다.

또한 삽입된 몇몇 극중극의 장면들은 신파조의 어색한 장만달의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그에 대해 알고 느끼게 해주었지만, 전도 유망한 최현우의 연기를 보여주기에는 다소 느슨했다. 유명한 작품들의 중요한 장면들인데, 그 장면들 나름의 색들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배우에게 무대 위의 삶과 무대 밖의 삶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것일지라 해도, 무대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로 살아 내는 공간이므로 그 위에서 최현우의 연기가 더욱 빛났다면, 장만달의 질투와 최현우의 변화가 더욱 실감났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극중극 장면이 더 빠르고 재미있게 구성된다면 작품 자체의 힘도 더욱 강력해 질 수 있을 것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러면서 나보다 재능이 있는 젊은이를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여지, 그 가능성은 무척 크다.  앞으로 5주간, 지치지 않고 더 좋은 작품, 더 힘을 받아 탄탄해지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 두가지, 연극 배우들에게 뮤지컬 계약은 성공이나 자아 실현과 같은 것일까? 왜 제목을 <배우 할인>으로 바꾼 걸까?

2014년 6월 2일 월요일

산책의 6월 장바구니

얼마 전 지인이 제게 “볼 만한 작품을 좀 추천해 달라”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저는 매달 저의 장바구니를 올리기 때문에, 속으로 다소 의아해 하며 고선웅 연출의 <푸르른 날에>를 추천했습니다. 필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제가 쓰는 건지 모를 수 있다는 추측과 (이건 괜찮습니다), 제가 보는 작품 말고, 다른, 더 재미있는 작품을 추천하라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건 좀 마음이 아픕니다) 6월에 고른 작품을 소개합니다.


도이체스 테아터 - 〈도둑들〉, 6월 4일 – 6월 6일, LG 아트센터 

독일의 대표 극장인 도이체스 테아터의 첫 내한 작품입니다. <도둑들>의 작가 데아 로어와 연출 크리겐부르크는 모두 독일에서 주목 받고 있는 예술가이며, <도둑들> 역시 연극평론지 테아터호이테 선정 최고의 무대디자인상, 뮌하임 연극제 관객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조기 예매가 1월 중순에 시작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이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아간다는 무대입니다. 돌아가는 수레바퀴는 잡아 둘 수도, 앞당길 수도 없는 우리의 시간과 닮아 있을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나의 삶과 닮아 있을지, 그래서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들의 도둑 맞았다는 현재가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연 시간이 무려 210분이기 때문에, 가기 전에 꼭 식사를 해야 할 것 같고, 잠도 충분히 자고 가야 할 것 같네요.



극단 인어, <배우 할인>, 6월 5일 ~ 6월 15일, 선돌 극장, 6월 17일 ~ 7월 6일, 나온 씨어터 


이번 달엔 무슨 작품을 볼까, 이리 저리 검색하던 중 발견한 작품입니다. 먼저 포스터가 눈에 띄었고, <배우 할인>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배우들을 통해서 할인 받는, 그 배우 할인을 말하는 것일까요? 원제는 <극장 속의 인생(A Life in the Theatre)>으로, 2013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극장 속의 인생”, 그것도 대학로, 소극장 속의 인생이라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어쩌면 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뻔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주는지 기대하며, 다른 사람의 생을 엿보는 것으로 내 생을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예매합니다.





극단 달나라 동백꽃, <뺑뺑뺑>, 6월 19일 ~ 7월 6일, 선돌극장


예매하고 보니, 이번 달에는 선돌 극장을 두 번 가네요! 이 작품은 지난 2월 남산예술센터에서 낭독 공연으로 먼저 선 보였는데, 그때 보러 가지 못해서 아쉬웠던 작품입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방식을 무척 궁금해 하는데, 한국의 근현대사(무려!)를 다룬다는 작품의 이야기 구성과 연출이 무척 기대됩니다. 소개된 줄거리를 보니 과거와 현재가 계속 맞물리며 시간이 재구성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 유난히 한국사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관극 했습니다. <환도 열차>가 그랬고, <알리바이 연대기>, <푸르른 날에>도 그렇고요. 친구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니, “또 한국사!”라고 할 만큼! 그만큼 우리가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하는 숙명적인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이 들지만, 달나라 동백꽃 특유의 재치 있는 무대를 기대합니다. 이제서야(!) 배우들 이름과 얼굴을 조금씩 외우고 있는 제가 좋아하게 된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네요!


연극이란 것이 늘 그렇지만, 이번 달에 고른 작품들은 특히 무대 위에 오른 인물의 삶을 지켜보아야 하는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너무 무겁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작품을 고르고, 이 글을 쓰고 보니, 제가 제 삶을 더 잘 살아 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 6일 월요일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고백

<지금도 가슴 설렌다>, 이혜빈 작, 손기호 연출, 선돌극장


by 산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저 유명한 CM송이 어느 날, “에이, 이제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로 바뀌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던 마음은, 이제 말을 해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만에 바뀐 광고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지만, 조금은 쓸쓸한 마음을 안겼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작은 아빠, 숙모, 옆집 할아버지와 주인공 달리, 달리의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소하다. 사소하고 시시한 그런 일들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심들도 있고,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숨겨진 마음들도 있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그 마음들이 오가고 전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우습고,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고, 조금은 먹먹한 기분도 든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고백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말을 들은 배우의 눈도 순간 빨갛게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 전, “진짜 첫 사랑은 너”였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울이 오기 직전, 시험공부를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 도서관에 가던 날, 보온 도시락에 넣어진 엄마의 편지였다. 이미 십여년 전의 일이라, 거의 모든 내용이 생각나지 않지만, “진짜 첫 사랑은 너”였다는 엄마의 고백만은 지금도 생각 난다. 그 편지를 읽었을 때 내 기분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날 그 편지를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리다 결국 피곤해져서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지금 그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으로 같이 살아 간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참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일인 것 같다. 단순하고, 복잡한 이 마음들을 <지금도 가슴 설렌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이, 그들 중 누군가가 내 가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작은 극장 안에서 여기저기 터지는 울음을 듣고, 울컥하며 움찔거리는 뒷모습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행복해지려고 애쓰면서, 때로는 다투면서, 손짓 하나 작은 마음 하나에 크게 실망하고, 감동하면서.

  극 내용은 단순하다.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감상에 젖을 만큼 관람자에게 여유를 준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꽤 재미있다. ‘낭독 공연’이라는 형식이 이런 재미를 만들어 낸 것일텐데, 예를 들면 “절뚝거리며 걷는다”고 지문을 읽어 주지만 할아버지는 꼿꼿하고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든지,대본을 들고 읽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분명이 나누어 지는 것, 주인공 ‘달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낭독하지 않고 홀로 움직이며 연기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지문과 다른 배우의 나머지 행동을 상상해야 하고, 보지 않고도 대사를 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한데에도, 떳떳하게(?) 무대 위로 올라온 대본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 대본을 낭독하든, 낭독하지 않고 연기를 하든 흔들림없는 배우들의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가만히 앉아 대본을 들고 읽을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 등장인물 그 자체였다. 무대도 거의 텅 비어있고, 배우들은 행동도 하지 않는데, 이 극이 드라마가 되고,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며, 과연 연극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의 목소리, 사람의 표정은 정말 강렬한 것 같다. 수많은 연극을 보며 배우의 몸, 배우의 움직임 등에 감탄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 대본을 들고 표정으로, 목소리로 전달하는 폭발적인 감정들은 새롭고, 또 대단했다(대단했다고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연극들이 만들어질까? 이 작품의 배우들, 연출, 작가의 다음 행보도 궁금해진다.

오랫만에 극장을 나서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년 기획 “장바구니”를 읽고 이 작품을 보고 싶다던 첫 독자과 함께 관람한 작품이었다. 그 글을 읽고, 누구라도 ‘이 연극 나도 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렇게나 빨리 이루어지다니! 하지만 나의 기대에 자신의 기대를 얹은 사람과 작품을 함께 본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었다. 게다가 낭독공연이라니, 보고 나와 서로 민망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불이 꺼지고,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뿌듯하고 배부른 기분이었다. 오랫만에 참 좋은 작품을 봤다. 누구에게라도 또 소개하고 싶다. 극, 연기, 연출, 무대, 그리고 가수들의 콜라보레이션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결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다행히 26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