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일 화요일

세 시간, 나는 왜 그곳에 있었나

박종주

0.
티켓박스에서 표를 찾는데, 매표원이 물어 왔다. “무대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면서 보실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그리로 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무대가 비어서야 곤란하므로, 네, 하고 답했다. 이쯤에서 나는 약간의 긴장을 한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 옆에 앉는다는 것, 그것은 배우들이 말을 걸어오는 일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시작 시각은 여덟 시였다. 그러나 일곱 시 사십 분이 되고 오십 분이 되도록 극장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로비에서, 분장을 한 누군가가, 여기저기로 달리기 시작했다. 유리문에 붙어서는 입김으로 이것저것을 그렸다. 그림을 다 그리면 문을 두드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극장 입구는 여덟 시가 되어서야 열렸다. 무대 위에 놓인 한 의자로 안내 받았다. 무대에는 디귿 자 모양으로 개인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뚫린 한 변에는 의자만이 놓여 있었고 그 의자에 배우들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무대에는 미음 자로 사람들이 가득 앉았다. 배우들이 앉은 맞은편 변 뒤로는, 또 다른 배우 하나가 벽을 보고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연극 〈2017 애국가〉(즉각반응 제작)는 이렇게 시작한다. 마이클 마르마리노스(Michael Marmarinos)의 구상을 토대로 스물한 명의 배우와 스태프가 공동창작한 작품이다. “함께함에 대한 하나의 공식”이라는 슬로건이 붙은 연극이다.

1.
이런저런 안내방송이 나오고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런웨이 모양의 조명이 들어온다. 배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따라 걷고 그 끝에서 각자의 포즈를 취한다. 그 다음에는 무대 외곽을 따라 돈다. 차례로 일어선 배우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즈음이면 대사가 시작된다. 한쪽에서 연도를 외친다. 예컨대 1997년, 한국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해다. 혹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해.
시작은 2017년이었던 것 같다. 배우들은 박근혜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외친다. 해가 바뀔 때마다 굵직한 사건들, 그러니까 성수대교 붕괴라든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 같은 것들이 호명된다. 중간중간 인물들 각각의 개인적인 사건들이 함께 이야기된다. 세월호에 대해서는 외치는 대신 입을 막았다 ― 이것이 세월호 사건의 재현불가능성에 관한 것인지 검열에 관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역사는 일어난다, 여기저기서”라고 배우들은 외친다. 그들이 외치는 ‘역사’는 모두 대한민국의 사건들이다. 개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사건들의 배경으로서 국가는 호명된다. 한참을 외친 후 배우들은 의자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먼저 앉아 있던 관객들의 사이사이다. 빠짐 없이 사람이 앉은, 디귿 자로 배열된 테이블과 의자들은 이제 토론장이 된다.
테이블들 위에는 물컵과 와인잔, 그리고 빈 접시가 놓여 있다. 잠시 후면 와인잔에 와인이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또 잠시 후면 접시 위에 빵이며 과일이며가 놓일 것이다. 모두 같은 구성의 테이블들 사이에 하나 눈에 띄는 테이블이 있다. 마이크가 놓인 테이블이다. 이 자리에 앉는 배우는 이 토론장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2.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질문은 이런 식이다. “당신에게 국가國家란 무엇입니까?” 배우들은, 혹은 인물들은, 제각기의 생각을 말한다. “질문하는 것도 하나의 권력이네요”, 대답을 거부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에 대한 대답들이 이어진다. 국가란 삶의 배경, 권력의 장치, 어떤 장벽 ― 모두에게 다른 의미다.
그러고보니 연극 제목에 등장하는 ‘애국가’도 국가國歌다. “당신은 애국가를 적절하게 부를 수 있습니까?” 적절하다는 게 무엇인지 사람들은 또 토론한다. 누군가는 한 소절을 몇 번이고 불러보기도 한다. 국가가 어떤 분위기여야 하는지, 새로운 국가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도시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질문들은 여러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토론은 때로 열기를 띠고 때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소재가 변하고 분위기가 변하는 가운데 변함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무대 위의 자리로 안내 받은 관객들이다. 약간의 긴장감과 약간의 궁금증을 가지고 토론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나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내게 질문하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3.
십오 분의 인터미션이 끝나면 제 2막이 시작된다. 1막이 진행되는 동안 물컵이며 와인잔이며가 바닥을 드러낸 것, 그리고 테이블 몇 개가 치워진 것을 빼면 무대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배우들은 테이블 위의 접시들에 먹을 것을 서빙한다. 그 다음에 배우들은 제자리에 앉기도 하고 자리 앞에 눕기도 한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온다. 그는 다른 이들을 차례로 불러내 역할을 맡긴다. 누군가는 1인 시위를 하고 누군가는 구걸을 한다. “공이 굴러가면” 이들은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박근혜의 얼굴이 그려진 공이다. 일곱 살 아이가 도로변에서 갖고 놀던 공이다. “공이 굴러간다.” 사람들이 자신의 배역을 펼칠 틈도 없이 장면이 전환된다.
공이 차도로 굴러가고, 아이는 달리는 차 앞으로 나오려 한다. 예의 그 한 사람은 아이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실은 아직인, 결혼식을 떠올린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다. 전애인에서부터 시부모까지, 사람들은 하객들이 된다.
제 1막이 진지한 토론이었다면 제 2막은 어째선지 가벼운 희극 같은 분위기다. 결혼식 이후에도 제 1막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들 각각이 자신에 대해, 자신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말이다. 결혼식, 근대식으로 말하자면 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의 구성을 알리는 행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몇 가지 억지스런 유머를 짜내기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4.
〈2017 애국가〉는 국가란 무엇인지, 공동체란 무엇인지, 개인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자폐 노총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어느 노숙인의 하지마비를 웃음을 위해 소비하기도 한다. 하나로 모아지지 않은 여러가지 대답들을 끊임 없이 내어 놓으며 〈2017 애국가〉는 이 소극장 속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듯 보인다.
제 2막을 이끌던 예의 그 한 사람은 연극의 마무리까지도 맡는다. 건배사다. 이야기하고 이야기했지만 국가가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거창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그는 되묻는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한 가지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래서 인물들은 무수한 이들에게 헌사를 바친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건배에서부터 옆집의 아무개를 위한 건배까지가 이어진다. 각자의 자리에 살아 있는, 죽음을 향해 감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그렇게 함께 하자는 메시지쯤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함께함에 대한 하나의 공식은 없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있을 뿐이다. 미지수에 상수를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그런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공동체란 것은 말이다. 조사도 술어도 없이 단속적으로 이어진 고유명사들, 그렇게 제시된 완성되지 않은 문장, 그것이 이들이 알아낸 공동체인 모양이다.

5.
다른 배우 한 사람이 무대 중앙으로 나오면서 연극은 끝을 향한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는 외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웃통을 벗고,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는다. “나는 더, 더, 더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여기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연극의 마지막은 연극이라는 장소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거나 혹은 선언인 듯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연극밖에 없어 연극으로 소통하고자 한다는 겸허한 제스쳐였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오히려 헛된 자기 도취로 보였다. 세 시간, 나를 무대에 앉혀 놓은 그 시간동안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공동체에 대해 묻고자 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사람은 다 다른 거야, 술자리에서 흔히 들리는 말 이상을 그들은 하지 못했다. 관객의 위치에 대해 묻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했지만 그들은 관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법을 몰랐다. (관객들과 함께 춤추는 대목이 한 번 있긴 했지만.)
실패한 실험이길 바란다. 실패한 실험은 다음 번의 실험을 요구한다. 다음 번의 실험이 또한 있기를 바란다. 토론장의 모습을 갖춘 무대를, 토론장의 내용을 갖춘 곳으로 또 한 번 변화시킬 다음이. 무대에 불려 온 관객들이 세 시간 내내 그저 관객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또 한 번 변화시킬 다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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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애국가〉
즉각반응 제작, 마이클 마르마리노스 구상, 공동창작.
2017.4.27.-5.7.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4월 27일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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