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9일 월요일

질투는 나의 힘, <배우 할인>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가라던 간절한 요청을 뒤로 하고(사람들이 망설이는 통에 한참을 자리에 앉아 나가지 못했다, 그 요청은 간절했지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극장을 나오며 극중 선배 역의 장만달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처지는 꽤 안타까웠다.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후배는 그가 버텨온 20년의 대학로 생활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연극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노래와 춤은 기술일 뿐이라고, 뮤지컬은 간지러워서 볼 수 없다고 큰소리 치는 그는 질투에 휩싸여 사실 노래가 되는 배우들을 부러워 하는 음치임을 고백한다. 후배에게 아는 척 하면서도 체홉과 입센을 헷갈리고, 사실적 마술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 중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땀과 소금, 바다를 연결시키는 그의 분석은 (아마 <노인과 바다>에 대한 내용인 것 같다) 어디에서 공감해야 할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그는 밤에는 잘 안 먹는다고 큰소리 치며 매일 술을 마시고, 숙취때문에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 버리기도 한다. 그의 연기는 더욱 문제인데, 20년간 대학로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연출 또는 극단의 대표가 맺고 끊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연기 못하는 배우가 하나쯤 있다 해도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배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부러 과정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장만달의 무대 위 연기는, 정말 이런 연기를 만나게 될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과장되고 어색한 연기를 하던 선배는, “마님, 안방을 따끈하게 데워뒀구만요”라는 한 줄 짜리 대사를 벌벌 떨며 하던 후배에게 점차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후배 최현우가 죽고 자신이 살아 남는 결말은 첫 공연 이후 후배가 살아 남는 것으로 바뀌고, 후배에게 점점 비중있는 배역을 빼앗기고(<맥베스>에서 맥베스보다 맥더프가 더 비중있는 역할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어 장만달이 안방을 데워 두는 하인을 연기하고, 후배가 그 때 자신의 역을 연기하는 상황까지 맞게 된다(이 작품은 <맹진사 댁 경사>인 것 같다). 물론 장만달이 그냥 지켜보지는 않는다. 대사를 헷갈려 하는 후배의 대본을 몰래 찢어 버리고, 자신과 붙는 장면에서 (선배의 권위를 내세워) 살살하라고 요구한다. 선배의 찌질함은 최현우가 <맨 오브 라만차>에 캐스팅되었을 때 극에 달한다. 뮤지컬 넘버를 연습하는 후배를 몰래 찾아가 연습을 지켜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아 후배의 연습을 방해한다. 그에게 질투는 돌파구 없는 삶을 버텨낼 힘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b.com/baewoo


이렇게 <배우 할인>의 이야기는 장만달의 질투로 시작되고, 그의 찌질한 행동들 때문에 진행된다. 그의 질투가 <배우 할인>의 서사가 버틸 수 있는 힘처럼 보인다. 장만달은 연기 못하는 배우, 질투에 몸서리치는 나이 든 꼰대, 공연을 망치고 창피함에 손목을 긋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간으로, 그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점점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너무 착하고 순진한 최현우는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선배의 유치한 행동에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배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연을 엉망으로 만들고 손목을 그은 선배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며, <맨 오브 라만차>에 캐스팅 된 상황에서도 연기 못하는 선배와 무대에 서서 손을 잡는다. 우리는 이런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선배가 아무리 찌질하게 행동해도 부르르 한 번 화를 낼 뿐, 다시 한 번 선배를 어르고 달래는 후배는 정말 성인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런 후배, 이런 사람은 존재할까? 이러한 의아함이 극중 공연 장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최현우가 대기실 장면에서는 과장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이 작품은 사실 (포스터 어디에도 원작 표시가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지만) 데이비드 마멧(David Mamet)의 <A Life in the Theatre>를 번안, 각색한 작품이고, 극단 인어가 2013년 2인극 페스티발에 <극장 속 인생>으로 출품하기 전, <라이프 인더 씨어터 (연극 열전)>라는 제목으로 2008년 공연된 바 있다. 이 작품이 대기실과 무대의 빠른 장면 전환, 이순재, 전국환 배우를 내세워 노배우의 질투 뿐 아니라 가르침, 극장에서 살아온 그들의 인생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면, <배우 할인>은 이십대와 사십대 배우를 기용함으로써,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은 두 배우를 질투라는 감정(만)으로 움직이게 한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아들을 낳았다면 너 같았을 거야”라는 대사를 이순재 배우가 홍경인 배우에게 했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장만달이 최현우에게 했을 때, 그것은 선배가 보여주는 질투의 억지스러움을 더욱 강조하고,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백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보았던 자신(아마 우리 모두)을 반성(reflect)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질투에 휩싸인 장만달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은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지 않은 것들, 미처 설명되지 않은 그의 삶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를 이해하기에는 극중 힌트가 너무 적다. 그래서 그는 우스꽝스러운, 찌질한 선배로 남아 버린다. 그의 질투가 극 전반을 지배하는데, 이런 캐릭터의 단조로움은 전체적인 극 전반을 단조롭게 만들었다. 장만달과 최현우의 갈등이 보다 복합적으로, 또는 첨예하게 상호작용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지점들은 충분하니, 배우로 살아가는 것, 또 나이가 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훨씬 감동적일 것 같다.

또한 삽입된 몇몇 극중극의 장면들은 신파조의 어색한 장만달의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그에 대해 알고 느끼게 해주었지만, 전도 유망한 최현우의 연기를 보여주기에는 다소 느슨했다. 유명한 작품들의 중요한 장면들인데, 그 장면들 나름의 색들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배우에게 무대 위의 삶과 무대 밖의 삶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것일지라 해도, 무대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로 살아 내는 공간이므로 그 위에서 최현우의 연기가 더욱 빛났다면, 장만달의 질투와 최현우의 변화가 더욱 실감났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극중극 장면이 더 빠르고 재미있게 구성된다면 작품 자체의 힘도 더욱 강력해 질 수 있을 것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러면서 나보다 재능이 있는 젊은이를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여지, 그 가능성은 무척 크다.  앞으로 5주간, 지치지 않고 더 좋은 작품, 더 힘을 받아 탄탄해지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 두가지, 연극 배우들에게 뮤지컬 계약은 성공이나 자아 실현과 같은 것일까? 왜 제목을 <배우 할인>으로 바꾼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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