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일 목요일

리어왕, 누가 왕을 가장 사랑하는가

임승태

1.
등장인물과 플롯에서 몇 가지 주요한 변경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너릴과 리건의 남편인 올버니와 콘월 공작, 그리고 글로스터의 장남 에드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에드거가 배제됨으로써 몇 가지 사건의 변화가 불가피했다. 두 눈을 잃은 글로스터는 도버 해협에서 리어와 만나고, 곧 절벽에 몸을 던진다. 에드거가 눈먼 아버지의 자살을 막고자 거짓말하는 장면을 해석적 입장에 따라 부차적으로 취급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충성스런 신하인 글로스터가 왕의 면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광대가 더는 익살을 부리지 않고 진지해지는 것 역시 아마도 등장인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으나 광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측면에서 이질적이다. 마지막 장면은 에드거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에드먼드가 전투에서 패배한 코딜리어를 곧장 칼로 찔러 죽이고 이어 켄트는 활로 에드먼드, 거너릴을 차례로 쏴 죽인다.
한편 다른 배역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에드먼드가 더 많은 역할을 흡수했다. 서두에서 에드먼드는 원작의 버건디 공작을 대신하여 코딜리어의 구혼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직전 사생아라는 이유로 아버지 글로스터에게 차별 대우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 터라, 그가 리어가 가장 사랑했던 딸인 코딜리어의 구혼자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

2.
이러한 시도가 더 많아져 마침내 국악에서도 바그너와 같은 거대한 종합예술작품이 등장하는 날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각의 요소를 안배하고 완급을 조절할 연출가와 프로덕션에 맞춤하게 드라마를 다듬어줄 드라마터그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겠다. 지금은 프로덕션을 받치고 있는 각 바퀴가 제각기 움직이는 바람에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고 말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하나씩 뜯어보면 국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축약되고 각색된 <리어>는 원작의 응집력을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연희를 연결해주지도 못했다. 음악이나 소리는 전문적이었으나 드라마와 동떨어져 있거나, 없으면 더 좋았을 법할 때에도 배경으로 깔린다. 풍물을 통해 전투 장면을 표현한다는 취지는 좋았고 연희단의 공연도 흥겨웠다. 하지만 풍물 공연이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의미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직 스크린에 비친 영상과 전쟁 효과음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는데, 때로는 풍물 소리와 뒤섞여 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임현빈이 맡은 소리는 애초 이러한 유형의 공연에 대해 내가 기대했던 바이지만, 그가 등장하는 소수의 대목에서만 셰익스피어와 국악이 직접 만날 뿐이라는 게 아쉬웠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TV 사극을 생각나게 했고, 대사나 몸짓에서 국악과 어울리는 측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종일관 사용되는 영상은 비단 이 공연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셰익스피어를 공연할 경우 재고해야 할 일이다. 영화가 아닌 이상 셰익스피어를 사실적으로 접근해서는 본전을 찾기 어렵다. 빈 무대나 자연광, 변장 등 한국 연극 전통과 맥이 닿아 있는 셰익스피어 본연의 요소들을 이러한 성격의 공연에서 버려야 할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하겠다.

2017년 5월 31일 이화여대 삼성홀
주최: 문화가있는날, 문화체육관광부
작곡 및 음악감독: 박경훈, 이아람
작창 및 소리광대: 임현빈
연주: 박경훈, 이아람, 성시영, 이정석, 전계열, 최태영
안무: 박준희, 소광웅
무용: 소광웅, 이세미, 유지희, 김병훈, 김우정, 조연정
풍물: 평택연희단
배우: 손성호, 남성진, 신현종, 윤상호, 이영숙, 김지은, 원종철, 윤도훈, 김진영,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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