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6일 월요일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고백

<지금도 가슴 설렌다>, 이혜빈 작, 손기호 연출, 선돌극장


by 산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저 유명한 CM송이 어느 날, “에이, 이제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로 바뀌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던 마음은, 이제 말을 해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만에 바뀐 광고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지만, 조금은 쓸쓸한 마음을 안겼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작은 아빠, 숙모, 옆집 할아버지와 주인공 달리, 달리의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소하다. 사소하고 시시한 그런 일들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심들도 있고,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숨겨진 마음들도 있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그 마음들이 오가고 전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우습고,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고, 조금은 먹먹한 기분도 든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고백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말을 들은 배우의 눈도 순간 빨갛게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 전, “진짜 첫 사랑은 너”였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울이 오기 직전, 시험공부를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 도서관에 가던 날, 보온 도시락에 넣어진 엄마의 편지였다. 이미 십여년 전의 일이라, 거의 모든 내용이 생각나지 않지만, “진짜 첫 사랑은 너”였다는 엄마의 고백만은 지금도 생각 난다. 그 편지를 읽었을 때 내 기분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날 그 편지를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리다 결국 피곤해져서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지금 그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으로 같이 살아 간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참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일인 것 같다. 단순하고, 복잡한 이 마음들을 <지금도 가슴 설렌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이, 그들 중 누군가가 내 가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작은 극장 안에서 여기저기 터지는 울음을 듣고, 울컥하며 움찔거리는 뒷모습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행복해지려고 애쓰면서, 때로는 다투면서, 손짓 하나 작은 마음 하나에 크게 실망하고, 감동하면서.

  극 내용은 단순하다.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감상에 젖을 만큼 관람자에게 여유를 준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꽤 재미있다. ‘낭독 공연’이라는 형식이 이런 재미를 만들어 낸 것일텐데, 예를 들면 “절뚝거리며 걷는다”고 지문을 읽어 주지만 할아버지는 꼿꼿하고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든지,대본을 들고 읽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분명이 나누어 지는 것, 주인공 ‘달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낭독하지 않고 홀로 움직이며 연기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지문과 다른 배우의 나머지 행동을 상상해야 하고, 보지 않고도 대사를 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한데에도, 떳떳하게(?) 무대 위로 올라온 대본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 대본을 낭독하든, 낭독하지 않고 연기를 하든 흔들림없는 배우들의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가만히 앉아 대본을 들고 읽을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 등장인물 그 자체였다. 무대도 거의 텅 비어있고, 배우들은 행동도 하지 않는데, 이 극이 드라마가 되고,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며, 과연 연극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의 목소리, 사람의 표정은 정말 강렬한 것 같다. 수많은 연극을 보며 배우의 몸, 배우의 움직임 등에 감탄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 대본을 들고 표정으로, 목소리로 전달하는 폭발적인 감정들은 새롭고, 또 대단했다(대단했다고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연극들이 만들어질까? 이 작품의 배우들, 연출, 작가의 다음 행보도 궁금해진다.

오랫만에 극장을 나서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년 기획 “장바구니”를 읽고 이 작품을 보고 싶다던 첫 독자과 함께 관람한 작품이었다. 그 글을 읽고, 누구라도 ‘이 연극 나도 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렇게나 빨리 이루어지다니! 하지만 나의 기대에 자신의 기대를 얹은 사람과 작품을 함께 본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었다. 게다가 낭독공연이라니, 보고 나와 서로 민망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불이 꺼지고,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뿌듯하고 배부른 기분이었다. 오랫만에 참 좋은 작품을 봤다. 누구에게라도 또 소개하고 싶다. 극, 연기, 연출, 무대, 그리고 가수들의 콜라보레이션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결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다행히 26일까지 연장 공연에 들어 간다.


2014년 1월 2일 목요일

"장바구니"를 시작하며

by 산책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면, 어떤 이유로 이 공연을 선택했는지 궁금하고, 살며시 다가가 묻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공연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공연이,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말해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드라마인의 필진들은 공연을 보고 리뷰를 씁니다. 독자들은 리뷰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연극이 영화보다 접근성이 쉽지 않은만큼 공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읽을 때가 많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의 리뷰를 읽고 ‘이 공연을 한 번 보고 싶다.’라는 마음 든다면, 무척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직 보지 않았지만 이번 달에 예매한 공연들을 소개합니다.

2014년 1월



<지금도 가슴 설렌다> , 1월 26일까지, 선돌극장.

“지금도, 나는, 니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극단 이루의 손기호가 연출한 배우-가수의 콜라보레이션 공연입니다. 남산예술센터의 ‘초고를 부탁해’프로그램에서 가능성은 인정받고 발굴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제가 이 작품을 고른 첫 번째 이유는 사실 ‘설렌다’는 말 때문입니다. 설렌다는 말은 그야말로 마음을 살랑살랑 움직입니다.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을 17세 소녀 달리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배우와 가수의 협업, 그리고 연기가 아닌 낭독으로 이루어 지는 무대가 어떻게 구성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전 손기호 연출의 <김포 사는 분이, 열이, 덕이>라는 작품을 관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무척 마음이 아팠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너무 슬프거나, 가족의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여구없이> 1월 15일 ~ 29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나머진 다 미사여구일 뿐이잖아.”
이 작품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 무대에 대해 궁금한 마음으로 예매했습니다. 초연 작품들은  때때로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척 신선한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공연 예술센터에서는 2008년부터 ‘봄작가 겨울무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춘 문예 당선작을 무대화하고 있습니다.  <미사여구없이>는 2013년 신춘 문예 당성작이고, 지난 11월에 이미 공연되었는데, 그때 놓친 아쉬운 마음에 재공연 소식을 보자마자 예매했습니다. 줄거리를 살펴보니,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말꼬리를 잡아 가며 격렬하게 싸우는 두 남녀, 헤어진 지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두 남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재치있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제게는 익숙치 않지만, 대학로가 주목하는 배우들이라고 하네요. 

<레드> 1월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 소극장

<레드>는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마크 로스코는 추상회화로 유명한 화가인데, 거대한 캔버스를 여러 색면으로 나누어 채색한 작품이 유명합니다(나도 할 수 있을 것같다고 충분히 생각할만한).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아름다운 색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붉은 빛의 캔버스 앞에 서 있으면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로스코가 어떤 인물로 그려질지 무척 궁금하고, 로스코를 연기할 강신일씨도 기대됩니다. 2013년 <광부화가들>에서도 화가 역을 하셨는데, 자신의 예술관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장면들이 참 좋았습니다.<레드>에서 보여주실 화가로서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됩니다. 배우 강필석은 2007년 뮤지컬 <브룩클린>에서 처음 봤는데 무척 목소리가 좋은 배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배우가 채워나갈 이야기는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였으면 좋겠습니다. 
12월 21일에 개막해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관극한 것 같습니다. 저도 얼른 보러 갈 생각입니다. 
(로스코의 작품을 더 보고 싶으시다면다음의 링크 참고
http://www.pureartspace.com/class.asp?lx=small&anid=62&nid=633)



* 공연을 더 예매하면 업데이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