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4일 월요일

남자들, 그들의 이야기, <히스토리 보이즈>

by 산책

<히스토리보이즈>.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연 검색을 해보면 이 작품을 여러 번(일주일에 한 번씩 보러 가는 관객도 있었다!) 본 관객들도 무척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모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여성 관객들인 것 같다. 린톳 선생님을 제외하면 학생도 선생님도 모두 남자다. 옥스포드나 캠브릿지에 가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특별반 아이들은 그들의 시절을 보내고,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 히즈 스토리를 남긴다.


  특별반 아이들인만큼 그들은 시와 경구들을 줄줄 외운다. 셰익스피어며, 오든, 라킨 T.S 엘리엇 등이 줄줄히 등장한다. 비록 니체를 니쇼라 읽을지라도, 그들은 대학에 가기 전 니체까지 읽는다. 그렇게 그들의 토론은 고등학생의 그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폭넓고 깊이가 있다. 내 뒤에 앉은, 꽤 명문대 학교 점퍼를 입은 대학생들이 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했다. 나는 그들의 불평이 거슬렸고, 우리의 교육 제도에 대해 불평을 하고 싶었다. 어윈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다르게 생각하라고,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지루하지 않은 답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한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정답을 외우고,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튀지 않도록 배워오지 않았나. 따라서 그들의 자유로움, 그들의 공부와 놀이가 우리에게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내 뒤에 앉은 학생들이 불평한 것과 달리 영국 문학사며,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사전 담당인 포스너가 중요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풀이해 준다. 이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배려하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설정으로 읽힌다 (이와 별개로 극장 밖에서는 친절하게 극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문학과 역사적인 사건을 설명해 주는 드라마터그 노트도 팔고 있었다). 그렇게 노트를 들여다 보며 불쑥 일어나 개념을 설명해 주는 포스너는 대학 졸업 후 신경 쇠약을 앓는 작가가 된다. 정말 작가가 되고 싶었던 스크립스는 아직 작가가 될 꿈만 꾸고 있다. 아, 이쯤해서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 8명은 모두 명문대에 합격했고,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음을 말해 주며 3시간 10분의 공연이 끝난다.

 8명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언급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사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젊음과 기대, 두려움, 지나갔으면 좋겠을 사랑,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을 마음들 모두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헥터는 문학이 어느 순간 손을 내밀어 자신의 손을 잡아 주는 것 같은 순간이 온다고 가르치지만 3시간 10분 동안 내게 진짜 손을 내 밀어 준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지식 전달은 원래 에로틱한 방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마치 안수와 같이 오토바이에 돌아가며 아이들을 태우고 성추행을 하는 헥터도, 자신의 성 정체성도, 출신 학교도 속이는 어윈도 나는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 남자들, 그들만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유일한 여자인 린톳 선생님이 여자로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속터지는 (정확한 대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분통을 터뜨린 것은 확실합니다) 일인 줄 아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남자들의 무능력에 주석을 다는 일이야. 역사는 양동이를 들고 남자들 뒤를 쫓아가면서 청소해주는 여자들인 거라고” 


그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난데 없이 분통을 터뜨리고,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는 어윈에 의해 홀로코스터 마저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는 식의 새로운 시선을 배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 합격한 여덟 명의 학생들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할 뿐이니까. 린톳은 설사 등장하지 않았다해도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을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다시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여성 관객이 많은 걸까, 여러 번씩 관극하는 관객들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하는 것일까.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좋았다. 기고만장한 데이킨이나 소심하고 여린 포스너, 나래이터로서 우리에게 종종 뒷 이야기를 해준 스크립스를 비롯해 모두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어윈을 연기한 이명행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에 감동하는 걸까? 역사나 문학을 배운다는 것, 고등학생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어 가는 것, 사랑하고 망설이는 것들에 감동하는 것일까?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학, 역사 들은 그야말로 지적이고, 때로는 관능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앨런 배넛은 왜 영국 최고의 극작가인 걸까? 어윈의 영향인지(이부분에서 작품의 힘을 인정해야 겠네요), 다르게, 거꾸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인물들의 동기, 행동 이런 것들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아서 일지 모르겠다.

얼마전 파일럿 방송을 마친 <나는 남자다 (KB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남중, 남고, 공대 출신의 남성 방청객 250명과 유재석을 비롯한 6명의 남자 MC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몰래(?) 시청하는 여자들은 어떤 재미를 느꼈을까? 비슷한 맥락에서 궁금하다.

남자들을 위한 방송이지만 몰래 시청하는 여성들을 환영한다는 경고가 재미있다.

우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몰래 보고 있다. 객석에 앉은 우리는 조용히,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를 숨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본다(시작 전, 조용한 연극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주의사항을 알려 준다). 데이킨의 데이트며, 헥터의 성추행, 어윈의 성 정체성 등 그들만의 이야기를 몰래 훔쳐 보고 듣고 있다. 프로이트나 라캉으로 가지 않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관음증을 자극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즐기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우아하고 지적인 그들의 토론을, 우아하게 즐기는 것일까?

철저하게 그들만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끝나는 <히스토리보이즈>와 달리 <나는 남자다>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남성들의 여신 “수지”가 등장했을 때라 할 수 있겠다. 플라워의 <엔드리스>를 목청껏 부르던 것보다 훨씬 큰 함성으로 “수지”를 외치고, 그녀에게 꽃 한송이 받기 위해 방청객들은 무정부 상태(?)가 된다. 이 순간 몰래 시청하던 여자 시청자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내 자리를 대체하고도 남을, 아니 전혀 내가 가까이 갈 수 없는 여신과 같은 존재는 순식간에 250명의 남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소유한다. 이는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그들과 같이 살고 있는 린톳이 그 남자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고,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그들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나는 남자다>가 여신을 등장시키는 이런 포맷을 계속 유지한다면, 몰래 보는 여자들은 쉽게 떠날지도 모른다.)

남자들만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떠 올려 보자. 요즈음 박칼린이 연출한, 여성 관객들만 관극할 수 있다는 <미스터쇼>가 나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정보 교환의 보고인 미용실에서 듣게 되었다. 18세 이상의 여성 관객만 입장할 수 있으며 (정말 몸 좋은) 남자 배우들만 등장해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다고 한다. 수줍어 하던 관객들이 점점 공연을 즐기게 되고 (이것을 어떤 공연이라 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남겨두자) 점점 입소문이 나서 관객도 꽤 많단다. 시작한지 3주 가까이 되었는데, 공연 후기들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즐겼다는 후기들이 대부분인 것같다 (모든 의상을 탈의하는 순간 암전이 되는데 불 켜라고 소리치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관객들은 무엇을 보러 가서, 무엇을 즐기는 것일까? 우리는 <히스토리 보이즈>와 <미스터쇼>의 다른 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남자들만 무대에 오르는 이런 일련의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 월 25일 하루만 남자 관객도 입장 가능하다고 한다.

 공연 한 편 보고 쓸데 없는 이야기가 참 길었다. 어떤 블로거는 이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이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역사, 문학, 심지어 불어까지 배우고 싶다고 후기를 남겼다. 이 반응에 대해서도 무척 공감한다. 그렇지만 여성 관객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것도 그렇게 자주, 많이 보는 관객들이 왜 많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극장은 여자들로 넘쳐나고, 이십대 중반 이후의 여성들을 붙잡기 위해 문화예술 분야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여성들은 이제 경제력을, 문화 예술 분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우리로 하여금 보도록, 즐기도록 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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