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일 수요일

[DRAMATIC.CITY-1] “놀이(Play), 당신의 감각을 깨운다.” 우메다 테츠야 《0회초, 0회말》

by 이흔정

<0회초, 0회말>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제목의 공연. 단 한 장의 사진과 한 문장의 소개가 전부였다. 


“일상 속의 공간과 사물들 속에서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는 우메다 테츠야의 기묘한 세계를, 아이들처럼,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그저 경험한다.” 

과연 ‘아이들처럼’ 즐기고 경험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무작정 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잠깐의 후회가 들었던 건 이번 공연의 장소인 ‘문래예술공장’을 못 찾아서 헤맬 때였다. 문래예술 ‘공장’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오늘의 공연장은 프로시니엄 무대와 객석이 갖춰진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니다. 그리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길에 보이는 그 곳의 풍경 역시 체계적인 계획하에 잘 조성된, 문화생활을 위한 소비와 향유의 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 주변, 대학로 소극장들의 주변과 다르다는 것이다. 문래예술공장은 원래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옛 철재상가 자리였는데, 이것이 서울시창작공간의 일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건물 주변은 애초에 문화와 예술을 위하여 조성된 소비공간이 아니라, ‘생산’과 ‘노동’이 주가 되는 생활공간이다. 그러한 곳에 예술이 침입(?)하여 동일한 물리적 공간을 기존의 건물이 지어진 목적과 달리 ‘전유’하고 있는 곳이다. 주변공간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공연장을 가는 도중 스쳤던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공연’에 까지 이어져 공연의 이미지와 계속해서 중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텅 빈 시멘트 바닥에 잡다하게 널브러진 폐품과 도구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 시작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객석에서 걸어 나와 ‘쇠 파이프, 드라이아이스, 캔, 필름 통, 물’ 등을 가지고 뭔가를 한다. 소꿉놀이 하는 애들을 보면 저들만이 아는 약속으로 그 놀이에 일련의 질서가 갖춰져 있듯이,<0회초, 0회말>도 한 동안 관객은 그들의 과학실험 같기도 놀이 같기도 한 일련의 행동을 아리송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다. 거의 세 번째 학생쯤 가서야 그 행동들의 ‘질서’와 ‘약속’을 알아차릴 수 있다. “쇠파이프를 쓸어 소리를 내고-버너 불에 달구고-그것을 드라이아이스에 꽂고-캔에 물을 받아 버너에 끓이고-쌀을 넣고-드라이아이스를 조각 내고-필름 통 안에 그것을 넣고-등등-그러다 알람이 울리면 다시 시작”




사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 공연이 종료되었을 때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얼마나 놀 줄을 모르기에! 한 사람이 어떻게 노는지 보는데 3만원을 지불한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난을 보고 나오는데 왠지 마음이 가벼워지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나를 포함해 그 사람의 장난에서 습관처럼 ‘의미’와 ‘논리’를 찾으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관객들이 생각나서였을까? 한편으로는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창작욕 혹은 놀이하는 특성’을 배짱 좋게 공연으로 올린 우메다 테츠야라는 작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열을 받은 파이프가 드라이아이스에 꽂혀 소리가 나고, 물이 떨어져 가벼워진 페트병이 중력에 따라 하늘로 올라가고, 드라이아이스가 넣어진 필름통은 폭발하듯 펑펑 튀고, 쌀이 약품통에서 익자 김이 나고 알싸한 냄새가 퍼졌다. 낯선 공간에서 예측되지 않는 현상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관객의 시각, 청각, 후각은 일시에 긴장상태가 되고, 본능적으로 그 과정의 질서를 파악하려고 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처음과 끝’을 파악하게 되고, 다시 같은 과정이 반복될 때 관객의 감각은 한층 느슨해지고, 또 전과 다른 우발적 현상과 실수에서 웃게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린 학생이 드라이아이스가 쪼개지지 않자 발로 밟았다.) 처음에는 ‘공장의 폐품들로 밥을 짓겠다는 것인가, 그러면 그 의미는 뭘까’ 하고 혼자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과잉해석이다. 그저 작가는 주변의 물건들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이것과 저것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실험하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물리적 시공간에 존재하는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한 인간으로서.
우메다는 이번 공연을 몇 일 앞두고 사고를 당해서 병실에 누운 채 원격화상시스템으로 학생들에게 행동을 지시했는데, 그렇게 반복된 과정이 시간 속에 쌓여가자 나중에는 마치 그가 하나의 ‘작은 우주 혹은 세계’를 만들어낸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공연을 보는데 공연장 가는 골목길 철공소에서 본 젊은 청년, 검정색 장갑과 검정점퍼를 입고 뭔가 쇳덩이를 돌리고 있던 청년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0회초, 0회말>은 마치 문래동 철공소에서 일하는 아버지 옆에서 아들이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만들어낸 동일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 같은, 그래서 일상적이면서 묘하게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하는 공연이었다.




이쯤에서 우메다 테츠야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 그는 주로 폐품이나 생활용품, 가전제품들의 회전운동, 기압, 중력의 변화에 따른 현상을 이용해 빛이나 소리,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여 온 작가이다. 그가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했던 <Out of Performance>(2010), <x_sound: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2012) 등의 작품을 찾아보면 그가 하고 있는 익숙한 듯 낯선 놀이에 좀 더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

www.siranami.com (우메다 테츠야 작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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