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9일 화요일

'덕질'로 연극 읽기: <카포네 트릴로지>

글쓴이_성지수

오, 나의 ‘오빠!’


‘오빠들’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물론 친오빠 얘긴 아니다. (친오빠 얘기였다면 ‘오빠 새끼’로 이 글을 열어야만 했겠지.) 누군가에게는 ‘서태지 오빠’이고 누군가에게는 ‘나보다 어린 여진구 오빠’인 그런 ‘오빠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사어로는 ‘우리 애기들’이 있다.) 우린 각자의 ‘오빠’를 사모하고 동경하여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누비며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을 긁어모은다. 무대인사, 팬 사인회, 음악방송처럼 직접 볼 수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신청하고는 디데이 전후로 몇날 며칠을 설렌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너의 ‘오빠’는 누구였었니, 라고 물어보면 눈빛이 아득해지고 목소리가 아련해지면서 “내가 중학교 때 말이야...”라는 말로 썰을 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썰은 “그렇지만 이젠 다 졸업했어.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따위의, 시크함을 보여줄 수 있는 대사로 끝이 나곤 한다.)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건져 동화 속으로, 환상 속으로 날 이끌었던 ‘오빠’를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돌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 몇 백 만원씩 쓰는 십대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도 가만히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빠들’의 노래 테이프를 사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빠들 사진이 붙었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할 것도 없지만 값은 훨씬 더 비싼 다이어리를 덜컥 사고, 멋진 사진을 찾아 컬러 프린트한 후 그걸 코팅까지 해서 간직했던 자신의 ‘흑역사’가 뇌리를 스치게 마련인 것 같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는 나의 ‘오빠들’을 중학생 때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오빠들’이 내 인생을 “찾아왔다.” 내 십대 시절을 회상할 때 ‘오빠들’을 빼 놓고 얘기한다면 학교와 학원밖에 없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나날들뿐일 것이다. 나는 ‘오빠들’을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위해 시간관리라는 걸 시작했고 ‘오빠들’을 한 번 더 보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오빠들’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십대 때의 나의 영웅(!), 나의 ‘오빠들’은 뮤지컬 배우들이었다. 당시엔 뮤지컬이 지금만큼 보편화된 장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뮤지컬은 ‘덕후’들의 세계이긴 하지만, 누군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얘기를 듣던 그룹 중 한 두 명은 자기도 뮤지컬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며 자기가 본 한 두 작품을 주워섬기는 근래와는 달리, 당시 열 서너 살인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적어도 2주일에 1-2편은 꼭 보러간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2주일에 1-2편!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연장에 갔던 셈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돈을 많이 받았던 것도 아닌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짓이었다. 나는 사연이 채택되면 초대권을 주는 라디오에 열심히 사연을 써 댔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갖가지 이벤트에도 응모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하면 뮤지컬 두 개 보여주기,’ ‘3000제(가능한 경우의 수의 문제를 다 모아놓았다는, 악명 높은 수학 문제집)를 일주일 만에 다 풀면 R석 예매 허락해주기’ 같은, 엄마와의 약속을 걸기도 했다. (아 어머니, 불효녀는 웁니다!) 뮤지컬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이야 요즘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것 같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당시 나의 정신을 빼 놓은 요소 중 하나는 공연이 끝나면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오빠들’이 나를 기억해주기까지 한다는 점이었다.

오빠들이 날 기억해준다! 나를 보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세계적으로 수억만 명의 팬이 있는 아이돌을 좋아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그러했다. 한 친구가 자기 ‘오빠’의 생일을 맞아 정성스레 ‘오빠’ 사진에 왕관과 케이크를 그려 넣다가 갑자기 휙, 모든 걸 집어 던지면서 (욕설과 함께) “XX! 이 새낀 내가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데!”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내 맘속에서 ‘나의 오빠들의 특별함’을 부각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우리 ‘오빠’가 다른 팬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내게 자기 소지품을 잠시 들고 있으라고 맡겼던 어젯밤 일을 회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본인이 던졌던 것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았고, 자신의 더러운 성질 때문에 ‘우리 오빠’ 얼굴에 구김이 갔다며 아까보다 훨씬 더 슬퍼했다.)

고등학교를 입시 집중형 기숙학교로 가게 되면서 나의 팬질은 자연스레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내 방 한켠 리빙박스 속에는 그 때 모았던 프로그램, 시디, 사인북, 팬 아트 등이 빼곡히 쌓여있다. 십 년 넘게 지속된 엄마의 ‘이제 필요 없으면 버려라!’ 공격을 뚫고 살아남은 나의 추억인 셈이다. 하지만 난 확실히 ‘뮤덕’을 ‘졸업했다.’ 뮤지컬을 본 지도 참 오래됐고, 요즘 ‘뮤덕’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용어들도 참 생소하다. 누가 나온다고 하면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같은 공연을 또 보았던 것과 달리 이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인터뷰 기사나 페이스북 광고 같은데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여전히 잘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때 한창 애인에게 공개 프로포즈하는 걸 봤었는데, 벌써 애 아빠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강산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아련아련돋음’을 선물해주는 ‘그 때 그 오빠들’은, 참 어디 가서 얘기하기 쑥스럽고 민망하고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내게 참 소중한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덕질에 의한, 덕질을 위한, 덕질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2015.07.14 ~ 2015.10.04)>는 철저히 이 ‘오빠들’ 중 한 사람 때문에 보게 된 작품이다.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오랜만에 공연을 보러 직접 발걸음을 떼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가 나오는 서로 다른 2편의 작품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단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기 전에 미리 정보를 찾아보는 걸 싫어하는 나는, 독립적인 옴니버스 식의 작품이 3편 있다는 것과 더블 캐스팅이라 날짜를 잘 찾아야 그 배우를 하루에 두 번 볼 수 있다는 것만 숙지했을 뿐, 이 연극에 대한 그 이상의 정보를 전혀 갖지 않은 채 공연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날 거기서 나는 일련의 독특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우선 극장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분이 묘했다. 일반적인 ‘연극 극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로비의 건축구조 때문도 아니요, 연극이라고 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색다른 대도구가 놓여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곳이 좀 휑하긴 했지만, 딱히 로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놀란 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던 대기 관객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먼저 한 여학생이 바닥에 주저앉아 기둥에 기대어 배터리 수혈을 하며 폰을 보고 있었다. 어디서든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 광경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가 ‘나는 이 공간이 매우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아우라를 강하게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자주 명동예술극장이나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에 들락거려도 그곳에서 느낄 수 없었고 남이 느끼는 걸 본 적도 없었던 그런 안락함을 그 관객은 누리고 있었다. 마치 자기 방이나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듯한 모습이었지, 우리가 ‘극장’을 찾을 때 느끼는 약간의 긴장감, 극장에서 기대되는 특정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한 번의 당혹감은 티켓팅을 할 때 왔다. 보통 티켓팅이라 하면 예매관객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봉투에 들어있는 티켓만 건네받으면 끝이 난다. 그런데 이때엔 티켓팅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내 이름을 물어본 스탭은 내가 8시 공연만 예매를 했는지, 9시 30분 공연도 예매를 했는지 되물었다. 내가 둘 다 예매했다고 하자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그는 내게 종이 한 뭉텅이를 쥐어주었다. 당황한 내가 엉거주춤 서 있었던 것도 잠시, 그는 뭔가를 빠뜨렸다면서 종이 뭉치 중 몇 개를 다시 가져가서 도장을 찍더니 내게 돌려주었다. 그제야 그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본 나는 뜨악하였다. 내가 받은 건 티켓 두 장과 배우 두 명의 얼굴 사진이 박힌 무언가, 그리고 도장을 찍어서 다시 준 커피 스탬프 쿠폰이었다. 커피 스탬프? 여러 잔을 마시면 한 잔을 꽁짜로 주는 그런 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공연을 보면 1층에 있던 그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제휴라도 했단 말인가? ‘커피 쿠폰’을 더 살펴보던 나는 2차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 쿠폰이 아니었다. 스탭이 정성스럽게도 칸마다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어준 그것은, ‘연극 쿠폰’이었다. 그것도 칸이 12칸이나 되면서, 그걸 다 채워봤자 ‘1회 무료 관극’이 아니라 ‘1회 만원에 관극’인, 아주 짜디 짠 그런 쿠폰. (그러고 보니 예매를 할 때 짜증났던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티켓 할인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연극에는 보통 대학생 할인, 관련 종사자 할인, 하다못해 이벤트성 할인 등등 다양한 티켓 할인이 있고 난 적어도 그 중 하나에는 해당되어 늘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공연을 봤었는데, 이 연극엔 내가 받을 할인이 딱 한 개 있었다. 그것은 ‘재관람 할인’이었다. 나는 첫 번째 공연은 제값 3만원을 다 주고, 두 번째 공연은 재관람 할인, 10% 할인을 신청했다.) 열 두 번이라니! 얼마나 좋은 연극이길래 (할인도 거의 안 해주는 걸) 누가 그렇게 많이 보나 싶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로비에 있던 대다수의 대기관객이 ‘재관람 관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까 그 폰 충전하던 관객을 어디서건 눈치 보지 않는 건강한 분인가 보다 하고,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생각했던 것이 영 틀린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분은 아마도 매번 다른 무늬의 도장을 찍어주는 쿠폰을 들고 배우 얼굴이 찍힌 종이(아마 티켓 홀더? 아직까지 용도를 모르겠다.)를 모아가며 7월부터 줄기차게 그 로비에서, 몇 번이고 본 연극의 막이 다시 오르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배우 얼굴을 박은 종이’ 같은 걸 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티켓을 제외한 것들을 재빨리 가방에 넣어버린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옆 사람이 일행과 이야기하는 걸 얼핏 들어보니 지난번엔 객석 어디쯤에 앉았었는데 이랬고, 어디쯤에 앉았을 땐 저랬으니 오늘은 어떨지 참 기대된다는 식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스탭에게 다가가서 재관람율이 높은 편이냐고 물었다. (평소에 아무리 궁금한 것이 있어도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입을 열지 않는 내가 그런 걸 물어본 것으로 보아 홀린 게 분명하다.) 그는 대부분이 재관람 관객이라고 답해주었다. 열 두 번의 도장을 채워오는 사람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말투로 그런 분들 많이 계시다는 답이 돌아왔다.

객석으로 입장한 후에도 독특한 경험을 계속되었다. 보통 극장용 문을 지나면 바로 객석이 나와야 하는데 또 하나의 로비가 거기 있었다. 문 안의 로비는 ‘로비보다 훨씬 로비 같이’ 보였다. 그 두 번째 로비를 통과할 때 내 티켓에서 자리를 봐 준 스탭이 “자리는 들어가셔서 왼쪽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문 안에 또 다른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왼쪽, 중얼거리던 나는 멈칫했다. 들어가서 오른쪽에 관객이 잔뜩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왼쪽이랬는데?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웬걸, 왼쪽에도 그만큼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황급히 내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야 공연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문 안의 문’ 속의 공연장은 완벽하게 싸구려 외국 호텔로 꾸며져 있었다. 낮은 천장과 실링팬, 화려한 무늬의 벽지, 어두운 여러 개의 국부 조명 아래에 우린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가운데 연기 공간을 두고 양쪽에 네 줄 씩, 한 줄에 열 두어 명 정도가 앉는 구조였다. 양측의 객석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된 공연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이 양측 객석의 거리가 그렇게까지 가까운 것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이것 때문에 느낀 오묘한 경험은 글 뒤쪽에 더 쓸 생각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오직 100명의 관객만이 이 사건의 목격자’라든가 ‘모든 일은 당신의 눈 앞, 50cm 안에서 발화한다!’ 또는 ‘답답하고 어두운 방 안의 분위기로 빠져들기 위해 객석 간 간격을 최소한으로 설계했다.’ 같은 말들이 홍보문구로 쓰였다.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는 실제로 그러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데다, 직접 가서 보는 인원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연극의 특성상 대부분의 연극 홍보문구는 좋은 경우 과장이거나 심한 경우엔 ‘완전 개뻥’인 걸 감안하면, 이 작품 <카포네 트릴로지>는 정직한 편이었다. 우선 천장에 나무 판자 등을 낮게 깔아서 비좁은 느낌을 냈다. 조명기기와 음향기기가 얼기설기 노출되어 있는 일반 연극 무대의 천장은 낼 수 없는 느낌이었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어두운 국부조명들만 켜져 있어서 모든 천장이 나무판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공연은 사람 표정을 어둡게 봐도 되는 그런 종류의 공연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연극이 시작되자 나무판 같았던 것들 중 일부는 철망이어서 그 위에 설치된 기기들을 통해 ‘661호’를 밝히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661호’ 안에 앉아 ‘661호’ 천장 너머에 있는, 조명 바와 스피커가 달린 또 하나의 천장을 보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아까 내가 통과했던 ‘로비 안 로비’는 좁은 ‘호텔 661호’ 안으로 상정된 연기공간이자 객석공간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조성한 곳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세심하게 구성된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 100명의 관객이 빈 좌석도 없이 빽빽이 앉으면 정말이지 참으로 좁다는 느낌이 든다. 또 세 명의 배우들은 객석공간보다도 좁은 연기공간만을 갖게 된다. 오죽하면 맨 앞 줄 관객들은 다리를 꼬거나 앞으로 내밀지 말아달라는 시작 전 안내 멘트에도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 넘게 다리를 꼭꼭 모으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너무하네’라는 생각보다는 ‘그래, 안 그래도 배우들 공간이 좁은데, 침범하면 큰일 나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공연 홍보문구 중에는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배우들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공연 도중 여러 번, 맨 앞 줄 관객들은 배우가 다가오는 것을 오히려 피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술에 취해 귀가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침대로 가는 장면이나 남녀가 짝을 이뤄 춤을 추는 장면(그 좁은 데서 왈츠 같은 걸 춘다!),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선 배우들의 옷깃이나 거기서 인 바람이, 관객이 아무리 몸을 움츠려도 피부에 와서 닿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얼마나 ‘덕질’하기 좋은 공간인지! ‘내 배우’가 계속 코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다가 내가 이렇게 가까이 앉아 있는데도 그는 내가 안 보이는 척 해주지 않는가. (나는 무대 반대편에 앉은 관객들 표정까지 다 보이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의 좋은 점은 현장감이고, 따라서 ‘나의 오빠’가 텔레비전 가수나 영화 배우가 아니라 연극 배우여서 좋은 점은 역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단 점을 상기하면, 이 연극이 공간을 축소시키면서 극대화시킨 것이 비단 극적 긴장감만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세 배우가 자기 발 바로 앞에서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자 다급히 발을 움츠린 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재관람 중임에 틀림없던) 한 관객의 얼굴에는, ‘극적 장면’에 몰입하고 있는 표정보단 ‘내 배우’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과 ‘내 배우의 연기’가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봐도 흠잡을 데 없다는 생각이 주는 즐거움이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배우들을 앞에 두고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재관람 스탬프를 찍어주는 마케팅과 좁은 극장 공간이 이 연극의 관람 경험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확실한 타겟팅과 확 줄어든 ‘내 배우와의 거리’가 이 연극만의 특징을 만들어 낸 큰 요인이었다. 즉,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덕질에 용이하도록 만든, 맘껏 덕질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더 나아가 덕후들에게 팔려고 작정하고 만든 연극이다. 연극은 ‘대중’예술이 될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재관람 관객을 타겟팅하는 연극, 배우의 팬들에게 매혹적인 연극이 있었던가 싶도록 나에겐 매우 새로웠다. 공연이 총 3편의 옴니버스 식으로 되어있다는 것도 이 점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한 공연 당 러닝 타임이 약 70분 정도인데 10분 정도의 인터미션을 두고 하루에 2-3편씩 상연하기 때문에, 이 세 편이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내 시간만 허락해준다면 세 편을 다 보고 싶게 만든다.

게다가 같은 대사의 사용, 같은 소품의 사용처럼 두 편 이상을 찾아 본 관객들만 누릴 수 있는 선물이 연극 곳곳에 있다. 예컨대 나는 세 작품 중 <루시퍼>를 먼저 보고 <빈디치>를 보았는데, <루시퍼>의 주인공이었던 ‘올드맨’이 방에 숨긴 독약을, 십여 년 후로 설정된 <빈디치>의 주인공인 ‘영맨’이 우연히 발견한다. <빈디치>의 엔딩에서 총알이 떨어진 ‘영맨’이 이 독약을 먹고 죽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팬서비스 차원의 문제 때문에 포함된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을 딱 한 번씩 본 나보다는 세 작품을, 더블 캐스팅의 경우의 수를 다 챙겨서 여러 번 본 관객은 더 많은 연결고리들을 발견했을 것이며, 나보다 큰 기쁨을 누렸을 것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외에도 날아가는 빨간 풍선, 같은 배우가 <루시퍼>와 <빈디치>에서 연기하는 다른 인물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내뱉는 같은 대사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못 본 <로키>에서도 이런 연결 고리가 꽤나 있을 거란 생각은 한 번 더 극장을 찾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재관람 스탬프가 왜 12칸일까?” 하는 의문도 이 지점에서 해결된다. 사실 12는 위의 경우처럼 정교하게 작품의 상징과 맞닿아 있는 숫자도 아니거니와, 한국인이 ‘완전한 수’로 여기고 채우기에 익숙한 숫자는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세 편의 작품, 각 작품 당 세 명의 인물(올드맨, 영맨, 레이디), 각 인물을 맡은 더블캐스팅의 두 배우를 놓고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2가 아니라 24(3×2×2×2)이다. 그렇지만 이 계산을 ‘내 배우’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24가 아니라 12가 맞는 수가 된다. (‘내 배우’와 함께 공연을 할 두 인물의 캐스팅 경우의 수가 2×2=4가 되고, 여기에 이들과 할 작품의 수를 곱하면 4×3=12니까.) 이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이렇게 서로 다른 세팅의 12번을 다 볼 수 있도록 캐스팅 스케줄이 되어 있는지를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현재 인터넷에서 내가 확인 가능한 캐스팅 캘린더에는 9월 말 이후의 구성만 나오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로비가 안방 같았던 폰 배터리 충전 관객, <루시퍼> 공연이 끝난 후 <빈디치> 공연이 시작되자 아까 봤던 그 관객들이 서로 자리만 바꿔 앉은 채 다시금 함께 관람한 경험 등을 이 재관람 스탬프의 비어있는 12칸과 함께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면 ‘소오름!’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곡의 구성, 극장의 구조, 마케팅 등 연극의 모든 세팅이 함께 힘을 모아 ‘배우의 팬들이여, 또 보러 와라! 열 번 넘게 오라! 그때마다 새로운 공연이 널 기다릴 것이니!’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 전략은 멋들어지게 성공하여 매 공연은 거의 전석 매진에 가까운 관객점유율을 보였다. (한번쯤은 더 볼 생각이었던 내 계획은 나보다 더 부지런한 덕후들 앞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한 적극적인 세팅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연기력과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덕후’들이 만든 부흥, 뮤지컬 시장의 성공과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흥행


공연예술계에서 덕후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분야는 단연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연이라는 말로 ‘대중’을 공략하던 시절을 지나 적극적으로 특정 팬층을 정확하게 타게팅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는 특정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는 방법보다는 이 팬층과 뮤지컬 시장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우리는 이 팬층을 일컫는 말을 알고 있다. 바로 뮤지컬 덕후, 줄여서 ‘뮤덕’이다.

‘뮤덕’의 세계는 실로 놀라운 곳이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은어를 사용하여 소통한다거나, 할인 정보 등을 저들끼리 먼저 공유하는 튼튼한 커뮤니티 형성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실로 완벽한 하위문화 체계의 성립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뮤덕’임이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덕후로서 지녀야 할(?) 모순적인 태도까지 잘 갖춘 집단이다. 그들은 웹상에서 자신들의 관람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지방 공연을 보러가기 위해 함께 버스를 대절하고, 돈을 모아 ‘우리 배우 님’의 생일 선물과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여기까지야 큰 자본이 움직이는 소모임 정도로 여길 법 한데, 같은 역을 맡은 배우들의 팬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을 보자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 이들은 가장 높은 등급의 좌석이 십만 원은 너끈히 넘어가는 비싼 티켓 값 앞에 “누가 VIP를 12열에 앉히냐!”고 입을 모아 화를 내면서도 돈이 생기면 한 번 더 공연장을 찾아간다. 잔고 걱정은 ‘본진(동의어로 ’내 배우‘가 있겠다.)’을 한 번 더 본 후로 미룬다. 이러한 소비를 스스로 멈출 수가 없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노예’, ‘병(~앓이)’으로 표현한다.

뮤지컬을 심히 좋아하는 이들은 ‘뮤덕’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셈이다. ‘뮤덕’ 커뮤니티의 형성이 자발적인 것이냐, 뮤지컬 제작사들의 마케팅 전략이 가져온 결과냐 하는 점이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들도 고통 속에서 인정하는바, ‘뮤덕’들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부흥을 가져온 동력이자 한국 뮤지컬을 먹여 살리는 ‘충성스런 돈줄’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스스로를 ‘뮤덕’이라 부르기 시작했건, 자본에 의해 ‘뮤덕’이라 지칭되기 시작했건 간에 그들이 정체성을 ‘얻었다’라는 말로 이 단락을 시작했다. 이 주체할 수 없는 ‘덕력’ 덕에 ‘뮤덕’ 커뮤니티에는 “이번 달은 야채김밥만 먹어야 된다. 그래도 우리 00를 0번 봐서 행복한데, 그런 점에서 난 좀 미친 듯” 식의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처럼, 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무언가에 홀린 듯 비자발적으로?) 또 보는 것이다. 아마 약간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자기 밥값마저 줄여가면서 말이다.

이 ‘뮤덕’들을 움직이는 것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재관람 관객들을 좌지우지하는 요소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양쪽 다 (조금 적나라하게 표현해보자면) ‘덕후’들을 노리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이를 위한 세팅엔 약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뮤지컬에는 드라마가 줄어든 대신 화려한 음악과 춤, 무대 장치의 스케일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이 있다. 뮤지컬들은 갈수록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진화하고 있는데, 이는 이 스펙터클이 다른 공연예술이나 영화가 주지 못한 뮤지컬만의 독특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즐거움은 한 번 경험한 사람을 다시금 뮤지컬 극장에 불러 모으는 효과를 주는 중요 요인인 것 같다. 또한 관련 상품들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도 뮤지컬 시장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아이돌 시장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배우 사진 폰 케이스, 배우 별 브로마이드, 배우 사진 교통카드 등, 단순히 작품을 홍보하는 상품이 아닌, 개별 배우의 팬들에게 어필하는 상품들이 극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것들은 끔찍이도 비싸고, 끔찍이도 잘 팔린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팬들이 다시금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이와는 좀 다르다. 이 작품은 스케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좁힘으로써 특정한 효과를 내며, 이로 인해 관객이 재관람을 결심하게 만든다. ‘내 배우’와의 더 가까운 거리, ‘내 배우’의 다양한 매력, 배우들의 연기력 같은 것들을 부각시키면서 말이다. (아무리 ‘내 배우’를 사랑해도 그가, 혹은 그의 상대역이 ‘발연기’를 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한 시간 넘게 보는 것을 참아줄 수 있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또한 관련 상품을 개발하고 파는 대신, 재관람 스탬프를 다양한 모양의 도장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하여 ‘재관람’ 자체를 판촉하는 점도 흥미로운 차이점 중의 하나다.

뮤지컬을 상업성과 흥행성에 눈이 멀어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장르가 된 쇼라고 한탄하는 이들도 많지만, 뮤지컬만큼 자본의 논리에 있어서 자립성을 지키고 있는 공연예술 장르가 없다는 점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오래 전 확실하게 쇼 비즈니스화 된 뮤지컬들이 아이돌을 주연 배우로 세우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순수예술로서 뮤지컬을 사랑하던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백하건대 어떤 의미에선 나도, 그런 관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예술이 자본 문제에서 자생력을 갖는 것이 꼭 욕먹어야만 하는 일일까?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과 관계없는,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예술은 결국 죽은 예술, 더 나쁘게 말하자면 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취미생활 정도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연극이나 뮤지컬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는 예술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결국 공연예술은 본 사람이 또 보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내어 성공한 것이 뮤지컬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아이돌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도 예술성의 타락이 아닌, ‘확실한 덕질에 심히 호소하는 전략’으로 읽을 수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가 확실한 팬층에 호소한 첫 연극은 아닐 것이다. (전쟁통처럼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연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호소했던 모 작품은,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지만, 꽤나 재관람율이 높았고 흥행에도 나름 성공했다고 들었다. 이건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 ‘연극쟁이’라는 이너 서클에게 잘 먹힌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내 배우와 같은 공간에 가까이 있는 시간’을 한층 깊게 선사한다든지, 재관람 자체를 판촉 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카포네 트릴로지>는 ‘함께 있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 그리고 그걸 샀던 사람에게 다시 팔아야 효과적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희곡의 선택에서부터 마케팅까지 이 작품의 여러 측면이 바로 이러한 이해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덕질’, 연극 경험을 변질시키다? 심화시키다!


그래서 이 연극이 나빴느냐, 글쎄, 독특했던 것은 사실이다. <카포네 트릴로지>가 주는 연극 경험에서 내가 가장 독특하게 여긴 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관객들이 희곡의 스토리에 몰입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으로서 지켜야만 하는 특정한 태도나 규칙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한 관객을 다시 떠올려보자. ‘자기 발 바로 앞에서 격투 씬이 벌어져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그 분 말이다. 또, 공연이 끝난 뒤 행복한 얼굴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이는 비극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본 후 로비에서 종종 관찰할 수 있는 관객들의 표정과는 심히 다른 것이었다. 물론 나는 다른 ‘비극’을 본 후에도 심심찮게 오늘 어떤 배우의 연기가 어땠고 하는 건방을 떨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거운 다른 관객들의 분위기 안에서 눈치를 살피면서 그래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루시퍼>, <빈디치> 두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인물들이 죽어나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극 속에 남겨졌음에도, 다들 행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극장을 나섰다. 그들은 희곡의 내용을 알러 극장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들 중 대부분은 재관람 관객이므로 이미 스토리를 아는 것은 물론이요, 개중에는 대사의 상당량을 외우는 골수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 배우’가 오늘은 어떤 파트너와 어떤 공연을 만들어내는지, 혹은 오늘은 얼마나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내 배우’의 복근을 다시 보기 위해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멋진 말로 하자면, 적어도 내가 극장을 찾은 날 (나를 포함한) 관객들 중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카타르시스 할 수 있는 감정적 효과’를 느끼면서 객석에 앉아있거나 극장을 나서는 관객이 없었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그 효과를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내 배우’의 변함없는 멋짐”, 이것을 누리러 온 것이라 말하는 것이 훨씬 일리 있는 묘사일 것이다.

두 번째로 독특하다고 생각한 관객으로서의 태도. 이 점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먼저 앞서 언급했던, 양측 관객이 서로 마주보도록 설치된 관객석에서의 경험부터 살펴보자. 이러한 객석 배치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때도 나는 반대편 관객과 마주 앉아 공연을 보았다. 그런데 <세일즈맨의 죽음>을 볼 땐 내가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반면, <카포네 트릴로지>를 볼 때에는 반대편에 앉은 관객들을 ‘관찰할 수 없었다.’ 조명의 문제처럼 기술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가까이서 마주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거리, 모르는 사이인 너와 내가 유지해줘야만 하는 일정한 약속이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관객들 사이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지루해질 무렵 얼마든 눈을 들어 상대편 관객의 표정이나 몸짓을 구경했던 <세일즈맨의 죽음> 때와는 달리, <카포네 트릴로지>를 볼 때에는 호기심에 상대편 관객을 뜯어보다가도 (<세일즈> 때보다 가까웠으므로 사실상 맘만 먹으면 훨씬 더 면밀한 관찰도 가능했다.) 그 사람이, 아니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쪽에 앉은 다른 관객이, ‘내가 무례하게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남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까봐‘ 금세 시선을 (훔쳐보는 것이 허락된 배우들에게로) 돌려야만 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보라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훔쳐보는 것’마저도 실례가 아닌지 착각하게 만드는 장면에 있다. 나에겐 <루시퍼>에서 올드맨을 맡은 남자 배우가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소변을 보는 장면이 그랬다. 화장실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나는 열린 문 사이로 배우의 뒷모습이 보이고 액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랬다가, 다른 관객들의 시선은 오히려 장난스럽게 문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참 이상한 순간이었다. 왜 나는 그 지점에서 고개를 돌렸던 것일까. 내가 그를 ‘몰래 훔쳐보는 것’이 약속된 공간이었음에도, 소변보는 행위가 연기라는 걸 모르지 않음에도 내가 순간적으로 그쪽을 보지 않아야 한다고 느꼈던 것은 그 사람과 나의 거리가 일반적인 극장에서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웠고, 따라서 극장 공간 안에서의 규칙과 규범이 아닌 일상에서의 시선 규칙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하루에 두 작품을 연달아 본 나는 딱딱한 소극장용 의자 덕에 허리며 다리가 불편했음에도, 왼쪽으로 꼰 발을 다른 쪽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내가 몸의 무게중심을 조금만 움직여도 좁은 ‘661호실’ 전체를 울리는 삐걱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객 중 누군가가 삐걱대는 소리를 낼 때 ‘도서관 미어캣충’처럼 고개를 들어 누가 그랬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앉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실례인데다가, 내가 배우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집중하는 행위는 반대편에 앉은 관객이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뻔히 보이는 (튀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빈디치>의 후반부에 가서는 버티던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배우들을 자세히 보는 것도 힘에 부쳤는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배우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내가 한창 벌어지는 주요 연기 행위를 외면한다는 사실로 인해 함께 관람하는 관객들의 경험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훔쳐보는 사람’인 동시에 ‘훔쳐봄을 당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게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공연을 보는 동시에 공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는 점, 심지어 어떤 의미에선 이 불만이 생기기도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나는 공연을 볼 때 본의 아니게 시크한 관객이 되곤 했던 것 같다. 나는 보통의 공연에서 무언가 맘에 들지 않으면 지인들과 귓속말을 하거나, 크지 않게 실소를 터뜨리거나 몸을 의자에 깊숙이 파묻어버리는 등 그때그때의 느낌을 표출하곤 했었다는 점을, 꼰 다리를 바꿀 수도 없었던 <카포네 트리로지> 공연장에 가서야 발견했다. 어둠이, 배우와의 충분한 거리가, 또 다른 관객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나를 시크한 관객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카포네 트릴로지>를 보면서 시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빈디치>는 햄릿의 모티프를 따 온 작품이라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꽤 있었고 미리 녹음된 인물의 속마음과 실제 연기 행위가 교차되어 제시된다는 점 역시 ‘매우 오글거릴 법’ 했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구성이라면 내가 충분히 ‘오글거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네?’ 하고 놀라기까지 했다. 여러 기술상의 이유를 들어 ‘오글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을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모든 이유를 내포하면서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역시 연기공간과의 거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인 것 같다.

이처럼 <카포네 트릴로지>는 내가 무언가 낯설게 느껴 공연이 끝나자마자 극장을 도망치듯 벗어나도록 만들만큼 독특한 질감의 연극 경험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연극 경험을 하게 된 원인은 방금 살펴본 것과 같이 배우들을 보러 온 관객들과 축소된 공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앞서 나는 이 두 요소가 <카포네 트릴로지>를 ‘덕질’하기에 좋은 연극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언급한바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덕질’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공연은 다른 연극이 제공할 수 없는 상당히 기묘한 방식의 연극 관람 경험을 제공했다.

이를 “‘덕질’이 연극 경험을 변질시켰다”고 봐야할 것인가? 아니, 오히려 반대로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심화시켰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배우와 관객들이 매 순간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화 같은 장르와 비교했을 때 연극이 가지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스토리가 아닌 현장성, 현존을 향유하는 것 역시 문학작품으로서의 희곡과 구별되는 연극상연만의 즐거움이다. 까칠한 관객일 수 없었던 점 역시 영화 관람 경험과 배교해보자면 (‘재미없는 영화는 중간에 나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재미없는 연극은 그럴 수 없다. 배우들 눈에 내가 나가는 것이 보일 테니까.’) 연극 관람 땐 존재하지 않았던 특징이 짜잔 하고 생겨났다기 보단, 원래 연극 관람 경험이 주는 어떠한 것들이 극대화된 것이라 여김이 훨씬 타당한 것 같다. 많은 연극배우들이 주워섬기는, ‘그날그날의 관객이 그날그날의 공연을 만드는 주인이다.’ 같은 말이, 내 몸 하나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카포네 트릴로지>에서는 한 순간이라도 잊을 수 없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연덕’의 출현?


뮤지컬을 심히 좋아하는 사람을 자칭 타칭 ‘뮤덕’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반면에, ‘연덕’, 즉 연극 덕후라는 말은 아직 없다. 연극을 심히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연극의 팬일 뿐이다. 그리고 연극을 아무리 좋아해도 같은 작품을 (평론가의 직업의식이 아닌) 사랑으로 몇 번이고 보려는 일반 관객은 찾기 힘들었다.박근형같은 대가들도 국가의 지원금으로 공연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면,  침체된 ‘연극’ 예술은 ‘덕심’에 기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먼저 이렇게 커간 뮤지컬 시장이, 상업화, 탈예술화 되었다고 욕을 먹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보여준 것처럼 “연극의 ‘덕질’화”가 연극의 본성을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극만이 지닌 특성을 심화시켜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카포네 트릴로지>는 성공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잘 구성한 연출력도 큰 역할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연극도 이제 그만 ‘홀로 고상한 예술’이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을 ‘연덕’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해내는 작품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연극이란 예술이 국가 세금에 목매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주제넘게도) 든다.


다시, ‘오빠’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던 시절에는 ‘뮤덕’이란 말도 없었으니, <카포네 트릴로지>는 참으로 예기치 않은 때에 나를 ‘덕후’라 불러준 셈이다. 그것에 대한 내 느낌은, ‘흠, 부끄럽지만 부인할 수 없군.’이랄까. 나는 재관람 스탬프와 배우 얼굴이 박힌 티켓 홀더를 보고 비웃었으며, 내가 그것을 받은 것에 창피했다. 12번씩이나 같은 공연장에 찾는 (그런 한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종이뭉치들을 가방 속에 욱여넣을 때에, 나는 그것들이 구겨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그것들을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아저씨가 다 된 ‘우리 오빠’의 컨셉 사진이 박힌 종이 쪼가리는, 보고 있으면 뭐랄까, 좀 좋다. 실은 좀 많이 좋다. 여전히 참 잘 생겼고, 여전히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사실에 흐뭇해진다. 할인을 많이 해 주는 것도 아닌데 또 극장에 가서 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나는 <로키>를 못 봤으니, 제대로 <카포네 트리로지>를 다 봤다고 하려면 한 번은 더 봐야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정말이지 남은 공연이 전석 매진만 아니었으면! 아마 다들 이런 식으로 스탬프의 12칸을 채우는 것이리라.

시답잖은 글을 길게 쓰다 보니 든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진즉에 졸업했다고 여겼던 ‘덕후’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런 것쯤은 십대에 진즉 졸업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니, 내가 연극을 하겠다고, 또 연극을 공부하겠다고 설치면서 대학원까지 와 있는 것도, 이런 지면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그 시절 그 ‘오빠’들의 영향력에서 기인한 것이더라. 그리고 그깟 얼굴 사진 좀 박았다고 종이 쪼가리 하나에 헤벌쭉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까지 덕후다. 비록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 오랜 팬이라 밝힌 태양과 함께 듀엣을 부른 아이유나, 성시경 앞에서 성시경 노래를 열창하는 규현 등, 자신의 우상과 같은 분야에서 성공하여 어께를 나란히 한 덕후를 일컫는다.)’은 못 되었지만, ‘진덕’, 즉 ‘진화한 덕후’는 되었구나. 내가 바로 그 ‘진덕’이로구나. “꺄아아아앟 좋아효오오오옵”이란 말 대신 “이런 점이 좋았고 저런 점은 좀 안 좋았고”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 (‘덕후’들이 전자처럼 말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랬었단 얘기다. 오해 금지!) 수업 발제 준비는 시작도 못하고, ‘우리 오빠’ 자랑, ‘우리 오빠’ 공연 자랑만 늘어지게 쓰고 있는 건, 이것이 틀림없는 ‘덕질’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일 터이다. 다시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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