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6일 목요일

당혹감을 사유하기: 참여형 공연 “Opportunity: →→ort → →”

루인

나는 콜렉티브 뒹굴이 기획한 공연 “Opportunity: →→ort → →”가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 작업/작품인지 모른다.

공연이 있는 날 행사장(인사미술공간)에 도착하니 공연을 시작하는 장소로 안내해줬다. 이 공연은 통상 연기자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을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참가 신청을 한 참가자가 직접 이 공연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21 마스 사이언스 시티’를 화성에 건설하기 위해 탐사 로버가 화성의 여러 지역을 탐사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 공연의 기획에 따라 나는 탐사 도구를 배포 받았고 화성 탐사 로버 중 로버1호라는 역할(혹은 배역)을 지정받았다. 그다음 화성의 여러 지역(혹은 인사미술공간 내 여러 공간) 중 한 곳을 지정받아 탐사를 시작했다. 새로운 식량 생산의 가능성, 새로운 별자리 관측, 처음 발견한 협곡 등을 탐사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곳이 어떤지 어떤 상태인지를 조사하여 보고했다. 탐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로버들이 제대로 탐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일부 로버는 폐기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메시지가 왔다. 성실하게 탐사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로버가 있으니 폐기하는 데 동의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폐기에 동의했고 그래서 폐기되는 로버가 발생했다. 나 역시 폐기되었고 그렇게 나의 로버1호 역할은 종료되었다.

참여형 공연이고 그렇기에 참여한 관객/배우의 반응을 통해 구성되는 공연이었기에 나는 이 공연의 전체 시나리오와 구성 방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맡은 로버1호 역할이 아닌 다른 로버는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곳을 탐사했는지 모른다. 로버1호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데, 폐기되지 않았다면 주어졌을 역할이 더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공연의 기획자가 계획한 혹은 예상했던 최종 결론이 무엇인지 당연히 모른다. 공연이 끝난 직후 ‘나는 이 공연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상당한 혼란을 느꼈고 그래서 난감했다. 이것은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폐기된 다른 로버 혹은 참가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폐기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이 공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곤혹스러움이 얼굴 표정에 역력했다. 그렇기에 공연 기획자와 참여자가 함께 자리에 앉아 이 공연의 기획이 무엇이고 로버 역할을 한 참여자의 소감은 어땠는지를 공유하는 자리가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는 없었다. 공연장을 떠나며 나는 ‘이 공연의 리뷰를 쓰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이 공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곰곰이 고민하다 공연 소개글을 다시 읽었다.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Opportunity: →→ort → → 
관객이 직접 화성 탐사 로버가 되어 ‘2021 마스 사이언스 시티’ 건설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참여형 공연이다. 효율성과 경제적 논리에 따라 로버를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재배치되거나 포섭, 배제되는 역학에 대해 탐구한다. 현재 화성에는 8개의 궤도선과 탐사 로버가 남아 임무를 수행 중이다.

공연에 참가하기 전 나는 “Opportunity: →→ort → →” 공연의 소개글을 읽으며 이 공연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연에 참가한 후 느낀 당혹감 혹은 난감함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 소개글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이 소개글이 공연의 핵심을 담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떤 기획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이 사회의 적절한 일부가 되기 위해, 쓸모 있고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혹은 기업이나 조직에 유능하고 쓸만한 인재로 채택/평가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지 않는 태도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가 되고 그래서 당연히 뒤쳐져야 하고 사회에서 유폐되어야 할 존재로 취급된다. 그러니 아픈 사람,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해악이다. 이것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의 확진자와 관련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확진자 혹은 감염인과 관련한 정보가 나오면 댓글은 확진자가 집에 조용히 처박혀 있지 않고 돌아다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며 극렬한 분노를 표한다. 감염인 혹은 아픈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세 번째 확진자가 댓글을 읽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에도 세 번째 확진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타인에게 그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태도만이 이 사회의 윤리이자 규범이다.

공연 “Opportunity: →→ort → →”를 진행하며 등장한 평가 메시지는 정확하게 이 지점을 말해준다. 충분히 열심히 탐사하지 않는 로버를 폐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동체 구성원을 평가하는, 재판관처럼 판단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공연에 참가한 모두가 폐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순진한 것이기도 했고 어리석은 것이기도 했다. 많은 로버가 폐기되었고 나/로버1호 역시 폐기되었다. 누군가가 폐기에 동의했다. 폐기에 동의한 공연 참가자가 기존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윤리라는 뜻이다. 공연 “Opportunity: →→ort → →”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시대의 윤리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나는 서두에서 이 공연의 전체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지금도 모른다고 적었다. 당연하다. 이 공연에 참가한 나는 익명의 로버1호일 뿐이며 체계의 아주 작은 일부, 내가 폐기된다고 해서 ‘2021 마스 사이언스 시티’ 건설에 일말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 사소한 무언가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나를 대체할 것이고, 나를 대체한 누군가 역시 평가받고 폐기될 것이다. 사소한 무언가인 나는 내가 왜 폐기되었는지, 내가 탐색하고 있지 않은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모른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 다른 참여자/로버가 느낀 당혹감, 난감함, 내가 폐기되었다는 분노는 정확하게 여기서 발생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직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르고, 누구도 그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인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소감을 나누는 자리를 갖지 않는 것이 이 공연의 기획에 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나는 이 공연의 기획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공연 “Opportunity: →→ort → →”의 전체 모습이 어떨지 모른다는 말은, 하지만 단순히 공연에 참여한 로버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 공연은 참여형 공연이고 그래서 이 공연을 기획한 사람들 역시 이 공연이 실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이 공연 나아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고,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평가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공연이 끝나고 남은 당혹감(예측 불가능성이 감정으로 실체화된 형태)은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내가 이 사회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직면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폐기된 로버는 폐기되었다기보다 질문을 남겼고 이 공연은 그 질문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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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브 뒹굴, <오퍼튜니티 :→→ort → → (Opportunity: Stuck in NEXT)>

🔸창작진 : 김정은, 부진서, 성지수, 유솔범, 이준영, 김건우
🔸일시 : 2019년 12월 28일(토) 13:00, 15:00, 17:00 (총 3회)
🔸장소 : 인사미술공간 (인사미술공간 주제기획전시 <막간극> 참여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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