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8일 금요일

<랑랑 라이브 인 런던>: “무엇이 나와 랑랑 사이를 갈라놓는가?”

by 이진주
메가박스-코엑스에서 2014년 3월 26일 저녁 7시 30분 


1. 목적이 서로 다른 관객들

  어찌하다보니 ‘장애인․노인과 함께하는 GV’의 초대권이 아직 장애인도 노인도 아닌 내 손에 들어왔다. 극장 안을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 연주회를 공연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가진 듯했다. 얼음 섞인 음료수의 남은 양을 용감하게 후루룩 거리거나 랑랑이 잘생겼다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콘서트홀에 앉아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을 매섭게 쏘아보면서 곡이 끝날 때마다 뜨겁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부류였냐 하면…그냥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라이브 공연을 녹화해서 영화관에서 다른 관객들과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2. 옆 상영관의 포탄소리

  그러던 중에 계속해서 들리는, 피부까지 울리는 초저음.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고, 연주회 도중에 천둥이 울려서 녹음된 것도 아니다. 돌연 궁금해졌다. 옆방에서 도대체 무슨 흥미진진한 영화가 상영 중일까? 뭔가 ‘구궁’하고 계속 반복되는데… 건물이 무너지거나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었을까?

  실제 공연장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면, 나는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혹은 들을 수밖에 없는) 소리들 중 일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분명 영화관 측의 ‘배려 없음’에 의한 ‘사고’이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음악 연주회를 상영하는 방에 다른 사운드가 침범하도록 허용하도록 한 것은 어이없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잊어버릴 만하면 들리는 이 초저음이 나를 자꾸만 랑랑으로부터 떼어 놓았다.

지구를 구하려면 약간의 소음은 어쩔 수가 ...

3. 화려한 카메라 워크

  피아노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자기 나름의 취향의 각도가 있기 마련이다. 연주자의 표정을 보고 싶다면 오른편을 선호할 것이고, 연주자의 들썩이는 뒷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하거나 손가락과 페달 퍼포먼스를 보고 싶다면 왼편이 유리할 것이다. 또 가운데 좌석에서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을 촬영한 이번 영상에서는 연주 모습을 왼편, 오른편, 가운데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공연장 내부의 구조도 자세히 볼 수 있고, 다른 관객들의 표정도 카메라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다각도로 랑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손놀림도 다 자세히 볼 수 있었지만, 정작 그의 음악과 소통하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시로 움직이는 앵글은 분명히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콘서트 영화는 모든 각도의 그림을 ‘강제로’ 제공함으로써, 나의 감각이 시각에 더 많이 집중되도록 했다. 청각은 그만큼 주의력을 빼앗겼다. 그리하여 앵글이 이동할 때마다, 즉 화면이 끊어질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소리도 같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4. 쇼맨십의 왕+클로즈업 샷

  랑랑의 쇼맨십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노는 손을 지휘하듯이 살랑거리는 버릇이나 크게 움직이는 몸, 그리고 자신의 연주에 스스로 심취한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관객석으로 얼굴을 돌려 동의를 구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자주 비추는 클로즈업 샷이었다.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눈을 뒤집거나 좌우로 굴릴 때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키득거렸다. 설사 랑랑이 아닌 유아인이었다 해도 그렇게 큰 스크린에 클로즈업된 얼굴이 예쁘긴 어려웠을 터. 더구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동안에 드러나는 다른 이의 표정을 클로즈업 화면으로 보는 일은 강하게 부담스러웠다. 이유는 물론 내가 그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또한 그것이 지시된 극중 연기가 아닌 실제 행위라고 인식하는 데서 오는, 관음적 상황에 대한 불편함일 수도 있다. 나는 차츰 랑랑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목 위로는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클로즈업은 실제 연주회장에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가장 비싼 티켓을 산다고 해도, 혹은 랑랑과 친분이 있어서 피아노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도 그렇게 확대된 랑랑의 얼굴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다른 영화에서 클로즈업 장면과 달리, 이것은 생생하기보다는 내가 실제 연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재생되는 화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5. 영상과 소리의 미스매치

  클로즈업 샷과 더불어 다소 느끼하고 사색적으로 해석된 듯한 모차르트를 용케 참아내고 드디어 랑랑의 화려한 기교를 볼 수 있는 쇼팽에 이르렀다. 첫 발라드가 끝나고 드디어 나는 한숨을 크게 내뱉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쇼팽의 중반부 쯤, 화면이 살짝 삐끗하더니 어느새 소리가 랑랑의 연기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 그 상태로 1분간은 웃겼지만, 더 이상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상영관을 나와서 땀을 삐질 거리고 있는 관계자에게 “저 영상이랑 소리가…”라고 말하고 있는 사이 몇 사람이 더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티켓 값이 무려 2만원이라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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