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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일 월요일

몰래 먹는 사탕 같은 달콤함: 인피니트와 뮤지컬 <인 더 하이츠>

글쓴이_시뫄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뮤지컬이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전반적으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가끔 뮤지컬을 보고나면 내가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스펙터클에 현혹되기만 하지는 않았나, 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될 정도다.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인 더 하이츠>(이하 <하이츠>)라는 뮤지컬의 포스터를 봤을 때도 랩과 비보잉이 가미된 신개념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띠기는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그 작품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미 모든 요소가 자극적인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힙합의 자유로운 느낌이 잘 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가 오늘날의 한국 대중문화에서 방송을 통해 전에 비해 손쉽게 소비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뮤지컬에 힙합을 접목시킨다는 것 자체도 화제성과 관객몰이를 위한 전략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기대보다는 의심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금 13만원을 주고 결국 뮤지컬계의 소위 “듣보잡”이라고 할 수 있을 그 공연을 보고 왔다.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인피니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두 명이나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이츠>는 뉴욕의 히스패닉 할렘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빈곤하고 차별받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뮤지컬이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에는 인피니트의 메인보컬인 김성규와 래퍼 장동우가 각각 베니와 우스나비 역에 캐스팅되어 출연했는데(더블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콰드러플 캐스팅이었지만), 특히 주로 랩을 하는 우스나비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VIP석 예매를 감행하게 됐다. 인피니트는 힙합 그룹이 아닌 댄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더 분명한 그룹이고, 따라서 팀 내 래퍼의 위상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 (활동 다양화의 일환으로 래퍼 두 명이 유닛을 결성해서 따로 앨범을 두 차례 내기는 했지만.) 따라서 인피니트의 일곱 멤버들을 두루두루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노래의 파트가 많지도 않고, 연기활동을 병행하거나 예능에 활발하게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는 장동우에 대해 늘 어딘가 그리운 구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그가 주인공 격의 배역을 맡은 뮤지컬을 결국에는 보게 될 것이었는데, 비싼 티켓 가격에 한번, 그리고 보고 나서 실망할 걱정에 두 번, 그렇게 몇 번이나 예매를 망설이기는 했다. 결국 망설이다 뒤늦게 예매전쟁(피의 티켓팅을 줄여 “피켓팅”이라고도 한다)에 참전해 12열에 VIP 좌석을 구했다. 괘씸하게도 공연장 1층 전체가 VIP석이라서 내 자리는 성에 찰 만큼 무대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코입이 분명하게 보일 거리에서(“면봉”만 실컷 보고 오는 것은 면할 거리에서) 내 아이돌을 볼 수 있다는데, 종국에는 예매 전 망설임에 허비해버렸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아무도 캐스팅보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팬질하러 왔다고 머글(팬이 아닌 사람)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사실 인증샷이 필요 없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간 인피니트에 대한 나의 팬심을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여겨왔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다 보니 “좋은” 퍼포먼스에 대한 내 나름의 관점과 기준이 생기게 됐는데, 종종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로서가 아니라 멋지고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될 수밖에 없도록 자신들을 내보이는 것 같은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인피니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데뷔 초 내세웠던 칼군무 때문이었다. 사실 멤버 7명 중 2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몸치에 가까워서, 제작자는 깔끔한 무대를 위해 칼군무를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할 수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인지도도 없고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일곱 명 사이의 호흡뿐이었을 것이다.) 인피니트의 칼군무는 단지 일곱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박자에 맞춰 안무를 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는,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절묘한 타이밍을 맞춰 무대 위에 하나의 유기적인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데뷔 6년차의 꽤 노련한 아이돌이 된 인피니트는 예전의 퍼포먼스와는 사뭇 다른 무대를 보여준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몇 번의 월드 투어를 거치며 안무 동작은 세련되고 여유로워졌지만, 안무 구성의 치밀함과 촘촘함은 예전 같지 않다. 화려해진 무대와 360도 카메라 같은 최신 기술을 사용한 최근의 “Bad” 뮤직비디오(https://youtu.be/BNqW6uE-Q_o에서 유튜브 앱으로 시청해야 체험 가능!)는 여전히 “칼군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만, 멤버 사이의 호흡과 퍼포먼스의 구성을 강조해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인피니트를 보여주기 보다는, 현란한 시각적 요소와 더불어 멤버 각각을 멋있는 모습으로 보여내는 것에 치중한다. 전보다 출연이 잦아진 예능 방송과 라디오, SNS 등 무대 밖의 연예활동 역시 멤버 각각의 귀엽고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데뷔 초에 인지도가 없는 상태의 신인가수로서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다른 내세울 것들이 많아졌다는, 그들로서는 긍정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멋있고 귀엽고 잘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과는 달랐던 인피니트의 무대를 기억하는 (세련되지 못한) 나는, 요즘 유행한다는 EDM 비트의 감각적인 사운드와 시크한 안무를 보면서 퍼포먼스보다는 인피니트 자체를, 보다 정확히는 인피니트가 대표하는 “멋지고 좋은 것”만을 보게 되는 현상에 오히려 죄책감이 든다. 아이돌 스타로서, 멋지고 귀여운 환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익을 창출하는 아이돌 산업의 논리 속에서 인피니트 역시 그럴 수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상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출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페이스북 페이지

  마찬가지로, 뮤지컬이 언제나 화려하고 멋진 이미지로 가득한 무대로 관객을 한바탕 홀리고 마는, 그리고 막대한 관객 동원력과 값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문화상품”이 아니라, 그 장르 고유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써 감동과 울림을 주고 관객에게 각인되는 “예술작품”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자주 좌절되어 왔다. 하지만 의심을 안고 잔뜩 경계한 채로 단지 인피니트를 보기 위해 관람한 <하이츠>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라틴계 이민자 캐릭터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랩과 비보잉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걱정했던 부분들을 눈여겨보았지만, 보는 내내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인피니트를 제외하고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이 노련한 연기로 납득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지나치게 화려하다고만 느꼈던 뮤지컬 무대가 <하이츠>에서는 작품의 배경에 걸맞게 비교적 소박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져있어서 좋았다. 까칠하고 말이 많지만 속정이 깊은 동네 미용실 원장 다니엘라 역을 맡았던 최혁주 배우는 작지만 다부진 외모와 특유의 된소리가 두드러지는 말투까지 완벽한 라티나latina를 구현해냈고, 주요 여자 캐릭터인 니나를 맡은 김보경 배우는 귀에 꽂히는 발성과 다듬어진 톤으로 뮤지컬의 정석 같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서는 장동우도 본인에게 맞는 가사를 스스로 써서 랩을 해서 그런지 억지스럽게 들리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어쩔 수 없이 김성규의 발성이 듀엣 중 상대역인 김보경의 뮤지컬 식 발성과 두드러지게 대조되기도 했고, 연기가 처음인 장동우의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등 인피니트의 연기가 살짝 튀게 되는 순간들은 있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비보잉은 아주 짧게만 삽입되고 대부분의 춤은 뮤지컬 특유의 군무로 채워져서, 힙합 뮤지컬을 표방하기에는 랩과 비보잉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고 심지어 구색 맞추는 정도로만 동원된 것처럼 보였다. 또 그 외에도 음향이나 안무의 사소한 부분들이 내 심장을 가끔 조여들게 했지만, 결국엔 학예회에 참석한 학부모처럼 그저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내 아이돌의 학예회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 나는 애초에 바로 그것을 하러 간 것이기도 했다.

  갈수록 많은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에 캐스팅되고 있는 요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그들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인피니트를 좋아하고 아끼면서도 무대 위의 김성규와 장동우를 보며 그들과 뮤지컬 배우들과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어쩌면 인피니트 팬이 아닌 다른 관객들보다 그 차이에 더 민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그 자체보다는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뮤지컬과 아이돌의 조합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단 무엇보다 뮤지컬 산업은 아이돌 캐스팅을 통해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회차에도 평타 이상의 관객을 확보한다. 나처럼 학예회를 본다는 마음으로 예매하는 팬들은 공연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연출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에 가혹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 번 이상 관람하는 팬도 많을 것이니, 뮤지컬 산업에서 아이돌 캐스팅이란 괜찮은 수익모델일 것이다. 나도 뮤지컬 자체에는 기대보다는 의심을 안은 채, 작품보다는 인피니트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게 된 <하이츠>는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연 형식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완화시켜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형식의 혁신은 없었고 엄청나게 매력적인 뮤지컬 고유의 예술적 순간도 없었지만, 다음에 또 보고 싶을 만큼 노래와 연기를 아주 잘하는 뮤지컬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보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우리 애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콘서트 무대나 예능 방송에서는 맏형이랍시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애교 같은 것을 잘 보여주지 않던 성규가 “기싱꿍꼬또”부터 인피니트 대표 개인기인 전갈춤까지 보여줄 때, 나는 성규가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우스나비가 복권에 당첨되어 귀향을 앞둔 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울 때, 나는 (비록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어도) 우스나비를 연기하는 장동우가 귀여웠고, (그 슬픈 감정에 동화되거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장동우가 자랑스러웠다. 다른 무대라면 메인보컬인 성규에 가려졌을 동우가 주인공이라니! 힙합 뮤지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할부 3개월로 예매까지 해가며 봤어도 그걸 봤으니 됐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나를 대중문화의 노예로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예술이 아니면 어떻고, 길티 플레저면 또 어떠랴, 이렇게나 달콤한데.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뒤늦게 스텔라의 "마리오네트" 뮤비를 보다

에스티

1.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별star과 별자리constellation의 어원적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 어원 stella를 얘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스텔라 얘기를 하면서 그 아이들은 소문으로만 들어 겨우 알고 있는 현대 스텔라를 예로 들고 싶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내가 스텔라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자 마자 자동적으로 미묘한 탄식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다른 아이들도 뭔가 음흉한 웃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7세 남자 고등학생들이 그런 일관된 반응을 보이는 건 단 한가지 밖에 없는데, 불행히도 나는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스텔라를 알려주려고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 택시로 쓰이던 차를 예로 들려고 했던 나의 불찰이 컸다.

이제 내가 학생들에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 왔고, 학생들은 기꺼이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스텔라—공식 스펠링은 Stellar인 듯한데, 통상 Stella라고 쓰이고 있다—는 걸그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은 무척이나 선정적인 그들의 뮤직 비디오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야하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져서 오늘 집에 돌아가서 확인해보겠다고 했더니, 학생들은 나에게 세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하나는 부인 몰래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소리를 죽이고 엄마 몰래 본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충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 조언은 다름 아니라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2.
“참혹하다. 한국 대중음악은 외형적으로는 'K-pop 한류'라고 해서 대중음악 산업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음악을 학살하고 난 뒤 얻은 대가다. 링컨이 그런 말을 했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순간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라고. 한국의 음반 산업은 IMF를 지나면서 한번 몰락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극적 도약에 성공했지만, 음악이 아닌 소녀들의 옷을 벗기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청년들에게 가혹한 복근을 강요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이런 것은 역사의 시간으로 보면, 한순간 존재하는 페이크(fake)일 뿐이다. 이제 음악은 휴대전화 컬러링처럼 아무 때나 바꾸는 배경음악을 만드는 자나 소비자에게나 그냥 1회성 소비재일 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나 스스로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1급 문화예술 비평가라 평가하는 강헌 선생이 한 인터뷰에서 2014년 현재 우리 대중음악에 대해 한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음악이 아닌 소녀들의 옷을 벗기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청년들에게 가혹한 복근을 강요함으로써”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복근을 언급함에 있어서는 스스로를 “걸신”이라 부를만큼 미식가, 혹은 음식 애호가인 강헌 선생이 남자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소녀들의 옷을 벗기고”의 대목에서는 일차적으로 소녀란 말에서 소녀시대가 떠올랐지만, 그와 함께 그제서야 스텔라가 떠올랐다.

3.
이 뮤비가 공개된 지 거의 반년이 지나고서야 나에게 소식이 들려왔다는 건 이 프로모션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유튜브의 조회수가 470만을 넘겼다는 것보다 시청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에 있다. 이 뮤비에 대해 시청자 중 3만 2천여명이 '좋아요'를 클릭했는데, 그에 못지 않게 2만 9천여명이 이 뮤비가 싫다고 표하고 있다. 이 수치는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는 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 뮤비나 가인의 “피어나” 뮤비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나타낸다. 이 두 뮤비에도 '싫어요'가 없지 않지만 '좋아요'에 비해 지극히 작은 수에 불과하다. 보통 정치적으로 논쟁 거리가 있을 때에나 찬반이 비슷한 숫자로 표시되기 마련인데, 도대체 이 뮤비는 뭐가 문제였길래 시청자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안좋았음’을 표하게 만들었을까?

가사를 대충 살펴보면, 화자는 헤어진 연인에 대해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그 연인은 다시 돌아올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연락을 한다. 옛 연인에게 놀이감 밖에 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화자는 자신을 “너에게 찢기고 아프고 아픈 인형” 마리오네트에 비유한다. 실연의 아픔과 자기 연민을 노래하는 것은 특별할 것도 없다.

안무 또한 제목과 가사 내용에 호응하여 끈에 메달린 인형을 재현하는 동작이 적지 않게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멤버들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나머지 동작들이다. 무엇보다 “지울 수가 없는 너니” 부분에서 반복되는 움직임, 즉 두 팔을 등 뒤로 뻗어 잡고, 오른 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 딛은 다음 엉덩이를 반시계방향으로 느리게 3회전 하는 대목과, 뒤로 돌아 자기 엉덩이를 손으로 밀어 올리는 동작은 요즘 언론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충격적”이다. 게다가 카라가 “미스터”에서 선보인 엉덩이 춤이 펑퍼짐한 의상을 입고 이루어진 반면, 스텔라는 이 춤을 레오타드를 입고 추고 있으니 이 정도면 국내 심의가 허용하는 최대치라 할 수 있다. 이 영상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의 언론 반응을 보면 이 정도면 19금이 아니라 “29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련된 대부분의 기사는 노이즈 마케팅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텔라 멤버들이 이 뮤비에서 마리오네트를 재현하는 것은 텍스트의 요구로 보인다. 노래 가사를 대충이나마인지한 시청자들은 미련 때문에 여전히 끌려다니는 (아마도) 여성 화자에게 감정 이입을 시도하게 되고, 그리고 그게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멤버들의 몸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그들의 춤은 그 자체로 상품화된 인형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몸의 관능성이 텍스트와 충돌을 일으킨다. 마리오네트 같은 처지의 화자의 마음에 공감하기는 커녕 기획사 사장님이 내건 줄에 자기 몸을 맡긴 네 명의 인간 인형을 보게 되니, 이 모순은 결코 즐거운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마리오네트”라는 제목은 역설적이지만 이 뮤비의 핵심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4.
순전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다가가고자 “마리오네트” 뮤비를 찾아보았으며, 순전히 이 글을 쓰기 위해 반복해서 보았음을 힘주어 밝힌다. 나는 무려 데뷔한 지 3년이나 된 스텔라를 오늘에야 알게 된 문외한이다. 혹 스텔라의 팬들이 이 글을 읽고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싶고, 어떤 점이 좋은건지 알려주길 희망한다.

참고자료

마리오네트 공식 뮤비
http://www.youtube.com/watch?v=NCQpzHPYRUc

No Cut Version
http://www.youtube.com/watch?v=ObmOW5GZRP8

http://heungseon.com/5704 (가사 참고)

강헌 인터뷰 전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9049

2014년 7월 9일 수요일

[K-POP & 퍼포먼스 1] K-POP에게 라이브를 요구한다는 것

by 시뫄

최근 한 공중파 음악방송의 책임프로듀서가 립싱크 가수에 대해 출연을 제재하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립싱크 불가 방침은 이미 수 년 전에 생겼었고 쭉 있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화면 구석에 테이프 표시가 보이면 립싱크 무대, 없으면 라이브 무대라는 구별 방식을 알고 있었고, 어느샌가 테이프 표시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찬 무대를 꾸며내면서도 라이브로 노래까지 소화하는 요즘 아이돌들은 그만큼 고강도의 트레이닝과 준비 기간을 거쳐서 그렇겠거니 한 것이다. 하지만 립싱크 불가 선언을 한 프로듀서에 따르면 요즘에는 무대용 라이브 버전 AR(All Recorded) 음원이 따로 있어서, 시청자들은 립싱크 공연도 라이브 공연으로 알고 본다고 한다. 그는 립싱크 무대를 시청자 기만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이 뉴스는 "금붕어 가수 퇴출"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K-POP, 또는 아이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장르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팀들 중 대다수가 아이돌일 뿐더러, 음원차트 순위나 해외수익율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립싱크 제재 방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장르 또한 K-POP이다. K-POP은 그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안무와 퍼포먼스 등 음악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완전히 라이브로 공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없다면 K-POP은 음악 자체로도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K-POP은 듣는 음악보다는 보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을 비롯해 가수의 외모, 의상, 안무, 무대구성 등 모든 비주얼 컨셉과 연출적 요소들까지도 K-POP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히 K-POP을 음악의 한 장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 전반으로 확장해서 본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연을 사건(event)으로 보는 공연예술의 기본 전제 하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결국은 중점이 되는 노래가 정작 무대 위의 순간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라면 K-POP 퍼포먼스는 공연이 될 수 없는가?


퍼포먼스를 빼놓고는 EXO를 말할 수 없다! (출처: EXO “늑대와 미녀” M/V)

K-POP을 존재론적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을 저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음(liveness)에 대한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의 논의를 빌려오기로 했다. 아우스랜더는 연극학에 뿌리를 둔 퍼포먼스 이론을 음악, 매체, 기술에 관련시켜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오늘날처럼 매체화된 문화에서 매체화된 공연(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아이돌 가수의 퍼포먼스)로부터 그 권위를 얻는다면, 그것이 지시하는 실재, 즉 라이브 공연의 권위는 그것의 매체화된 버전으로부터 다시 얻기 때문에, 분명히 대치되는 것으로 보였던 두 항들 사이의 도식은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 속의 공연은 그 가수가 실제로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가치를 얻는 것인데, 촬영되고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이브 공연은 결국은 텔레비전으로 보여질, 그것의 연출된 이미지로부터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랜더는 텔레비전으로 보여지는 시각 이미지가 녹화된 것이든 실황중계이든 간에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며 텔레비전에 있어서 반복 재생이나 재방송과 생방송 사이의 직관적인 구분은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공연의 재생산이나 반복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공연이라고 주장한다.

아우스랜더의 논의에 빗대어 K-POP 퍼포먼스를 보면, 그 공연을 위해 실제로는 노래, 안무, 연기, 무대 구성이 한번에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매체화되어 텔레비전 이미지로 송출되는 순간 그것은 라이브 공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국에서 K-POP 가수들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리고 노래에 있어서 라이브가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는 시각은 여러 단계에서 부적절하고 심지어 불공평하다. 앞서 언급했던 뉴스가 논란이 되었던 이유에는 한 아이돌 가수가 SNS에 올린 코멘트가 있었는데, 그는 방송 무대의 음향에 대해 일침을 놓으며 무작정 가수에게 라이브 공연을 요구하는 것만이 좋은 공연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처럼 방송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살아있는" 음악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 가치는 단지 노래만 라이브로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주도 실제 세션들이 라이브로 해야할 것이고, 음향 장치가 좋아야 할 것이며, 방송 상태가 원활하고 균일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집 텔레비젼의 사양이 최고급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것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라이브에 대한 가치판단적 강박은 전통적 음악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현장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물론 공연장의 구조나 여타 조건들에 따라 음향은 늘 달라질테고, 그래서 같은 연주자라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연한 연주의 녹음본이 다른 것보다 높게 평가되곤 한다. 애초에 최적의 음향으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그러한 감상의 조건들과 미적 가치가 K-POP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K-POP의 존재의 이유는 보여지는 것에 있고, 그것도 심지어 "예쁘고 멋있게" 보여지는 것에 있다. 매 공연마다 그 순간에 고유한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시각적 미를 희생해야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는 가수들과 그들의 (혹은 그들 자체로서의) 상품으로 돈을 버는 방송국이 계속해서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K-POP은 그 특성 상 수용자/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춘 상품(이미지, 퍼포먼스)을 내놓게 되는데 수용자/소비자들이 K-POP 퍼포먼스로부터 원하는 것을 클래식 음악 감상에서와 같은 미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날 극도로 매체화된 시대와 문화에서 우리는 시각 이미지와 그에 따른 변화들을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에 대한 침해나 오염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요구가 전통적 음악 미학까지 운운해야 할 문제라면 퍼포먼스로서의 K-POP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술의 정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사안이 되겠지만, 사실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미적이지 않을 때가 많은데, K-POP은 그렇게나 많은 이들에게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