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 붉은 깃발을 나부껴라.
- 연극 <푸르른 날에>와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본 혁명과 사랑.
by 백인경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절망이 페스트처럼 온 도시로 번져나간 곳에서 인간은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 세계와 함께 멸망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일어나든지. 1832년, ‘불행한 사람들’<Les Misérables>로 득시글거리는 파리 뒷골목에서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1980년,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민호와 정혜의 <푸르른 날에> 광주에 울려퍼진 계엄군의 총소리는 평화롭던 이들의 일상을 뒤흔든다. 한국에서 (이제서야) 초연된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벌써 세 해째 뜨거운 5월을 보낸 정경진 작, 고선웅 연출의 연극 <푸르른 날에>는 각각 ‘1832년 파리 6월 항쟁(June Rebellion, Paris Uprising of 1832)’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날의 사건들은 이미 역사에 환원되었지만 그날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공명한다. 거기에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를 ‘혁명’이라는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개별적 주체들의 ‘반항’, 즉 삶을 향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읽고싶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굴어야 하는 것, 본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생을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지키고 싶은 가치와 반짝거리는 진실들이 있기에, 행복에 대한 인간의 뜨거운 갈망과 이에 냉담한 세계 사이의 영원한 대립은 인간 실존이 가진 근본적인 상황이다 - 생은 그 자체로 거대한 부조리다. 부조리의 인간 상태를 통찰했던 알베르 카뮈는 이를 부정하거나 무기력하게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고”, “끝까지 살게 하는 것으로써 삶에 주어진 부조리한 전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어떠한 도피도(신체적 자살) 마취제도(철학적 자살) 거부하고 부조리를 직시하며 이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반항적 삶에 의해 실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