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일 화요일

카르멘

by 산책

포스터이미지


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지, 알려주세요. 

음악극 <카르멘>을 보고 왔다. <카르멘>은 극단 벼랑끝날다의 작품으로 2010년 초연된 이후 상도 받고, 평이 꽤 좋은 작품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주자들이 먼저 입장해서 <하바네라>를 연주하면서 기대감을 높였고, 공연 직전에 이벤트를 해서 관객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퀴즈를 내고 선물을 주는 이벤트는 소극장 공연에서 많이 봐 오던 것이지만, 의자 아래 장미꽃을 숨겨 놓고 그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카르멘 와인을 주는 이벤트는 꽤 신선했던 것 같다.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은 나는 집에 가다가 저 와인을 사 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공연은 극중극중극의 다소 복잡한 구조이다. 카페 주인이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카르멘』을 읽어 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카페주인은 『카르멘』의 극중 화자, 죠반니가 된다. 돈 호세와 카르멘의 이야기는 죠반니가 돈 호세를 만나 듣게 된 이야기인 것이다. 카페 주인 박준석이 책을 펴 읽어 내려 가다가 옷을 바꾸어 입고, 안경을 쓰고, 모든 준비를 마치면, 또박또박 읽어 주던 글은 이제 죠반니의 말이 된다. 글에서 말로, 카페 주인에서 극중 화자로 변모하는 장면은 매우 신선했다. 박준석이 읽던 책은 나비처럼 날아가고, 카페는 스페인의 한 도시가 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관객들은 죠반니의 안내에 따라 돈 호세와 카르멘을 만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돈 호세와 카르멘이 처음 등장할 때,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마치 네 마음 속의 돈 호세와 카르멘을 불러 내라는 것처럼, 결국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은 관객 자신의 눈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나의 경우 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드러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아, 내가 상상한 돈 호세, 카르멘이 아니야.”

<카르멘>을 예약해 놓고, 열심히 기말 페이퍼를 쓰는 중, 괜히 십 년 전의 일을 떠 올렸다. 아름다운 카르멘을 상상하느라 그랬거나, 어쩌면 기말 페이퍼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가을, 우리는 헤어졌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서도 행동할까 말까 고민하던 나와, 스무 살의 패기와 열정으로 뭐든 하고 싶었던 그 친구는 서로 쪽지를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하던 시간을 이제 그만 추억으로 남기고, 그만 헤어지기로 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서도 뭔가를 결정하는 게 참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내가 단호하게 결정해버렸던 일이 바로 헤어짐이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내가 그 이별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참 알 수가 없다.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이여. 어쨌든, 며칠 후, 이 만남을 그만 두자는 나에게 그 친구는 앞으로 빨간 드레스를 옷장 안에 넣어 두지만 말고, 너를 위해 꺼내 입으라는 편지를 써 주었다. 편지에는 사랑했다는 말도, 이럴 수 있냐는 말도 없이 빨간 드레스 이야기뿐이었는데, 편지를 읽으며 나는 내 결정을 후회했던 것 같다.

돈 호세와 카르멘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러 가야지, 사랑하지만 자유롭고 싶은, 사랑해서 꼭 잡아 두고 싶은 두 사람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러 가야지. 카르멘의 빨간 드레스를 보고 와야지.

뭐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기말 페이퍼가 끝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런데.

우리의 카르멘은 아름답지가 않았다. 배우의 용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는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 배우가 보여주는 카르멘은 악다구니를 부리고, 돈 호세를 시쳇말로 개-무시한다. 아니, 이건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무례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카르멘만이 아니다. 갑자기 카르멘에게 매혹된 돈 호세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린 남자라기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되고, 어린 아이처럼 벌벌 떨다가 카르멘이 하라는 대로 하게 된, 그래서 인생을 망치게 된 그런 남자로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오페라 <카르멘>에만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대체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건지.
내가 찾아 낸 답을 이러하다. 다른 답을 찾으신 분이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음악극 <카르멘>은 “음악”에 그 방점이 찍혀 있다. 피아노, 첼로, 건반으로 이루어진 연주자들 외에도, 배우들이 적재 적소에 끼어 들어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카르멘과 돈 호세의 최후 장면에서는 카르멘과 피아노 연주자가 마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듯 노래 한다. 음악들은 모두 다 아름답고, 극의 분위기도 잘 나타내는데, 이 음악이 서사의 진행을 자꾸 방해하는 것이다. 다른 배우들이 노래도 부르고, 연주도 해야 하니까, 돈 호세와 카르멘의 이야기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삽입되고 있다. 그래서 돈 호세가 왜 카르멘에게 빠졌는지, (정말 첫 눈에 반했고,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내서였을까?) 카르멘이 왜 저렇게까지 행동하는지 관객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카르멘 이야기가 아무리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그 이야기를 다시 보러 온 관객들에게 두 사람의 사랑을, 카르멘과 돈 호세의 행동들을 이해시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위에서 카르멘이 악다구니를 부린다고 표현했다. 카르멘은 돈 호세와 다투면서, 음악 소리도 이겨야 한다. 그러니 악을 쓸 수 밖에 없다.
극단 단장인 박준석씨는 노래와 연기가 결국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음악감독은 곡을 쓰는 것이 곧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자신의 음악이 드라마에 속해 있지만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타당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음악이 극을, 극이 음악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귀가 열리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아름다운 카르멘을 다시 한 번 찾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