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0일 화요일

<레드마리아>, 여성의 삶은 배에서 시작된다.


by 김재영

<레드마리아> (2012, 경순 감독)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

 <레드마리아>는 한국, 일본, 필리핀에 살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사실, 여성의 몸과 노동의 문제를 남성인 내가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노동한다는 것’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하자는 목소리에 공감해 본 적도 없다. 여성의 몸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쯤으로 넘겨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무관심은 여성의 문제를 사회, 정치적인 차원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한 여성의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남성인 내가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이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이러한 선입견과 피해의식으로 인해 나는 정작 여성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여자들의 노동은 ‘배’에서 시작된다. 

 <레드마리아>는 여성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난관들은 대부분 여성의 ‘몸’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한데, 섹스, 임신,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신체적, 생리적 조건은 곧 노동의 제약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은, 관객이 여성의 몸이 갖는 고유한 특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선입견과 오해 없이 여성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영화는 여성의 몸 중 특히 ‘배’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어린 소녀, 할머니 등 다양한 세대의 여성 다섯 명은 모두 웃옷을 걷어 올리고 자신들의 배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녀들 중 어떤 이는 쑥스럽게 웃고 있고, 어떤 이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그녀들의 배 역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연령에 따라 뱃살의 탄력과 주름의 정도가 다른데, 뱃살은 마치 나이테처럼 인생의 굴곡과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섹스와 임신, 출산이 이루어지는 여성의 배는 그녀들의 삶, 구체적으로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생활의 문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창녀, 이주 여성, 노숙자 등으로 살아가는데, 얼핏 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여성의 배와 관련된 생리적 조건들이다.

 다큐멘터리 중간에 나오는 경순 감독의 코멘트는 여성의 몸과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섹스, 임신, 출산으로 제약을 받는 여성의 몸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절망이고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 때문일 것이다.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노숙하는 이치무라는 면으로 된 생리대를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데, 그녀는 남자들이 항상 여성의 생리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서 ‘왜 그렇게 생리를 오래 하냐?’는 식의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생리 때문에 여성이 일에 방해가 된다는 식의 잘못된 편견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모든 생산요소와 생산량이 계량적으로 파악되는 자본주의의 생산관리 시스템에서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많이 투입하면 할수록 많은 생산량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양적인 개념의 논리구조를 따르게 된다. 이 때, 노동자의 신체적인 제약과 같은 질적인 측면, 특히 남성의 몸과 다른 여성의 몸이 갖는 신체적 매커니즘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며,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이치무라는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 센터 총회’에서 자신에게 노숙과 노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노숙하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육체적, 정신적인 제약을 갖는 사람은 노동을 할 수 없고, 사회의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 사람 또한 노동을 하기 힘들다. 반면 돈을 많이 갖고 있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여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노동권을 박탈할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노동의 상황이 서로를 죽이는 폭력같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기륭전자가, 일본에서는 파나소닉이 파견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였으며, 이러한 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종희와 사토는 자녀를 둔 중년 여성들로서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는 대신 시위 현장에서 자신들의 노동권을 주장하고, 사측의 행동변화를 요구한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다면, 종희는 6년 동안 농성을 하는 대신 다른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빨랐을 것이다. 그녀들에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인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노동자로 인정한다는 것 

 이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필리핀의 성매매 여성들의 생활도 다루고 있다. 한국 평택의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특별법을 반대하고,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한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권리를,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를’이라는 구호를 통해 그녀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노동권과 주거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는 성매매 여성들과 노동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성매매가 윤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자는 주장과 윤락업소에서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상품화하여 파는 것을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주장 사이에는 너무도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을 드러내는 대신, 여러 여성들의 생각과 의견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필리핀 팜팡가 마파니끄 마을에 사는 리타 할머니는, 1944년 태평양 전쟁 당시 마을 전체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하루 동안 집단 강간을 당했던 사실을 증언하면서 당시에는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용기가 없었다고 말한다. 강간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보상을 요구할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성매매 여성도 누군가의 보살핌과 손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성매매 이외의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되풀이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반면, 필리핀 부클로드의 성매매 여성들은 생계 유지의 차원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술집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녀들은 중간에서 보수를 가로채 가는 포주들의 존재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자신들이 노동의 대가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에 대한 생각들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이 영화는 어느 쪽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점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성들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파나소닉에서 부당 해고당한 사토는 임원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든 인생의 무게와 책임은 같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 역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라는 항변 사이에서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어떤 구조적 문제들이 작용하고 있는지, 예를 들면 빈곤한 자들을 구제하지 못하고 자본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정치, 경제적 문제나 혹은 폭력과 빚 등으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성매매를 강요하는 포주 집단의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영화가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녀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은, 선입견 없이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조건들을 하나씩 이해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여성들의 삶의 조건들을 발견하는 것 역시 이들의 ‘배’를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