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9일 수요일

[한토끼의 문화잡식 1] 엑소(Exo)의 성공을 보며 생각하는, 스엠(SM)의 영광과 비극

by 한토끼


2012년 엑소 케이(Exo-K)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SM(SM 엔터테인먼트. 이하 스엠)이 드디어 감이 떨어졌구나 했다. 엑소플래닛(Exo-Planet: 태양계 외행성)에서 온 애들에다가 초능력 컨셉이라니... 농담이겠지. 그러나 무대에서 진지하게 라틴어로 아그네스 마그네스를 외치며 흔히 말하는 에셈피(SMP: SM식 퍼포먼스)를 장엄한 선율로 보여주는 걸 보니 정말 미는 콘셉트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엑소케이는 범접치 못할 분위기를 휘감고는 코어한 팬덤 인기와 대중적 비웃음을 얻고 사라졌었다. 그리고 일년 후, 엑소 케이와 엑소 엠으로 나눠져 있던 멤버들을 합체시켜 돌아온 완전체 엑소는 놀라운 앨범판매량과 함께 대중적 인기까지 올리며 2013년의 가요계를 휩쓸었다.

Exo-M, Exo-K로 나누어 활동한 첫 데뷔앨범 [MAMA]의 MV 중 한 장면.
http://www.youtube.com/watch?v=KH6ZwnqZ7Wo

이 결과에 대하여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결국 스엠의 계획이 먹혔다. 엑소의 초능력 컨셉도 훌륭한 전략이었다 등으로 평가하며 스엠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다. 포카(멤버들의 포토 카드. 따조처럼 랜덤하게 13개가 들어있다.)로 팔았든 사인회(앨범을 사면 추첨해서 사인회에 갈 수 있다.)로 팔았든 나누어서(엑소의 앨범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버전과 중국어버전 두 가지이다.) 간에 이 앨범 불황기에 1,430,000 여장이라는 앨범판매량이다. 팬덤도 어마어마해져서 또다시 에셈의 농노가 되었다는 왕년 수니들의 한탄이 엑소 플래닛까지 닿았다는 평이니 그럴 만도 하다. 스엠은 최초의 아이돌 판을 견인한 기획사답게 3세대 아이돌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셈이다. 스엠 역시 엑소에 투자한 바가 크다. 5년 만에 고심하여 만들어낸 남자 아이돌 그룹이 엑소이다. 그런데도 야심차게 데뷔 티저만 12편을 풀며 준비한 첫 앨범 MAMA는 스엠이라는 메이커에 비해 빈약한 성과를 거두었고, 엑소는 2013년 완전체로 복귀하기 전 1년간의 긴 재준비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다시 낸 앨범 [으르렁]의 히트 중에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니 스엠에서도 엑소의 성공을 위해 기나긴 절치부심의 기간을 가졌을 것 같다. 엑소의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단 그렇게 준비하고도 왜 그리도 부끄러운 초능력을 주어서 데뷔시켜야만 했을까부터가 궁금해지는데.... 당시 2세대 아이돌들의 끄트머리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던 아이돌 시장의 특색을 먼저 살펴볼까 한다.

멤버들의 초능력에는 멋진 로고도 있다.


1세대 아이돌에서 3세대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엑소를 3세대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있는데, 그럼 1, 2세대 아이돌들은 누굴까.

일단 1세대 아이돌들은 아주 쉽고 당연하게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시장을 연 최초의 아이돌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키운 대중가요 시장을 넘겨받아 등장한 HOT, 젝스키스, 신화, 핑클, SES의 시대로, 에스엠(SM)과 대성(DSP)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2세대 아이돌의 시작은 그 기준은 정확치 않지만 대체로 2004~5년경, 1세대 아이돌들이 해체하거나 수명을 다하여 부진해지고, 새로운 그룹들이 나오기 시작한 무렵으로 본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F(x), 샤이니, 빅뱅, 원더걸스, 2PM, 2AM 등이 2세대 아이돌에 속한다. 이 시대에는 새로운 기획사 YG와 JYP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아이돌시장에 명백한 삼파전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2세대 아이돌 시기는 소위 ‘한류’와 ‘K-pop’이 위세를 떨치며 많은 해외 팬덤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반에는 2세대를 이끌던 대형 아이돌 그룹들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비스트, 인피니트, 틴탑, 빅스 들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2세대 아이돌의 삼국시대와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면서, 아이돌은 한국 가요계의 한 축이자 K-pop으로 랜선이라는 21세기의 축복을 타고 해외 팬들까지 넘볼 가능성을 지닌 확고한 시장이 된다. 팬덤에는 문화와 법칙이 자리 잡히고, 일반 고등학생이라면, 한 아이돌의 한 팬이 되는 것이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일상에 자리한다. 한국에서 좀 안되더라도 괜찮다.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해도 톡톡한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기본적인 수요가 자리 잡혔으니 대형 기획사인 SM, DSP, YG, JYP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획사들도 키워낸 아이돌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결과 아육대(아이돌 육상 체육대회)에 출전한 아이돌 그룹 멤버 수는 100명을 넘는다. 물론 아육대에 발을 넣어보지도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명멸한 아이돌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의 특산품을 아이돌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튼 이러한 기간 속에서 결국 아이돌을 키워내는 노하우와 시스템 역시 한국 가요계와 기획사 사이에 자리 잡혀갔다.

  따라서 수많은 아이돌이 나오던 2세대 아이돌의 끝 무렵에, 살아남기 위해 각각의 아이돌들이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는 확실한 “콘셉트”였던 것 같다. 음악중심 방송에 4분 출연하더라도 소비자의 눈을 붙잡을 개성이 더욱 필요해진 것이다. 그저 상큼 발랄하고 끼를 보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런 아이돌들은 너무나 많아졌다. 각각의 아이돌들은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를 한번에 각인시켜야했다. 2PM은 짐승돌이라는 닉네임을 걸고 아크로바틱을 선보였다. 스엠 역시 기본적으로 소녀와 소년의 이미지를 깔고 있던 소녀시대, 샤이니 등의 후속 작업들에서 앨범마다 콘셉트가 뚜렷이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앨범이나 무대 콘셉트에 그치지 않고 확장되기도 하였다. 아예 뱀파이어 콘셉트를 아예 멤버들 자체에 씌우며 강한 개성과 퍼포먼스로 주요 기획사가 아님에도 확실히 새로운 아이돌을 인지시킨 ‘빅스(Vixx)’의 케이스가 이를 입증한다. 아이돌에 대한 기획이 연예인으로서의 자체적 재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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