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1일 토요일

[두산아트랩] 양손프로젝트 <오셀로> 쇼케이스

양손프로젝트 <오셀로>
by 에스티


두산아트센터의 창작지원프로그램 두산아트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트랩은 일종의 중간 보고회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아직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는 중간 단계를 (예비) 관객들과 공유하고 여기서 나온 피드백을 통해 최종 버전에 반영하는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필자는 이번 아트랩의 모니터 회원으로 선정되어 전체 공연을 볼 예정입니다. 첫 공연을 보고 글을 쓰지만, 공연 기간이 짧은 탓에 글은 공연이 끝난 후에 공개될 수도 있는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아침에 난생 처음 충치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선 치과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 건치라고, 그런데 왜 그 어금니만 그렇게 썩었을까라면 의아해 하셨다. 생각해보면 오래 전에 이미 그 부위에 충치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냥 방치해 뒀던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잘 보이지도 않고 통증이 있지도 않은 어금니를 일부러 쳐다볼 일은 거의 없었다.

마취 주사를 맞았다. 잇몸에 바늘이 들어가니 아픈 게 당연하겠지만 마취 주사라는 게 원래 그런건지 주사약이 들어가면서 바로 마취가 시작되어서인지 약간 따끔하더니 이내 감각이 없어진다. 잠시 후 얼굴에 수건이 얹어지고 연장들이 입 속으로 들어가더니 공사장에서 돌 갈아낼 때 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따금 골이 울릴 정도의 진동이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없다.

이처럼 마취라는 건 마술과도 같다. 아직 절반 이상은 남아 있는 생니가 갈려 나가는 순간에도 통증이 없고, 치료가 잘되어서인지 마취가 깨고 나서도 별로 아프지 않다. 그러나 이가 있던 자리엔 어느새 나로선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물질이 채워져 있다. 한동안 나라를 떠들석하게 한 우유 주사라는 마취제 또한 비슷한 마술을 부린다. 듣자하니 이 주사를 맞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그래서 깨고 나면 피로한 몸에 상쾌함이 채워져 있다 한다. 다만 문제는 이 약품을 피로회복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점인데, 여기서도 또 다른 마술이 펼쳐진다.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몇몇 여자 연예인이 프로포폴 주사를 맞은 게 적발된다. 그들의 이름은 비밀에 부쳐지고 이니셜로만 나타나는데, 그러면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 전국민이 집중하게 되고 결국은 포탈 실시간 검색어에 정답이 표시된다. 그러는 동안 정치 사회적 이슈는 몇 페이지 뒤로 감춰진다. 우유 주사를 온 국민이 맞고 잠드는 일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진다.

베니스의 원로 브라반시오는 (장래) 사위 오셀로가 마술, 혹은 “마약”으로 자기 딸의 마음을 빼앗아갔다고 규탄한다. (… thou hast practised on her with foul charms, /Abused her delicate youth with drugs or minerals /That weakens motion. 1.2.73-5) 브라반시오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에겐 오셀로가 마술을 쓰지 않고선 데스데모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불행한 것은 그 사회에 만연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데스데모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부정한 여인으로 전락하고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손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데스데모나가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3막에서 마감되었기에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언데드(undead) 같은 상태에 있다.) 따라서 브라반시오의 대사가 가진 중요성은 뒤에서 오셀로가 당하는 진짜 마술과 마약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때 유의미하다. 물론 이 마술을 베푼 마술사는 이아고이고, 그(녀)는 질투와 의심이라는 치명적인 마취제를 사용한다.



양손프로젝트의 <오셀로>에선 여배우가 이아고를 맡고 있다. 물론 그 전에 언급되어야 할 사실은 이 공연이 배우 셋이 일인 다역을 하면서 풀어가는 공연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이아고를 맡은 양조아 배우만이 이아고라는 한 배역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여러 면에서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캐스팅이 된다. 그리고 <오셀로>에서 이아고는 비록 그 동기가 불분명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사건을 계획하고 조종하는 점에서 <템페스트>의 또다른 마술사 프로스페로 같이 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공연 직후 있었던 대화 시간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본래 이 배우는 이아고와 함께 데스데모나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출의 표현을 따르자면 한 배우에게 “퓨어하고 퓨어하지 않는” 배역을 동시에 하게 함으로써 대조와 아이러니를 산출하려고 했었다는데, 비록 철회되긴 했지만 양손프로젝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그리스 비극에 접목시키는 고전적 시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데스데모나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외모의 배우에게는 악역만이 남게 되었고, 이번 공연의 이아고는 광명한 천사의 외모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순수성이라는 관점을 이어간다면, 이아고는 퓨어하지 않은 게 아니라 순수한 악 (pure evil)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아고가 주변 인물들에게 펼치는 악행은 <리어 왕>의 에드먼드의 방식과 흡사하지만, 구제받을 수 없는 악당이라는 점에선 에드먼드를 능가한다. 죽어가는 에드먼드가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고,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선행으로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려 하는데 반해,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룬 이아고의 마지막 말 (From this time forth I never will speak word. 5.2.302) 에서는 악이 완성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원작이 백인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백인 미녀를 그린다면, 양손의 공연에서는, 텍스트의 설정 자체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유색성이 사라진) 건장한 남성[오셀로]을 파괴시키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여성[이아고]으로 제시됨으로써 일종의 팜므파탈이 되고 만다. 이점에서 이아고를 여성이 연기하는 것은 햄릿이나 맥베스를 여성이 연기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시선과 태도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여자 이아고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이아고를 연기하는 여배우가 자기혐오를 피할 수 있을까? 이아고를 연기하기 어렵다는 배우의 고백 속에서 나는 이렇게 선뜻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재현 문제를 잠시 생각해보자. 이번 <오셀로>는 양손 프로젝트가 해온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석하게도 그들의 전작을 못 봤지만, 적어도 손상규 배우가 출연한 이수인 연출의 <오이디푸스>와 상당한 연관성, 혹은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소설의 낭독 공연이 유행하고 (파트리스 파비스가 명명한) ‘텔-액팅’이 부상하면서 가난한 연극, 혹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의 미학이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이 새로운 흐름은 아마도 무대가 가벼운 만큼 예산 부담이 적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오랫동안 한국 연극을 주도해온 재현적 무대에 대한 반성과 피로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물론 재현 중심의 미학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오늘 나온 질문 중에서도 텍스트를 재현하는 것이 연극의 기본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비단 한 개인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양손 프로젝트의 가난한 연극과 탈재현적 무대를 지지하면서 향후 작업을 위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단조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오늘의 방식이 3막이 아니라 5막까지도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대본 차원에서나 대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무책임하게나마 기대를 표명하자면, 완성된 작품에서는 이아고가 오셀로를 일루전을 가지고 놀듯이 양손 배우들이 더 과감하게 일루전을 만들고 깨는 모습을 보고싶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