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8일 토요일

1482년, 파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 글은 2013년 <노트르담 드 파리> 재공연에 맞춰 쓰여진 글입니다. 



1482년, 파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There’s Something about Paris in 1482)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by 이우정



2013년 올해, 서울에서 여러 번의 파리Paris를 만났다. 핏빛 혁명으로 안타까운 삶이 드러나는 도시 파리를, 대도(大盜)가 누비는 물에 젖은 도시 파리를, 듀티율이 벽을 넘어 드나드는 도시 파리를, 유령의 사랑이 남아있는 도시 파리를.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은 이 도시는 무대 위에서 노래와 사랑으로 다듬어져 날마다 아름다워져 간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의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노트르담 성당에서 만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파리의 팔레 데 콩그레에서 초연된 프랑스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프랑스 배우들의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우리 배우들로 무대화 되었다. 그러니 거의 20년 전에 태어난 이 작품은 대략 10년 넘게 회자되고 사랑받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다시 2013년에 돌아와 해를 바꾸어 내년에도 이어갈 예정이다. 뮤지컬을 보고 즐김에 있어서 저런 숫자며 국적을 묻고 따짐이 무슨 상관인가. 곱지 않은 물음이 되돌아 올 수 있다. 하지만, 분초의 단위로 유행과 기호가 휩쓸어 들고나는 현재에도, 시간 앞에 퇴색되어 스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감동을 전하는 작품인 <노트르담 드 파리>에게는 이러한 숫자며, 말들이 결코 의미 없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지속적인 힘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더해 고민할 때 이러한 작업은 더 이유 있는 국적묻기와 나이세기가 된다.



대문호(大文豪)에게 진 거대한 빚

“Show must go on!”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코스모가 돈 록우드에게 던지는 말이다. 단 몇 마디의 단어일 뿐이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성격을 비교적 정확하게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은 산업사회 중산층을 위한 오락적인 쇼를 지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환상적이고도 디테일한 에피소드의 묘사나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여전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주는 매력에 속한다. 반면에 프랑스 뮤지컬의 지향점은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작품의 정체성을 브로드웨이와는 다른 지점에서 찾고 있는데 쇼가 아닌 극(劇), 문학에서 모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연성의 부족이라는 장르의 근원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뮤지컬의 언어로 풀어냄과 동시에 그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에피소드가 다양한 작품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완벽한 문학적인 텍스트를 제공해 주는 프랑스의 작가가 있다. <레 미제라블>의 저자이기도 한 빅토르 위고다. 위고의 방대하면서도 각각의 인물의 존재감이 살아있는 작품은 프랑스 뮤지컬이 추구하려는 세계와 맞아 든다. 문학이 극예술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익히 범주화 된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이미 완성되고 검증된 텍스트라는 문학적 접근이 우선 되어있으므로 이것을 상연하는 순간에,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내용이 전달될 것인가를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어진다. 이야기가 익숙한 관객은 위고의 행간 사이에서 극이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놓치는 장면들뿐만 아니라 파생되는 또 다른 의미와 감정을 읽어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탄탄하고 서사적이며 개연성을 가진 작품을 세 시간 남짓의 공연 규격 속에 넣어 두어야 하니, 하나하나의 상징성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까지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여전히 멋있는, 그리고 여전히 멋있을 – 포스트드라마

시간의 흐름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극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극예술도 모던을 넘어 포스트모던한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극의 요소를 품고 그 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무대에서 형상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포스트드라마적인 성격을 미리 짚고 읽어낸 작품이다.


한스-티즈 레만은 포스트드라마의 특징을 다음의 11가지 요소로 들어 이야기 한다. (1.병렬/비-위계, 2.동시성, 3.기호의 밀도를 공연하기, 4.과잉, 5.음악화, 6.영상미술 시각적 극작법, 7.열정과 냉정, 8.신체성, 9.‘구상연극’, 10.실제적인 것의 난입, 11.사건/상황) : 한스-티즈 레만, 『포스트드라마 연극』, 김기란 역, 현대미학사, 2013, p.154-254 참조.

우선 <노트르담 드 파리>의 포스트드라마적인 요소는 극이 뿜어내는 신체성에 있다. 이 작품에서는 우리가 흔히 뮤지컬에서 기대하는 것 이상의 신체의 움직임이 표현된다. 군무는 물론이고 현대무용, 아크로바틱acrobatics을 비롯해, 비보잉B-boying, 심지어는 군사 훈련의 레펠rappel 장면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배우의 신체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고 시험 당한다. 수직으로 세워진 무대 벽으로 마치 무대 바닥의 연장인 것처럼 오가야 하고, 커다란 종 안에서 추(錘)로서 물체가 되어 흔들린다. <노트르담 드 파리> 속의 신체는 인간의 한계를 미(美)적으로 승화시킨 서커스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극대화된 신체의 사용으로 인해 작품은 긴장감뿐만 아니라 두 손을 모으게 하는 숭고함까지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 실제적인 것이 극 속에 난입하여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도 포스트드라마적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이야기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변화하는 시기의 프랑스를 담는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흔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기대와 달라서 이질적인 느낌과 반감이 들어야 함에도, 신기하게 그렇지 않다. 이러한 동시적이면서 모순적인 이미지는 의상과 무대에서 두드러진다. ‘때는 1482년...’을 그 유명한 넘버의 첫 소절에서부터 노래하고 있지만 시인 그랭구아르의 설명이 아니라면 시대를 쉽게 알아채기 힘들다. 시대극임에도 현재를 대표하는 장소와 물품들, 그리고 복식들이 삽입되어 있는 탓이다. 집시의 왕 클로팽을 비롯한 성난 집시들, 근위 대장 페뷔스와 그의 군대의 옷은 현대의 소방복이나 공장 등에서 입는 복식이다. 여기에 무대는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중장비 등이 무대 장치로 활용되고, 불을 쬐는 집시의 드럼통도, 무거운 것을 손쉽게 나를 수 있게 고안된 바퀴달린 깔판도 등장한다. 시인인 그랭구아르는 공사장의 갈고리로 짐처럼 매달리고, 말을 탄다는 근위대장 페뷔스가 들고 나온 것은 시위를 진압하는 봉이다. 이렇게 작품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실제적인 것이 곳곳에 난입되어 있다. 또한 이렇게 난입한 실제들은 동시적으로 존재하며 일관된 배열로 거부반응 없이 이식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시각적 극작법도 사용되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는 무대의 중간을 막으로 차단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는 무대를 차단하는 것이고 분리이지만 오히려 감정이나 비(非)물질적인 것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도 동시에 한다. 두 여인을 사랑하는 페뷔스의 괴로운 심정을 무대의 양 끝을 오가며 노래하는 동안 막 뒤에서 펼쳐지는 것은 그의 고뇌를 형상화 한 무용수들의 격렬한 춤이다. 목소리로 노래하고, 언어로 이야기하고, 표정으로 연기하지만 완벽히 드러내지 못하는 그의 추상적인 감정이 어두움 속에서의 움직임으로 시각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화는 프롤로, 페뷔스, 콰지모도가 각기 에스메랄다를 갈망하며 부르는 삼중창 넘버(Belle)에서도 변용되어 나타난다. 이 장면은 순차적으로 정지된 상태에서 각자의 마음을 표현한다. 인물 각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동안은 주변의 모든 것은 정지되고, 오롯이 그의 마음만이 장면의 주인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마음을 울리는 작품에는 당연히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분명히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렇다. ‘재미있어.’, ‘멋있어.’ 라고 단순한 감상을 내뱉을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다. 보이는 것보다, 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이 아래에 감춰져 있는 바다 속 빙산처럼. 1482년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는 보다 특별한 것이 있다. 정확한 선택으로 문학성을 되찾았고, 또 시대를 앞서 생각하는 안목으로 시간에 빛바래지 않을 요소들을 조합했다. 이런 이유로 당장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받는 뮤지컬이 될 것이다. 여전히 멋있는, 그리고 여전히 멋있을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노트르담 드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