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2일 금요일

별일없이 화려했던

이파리드리, 별일없이 화려했던

에스티의 첫날밤에

약 4개월 간의 휴식이 끝나고 아트랩 공연이 재개되었다. 그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밑바닥으로 계속 가라앉고 있다. 애써 감춰왔던 우리의 밑낯이 그야말로 낱낱이 드러난 것만 같다. 40일간 단식을 하는 사람, 그와 함께 단식을 하는 사람, 그를 대신해서 단식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시위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 이제 그만 지겹다고 하는 사람도 목소리를 높인다. 온 나라가 짜증과 분노와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다.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아니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도 미안한 상황이다보니, 주변 사람에게 연극 보러 간다고 말하기 민망할 뿐더러 나 자신도 마음이 흥하지 않는다. 관객들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영화인들에 이어 연극인들마저 광화문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영화 <명량>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관객들이 영화속에서나마 현실의 리더쉽 부재를 보고 싶어서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단 한순간의 희극적 이완도 허락하지 않을만큼 엄숙하기에 이 상황에서 영화를 보며 즐긴다는 게 그나마 덜 미안하게 느껴져서이리라.

이파리드리의 "별일없이 화려했던"은 내 또래의 두 남자가 살아온 10여년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소한 부분들이 너무나도 친숙하다. 오늘 극장을 찾은 관객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장면 마다 최소 한번 쯤은 공감의 웃음을 이끌어 낸다. 그야말로 별일 없지만 80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대 위에서 특별한 '극적'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11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조금씩 벌어져 있다. 원하는 것을 하고 살지만 뜻한 대로 잘 되지 않는 것 같은 기현과, 인생 재미로 사는 게 아니라며 순응하되 열심히 살고 번듯한 직장을 얻은 성우. 이 둘은 매 장면마다 옷을 바꿔 입으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상대에게도 관객에게도 속내를 직접 털어놓지는 않는다. 관객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기현에게서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버는 성우를 부러워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고, 직장도 있고 이제 가장이 되는 남부럽잖은 성우가 청춘이 마감됨을 안타까워 하는 것도 눈치 챌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보편적 정서를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줄거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텅빈 무대에서 장면마다 큐브를 통해 장소를 암시한다. 연출은 "지극히 일상적인 극을 몇 가지 큐브로만 표현한다는 것이 자칫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는데, 기타, 노트북에 서류 더미들을 비롯하여 카스 맥주, 맛동산, 신라면과 같은 세세하고 리얼한 소품이 위험성을 다 덮어 버린다. 그러한 소품들이 관객들에게 즉각적으로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데 효과적인 건 사실이지만, 한입 먹고 남겨진 신라면처럼 일회적으로 소모된다면 큐브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이야기는 2010년에 시작해서 1999년으로 갔다가 다시 2010년에 끝을 맺는다. 각 에피소드에서는 그 해를 기억하게 하는 인물들, 물건들이 언급된다. 몇년 후 이 작품이 다시 공연되면서 2014년, 그들이 서른 넷이된 해가 덧붙여지면 어떨까?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로 그려질까? 그때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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