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비포 애프터》 이경성 연출, 전강희 드라마터그 인터뷰


드라마인에서는 지난 11월 20일 <비포 애프터> 팀의 이경성 연출님, 전강희 드라마터그님을 모시고 이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의 대화 내용 일부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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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태 : 어떤 관객이 얼마나 공연장을 찾았는지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정부에서 꺼리는 주제를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선택한 형세가 되고 말았는데, 극장이 얻은 수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산아트센터는 비영리 극장이기 때문에 전석이 만석이 되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올해 두산 작업 중에서 관객 점유율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두산은 일반적으로 20-30대 젊은 관객층이 많은데, 이 작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왔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임승태 : 연령층이 다양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경성 : 젊은 극단이기 때문에 특정 관객들이 몰리는 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세대 배우와 같이 작업하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이 넓어졌고 만날 수 있는 연령대가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세월호가 특정 연령에만 국한되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공연 오픈 전에 홍보하는 단계에서 세월호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을지 아닐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월호를 쓰는 것 자체에서 선입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세월호에 국한된 연극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사건들로 얘기를 했었는데, 진행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세월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도 관람했었나요?

이경성 : 안산에서 왔었고, 유가족은 안 왔는데, 유가족의 친구들이 왔었고, 윤일병의 어머니도 보러 왔습니다.

백인경 : 저는 미리 예매를 했었고, 세월호 때문에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산 도큐멘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때 보질 못해서 궁금한 마음에 예매를 했습니다. <남산 다큐멘타>처럼 이번 작품도 형식적으로는 다분히 포스트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극이 상당히 드라마적이고, 전통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햄릿>의 극중극을 사용하는 점이나, “연극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예상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공동창작을 하거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기존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탈피하는 시도라고 보이는데, 사건 중심의 전개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측면은 여전히 전통적인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성 : 일단 저의 배경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연극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강렬한 드라마로 연극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아마데우스>나 <오월의 신부>, <길> 등의 연극을 주로 했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드라마의 한계를 느꼈고, 이것들이 다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극단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적 관심은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 레만(Hans-Thies Lehmann)에 있었고, 논문에서는 두 사람의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비판을 시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레만이나 랑시에르는 연극이라는 것을 내용이 아닌 형식의 문제로 봤고, 감정의 재분할을 얘기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감각이 재배치되는 경험이 연극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으로서 연극의 정치성이 획득된다 그런 것들이 이들의 중심 생각이었고, 이런 것을 레만이 하나의 포괄적인 용어로 ‘포스트드라마’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제는 포스트드라마라는 형식으로 진행됐던 실험의 한계도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레만이 다루고 있는 작품도 시기적으로는 네오 아방가르드 이후 70, 80, 90년대 작업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포스트모던, 또는 포스트드라마적으로 해석을 열어두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으려고 했던 형식적인 실험은 그것이 다의적인 해석으로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든 맥락을 형성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무한정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영역에서 말을 걸려고 하는지에 대한 맥락들을 어떻게 형성하면서 다의적으로 열 수 있을지를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돌하고 상호모순적이지만, 그것을 굳이 드라마로 표현한다기 보다는, 컨텍스트를 구조 내에서 유지해 나가느냐, 그러면서 관객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이 각각의 요소나 재료들을 연결하면서 이 맥락 안에서 의미망들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포스트드라마, 포스트모던에서의 허무함이랄까 건조함이랄까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제 작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되게 포스트모던이라기보다는 모던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제가 드라마를 먼저 하고, 포스트드라마를 하고 그 다음은 어떤 형식적 실험을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전강희 : 바키의 배우들이 자기 얘기를 꺼내고 기승전결 스토리가 없는 연극을 만드는 방식에 점차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형식을 가지고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드라마적인 것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연습을 하면서 더뎠던 부분이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배우들 스스로 정리된 것이 있어서라고 생각되는데, 서로 반응이 오는 시간이 빨라지고 결과물도 빨리 나왔고,  감정도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드라이한 연극이어도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면 가지고 노는 것이 더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경성 : 감정보다는 정서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요. 이번 리허설 도중에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의 관계자가 와서 연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연극도 다큐적인데,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보다는 정서가 굉장히 짙게 배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정서가 생소하고 낯설면서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저 스스로도 생각을 해 보았고, 만들면서 내가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과, 이것을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이것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노력했습니다. 뭔가를 할 때 일부러 정서를 안 넣으려고 의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임승태 : 이번 작품이 특히 그런 건가요? 직전의 <남산 도큐멘타>와 비교해 보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산에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으나, 세월호나 배우들이 자신이 겪은 죽음을 얘기하다 보니까 객관화할 수 없고 객관화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지점이 생긴 것은 아닌가요?

전강희 : <남산 도큐멘타> 같은 경우는 소재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객관화시키기가 더 쉬웠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자기 이야기라서 그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연기하는, 배우라는 역할 수행의 측면에서 객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성수연 배우는 아버지에 대해서 썼는데, 그것을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에 말할 때에는 객관적인 거리를 두지 못했을 텐데, 연습실에서는 배우로서 거리를 두려고 했고, 대사를 쓸 때에도 ‘우리 아빠가’가 아니고, ‘관객에게 이것은’을 항상 떠올렸습니다. 배우의 태도에 있어서 객관적 태도를 잘 갖췄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내용 자체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는 것이라서 거기에서 이전 작품과는 다른 ‘정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인경 : 다큐멘터리 연극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건들에 얘기하거나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세월호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겪은 일이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안에서 숙성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라고 해도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의 관객들이 봤을 때에는 우리와는 다르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장면처럼 강렬함을 전달하는 경우에는, 사건이 해결되면서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직 사건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원한 느낌보다는 의문이나 아쉬움같은 감정이 더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이 아닌 의견 제시로 가게 되었네요.

임승태 : 이 의견을 받아서 질문을 하자면, 드라마가 없는 연극에서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전강희 : 이러한 작업이나 드라마가 강한 작업이나 드라마터그의 작업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가 없기 때문에 연습실에 더 많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가 A를 얘기하다가 이번에 B에 대해 얘기를 한다면 그 사이에 변화의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했다라는 것을 드라마터그가 얘기를 해줘야 해요. 스토리에 대한 것이나, 분석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은 다 하는 것이구요. 이번 작업에서는 연습실에 최대한 많이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바키는 연습을 한다기보다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고, 드라마터그는 런을 돌 때, 런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연습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나온다면, 그것이 맞다 안 맞다를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함께 있는 것이 이번에는 중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경성 :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요소 요소를 논리로 엮어야 하는데, 그것을 연출이 하지만 제3자가 필요한 것이죠. 당신이 봤을 때 이 진행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는가를 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연출의 요청에 따라서 수행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할 수 있었는데, 배우들이 연출과 바로 할 수 없는 순간에 드라마터그가 그 사이에서 배우와 연출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전강희 : 제3자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통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습실을 많이 안 가기도 하지만, 저는 연극의 과정을 알지 못하면 제3자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3자가 될 수 없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많이 가서 봐야 진짜 제3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바키 작업은 그런 면에서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계속 바뀌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김재영 : 연습 과정에서 많은 장면을 시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장면은 깎여 나가고, 어떤 장면은 공연의 큰 줄기 안에 포함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연습한 여러 장면 중 공연의 논리적인 구성에 잘 부합하는 장면들만이 살아남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졌을 것인데, 연습 과정에서는 훌륭하다고 느꼈지만, 공연의 논리적 흐름 상 배제된 장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공연에서 제외하기로 판단했을 때, 배우들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 장면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호흡과 감정에 대한 것인데요.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자극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워크샵을 통해서 호흡과 근육의 작동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노나 슬픔과 같은 외부의 자극이 배우에게 올 때, 그것을 배우의 내부에서 어떻게 바꿔낼 수 있는지를 연습했습니다. 모든 배우가 함께 모여서 분노, 슬픔, 화 등의 감정을 호흡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는데,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면들 사이사이에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들을 배치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웃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정이 화와 분노로 발전하고, 분노가 다른 방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연기 수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결국 공연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환대'와 관련된 장면이었습니다. 워크샵에서 내 옆의 사람, 나의 관련 없는 사람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는가, 어떻게 마주하고 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환대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배우 중 한 명이 백화점이나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예를 가지고 와서 그런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점차 감정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장면을 살리려고 했는데, 다른 장면들이 들어오면서 이 장면이 들어오면 공연 전체의 그림에서 너무 뜨는 느낌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배우들도 이 장면을 삭제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 했구요. 장면이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서 형태를 갖춘 시점에서 이것을 살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연출 입장에서는 장면을 포기할 때에 허탈하고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공연 전체의 맥락과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이러한 점에 대해서 배우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강희 : 저도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광고를 가지고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연습 기간 중에 보험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했는데, 특히 생명보험은 생명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상품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서 초기 워크샵에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동안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이 장면이 다 빠져있더라구요.

이경성 : 저는 라디오 광고를 듣다보면 나레이터가 금융상품을 신나게 설명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이런 건 안 되고, 저런 건 안 되고, 이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등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재밌게 느껴져서 그 부분을 살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장면을 만들면서 너무 꽁트처럼 흐르는 것 같아서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경 : 얼마전 광주에서 4시간짜리 연극을 봤는데, 연극 중간 중간에 배우가 퇴장하는 순간에 샴푸 광고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TV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생경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경성 : 오늘날 우리가 지각하는 방식이 어떤 건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샌들을 하나 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세월호 관련된 기사를 찾다가 샌들 광고 팝업이 떴고, 저도 모르게 기사 읽는 것을 중단하고 광고를 따라 샌들 상품을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각하는 방식이 그렇게 팝업되는 것처럼 바뀌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것이 극장에서는 무척 낯설게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지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강희 : 보험 광고 연습을 했던 것도,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을까라는 맥락에서 연습했던 것이었습니다.

임승태 : 사전 질문 8번을 여쭤보겠습니다(질문지 보기). 세월호에 대해서 연극에서 조금 더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과 동시에 과연 세월호라는 사건, 그리고 배우들이 겪은 고통의 경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경성 : 담길 수 있는지라는 말은 당위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임승태 : 세월호를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행위나, 그릇에 잘 담겨진 세월호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일종의 ‘순수한 미에 대한 추구’가 한편으로 굉장히 끔찍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신 손탁(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것처럼, 스펙터클을 원하는 관객의 욕망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구요. 제 경우 세월호 연극을 한다니 보러 가야 겠다는 것이 극장을 찾을 동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고통을 얼마나 “재미있게” 다루는지 보고 싶은 것이 이 연극을 보려고 했던 동기라는 점에서요. 그러면서 이경성 연출이나 바키는 왜 이것을 연극으로 만들려고 했던 걸까?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가? 라는 질문도 함께 들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분명 이러한 고민들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사실 저는 세월호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배우들 개인의 아픔이 들어와 있는데요. 내가 애초에 보고 싶었던 것은 세월호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 ‘나는 세월호의 죽음을 보고 싶은데, 내가 왜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생각해보니, 눈 앞의 사람이 말하는 고통에 귀기울이지도 못하는 내가 세월호의 죽음에 가지는 관심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세월호를 다루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실현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형식적으로 완결되지 않거나, 더 충분히 말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객관화할 수 없는 동시대의 문제이기 때문 아닐까요?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새로운 뉴스가 또 나와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작품 또한 미완결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경성 : 제가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사전 질문지에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통을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반(反)연극으로 보입니다.’라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요?

임승태 : 세월호의 죽음과 배우들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월호의 직접적인 희생자를 언급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죠. 온 국민의 관심사인 거대한 죽음이 전면에 있지만, 무대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배우가 직접 겪은 죽음이구요. 어떤 관객이 세월호를 보러 왔다면 이러한 개인적인 죽음의 경험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경성 :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생각했을 때, 저는 <다이빙벨> 같은 다큐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큐는 세월호에 대한 다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만든 것이구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남을 수 있는, 필름의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목적성을 획득했던 것이구요. 저는 오늘날 연극이 그러한 점을, 죽음의 숨겨진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나, 그 죽음을 가장 적나라하고 아프게 드러내는 방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영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이 연극에 세월호라는 라벨을 붙인 것은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붙인 것이지, 저희가 아닙니다. 제가 이 연극에 노골적으로 세월호 연극이라고 말하게 된 것도 그 후에 일어난 검열 사태와 같은 맥락 속에서 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세월호 연극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세월호를 다뤘지만, 그 너머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통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구요. 세월호가 일어난 원인, 죽음이나, 그 후에 국가가 실패한 것은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오는데, 그것을 연극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번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극을 할 때 연극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연극 자체가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이해하고 다가가는 효과적인 감정의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연극 한 편을 보고 전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내 일로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작품으로 풀어내려고 하는데, 세월호를 제쳐두고는 그 주제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렇게 때문에 세월호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저도 다른 걸로 얘기를 하고 싶었죠. 제 주제를 얘기하는 데 세월호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하나라고 생각하신 관객도 있을 수 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장소 자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어떻게 맞닿아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경험을 연습하기 위해서 극장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극작가가 쓴 어떤 인물의 이야기이든, 배우 자신의 실제 이야기이든 그 부분에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작품 만들 때에는 세월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해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관객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죠. 관객들이라고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개별적인 주체이고,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관객을 생각하고 만든다는 것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생각하면서 만들지만, 어떤 관객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하고 만들지는 않습니다.

전강희 : 준비 과정에서 달라진 감각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해서 무대화할 생각은 별로 없었고,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고, 나도 죽을 수 있다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예전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다가 갑자기 맞게되는 것이 죽음이었다면, 이제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감각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호흡, 분노, 감정 이런 것들도 그 맥락 안에서 연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안 풀리는 지점이 우리가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겠다, 감각에 초점을 맞추겠다 하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봐야 해결되는 지점이 생겨서 그 때 극중극이 들어간 것이구요. 어떻게 보면 세월호가 전체 작품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한 꼭지처럼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감정이 중시되었다면, 후반에는 가장 안 풀리는 것이 세월호이다보니, 나와 세월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자면 세월호가 전부는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이경성 : 초반에 세월호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와닿지 않고, 혼란에 빠지게 된 부분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의미와 해석을 읽는 것이 혼돈에 빠지게 하더라구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바라보자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라는 맥락 안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즉, 이 세 가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국가는 무엇이고, 그 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타인의 고통을, 인권의 유린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세월호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던 부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연극의 목적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매체가 많기 때문에 그 매체들에 양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심하경 : 저는 준비된 관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세월호가 굉장히 드리워져 있었다고 느꼈거든요. 처음 안전수칙 장면에서 그 장면을 바꿔버리는 효과도 있었구요. 극중극에서 저는 불편함을 느꼈는데, 국가에 질문을 하는 방식이 그 질문이 저한테 오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왜 나한테 이러지?”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실 국가는 우리 모두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국가 역할의 배우를 관객석에 앉게 한 것이 그런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백인경 : 우리 모두가 국가이고,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도 국가인데, 여기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난폭한 국가의 대립구도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져서 불편했습니다. 국가도 왕관을 벗고,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느낀다고 말하는데, 책임을 국가가 나서서 너네도 국가의 일부이다라고 밀어붙이지 않고, 마치 여기 극장에 모인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이경성 : 개념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국가라는 것이 맞지만, 지금 이 시점과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조중동의 프레임인 것이죠. 이것을 누군가에게 정확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고, 국가가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덮고 가려고 하는, 개념적으로만 도덕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국가라는 역할을 지정한 것이었구요.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은 그런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햄릿> 극중극 장면을 생각했던 것은 그 날 세월호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세월호를 기억하다>라는 책을 보니, 그 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저도 잘 모르고 있더라구요. 구체적인 팩트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책임 추궁을 해서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면서 또한 인격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얘기하는 것이구요. 실제로 국가는 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가 많이 바뀌니까요.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 박유하 교수가 욕을 먹는 것은, 그것은 국가가 제국주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한 것이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때에는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한 것이죠. 한 개인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국가라는 것이 기관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개인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배우를 국가 역으로 맡긴 거죠.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국가에게 질문을 할 때, 국가 역의 배우가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실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을 얘기하는 것이냐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구요. 객석에서 앉아서 보신 분들은 힘들셨을 것 같고, 배우나 연출도 힘들었습니다.

전강희 : 연습 때에도 많이 얘기를 나눴는데요. 특히 선원 캐릭터에 대해서 그를 개인으로 볼 것이냐, 시스템으로 볼 것이냐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관객들은 힘들었겠지만, 개인보다는 국가, 시스템이 문제이다라고 생각한 것이었구요. 처음에는 선원으로 얘기를 하다가 배우가 나중에는 나경민 개인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부분의 조율이 힘들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민주공화정으로 보면 나도 국가의 일부가 되겠지만, 군주국가로 이해한다면 국가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카메라를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불편을 덜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고, 관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객을 카메라로 찍을 때에도 발을 비춘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안심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무대가 객석을 넘어 들어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사한 주제의 다른 공연(무브먼트 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에서는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을 배우들이 나가서 얘기하고, 연출자가 배우들을 연결해주고, 마이크가 객석으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지 못하기도 했구요. 저는 마이크가 나한테 오면 어떡하지라는 긴장을 했던 것 같고, 나의 기억을 말한다면 그것이 가치가 있나라는 생각도 했구요. 짧은 시간 긴장을 하다가 결국 오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두 공연을 다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편했던 것이죠.

이경성 :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공연은 제 취향이 아니었고, 제게 마이크가 왔을 때 저는 얘기를 안 했거든요. 나는 관람자인데, 행위자가 관람자에게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프라이버시의 라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라인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이 공연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고민했던 것이고, 라이브 카메라가 영문없이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폭력적이고 강요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해 고려를 해야 하는데, 맥락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긴장감과 내가 일방적이고 행위자에게 당하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자는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취향의 문제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라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카메라가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에게 무엇을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터액티브라고 하지만, 정서적인 참여가 있을 수 있고, 피지컬한 참여의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인터액티브라고 해서 피지컬적인 참여를 1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져 있어도 충분히 인터액티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객석을 양면으로 하고 둘러싸지 않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앤다고 인터액티브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인터액티브가 일어날 수 있는 방식은 많은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할 때 아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가 실은 <햄릿>의 극중극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햄릿은 연출님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관람자를 참여시키잖아요. 자신이 설정한 관객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거죠. 연출님이 던지신 메시지는 관객이 직접 받는 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국가라는 캐릭터가 대신 받게 되는 것이니까 일종의 필터일 수도 있고, 간접적인 방식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출님의 취향은 그 쪽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내용은 <햄릿>이고, 그 중에서도 극중극이라는 점이죠.

이경성 : 그것은 하나의 연극적인 장치이고, 국가가 받을 때에도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긴장감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치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은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해서 극중극 자체가 햄릿이 “그래 연극이다”라고 하면서 햄릿이 연극을 통해서 현실에 파장을 미치는 하나의 방편으로 쓰는 것이잖아요. 햄릿이 “덴마크는 썩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햄릿이 인식하는 연극 밖의 현실이 드러나고, 연극을 통해서 현실을 겨냥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연극이 현실을 겨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연극의 무기력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구요.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것이 저의 화두였거든요. 그래서 <햄릿>을 사용한 것입니다.

전강희 : 김다흰 배우가 <햄릿>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온 것이기도 하구요.

임승태 : <햄릿>의 극중극을 다루고 있지만, <햄릿>의 또 다른 주제인 애도가 이 작품의 형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햄릿>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잃은 다양한 아들, 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이번 연극에서도 배우들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는 점에서요. 포스터에 대해서 짧게 질문드릴게요. 드라마터그와 배우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경성 : 먼저 어떻게 느끼셨는지 먼저 듣고 싶은데요.

김재영 : 저는 포스터를 처음 보고 당연히 배우, 중심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출님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럼 연출이 극에 등장하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연출이 극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예상을 깨는 재밌는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최희범 : 저는 양손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보면서 왜 연출이 여기에 있을까, 그리고 왜 배우 중 한 명은 빠져있고 대신 연출의 얼굴이 들어가 있을까, 왜 연출의 얼굴이 이렇게 의미심장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왜 이들의 얼굴을 왜 드러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터라면 공연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텐데 그러한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육성’하는 예술가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데 대한 나름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효인 :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저도 아무런 정보 없이 연극을 보러 간 사람인데요. 당연히 배우인 줄 알았고, 누구지 하면서 봤는데, 연출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연출이 배우로 등장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에게는 불친절하거나, 그러나 두산의 전략은 먹힌 포스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경성 : 두산과 포스터 때문에 충돌했습니다. 잘 포장된 상품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것을 깨는 게 저의 숙제였습니다. 처음 이 포스터에 대한 컨셉 제안을 받고 그 때 얘기했던 것은 일단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구요. 포스터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서 이해가 안 되었고, 제가 연극하는 방식을 절대 반영하지 못하는, 절대 예술가 한 명이 다 만들어내는 듯한 뉘앙스가 싫어서 마지막까지, 제작의 차질을 빚는 순간까지 갔었고, 그래서 내가 너무 신경쓸 일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놓아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두산 입장에서는 작품에서 파생된 시각 이미지를 쓴 포스터가 대학로에 깔려 있는데, 그게 홍보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이경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크게 나와야 하는가,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길러진 아티스트인가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렇게 브랜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해 두산 PD들도 중간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강문화재단의 사장님들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 고취가 더 큰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두산 이미지를 고취하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간에 껴 있는 PD들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구요. 배우들에게 내게 얘기를 직접 못하겠다 같이 얘기하자고 해서 알렸고, 저는 딜레마인 게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예술하는 방식을 어느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누가 순수하게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겠는가.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이란 말이 계속 걸렸는데, 저는 어떻게 이것을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하고 고결하게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기업 지원의 경우에 나는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를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만 제외하면 파트너십이 굉장히 훌륭하거든요. 작품에 대해서 신경쓰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잘 하는 PD들이거든요. 두산아트센터에서 세월호에 대한 연극을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고, 저희가 제안한 것이고, 시기적으로 두산아트센터가 상대적으로 득을 보았죠. 옆에서는 세월호 연극을 못하게 하는데, 두산에서는 하니까 두산아트센터가 필요한 얘기를 하는구나 라는 반응이 나왔고, 극장 측도 뻘쭘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포스터가 나온 것이구요. 합평회 때 저도 적나라하게 두산 측에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전강희 : 배우들은 PD, 극장의 입장을 이해했는데, 창작자 육성 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티스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PD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구요.

백인경 : PD와 창작자 사이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이끌어가기도 하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길들여지기도 하구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공공기관은 훨씬 그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나 개인이 해결할 수도 없고, 내가 투쟁한다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구요. 그런 것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얼마 전, 성북동비둘기가 했던 <망루의 햄릿>의 포스터가 공연이 시작되고  바뀌었습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물청소 하는 사진에서 문자 그대로의 “고성의 망루”가 그려진 포스터로 바뀌었었죠. 공연 관계자에게 포스터가 바뀐 이유를 물어보았었는데, 극장(국립극단) 측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스터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국립극단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타협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이고, 두산의 방식이 그런 것이죠. 현재 상황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랍고, 정부의 입맛에 맞추려면 축소되거나 할 수도 있을 이 시점에서 공연된 것이 놀랍습니다. 트위터 반응을 보면 두산아트센터에 경의를 표하는 반응도 많구요.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한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성 : 연극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구요.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을 한 작품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작품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구요. 그래서 저는 팝업씨어터 사태 난 것도 굉장히 안타깝고 힘든 일이지만 저는 세 연출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화려하게 입봉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이후에 연극의 형식 등에 어떻게 반영될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선배 연극인들이 그런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참여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가장 잘 나간다는 중견 연출가는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참 어렵고 민감한 것이구요. 어떻게 예민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되는 시점입니다.  

백인경 : 창작자 뿐만 아니라 행정가, 기획자 모두가 같이 고민을 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D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힘든 일을 겪고 튕겨져 나오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것에 무감한 사람들이 버티고, 그런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악순환이 벌어지거든요. 창작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측면보다 같이 연대해서 얘기도 많이 하면서 행정 일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서로 좋게 연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작품도 좋아질 것 같구요.

이경성 : 연대라는 것이 같이 싸우는 것도 있지만 검열이라는 문제를 더 넓은 의미에서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 근접 예술 분야와 시민사회까지 이 검열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누군가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것인지를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지가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승태 : 저희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 중인데, 이 문제는 뒤풀이에서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재영 :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경성 : 저한테 연극이란 어떻게 흥미롭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강희 : 저는 삶의 방식이 연극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희곡을 전공했고, 희곡을 하다보니 연극이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연극을 시작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검열과 같은 잘못된 문제에 대해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는 점이 좋고, 그것이 제 삶을 더 다양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단순히 돈을 벌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냥 할 수밖에 없는 것, 내 삶의 한 방식, 그것이 저에게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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