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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0일 수요일

[괄괄×괄괄 인터뷰 ②] 도은×신효진 - 극작가 동인 ‘괄호’와 창단 공연에 대한 수다

※ [괄괄×괄괄 인터뷰]는 극작가 동인 ‘괄호’ 멤버들 간의 내부 인터뷰를 기록한 시리즈입니다. ①편에는 김진희 작가와 이소연 작가의 이야기를, ②편에는 도은 작가와 신효진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의 기획 및 진행은 ‘괄호’의 드라마투르그 김민조가 맡았습니다. 

<괄괄괄괄>을 올리기까지 


민조: 이번 ‘괄호’ 창단 공연에 도은 작가님은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전화걸기 위해서는>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고, 효진 작가님은 <송>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죠. 저희가 처음에 창단 공연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다가 글쓰기 규칙을 정해서 네 개의 작품을 하나의 공연으로 엮어내자는 결론을 냈고요. 그 이후에 작가님들이 글쓰기 규칙에 맞는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낼 것인지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 대해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도은: 제가 가진 현재진행형의 고민과 엮어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극작가가 나오는 작품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극작가인 나의 고민과 맞물려 있는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원래는 남자가 나오는 연극을 쓰려 했어요. 제가 전에 쓴 작품들 중에는 남자가 죽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남혐 작가 아니면 메갈이다’ 라는 소리까지 들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죽임을 당한 남자가 작가를 찾아오는 얘기를 쓸까 했는데, 쓰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안 써져요. 남성 인물이 찾아와서 작가에게 말을 건다면 결국에는 그걸 쓰는 제가 그 남성 인물의 말을 듣고 싶거나 그 사람이 무슨 논리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야 하는데…

민조: 궁금하지가 않으셨군요. (모두 웃음)

도은: 네, 쥐어짜도 나오지가 않고, 관객들도 보면서 괴로울 거라는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더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남성 인물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 남자 인물을 죽이는 여성 인물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저의 본질적인 고민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여성 인물 두 명이 나오는 작품으로 안착된 것 같아요. 

효진: 저는 2월에 올렸던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 공연에서 제가 극작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했거든요. (웃음) 억울함도 표시를 했고, 소외당한다는 얘기도 했고, 제가 당한 실제 사례들도 다 보여줬고, 어쩌다 희곡을 쓰게 됐는지도 얘기했고요.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아, 극작가 얘기 또 해야 돼?’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데…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등장인물을 만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어렵지 않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극작가의 이야기가 극작가에만 머물지 않고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소망도 있었고요. 
그러기 위해서 ‘친구’라는 친밀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불러내는 방식을 떠올리게 됐어요. 예전에는 제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 것만 글감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해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써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제게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를 극작가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만나 이해해보려 하는 이야기를 쓰면 좀 더 쉽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조: 효진님이 맨 처음에 가져오신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잖아요. 정신분석의와 내담자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인물 관계였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이야기를 교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효진: 그 이야기도 골자는 결국 ‘이해해보려’ 하는 것이었어요. 그와 함께 등장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대상화가 아닐까 하는 저의 고민이 들어갔던 작품이었는데, 왜 교체하게 됐냐면 일단 글에 너무 허세가 많았고 (웃음) 승모근에 힘주고 쓴 것 같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있었거든요. 보다 친밀하고 확장성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송>으로 전환하게 된 것 같아요.

민조: 확실히 관객들 중에서도 <송>을 보며 자신의 친구나 주변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도은님의 <프란시스>를 보며 자신이 동경하거나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것 같고요. 



극작가 동인 괄호,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2020)
 극작가 동인 괄호,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2020)



극작가가 인물을 만나는 과정 


민조: 저는 개인적으로 극작가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했거든요. 인물의 이름이 어느 순간 벼락처럼 오는 것인지, 사흘밤낮을 고민해서 지어내는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효진님이 쓰신 <밤에 먹는 무화과>의 주인공 ‘윤숙’의 경우에도 작품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어떻게 그런 이름을 지으시는 건가요.       

효진: 이름 지을 때가 항상 머리가 터지더라고요. 저는 이름보다는 이야기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그 속에서 의미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편이에요. <밤에 먹는 무화과>의 경우에도 주인공 ‘윤숙’을 제외하면 모두 이름이 없는 인물로 채워져 있거든요. 지나가는 인물들이 특별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거죠. 

도은: 저도 이야기가 먼저 나오긴 하는데, 모든 인물의 이름이 특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있어요. 아니면 아예 익명성이 확 느껴지게 짓거나.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떤 톤으로 갈 지 빨리 결정되는 편인 것 같아요. 톤이 먼저 결정되면 그걸 의식하면서 의미와 맞는 인물의 이름을 찾아가게 돼요.

민조: 도은님의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에 나오는 ‘모’라는 주인공 이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를 상기시키는 이름인데 17세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고요. 

도은: 그 작품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 이름이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어요. 작품을 구상할 때 이름이 한 글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라는 인물은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순간들도 있는데, 익숙한 모습의 엄마는 또 아닌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 이름이 빨리 떠오른 것 같아요.

효진: 가끔 인물이 먼저 오고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 이런 인물을 써야겠다’, ‘얘 이름은 이런 느낌이겠다’가 먼저 오고, 그 인물을 어떤 이야기 속에 넣을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죠. 

민조: 인물의 캐릭터성을 어떻게 구축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타인의 말투나 문체상의 특징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인물을 만드실 때 실제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가 반영되는 경우도 있나요? 

도은: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꽂히는 편이에요. 현실에서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집에 가서는 계속 생각해보는 거죠.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거나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효진: 저는 사람을 나노 단위로 잘 보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덕질을 하는 스타일인데, 그 사람만의 귀여운 순간들이 있어요. 그 순간들을 잘 기억하려 노력하고 그게 왜 귀여웠는지 생각해보는 편이에요. 도은님이 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꽂힌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래요. 어딜 갈 때도 귀가 항상 열려 있어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귀에 잘 들어오고,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항상 궁금해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저는 택시기사님께도 말을 많이 거는데요, 그분들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TMI를 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아, 인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런 사람이 희곡에 나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궁금해지고요. 그런데 오히려 주변 인물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인데, 거기에 나오는 특이한 심리나 철학 사상 같은 것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그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볼  때도 있고요.  


그간의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민조: 작가님들이 그간에 쓰신 작품들을 읽어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인물형이나 모티브가 있더라고요. 효진님의 경우에는 역시 인간이 아닌 존재들, ‘비인간’으로 통칭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탈피>에서도 ‘뱀’이 아주 멋있게 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2월에 하셨던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공연에서도 이 ‘뱀’이라는 인물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연출이 모습이 나왔던 것 같고요. 다른 한편으로 이번 <송>은 내 곁을 떠난 친구를 다시 불러내는 이야기이고, <밤에 먹는 무화과>도 죽음에 가까이 있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인데요. 죽음이라는 테마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신 건가요?

효진: 음… 중2병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건가. (웃음) 우리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끝’에 대한 직감을 갖고 있잖아요. 죽음이 커 보이지만, 실은 내가 싸우고 영영 보지 않게 되는 친구도 제게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관계의 끝이랄까요? 그게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고유한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런 게 없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해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영원하다면 기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특히 희곡을 쓰는 행위에 중요한 것은 순간을 잡아두는 것이고, 연극 자체도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가는 이야기이죠. 그런 게 죽음의 이미지와 잘 연결이 되는 듯 해요. 그렇지만 죽음을 단지 두려운 것으로만 묘사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있고요. 

민조: 효진님이 ‘사라짐’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도은님 작품에서도 유사한 테마가 보이는 것 같아요. <사라져, 사라지지마>에 나오는 사라진 아이, <냉장고로 들어간 아이>에 나오는 사라진 여자들이 그렇죠. 도은님에게는 사라짐에 대한 테마가 어떤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도은: 저는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지’가 궁금해요. 누구에게나 자기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희곡에서는 그 사람들을 무대 위에 불러낼 수 있기 때문에 자꾸 불러내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불러낸다면 어떻게 불러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가 항상 궁금해요.  

민조: <프란시스>의 경우 작품 뒷부분에 작가와 인물이 ‘그 여자는 어떤 여자여야 하나’에 대한 대화를 나누잖아요. 최종고에서 “여자는 그 여자가 그립다. / 왜 그립지? / 떠났으니까.” 라는 대사로 확정되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좀 먹먹한 느낌이 있었데, 방금 해주신 말씀을 듣고 보니 어떻게 보면 도은님의 오래된 테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작가님들 각각의 연습실을 부엉이처럼 날아다니다 보면 기분이 이상할 때가 있는데요.

효진: 부엉이 잘 어울려요. (웃음)

민조: 뭐라고요? (웃음) <프란시스>에 ‘두 여자가 아주 친했는데 멀어졌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게 <송>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진희님과 소연님 작품 도 대사를 통해 서로 링크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님들이 공간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도은님의 경우 전작들을 보면 일상적인 공간들이 나오는 것 같고 인물들도 구어체의 통통 튀는 대사들을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무대지시문들을 보면 오브제만 몇 개 놓여 있는 빈 무대를 쓰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전환이 자유로운 세팅을 선호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도은: 아무것도 없는데, 약속을 해서 공간이 성립되는 순간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진짜 같은 세트를 만들기 보다는 최대한 무대를 상상으로 채워넣을 수 있기를 바라곤 해요. 그리고 제가 희곡을 쓰다 보면 공간 자체가 많아지더라고요. 그 공간들을 실질적으로 구현하지 않고 오브제만 딱딱 넣어놓으면 무대화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낼 거 아니에요. 저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민조: 그래서 도은님 희곡을 읽으면 기본적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공간이 시원하게 열려 있는 느낌이고, <프란시스>에서 그런 점이 트램펄린의 활용으로 집약되지 않았나… (웃음) 저는 효진님의 <밤에 먹는 무화과>를 희곡집 『여자는 울지 않는다』(제철소, 2019)에서 처음으로 읽었는데요, 그때 ‘호텔 뤽상부르’라는 공간의 강렬하고 구체적인 질감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이국적인 느낌도 많이 받았는데, <탈피>의 경우에도 배경이 파충류 동물원이잖아요. 주제적인 면과 공간 활용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효진: 제가 비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데, 저는 최근에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구체적인 공간을 소환하려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밤에 먹는 무화과>의 경우 ‘이윤숙’이라는 인물이 곧 호텔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썼어요. 저는 어느 순간 무대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타협적으로 쓰는 게 싫어졌어요. 예를 들어 호텔이나 동물원 공간에 대한 지시문을 구체적으로 쓰면 쓸수록 제 안에서도 ‘이게 될까?’, ‘이걸 누가 구현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럴 때 타협을 좀 안 해봐야겠다, 연극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읽을 때 재미가 있고 이 이야기에 의미를 주는 공간이라면 쓰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민조; 학교에서 맨날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는 글이라고 가르치죠. 저도 예전에는 연극을 위한 스크립트로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새는 희곡과 무대 사이의 긴장과 간극이 있는 작품이 더 즐겁게 읽힐 때가 있어요.


‘괄호’다운 프로덕션에 대한 이야기


민조: 두 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는 <괄괄괄괄> 프로덕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이번 프로덕션이 연출가를 거치지 않고 작가님들이 배우님들과 직접 접촉해서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형태잖아요. 이런 형태의 프로덕션을 경험해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효진: 저는 되게 좋았어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요. 물론 연출적인 테크닉이 부족하고, 배우의 언어를 잘 모르다보니 기술적으로 조금 딸리는 면이 있긴 했죠. 그렇지만 제 텍스트를 육화시키는 과정에 배우님들과 함께 참여하다 보니 인물을 이해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를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대부분 연출님들이 해석해서 전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2인극의 형식이라서 더 그런 측면이 있겠지만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을 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이번 <괄괄괄괄>의 콘셉트도 작가가 인물을 만난다는 것인데, 뭔가 메타의 메타를 경험했달까… (웃음)

도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괄괄괄괄>이 연출 위주의 작업 환경에 대한 항의 같은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요. (웃음) 연출의 역할을 겸하는 것인지, 그냥 작가로서 과정 안에 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도 내가 어떤 상태로 들어와 있는 걸까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작/연출을 해본 적은 없고, 이번에는 연출도 아니고 작가긴 한데 완전히 작가만 하는 건 아닌… 중간적인 무언가였던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이 많이 반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아무래도 저희가 극작가 동인이라는 것을 배우님들이 의식하셔서 그런지 대사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효진: 맞아요.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려고 하세요. 그런 걸로 뭐라고 안 하는데 틀리면 괜히 눈치 보시고… (모두 웃음)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편하게 하시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대사 순서를 바꿔버리시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또 이 대본을 인터넷에 올릴 거다, 그러니 조금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웃음) 

민조: 말이 나온 김에 연습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좀 더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곤란했던 순간, 재미있던 순간, 신기했던 순간 등등이 있으셨나요?

도은: 저는 연습실에 오는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할지 알고 오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일일계획표를 세우고 첫 연습 때 전부 공유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프란시스> 팀은 인원이 적고 작가랑 배우들이랑 나이대도 전부 비슷해요. 그러다보니 수다를 정말 많이 떨게 되는 거예요. 다섯 시간 연습이면 두 시간 수다를 떨고 세 시간 바짝 하자, 는 식이 되기도 하고요. 작품과 아무 상관없는 연애 이야기를 꽃피우기도 하고. 그게 가능한 환경이 신기했어요. 

효진: 저희도 그래요. 네 시간 연습인데 한 시간 떠들고 한 시간 근황토크하고… (웃음) 보통 연출 역할을 맡은 사람이 조바심을 내게 되잖아요. 저는 연출님들이 공연이 임박해오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하호호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도 제가 되게 태평하더라고요? 저는 도은님처럼 계획을 짜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오늘은 뭐 할까요?’ 하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그러니까 배우님들이 오히려 불안해서 추가 연습을 하자고 하시고, 저는 ‘저희 다 됐는데 왜 그러세요’ 그러고. (웃음) 저도 동년배 세 명이서 연습을 하니까 너무 돈독해지고 좋더라고요. <송>은 90년대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이라 그 시절 얘기로 또 꽃피우고, 그런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아, 에피소드라면 ‘햄스터 난입 사건’도 있었잖아요?

민조: 햄스터 난입 사건*은 제가 각주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웃음) 이번 창단 공연은 네 명의 동인이 독립적인 단막극을 연달아서 올린다는 특징도 갖고 있잖아요. ‘괄호’ 동인의 이름으로 처음 시도해본 가능성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어떠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효진: 이번 공연도 매우 의미 깊고 좋은 시도였지만, 개별적으로 연습이 돌아가다 보니 극작가들끼리 뭔가를 한다는 느낌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극작가 네 명이 복작복작 벌이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 스터디도 하고 싶고요.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걸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스터디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바람이에요. 두 번째 바람은 극작가로서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희 공연 풀네임이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잖아요. 정말 그 제목에 어울리는 모색을 해보고 싶은 거죠. 세 번째로는 동인들이 서로의 희곡을 봐주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내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괄호’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지지해주는 동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도은: 지원 사업 되고 나서 저희들이 같이 희곡을 쓰기 시작했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이 흔치 않거든요. 내 희곡이 언제 공연될지 모르는 상태로 쓰지, 공연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쓴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동인들이 동시에 희곡을 쓰기 시작하고 회의 자리에 모여서 그 희곡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감각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덕션 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좋았고, 연출이나 배우의 피드백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피드백을 준다는 것도 좋았어요. 그게 초반에 작품을 다듬을 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팀 내에서 꾸준히 잘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저는 공동창작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처럼 여성 극작가들이 모인 ‘글과 무대’ 팀의 공연을 봤는데, 그 공연은 아마도 작가들이 함께 스토리라인을 짜고 인물을 만든 것 같았어요. 저희도 그렇게 하나의 주요 스토리를 만들고 동인들이 공동 작업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힘든 작업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과정 안에서 극작가가 뭘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너무 소외되어 있다는 결론 말고, 앞으로 우리가 과정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효진: ‘괄호’ 희곡집도 내고 싶어요. 저는 제 희곡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지가 항상 어려웠거든요. 공연화되지 않더라도 희곡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뭔가를 해보면 좋겠어요. 희곡만 있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해서 희곡의 장면을 삽화로 넣어볼 수도 있고요. 좀 더 가독성 있고 독자가 상상을 하기 편한 희곡집을 만들면 누군가에게는 읽히지 않을까요? 

민조: 돌이켜보면 저희가 창단하자마자 공연을 올리는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데요, 오히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극작가 중심 프로덕션을 굴려보는 소중한 경험을 얻은 것 같기도 해요. 그 경험을 가지고 다시 ‘괄호’로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음 스텝을 구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

* 수유동 연습실 햄스터 난입 사건: 2020년 5월 22일 수유동에 소재한 쿵짝프로젝트 연습실에 햄스터 한 마리가 난입한 사건. 1층에서 연습실 현관으로 난데없이 떨어진 햄스터를 작가 도은이 최초 목격하였고, 곧장 연습실 난입을 감행한 햄스터를 드라마투르그 김민조 등이 저지하였다. 햄스터는 쿵짝프로젝트 연습실에서 1박 2일을 보낸 뒤 입양 의사를 밝혀온 연극인의 품에 안겨 유유히 사라졌다. 
  

도은
2018 <사라져, 사라지지마>
2019 <냉장고로 들어온 아이>
2019 <아무튼 살아남기>
2019 <아빠 안영호 죽이기>
2020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전화걸기 위해서는>

신효진
2018 <아웃스포큰>
2018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2019 <탈피>
2019 <디디의 우산>
2019 <밤에 먹는 무화과>
2020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2020 <송>


 

2020년 6월 9일 화요일

[괄괄×괄괄 인터뷰 ①] 김진희×이소연 - 극작가 동인 ‘괄호’와 창단 공연에 대한 수다


※ [괄괄×괄괄 인터뷰]는 극작가 동인 ‘괄호’ 멤버들 간의 내부 인터뷰를 기록한 시리즈입니다. ①편에는 김진희 작가와 이소연 작가의 이야기를, ②편에는 도은 작가와 신효진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의 기획 및 진행은 ‘괄호’의 드라마투르그 김민조가 맡았습니다. 


<괄괄괄괄>을 올리기까지 


민조: ‘괄호’ 창단 공연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이하 <괄괄괄괄>)에서 진희 작가님은 <DELETE>라는 작품을, 소연 작가님은 <조약돌은 상상한다>라는 작품을 각각 올리시잖아요. 처음에 네 개의 작품을 어떻게 하나의 공연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저희가 글쓰기 규칙이라는 것을 정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작가님들이 이 규칙에 맞는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낼 것인지 각자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진희: 제가 극작을 할 때 책상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못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착착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진도가 못 나가고 있는 것 같고, 쉽게 쓰면 되는데 왜 쓰지 못할까 스스로를 비난하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 역’과 ‘인물 역’이 등장한다는 글쓰기 규칙이 정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제가 자기검열을 통해서 지워버렸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 사람과 만나는 순간을 이야기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워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민조: <DELETE>에 ‘영기 할매’를 비롯해서 지워진 인물들이 여러 명 거론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쓰셨던 인물들의 이름인가요?

진희: 완전히 똑같은 이름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휴지통에 모여 있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성진’ 역의 정대경 배우님이 휴지통 안에 모여 있는 친구들을 가지고 <DELETE 2>를 만들어도 재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태어나지 못한 존재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민조: 소연님이 올해 2월달에 올린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 공연에서도 극작가가 타이핑한 글자들을 모두 선택 > 삭제해버리는 퍼포먼스가 있었잖아요. 글을 쓰다가 지워버리는 작가적 노동의 피곤함이 <DELETE>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아요. 

소연: 저는 제가 글을 왜 쓸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쓸 때 출발하는 지점이 늘 인물이거든요.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며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고 부딪힘이 생길 때 제가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조약돌은 상상한다>도 거기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민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서 부딪혔던 암초 같은 게 있을까요? 작가님들이 초고, 수정본, 최종본, 최최최종본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웃음) 그 과정에서 경로 변경이 조금 있었죠?  

진희: 초고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인물 역의 ‘성진’ 캐릭터예요. 초고의 ‘성진’은 신적이고 초월적인 존재, 작가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었어요. 수정 과정에서 보다 ‘등장인물’이 된 것 같아요. 작가 역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바뀐 거죠. 이 이야기가 나 혼자만의 징징거림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 작품이 과연 객관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우려가 들기도 해서 배우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초반에 동인 기획회의를 할 때도 극작가의 이야기를 하되 극작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했잖아요. 그 고민이 제일 컸어요. 

민조: 네, 저희가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죠. 연극계에서 극작가가 얼마나 왕따인지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웃음) 한편으로는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이길 바란다는 결론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소연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소연: 네. 저도 초고 때는 좀 더 극작가 이소연에 집중하고,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 했어요. 이상형이라는 존재가 출현하게 되는 계기 자체가 ‘나랑 맞는 연출이 없어서’였던 거죠. 내 작품을 제일 잘 이해하고 완벽하게 연출해줄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이상형이 만들어지는 얘기였는데, 진희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라는 존재가 극작가 정체성만으로 이루진 것은 아니잖아요. 차라리 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가야 극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동시대적 고민들을 조금 더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은 연출이 아니라 나를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내 삶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상형을 찾는 이야기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진희님과 정반대일 수도 있는데, 초고 때는 ‘이상형’이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로 쓰여 있지 않았어요. 수정 과정에서 ‘이상형’이 보다 주체적으로 ‘이소연’과 상호작용을 주고받게 되었죠. 그래놓고 보니 ‘이상형’의 캐릭터를 결정하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이상형’ 역을 맡은 배우가 과연 어떤 상태로 과연 무대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상태로 이 극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제일 많이 하고 있어요. 

민조: 두 분 다 상호작용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셔서 흥미롭네요. 작가가 인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인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는 점. 어쩌면 이번 <괄괄괄괄> 작품들은 모두 ‘주고받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도 같네요.

극작가 동인 괄호,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2020) 포스터
극작가 동인 괄호,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2020)


극작가가 인물을 만나는 과정 


민조: 자연스럽게 인물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극작가는 인물을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늘 궁금했던 점이 있었어요. ‘극작가는 이름을 어떻게 짓지?’ (웃음) 인물 이름이 불현듯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인지, 아니면 사흘밤낮을 고민해서 지어내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진희: 개인적으로 소연님이 이름을 정말 잘 짓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름 짓는 걸 되게 좋아하고… 

소연: 맞아요. 좋아해요. (웃음) 

진희: 반대로 저는 이름 짓는 걸 힘들어하는 타입이에요. 이름에는 나름대로 인물의 성격이나 특성이 반영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보통은 이름 없는 역할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예전에 효진님, 소연님과 학교에서 같이 공연을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저는 남자 두 명이 나오는 2인극을 썼고 거기에 이번 공연의 ‘성진’과 비슷한 인물이 있었어요. 이름은 따로 짓지 않고 배우의 성씨로 대체했었죠. 설명충에다가 오타쿠 기질이 있고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캐릭터. 그런데 제가 써온 작품들을 생각해봤을 때, 그런 캐릭터가 꼭 한 명씩 있었던 것 같아요. 성진이라는 인물이 그들의 결정체가 아닐까 해요. 

민조: 저는 진희님이 쓰셨던 <그 어딘가의 영주>에서 주인공 ‘영주’의 이름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라진 딸을 찾아 도시의 공장, 마트, 원형의 도로 등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인물인데 이름이 ‘영주권’ 할 때의 영주잖아요. 아이러니한 작명이라 생각했어요. 

진희; 그런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웃음) 그 나이대의 여성에 대해 생각했을 때 ‘영주’라는 이름이 떠올라서 그렇게 지었던 것 같아요.

민조: 사람의 이름이라는 게, 이름에 담긴 의미보다 글자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이나 뉘앙스가 더 중요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최근의 예술작품에서 ‘영지’라는 이름이 자주 발견된다는 점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한 시대의 언어망 속에서 각각의 글자가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영주’의 경우에도 그런 위치성이 확 다가오는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소연님은 아까 이름 짓기를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이름이 빨리 떠오르는 편이신가요?

소연: 그런 편이에요. 인물을 생각하면 무조건 이름부터 짓고 시작해요. (웃음) 보통은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 떠오르거나 내용과 의미적으로 연결되는 이름을 짓게 돼요. 나만 알 수 있는 의미라 할지라도 그걸 이름에 심어놓는 것도 좋아하고요. 기억에 남는 이름은 아무래도 등단작이었던 <마트료시카>의 ‘윤경’이에요. 캐릭터 자체도 저희 엄마한테서 영감을 받았고 이름도 엄마의 성함에서 성만 바꿔서 그대로 갖다 썼어요. 2018년도에는 ‘상아’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43kg만큼의 상아>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작중에 코끼리와 이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아’라는 이름을 짓고 나서 코끼리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인물과 이름이 딱 매치되는 걸 좋아해요. 

민조: 제가 이번에 4개 팀 연습실 사이를 날아다니는 호그와트 부엉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잖아요. (웃음) 도은님 연습에 가보니 ‘배우는 인물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 작업을 지켜보다가 극작가에게는 인물이 어떻게 오는지가 거꾸로 궁금해졌어요. 

진희: 극작과 수업에 들어가보면 정말 인물의 전사(前史)를 A4 몇 장에 걸쳐서 세세하게 짜는 분들이 계세요. 저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몇 번 시도해봤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일단 작품 내에 인물을 등장시키면 어떻게든 성격이 구체화된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인물들이 알아서 반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소연: 저는 정해놓고 쓰는 편이거든요. 대부분 인물을 먼저 정한 다음에 인물이 겪게 될 주요 사건을 짜놓고 시작해요.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인상 깊게 느꼈던 면을 많이 가져오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혼자 생각해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인물을 만드는 방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를 먼저 정한 뒤에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 하고 반추하며 되짚어가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 같아요.

민조: 관찰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작가님들은 평소에 사람들을 관찰할 때 유심히 보시는 포인트가 있나요? 

진희: 저는 행동이나 습관 같은 걸 보게 돼요. 눈을 자꾸 깜빡거리면서 얘기를 한다거나, 말 사이에 자꾸 기침을 자주 한다거나. 

민조: 진희님 전작인 <EXIT>나 <그 어딘가의 영주>를 보면서도 느낀 건데, 진희님 작품에는 ‘손사래 치며’라는 지시문이 유독 자주 나오더라고요? 이번 <DELETE>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웃음) 소연님은 어떠세요?

소연: 저는 여러 명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좀 변태 같지만… (웃음) 보통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듣거나 다른 일을 하잖아요. 그럴 때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왜일까 생각해보니,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는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날 때라 그런 것 같더라고요. 관심을 안 가지면서 가지는 척을 하고 있다거나, 말로는 리액션을 하면서 딴짓을 하고 있다거나. 또 저하고 얘기할 때 말고 다른 사람이랑 얘기할 때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제게 가장 큰 원천이 되는 건 연애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연애 이야기를 늘 예민하게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애하는 스타일이 각자 너무 다르잖아요. 연애에 대한 사소한 말 한 마디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싸울 때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 등등. 사람들이 열렬한 감정으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고 거기에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간의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민조: 자연스럽게 인물형(形)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네요. 소연님 작품을 보면 사랑이나 소유의 문제, 관계의 딜레마로 인해 시달리는 인물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 위해>나 <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의 경우에도 그렇고요. <조약돌은 상상한다>에 나오는 대사이지만 “짜장 맛이 나는 짬뽕”을 동시에 원하기에 번민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인물형을 만들어 낼 때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없나요? 

소연: 그런 이야기를 많이 쓰는 건 저 또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 거잖아요. 저랑 가까이 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쓰고 나면 오히려 속이 시원하거나 해소감을 느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민조: 제가 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냐면, 소연님 작품에서는 연애 관계에 있는 두 인물 중 어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았거든요. 누가 상처 입히고 누가 상처받는 식으로 원사이드하게 전개하기보다는 ‘사랑의 회전문’ 같은  관계의 구조 전체를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양쪽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니까요. 그런데 도리어 후련하다고 하시니… (웃음) 
한편 진희님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좁은 공간에 혼자 있는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었어요. <EXIT>는 전면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 어딘가의 영주>도 기본적으로는 영주가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지만, 외롭게 외따로 있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잖아요. ‘작가의 방’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이번 <DELETE>도 마찬가지고요. 

진희: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희곡을 썼던 적도 있어요. 사람들은 왜 혼자 있기를 싫어하면서 자꾸 고독을 즐긴다는 말을 할까.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걸 싫어하는데 왜 그 과정에서 외로움을 느낄까에 대해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한적인 공간에 대해 쓰게 되고, 전부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공간으로 연결되는 이미지가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민조: 개인적으로는 진희님의 <EXIT>를 읽다가 “문이 안에서 안으로 통한다” 라는 대사에 꽂혔던 적이 있어요. 문은 당연히 안에서 밖으로 나가게 해주는 매개라고 생각해왔는데, 안에서 안으로 통한다는 대사 때문에 문 밖으로 나가느냐, 나가지 않느냐 하는 선택을 스스로 감당하는 인물들의 모습들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진희님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으니 말인데, 소연님 작품에는 ‘바다’라는 공간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비 오고 번개 치고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웃음)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 위해>는 배경 자체가 한적한 바닷가로 설정되어 있었고, 이번 <조약돌은 상상한다>도 바다와 조약돌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했죠. 

소연: 바다도 있지만, 요즘에 많이 꽂혀 있는 공간은 황야예요. 인간을 압도시키는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제가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아득한 공간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사색하게 되잖아요. 작품 속에 그런 공간들을 넣어놓으면 제 머릿속에서 이미지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인물의 경우에도 저는 대부분 바다나 황야, 공터, 들판 같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의 이미지로 많이 다가오곤 하고요. 



‘괄호’다운 프로덕션에 대한 이야기


민조: 이제 <괄괄괄괄> 프로덕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이번에 극작가가 배우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프로덕션을 경험하게 되셨는데, 어떠셨어요? 

진희: 저는 예전에 스탭으로 공연에 참여했을 때나 작가로서 참여했을 때나 연습실을 자주 찾아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 제가 연습실에 가서 할 수 있는 건 주로 연습을 보거나, 제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말하는 것뿐이었어요. 제 의견이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어렵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작/연출을 해보면서는 제가 생각했던 그림을 배우들에게 바로바로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물론 배우님들은 보통 연출의 언어를 들으면서 작업을 해오셨으니까 제 말이 바로 전달되기가 힘든 것도 있었죠. 저는 연출의 언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 ‘여기서는 이런 감정이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까요. 그런 과정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배우님들이 제가 의견을 드리면 바로 시도를 해주셨기 때문에  ‘아, 내가 생각했던 게 이런 거였지’, ‘이 그림으로 갑시다’ 하고 픽스를 할 수 있었어요. 이래서 많은 극작가들이 작/연출을 하는 거구나… (웃음)

소연: 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웃음) 일단 저는 원래 연습실에 잘 안 가는 작가였고, 이번 연습 과정에서는 종종 제가 쓴 텍스트라서 오히려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아마 저는 명확하게 그림을 상상을 하면서 쓰는 편이 아닌가 봐요. 제게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글로 쓴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텍스트를 제가 장면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설득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꽤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배우님들에게 명확하게 요구하거나 결정하기가 어려운 지점도 있었고요. 오히려 저는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을 연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민조: 연출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시는 건가요? (모두 웃음) 

소연: 아, 저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어요. 저희 연극이 한 명은 상상을 하고 한 명은 그 상상 속의 인물로서 움직이는 거잖아요. 얼마 전에 연습실에서 얘네가 어떤 식으로 상상을 하느냐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시던 무대감독님께서 웃으시더니 작품 속에 나오는 두 인물의 관계가 저와 배우님들의 관계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랑 배우님들도 그 말을 듣고 순간 ‘그러네?’ 싶었어요.  

민조: 저도 사실 옆에서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웃음) 글쓰기 규칙이 그렇다 보니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메타적으로 겹쳐지더라고요. 아까 이야기했던 작가와 인물 사이의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연습실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는 거잖아요. 진희님도 기억에 남는 연습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진희: 이게 작가의 이야기이다 보니, 배우님들이 이 작품 속에 제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갔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가끔씩 연습을 하다가 ‘진희야, 괜찮지?’ 하고 물어보세요. (웃음) 아니, 이거 전혀 제 이야기 아니고 상상해서 지은 거다, 라고 말씀드리고 넘어갈 때가 종종 있었어요. 배우님들은 조심스러워하시는데 저는 그 상황이 재미있는 거죠. 

소연: 신기한 순간은 그런 거예요. 제가 쓸 때는 몰랐던 것을 배우님들이 먼저 발견하는 경우. 제가 잊어버렸거나 놓치고 지나갔는데 배우님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주시는 순간 갑자기 ‘맞아, 나 이래서 이렇게 쓴 거였지’ 하고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분명 제가 쓴 텍스트이지만 배우님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텍스트를 쓸 때와는 다른 플러스 알파가 발견될 때가 있어서 그게 가장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진희: <DELETE>에 나오는 작가의 마지막 대사가 원래는 이 작품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번 더 짚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쓴 대사였어요. 그런데 ‘성진’ 역할의 정대경 배우가 이걸 다시 한 번 말해주는 게 설명적이지 않느냐고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저희가 다 웃었어요. 왜냐하면 이 작품은 ‘설명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지워져버린 ‘성진’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성진’ 역의 배우가 이 부분은 설명적이니까 끊는 게 좋지 않을까 제안하는 상황 자체가 재미있었던 거예요. 결론적으로 그 대사는 빠지게 되었지만, 제게는 뭔가 여러 차원의 인물이 오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민조: 이번 공연은 동인 4명의 작품을 연달아서 올리는 준(準) 페스티벌의 형태를 띠고 있잖아요. 이번 창단 공연의 형태 자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창단 공연 이후 ‘괄호’라는 플랫폼을 통해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

진희: ‘괄호’의 이름으로 다시 공연을 올리게 된다면, 반드시 우리 4명이 모두 대본을 써야 할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가 장기적으로 갈 수 있다면 동인 한 명이 대본을 쓰고 다른 동인들은 극작가의 역할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요. 함께 공연을 올리는 것에 의의를 두고, 다른 역할을 서로 해보는 거죠. 오히려 극작가 동인이라는 팀 안에 있으니까 조명이나 연출 같은 극작 이외의 요소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할 수 있더라고요. 

민조: 인상적이네요. 극작가들이 모인 팀이니까, 오히려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역할을 맡아볼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된다는 거군요. 

소연: 제가 하고 싶은 건 일종의 극작 워크숍이에요. 배우님들은 워크숍을 많이 하잖아요. 여러 명의 극작가들을 모아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오히려 연출이나 배우 친구들이 더 많고, 동료 극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이왕 극작가 팀을 만들었으니 이 팀을 통해 연극계에 별로 많지 않은 극작가들의 커뮤니티를 모색하거나 개발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민조: 저희가 ‘극작가들이 소외되지 않는 프로덕션’이라는 말을 창단 공연의 소개글에 내걸고 있잖아요. 진희님과 소연님 말씀을 들으니 생각보다 이 프로덕션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팀이 극작가가 다른 일에 도전해볼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이 되어줄 수도 있고, 외부로 확장해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공연 과정을 거치면서 창단 당시에는 다소 막연하게 느껴졌던 ‘괄호’의 가능성 자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혀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인터뷰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진희
2019 <EXIT: 탈출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2019 <그 어딘가의 영주>
2020 <DELETE>

이소연
2017 <마트료시카> 
2018 <43kg만큼의 상아> 
2018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지를 때> 
2019 <최후의 마녀가 우리의 생을 먹고 자라날 것이며> 
2019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 위해> 
2020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 
2020 <조약돌은 상상한다> 
   

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비포 애프터》 이경성 연출, 전강희 드라마터그 인터뷰


드라마인에서는 지난 11월 20일 <비포 애프터> 팀의 이경성 연출님, 전강희 드라마터그님을 모시고 이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의 대화 내용 일부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

임승태 : 어떤 관객이 얼마나 공연장을 찾았는지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정부에서 꺼리는 주제를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선택한 형세가 되고 말았는데, 극장이 얻은 수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산아트센터는 비영리 극장이기 때문에 전석이 만석이 되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올해 두산 작업 중에서 관객 점유율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두산은 일반적으로 20-30대 젊은 관객층이 많은데, 이 작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왔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임승태 : 연령층이 다양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경성 : 젊은 극단이기 때문에 특정 관객들이 몰리는 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세대 배우와 같이 작업하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이 넓어졌고 만날 수 있는 연령대가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세월호가 특정 연령에만 국한되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공연 오픈 전에 홍보하는 단계에서 세월호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을지 아닐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월호를 쓰는 것 자체에서 선입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세월호에 국한된 연극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사건들로 얘기를 했었는데, 진행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세월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도 관람했었나요?

이경성 : 안산에서 왔었고, 유가족은 안 왔는데, 유가족의 친구들이 왔었고, 윤일병의 어머니도 보러 왔습니다.

백인경 : 저는 미리 예매를 했었고, 세월호 때문에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산 도큐멘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때 보질 못해서 궁금한 마음에 예매를 했습니다. <남산 다큐멘타>처럼 이번 작품도 형식적으로는 다분히 포스트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극이 상당히 드라마적이고, 전통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햄릿>의 극중극을 사용하는 점이나, “연극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예상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공동창작을 하거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기존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탈피하는 시도라고 보이는데, 사건 중심의 전개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측면은 여전히 전통적인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성 : 일단 저의 배경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연극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강렬한 드라마로 연극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아마데우스>나 <오월의 신부>, <길> 등의 연극을 주로 했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드라마의 한계를 느꼈고, 이것들이 다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극단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적 관심은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 레만(Hans-Thies Lehmann)에 있었고, 논문에서는 두 사람의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비판을 시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레만이나 랑시에르는 연극이라는 것을 내용이 아닌 형식의 문제로 봤고, 감정의 재분할을 얘기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감각이 재배치되는 경험이 연극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으로서 연극의 정치성이 획득된다 그런 것들이 이들의 중심 생각이었고, 이런 것을 레만이 하나의 포괄적인 용어로 ‘포스트드라마’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제는 포스트드라마라는 형식으로 진행됐던 실험의 한계도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레만이 다루고 있는 작품도 시기적으로는 네오 아방가르드 이후 70, 80, 90년대 작업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포스트모던, 또는 포스트드라마적으로 해석을 열어두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찾으려고 했던 형식적인 실험은 그것이 다의적인 해석으로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든 맥락을 형성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무한정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영역에서 말을 걸려고 하는지에 대한 맥락들을 어떻게 형성하면서 다의적으로 열 수 있을지를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돌하고 상호모순적이지만, 그것을 굳이 드라마로 표현한다기 보다는, 컨텍스트를 구조 내에서 유지해 나가느냐, 그러면서 관객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이 각각의 요소나 재료들을 연결하면서 이 맥락 안에서 의미망들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포스트드라마, 포스트모던에서의 허무함이랄까 건조함이랄까 그런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제 작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되게 포스트모던이라기보다는 모던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제가 드라마를 먼저 하고, 포스트드라마를 하고 그 다음은 어떤 형식적 실험을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전강희 : 바키의 배우들이 자기 얘기를 꺼내고 기승전결 스토리가 없는 연극을 만드는 방식에 점차 익숙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형식을 가지고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드라마적인 것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연습을 하면서 더뎠던 부분이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배우들 스스로 정리된 것이 있어서라고 생각되는데, 서로 반응이 오는 시간이 빨라지고 결과물도 빨리 나왔고,  감정도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드라이한 연극이어도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면 가지고 노는 것이 더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경성 : 감정보다는 정서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요. 이번 리허설 도중에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의 관계자가 와서 연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연극도 다큐적인데,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보다는 정서가 굉장히 짙게 배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정서가 생소하고 낯설면서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저 스스로도 생각을 해 보았고, 만들면서 내가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과, 이것을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이것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노력했습니다. 뭔가를 할 때 일부러 정서를 안 넣으려고 의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임승태 : 이번 작품이 특히 그런 건가요? 직전의 <남산 도큐멘타>와 비교해 보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산에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으나, 세월호나 배우들이 자신이 겪은 죽음을 얘기하다 보니까 객관화할 수 없고 객관화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지점이 생긴 것은 아닌가요?

전강희 : <남산 도큐멘타> 같은 경우는 소재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객관화시키기가 더 쉬웠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자기 이야기라서 그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연기하는, 배우라는 역할 수행의 측면에서 객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성수연 배우는 아버지에 대해서 썼는데, 그것을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에 말할 때에는 객관적인 거리를 두지 못했을 텐데, 연습실에서는 배우로서 거리를 두려고 했고, 대사를 쓸 때에도 ‘우리 아빠가’가 아니고, ‘관객에게 이것은’을 항상 떠올렸습니다. 배우의 태도에 있어서 객관적 태도를 잘 갖췄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내용 자체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는 것이라서 거기에서 이전 작품과는 다른 ‘정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인경 : 다큐멘터리 연극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건들에 얘기하거나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세월호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겪은 일이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안에서 숙성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라고 해도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의 관객들이 봤을 때에는 우리와는 다르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장면처럼 강렬함을 전달하는 경우에는, 사건이 해결되면서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직 사건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원한 느낌보다는 의문이나 아쉬움같은 감정이 더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이 아닌 의견 제시로 가게 되었네요.

임승태 : 이 의견을 받아서 질문을 하자면, 드라마가 없는 연극에서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전강희 : 이러한 작업이나 드라마가 강한 작업이나 드라마터그의 작업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가 없기 때문에 연습실에 더 많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가 A를 얘기하다가 이번에 B에 대해 얘기를 한다면 그 사이에 변화의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했다라는 것을 드라마터그가 얘기를 해줘야 해요. 스토리에 대한 것이나, 분석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은 다 하는 것이구요. 이번 작업에서는 연습실에 최대한 많이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바키는 연습을 한다기보다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고, 드라마터그는 런을 돌 때, 런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연습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나온다면, 그것이 맞다 안 맞다를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함께 있는 것이 이번에는 중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경성 :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요소 요소를 논리로 엮어야 하는데, 그것을 연출이 하지만 제3자가 필요한 것이죠. 당신이 봤을 때 이 진행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는가를 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연출의 요청에 따라서 수행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어 할 수 있었는데, 배우들이 연출과 바로 할 수 없는 순간에 드라마터그가 그 사이에서 배우와 연출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전강희 : 제3자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통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습실을 많이 안 가기도 하지만, 저는 연극의 과정을 알지 못하면 제3자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3자가 될 수 없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많이 가서 봐야 진짜 제3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바키 작업은 그런 면에서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계속 바뀌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김재영 : 연습 과정에서 많은 장면을 시도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장면은 깎여 나가고, 어떤 장면은 공연의 큰 줄기 안에 포함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연습한 여러 장면 중 공연의 논리적인 구성에 잘 부합하는 장면들만이 살아남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졌을 것인데, 연습 과정에서는 훌륭하다고 느꼈지만, 공연의 논리적 흐름 상 배제된 장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공연에서 제외하기로 판단했을 때, 배우들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경성 : 두 장면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호흡과 감정에 대한 것인데요.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자극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워크샵을 통해서 호흡과 근육의 작동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노나 슬픔과 같은 외부의 자극이 배우에게 올 때, 그것을 배우의 내부에서 어떻게 바꿔낼 수 있는지를 연습했습니다. 모든 배우가 함께 모여서 분노, 슬픔, 화 등의 감정을 호흡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는데,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면들 사이사이에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들을 배치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웃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정이 화와 분노로 발전하고, 분노가 다른 방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연기 수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결국 공연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환대'와 관련된 장면이었습니다. 워크샵에서 내 옆의 사람, 나의 관련 없는 사람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는가, 어떻게 마주하고 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환대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배우 중 한 명이 백화점이나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예를 가지고 와서 그런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점차 감정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장면을 살리려고 했는데, 다른 장면들이 들어오면서 이 장면이 들어오면 공연 전체의 그림에서 너무 뜨는 느낌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배우들도 이 장면을 삭제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 했구요. 장면이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서 형태를 갖춘 시점에서 이것을 살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연출 입장에서는 장면을 포기할 때에 허탈하고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공연 전체의 맥락과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이러한 점에 대해서 배우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강희 : 저도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광고를 가지고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연습 기간 중에 보험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했는데, 특히 생명보험은 생명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상품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서 초기 워크샵에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동안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이 장면이 다 빠져있더라구요.

이경성 : 저는 라디오 광고를 듣다보면 나레이터가 금융상품을 신나게 설명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이런 건 안 되고, 저런 건 안 되고, 이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등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재밌게 느껴져서 그 부분을 살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장면을 만들면서 너무 꽁트처럼 흐르는 것 같아서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경 : 얼마전 광주에서 4시간짜리 연극을 봤는데, 연극 중간 중간에 배우가 퇴장하는 순간에 샴푸 광고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TV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생경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경성 : 오늘날 우리가 지각하는 방식이 어떤 건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샌들을 하나 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세월호 관련된 기사를 찾다가 샌들 광고 팝업이 떴고, 저도 모르게 기사 읽는 것을 중단하고 광고를 따라 샌들 상품을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각하는 방식이 그렇게 팝업되는 것처럼 바뀌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것이 극장에서는 무척 낯설게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지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강희 : 보험 광고 연습을 했던 것도,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을까라는 맥락에서 연습했던 것이었습니다.

임승태 : 사전 질문 8번을 여쭤보겠습니다(질문지 보기). 세월호에 대해서 연극에서 조금 더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과 동시에 과연 세월호라는 사건, 그리고 배우들이 겪은 고통의 경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경성 : 담길 수 있는지라는 말은 당위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임승태 : 세월호를 연극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행위나, 그릇에 잘 담겨진 세월호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일종의 ‘순수한 미에 대한 추구’가 한편으로 굉장히 끔찍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신 손탁(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것처럼, 스펙터클을 원하는 관객의 욕망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구요. 제 경우 세월호 연극을 한다니 보러 가야 겠다는 것이 극장을 찾을 동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고통을 얼마나 “재미있게” 다루는지 보고 싶은 것이 이 연극을 보려고 했던 동기라는 점에서요. 그러면서 이경성 연출이나 바키는 왜 이것을 연극으로 만들려고 했던 걸까?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가? 라는 질문도 함께 들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분명 이러한 고민들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사실 저는 세월호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배우들 개인의 아픔이 들어와 있는데요. 내가 애초에 보고 싶었던 것은 세월호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 ‘나는 세월호의 죽음을 보고 싶은데, 내가 왜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생각해보니, 눈 앞의 사람이 말하는 고통에 귀기울이지도 못하는 내가 세월호의 죽음에 가지는 관심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세월호를 다루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실현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형식적으로 완결되지 않거나, 더 충분히 말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객관화할 수 없는 동시대의 문제이기 때문 아닐까요?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새로운 뉴스가 또 나와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작품 또한 미완결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경성 : 제가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사전 질문지에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통을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반(反)연극으로 보입니다.’라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요?

임승태 : 세월호의 죽음과 배우들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월호의 직접적인 희생자를 언급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죠. 온 국민의 관심사인 거대한 죽음이 전면에 있지만, 무대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배우가 직접 겪은 죽음이구요. 어떤 관객이 세월호를 보러 왔다면 이러한 개인적인 죽음의 경험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경성 :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생각했을 때, 저는 <다이빙벨> 같은 다큐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큐는 세월호에 대한 다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만든 것이구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남을 수 있는, 필름의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목적성을 획득했던 것이구요. 저는 오늘날 연극이 그러한 점을, 죽음의 숨겨진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나, 그 죽음을 가장 적나라하고 아프게 드러내는 방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영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이 연극에 세월호라는 라벨을 붙인 것은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붙인 것이지, 저희가 아닙니다. 제가 이 연극에 노골적으로 세월호 연극이라고 말하게 된 것도 그 후에 일어난 검열 사태와 같은 맥락 속에서 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세월호 연극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세월호를 다뤘지만, 그 너머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통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구요. 세월호가 일어난 원인, 죽음이나, 그 후에 국가가 실패한 것은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오는데, 그것을 연극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번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극을 할 때 연극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연극 자체가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이해하고 다가가는 효과적인 감정의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연극 한 편을 보고 전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내 일로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작품으로 풀어내려고 하는데, 세월호를 제쳐두고는 그 주제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렇게 때문에 세월호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저도 다른 걸로 얘기를 하고 싶었죠. 제 주제를 얘기하는 데 세월호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하나라고 생각하신 관객도 있을 수 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장소 자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어떻게 맞닿아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경험을 연습하기 위해서 극장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극작가가 쓴 어떤 인물의 이야기이든, 배우 자신의 실제 이야기이든 그 부분에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작품 만들 때에는 세월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해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관객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죠. 관객들이라고 하지만, 한 명 한 명은 개별적인 주체이고,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관객을 생각하고 만든다는 것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생각하면서 만들지만, 어떤 관객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하고 만들지는 않습니다.

전강희 : 준비 과정에서 달라진 감각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해서 무대화할 생각은 별로 없었고,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고, 나도 죽을 수 있다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예전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다가 갑자기 맞게되는 것이 죽음이었다면, 이제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감각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호흡, 분노, 감정 이런 것들도 그 맥락 안에서 연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안 풀리는 지점이 우리가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겠다, 감각에 초점을 맞추겠다 하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봐야 해결되는 지점이 생겨서 그 때 극중극이 들어간 것이구요. 어떻게 보면 세월호가 전체 작품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한 꼭지처럼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감정이 중시되었다면, 후반에는 가장 안 풀리는 것이 세월호이다보니, 나와 세월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자면 세월호가 전부는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이경성 : 초반에 세월호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와닿지 않고, 혼란에 빠지게 된 부분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의미와 해석을 읽는 것이 혼돈에 빠지게 하더라구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바라보자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라는 맥락 안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즉, 이 세 가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국가는 무엇이고, 그 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타인의 고통을, 인권의 유린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세월호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던 부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연극의 목적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매체가 많기 때문에 그 매체들에 양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심하경 : 저는 준비된 관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세월호가 굉장히 드리워져 있었다고 느꼈거든요. 처음 안전수칙 장면에서 그 장면을 바꿔버리는 효과도 있었구요. 극중극에서 저는 불편함을 느꼈는데, 국가에 질문을 하는 방식이 그 질문이 저한테 오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왜 나한테 이러지?”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실 국가는 우리 모두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국가 역할의 배우를 관객석에 앉게 한 것이 그런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백인경 : 우리 모두가 국가이고,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도 국가인데, 여기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난폭한 국가의 대립구도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져서 불편했습니다. 국가도 왕관을 벗고,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느낀다고 말하는데, 책임을 국가가 나서서 너네도 국가의 일부이다라고 밀어붙이지 않고, 마치 여기 극장에 모인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이경성 : 개념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국가라는 것이 맞지만, 지금 이 시점과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조중동의 프레임인 것이죠. 이것을 누군가에게 정확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고, 국가가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덮고 가려고 하는, 개념적으로만 도덕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국가라는 역할을 지정한 것이었구요.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은 그런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햄릿> 극중극 장면을 생각했던 것은 그 날 세월호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세월호를 기억하다>라는 책을 보니, 그 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저도 잘 모르고 있더라구요. 구체적인 팩트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책임 추궁을 해서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면서 또한 인격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얘기하는 것이구요. 실제로 국가는 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가 많이 바뀌니까요.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 박유하 교수가 욕을 먹는 것은, 그것은 국가가 제국주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한 것이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때에는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한 것이죠. 한 개인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국가라는 것이 기관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개인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배우를 국가 역으로 맡긴 거죠.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국가에게 질문을 할 때, 국가 역의 배우가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실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을 얘기하는 것이냐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구요. 객석에서 앉아서 보신 분들은 힘들셨을 것 같고, 배우나 연출도 힘들었습니다.

전강희 : 연습 때에도 많이 얘기를 나눴는데요. 특히 선원 캐릭터에 대해서 그를 개인으로 볼 것이냐, 시스템으로 볼 것이냐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관객들은 힘들었겠지만, 개인보다는 국가, 시스템이 문제이다라고 생각한 것이었구요. 처음에는 선원으로 얘기를 하다가 배우가 나중에는 나경민 개인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부분의 조율이 힘들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민주공화정으로 보면 나도 국가의 일부가 되겠지만, 군주국가로 이해한다면 국가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카메라를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불편을 덜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고, 관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관객을 카메라로 찍을 때에도 발을 비춘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안심할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무대가 객석을 넘어 들어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사한 주제의 다른 공연(무브먼트 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에서는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을 배우들이 나가서 얘기하고, 연출자가 배우들을 연결해주고, 마이크가 객석으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지 못하기도 했구요. 저는 마이크가 나한테 오면 어떡하지라는 긴장을 했던 것 같고, 나의 기억을 말한다면 그것이 가치가 있나라는 생각도 했구요. 짧은 시간 긴장을 하다가 결국 오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두 공연을 다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편했던 것이죠.

이경성 :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공연은 제 취향이 아니었고, 제게 마이크가 왔을 때 저는 얘기를 안 했거든요. 나는 관람자인데, 행위자가 관람자에게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프라이버시의 라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라인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이 공연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고민했던 것이고, 라이브 카메라가 영문없이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폭력적이고 강요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해 고려를 해야 하는데, 맥락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긴장감과 내가 일방적이고 행위자에게 당하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자는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취향의 문제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라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카메라가 관객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에게 무엇을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터액티브라고 하지만, 정서적인 참여가 있을 수 있고, 피지컬한 참여의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인터액티브라고 해서 피지컬적인 참여를 1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져 있어도 충분히 인터액티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객석을 양면으로 하고 둘러싸지 않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앤다고 인터액티브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인터액티브가 일어날 수 있는 방식은 많은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할 때 아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임승태 : 이 문제가 실은 <햄릿>의 극중극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햄릿은 연출님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관람자를 참여시키잖아요. 자신이 설정한 관객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거죠. 연출님이 던지신 메시지는 관객이 직접 받는 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국가라는 캐릭터가 대신 받게 되는 것이니까 일종의 필터일 수도 있고, 간접적인 방식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출님의 취향은 그 쪽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내용은 <햄릿>이고, 그 중에서도 극중극이라는 점이죠.

이경성 : 그것은 하나의 연극적인 장치이고, 국가가 받을 때에도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긴장감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치일 뿐이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은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해서 극중극 자체가 햄릿이 “그래 연극이다”라고 하면서 햄릿이 연극을 통해서 현실에 파장을 미치는 하나의 방편으로 쓰는 것이잖아요. 햄릿이 “덴마크는 썩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햄릿이 인식하는 연극 밖의 현실이 드러나고, 연극을 통해서 현실을 겨냥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연극이 현실을 겨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연극의 무기력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구요.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것이 저의 화두였거든요. 그래서 <햄릿>을 사용한 것입니다.

전강희 : 김다흰 배우가 <햄릿>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온 것이기도 하구요.

임승태 : <햄릿>의 극중극을 다루고 있지만, <햄릿>의 또 다른 주제인 애도가 이 작품의 형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햄릿>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잃은 다양한 아들, 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이번 연극에서도 배우들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는 점에서요. 포스터에 대해서 짧게 질문드릴게요. 드라마터그와 배우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경성 : 먼저 어떻게 느끼셨는지 먼저 듣고 싶은데요.

김재영 : 저는 포스터를 처음 보고 당연히 배우, 중심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출님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럼 연출이 극에 등장하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연출이 극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예상을 깨는 재밌는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최희범 : 저는 양손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보면서 왜 연출이 여기에 있을까, 그리고 왜 배우 중 한 명은 빠져있고 대신 연출의 얼굴이 들어가 있을까, 왜 연출의 얼굴이 이렇게 의미심장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왜 이들의 얼굴을 왜 드러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터라면 공연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텐데 그러한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육성’하는 예술가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데 대한 나름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효인 :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저도 아무런 정보 없이 연극을 보러 간 사람인데요. 당연히 배우인 줄 알았고, 누구지 하면서 봤는데, 연출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연출이 배우로 등장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에게는 불친절하거나, 그러나 두산의 전략은 먹힌 포스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경성 : 두산과 포스터 때문에 충돌했습니다. 잘 포장된 상품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것을 깨는 게 저의 숙제였습니다. 처음 이 포스터에 대한 컨셉 제안을 받고 그 때 얘기했던 것은 일단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구요. 포스터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서 이해가 안 되었고, 제가 연극하는 방식을 절대 반영하지 못하는, 절대 예술가 한 명이 다 만들어내는 듯한 뉘앙스가 싫어서 마지막까지, 제작의 차질을 빚는 순간까지 갔었고, 그래서 내가 너무 신경쓸 일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놓아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두산 입장에서는 작품에서 파생된 시각 이미지를 쓴 포스터가 대학로에 깔려 있는데, 그게 홍보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이경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크게 나와야 하는가,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길러진 아티스트인가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렇게 브랜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해 두산 PD들도 중간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강문화재단의 사장님들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 고취가 더 큰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두산 이미지를 고취하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간에 껴 있는 PD들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구요. 배우들에게 내게 얘기를 직접 못하겠다 같이 얘기하자고 해서 알렸고, 저는 딜레마인 게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예술하는 방식을 어느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누가 순수하게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겠는가.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이란 말이 계속 걸렸는데, 저는 어떻게 이것을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하고 고결하게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기업 지원의 경우에 나는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를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만 제외하면 파트너십이 굉장히 훌륭하거든요. 작품에 대해서 신경쓰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잘 하는 PD들이거든요. 두산아트센터에서 세월호에 대한 연극을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고, 저희가 제안한 것이고, 시기적으로 두산아트센터가 상대적으로 득을 보았죠. 옆에서는 세월호 연극을 못하게 하는데, 두산에서는 하니까 두산아트센터가 필요한 얘기를 하는구나 라는 반응이 나왔고, 극장 측도 뻘쭘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포스터가 나온 것이구요. 합평회 때 저도 적나라하게 두산 측에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전강희 : 배우들은 PD, 극장의 입장을 이해했는데, 창작자 육성 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티스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PD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구요.

백인경 : PD와 창작자 사이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이끌어가기도 하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시스템에 길들여지기도 하구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공공기관은 훨씬 그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나 개인이 해결할 수도 없고, 내가 투쟁한다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구요. 그런 것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임승태 : 얼마 전, 성북동비둘기가 했던 <망루의 햄릿>의 포스터가 공연이 시작되고  바뀌었습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물청소 하는 사진에서 문자 그대로의 “고성의 망루”가 그려진 포스터로 바뀌었었죠. 공연 관계자에게 포스터가 바뀐 이유를 물어보았었는데, 극장(국립극단) 측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스터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국립극단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타협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이고, 두산의 방식이 그런 것이죠. 현재 상황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랍고, 정부의 입맛에 맞추려면 축소되거나 할 수도 있을 이 시점에서 공연된 것이 놀랍습니다. 트위터 반응을 보면 두산아트센터에 경의를 표하는 반응도 많구요. 두산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한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성 : 연극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구요.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을 한 작품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작품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구요. 그래서 저는 팝업씨어터 사태 난 것도 굉장히 안타깝고 힘든 일이지만 저는 세 연출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화려하게 입봉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이후에 연극의 형식 등에 어떻게 반영될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선배 연극인들이 그런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참여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가장 잘 나간다는 중견 연출가는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참 어렵고 민감한 것이구요. 어떻게 예민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되는 시점입니다.  

백인경 : 창작자 뿐만 아니라 행정가, 기획자 모두가 같이 고민을 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D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힘든 일을 겪고 튕겨져 나오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것에 무감한 사람들이 버티고, 그런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악순환이 벌어지거든요. 창작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측면보다 같이 연대해서 얘기도 많이 하면서 행정 일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서로 좋게 연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작품도 좋아질 것 같구요.

이경성 : 연대라는 것이 같이 싸우는 것도 있지만 검열이라는 문제를 더 넓은 의미에서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 근접 예술 분야와 시민사회까지 이 검열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누군가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것인지를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지가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승태 : 저희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 중인데, 이 문제는 뒤풀이에서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재영 :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경성 : 저한테 연극이란 어떻게 흥미롭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강희 : 저는 삶의 방식이 연극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희곡을 전공했고, 희곡을 하다보니 연극이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연극을 시작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검열과 같은 잘못된 문제에 대해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는 점이 좋고, 그것이 제 삶을 더 다양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단순히 돈을 벌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냥 할 수밖에 없는 것, 내 삶의 한 방식, 그것이 저에게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배우가 행복한 극단 애인": 김지수 대표 인터뷰

글쓴이_최희범

2015년 4월 25일 부쩍 따뜻해진 토요일 오후에 구로구 오류동의 한 카페에서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를 만났습니다. 극단 애인은 장애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극단이며, 김지수 대표는 국내 장애 연극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애’만이 이 극단과 이들의 작품을 특징짓는 단어는 아닙니다. 2013년도에 게릴라 극장에서 본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진 특성을 무시하거나 무마하려 하지 않고, 끌어안아 작품에 녹여내려는 시도와 노력의 결과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연극과 연기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한 극단 대표의 진지한 고민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수 대표가 애인을 창단할 때부터 가지고 온 중요한 목표는 장애인 연기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는 극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인의 방향성에 맞추어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 문제를 중심으로 편집한 인터뷰 내용을 드라마 인에 소개합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서 주제 별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소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1. ‘애인’ 창단 계기와 과정



최희범: 원래 ‘휠’에서 활동하시다가 나와서 애인을 창단하신 이유가 ‘배우가 행복한 극단’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하셨는데, 혹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김지수: 휠이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사람도 많아지고 해야 할 일도 많아졌죠. 제가 보기에는 단체는 계속 커지는데 거기 있는 배우들은 역량 강화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단체가 커지는 것 보다는 배우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애가 있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장애인이라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휠의 방향이) 그것과 좀 다른 것 같아서 나오게 되었죠.

최: 연극을 할 때 처음 부딪히는 큰 난관이 같이 할 사람들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의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서 국토 종단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죠? (웃음) 국토 대장정이랑 연극이 그렇게 잘 연결이 되지는 않는데, 단원들을 찾고 힘을 모으게 만든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김: 제가 꿍꿍이를 가지고 갔죠. 처음에 단원들을 찾을 때 연기를 잘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나 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꼭 연기를 안 하더라도 서로에게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백우람 배우 같은 경우는 사진을 전공했거든요. 국토대장정에서 그 친구가 사진을 찍었어요. 생각하기에 저 친구와 연극을 하게 되면 연기를 안 하더라도 우리 극단이 연습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든 전시회든 그 친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친구는 장애가 굉장히 심한데 끊기 있게 하더라고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몇 분을 만났죠. 그 때는 연락처만 받고, 나중에 연락해서 연극을 할 생각이 있는 지를 물어 보았는데, 다행히도 다들 흔쾌히 함께 해 주었어요. 그 때 ‘내가 연극을 하게 되나보다…’ 생각을 했어요. 팀이 꾸려지니까.


2. 극단 ‘애인’에게 좋은 연기란?



최: 연기를 잘 할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배우 분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2013년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배우들이 뭔가 특별하다.

김: 그건 연출이 잘 끌어 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연주 연출님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계속 같이 해 주셨는데, 이연주 연출님을 만난 것은 저희 극단에 있어서도 그렇고 저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행운 같은 일이예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생각, 그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배우에 대한 생각과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 맞았어요. 사실 연출이 삼 년 동안 한 작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끝까지 매달려 주신 거죠. (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2010년부터 2013년도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 공연했다.) 제가 “올해도 다시 이거 가지고 하면 어때요?” 하면 그러자고 해주셨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연주 연출님의 노고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배우들도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정말 저희 배우들과의 작업은 기다려 주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연출님도 말씀 하세요. 애인이랑 작업 하면서 배우들을 기다려 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저희 극단이 알려지게 된 것도 <고도를 기다리며> 때문이고.. 배우들도 한 작품을 계속 하면서 자신들의 연기와 움직임을 생각해 보고 발전할 수 있었어요.

최: 이연주 연출과는 전속적으로 함께 하시는 건가요?

김: 그렇지는 않고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고, 2012년도부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이연주 연출님도 다른 작업들을 또 하셔야 하니까. 지금 이연주 연출님은 <노란 봉투> 조연출을 하고 계세요. 저는 초반에 외부에서 다양한 연출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어요. 왜냐하면 연출들마다 스타일이 있잖아요. 배우들이 자기의 몸이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알기 전까지 다른 연출들이 자꾸 개입을 해서 그 스타일에 맞추어 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만의 방식을 찾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저희는 비장애인을 따라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사실 편하잖아요. 내가 장애인이지만 우리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도 비장애인들의 움직임을 해야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있거든요. 여기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것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그런 것에서 생각을 같이 한 이연주 연출가가 있었고. 그래서 저희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지고 그런 것을 해보려고 했어요. 계속 그런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다른 작품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요. 한 작품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배우들이 자기 몸에 대한 어떤 체득을 하기에 더 좋다고 생각을 해서요.

최: 배우에 대한 생각이 이연주 연출님이랑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인가요? 대표님께서는 <한국연극>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이 비장애인의 몸짓과 말을 흉내 내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몸, 호흡, 말투까지 자신의 것으로 녹여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몸과 호흡, 말투까지 녹여내는 연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예들이 있었는지?

김: 사실 이건 연출님이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웃음) 제가 생각한 것만 말씀 드릴게요. 예를 들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에는 다른 캐스팅으로 했었어요. 그 때 언어 장애가 있는 친구가 블라디미르를 했었거든요. 블라디미르의 대사가 많은데, 그 친구가 그 때 연극을 처음 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목소리가 작고 대사가 잘 안 들렸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연출님도 그렇고 언어장애 때문에 대사를 또박또박 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정서가 중요하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특히 이 대사들이 의미 있고 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되풀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그 정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더 신경을 쓰라고 했고요. 사실 관객들에게 대사가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물론 답답하실 수는 있는데, 저희는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가 꼭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비장애인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전달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처럼 대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가는 거죠. 함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몸을 이용해서 표현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침묵으로도 할 수 있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갔던 것 같아요. 또 배우들끼리 서로 기다려 주고 보완해 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에스트라공 역할의 정식 씨는 지적 장애가 있었어요. 언어 장애는 상대적으로 조금 있고. (블라디미르 역할의) 백우람 배우는 언어 장애가 있고요. 그러면 언어 장애가 있는 배우를 더 기다려 주는 거예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아요. 많이 싸우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완해서 전달 할 수 있는 거죠.

최: 그렇다면 극단 애인에게 있어서 좋은 연기란 어떤 것일까요?

김: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표현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애가 있는 내 몸과, 내 언어와 내 표현이 어떤지에 대해서 본인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면, 그것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좀 힘들 수는 있어요. 관객들을 고문하면서 연기하면 안 되는데…(웃음) 저는 장애가 하나의 연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는 내 몸도 배우의 움직임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것을 가지고 어떻게 대중을 만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거죠. 정서적으로는 역할에 공감을 잘 해야죠. 사실 장애인들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희곡을 읽었을 때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편은 아니에요. 그런 것들도 꾸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읽고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부단한 노력과 학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장애인 극단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장애인 배우들이 어디 가서 배울 데가 없다는 거예요. 단원들 중에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단원들은 연기 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일반 배우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만 특별지도를 해 줄 수가 없으니까 따라 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수강 (신청)을 하고서도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극 작업을 통해서 당연히 실력이 향상돼야 하지만, 자기 개발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자기 계발도 극단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제가 배우들은 평소에도 배우여야 한다. 열심히 책도 읽고 몸 관리도 하고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힘든 것 같아요. 나가서 할 데가 없기 때문에… 물론 배우들에게는 무조건 찾아보라고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는 순간을 너무 좋아해요. 자기가 배우라고 느끼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순간인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배우로서 살아가게 할 것이냐가 고민 이예요. 장애인 배우들의 경우에는 개인이 외부에 나가서 프리랜서 배우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한국연극>에 인터뷰 할 때만 해도 극단이 없어져도 배우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과정이 지나면서 ‘아 극단이 있어야지 배우들도 있을 수 있구나’싶어요. 그런 면에서 극단도 잘돼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이미지 출처: 비마이너(beminor.com)

최: 대표님께서도 연기도 하셨던 걸로 아는데, 대표님께서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저는 연기는… 아니지만..(웃음) 저한테도 고민이 있어요. 저도 역시 연기에는 두려움이 많아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에 막상 무대에 서면 표현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다는 걸 느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제 생각이 갇혀 있는 것 같아요.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갇혀 있는 저를 느껴요.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배우로서 전념하면 그런 과정이 있을 텐데 아직은 저에게 (그런 과정이) 없었고요. 이번에 <장애 제 3의 언어를 말하다>를 하면서,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듯이 장애를 가진 몸에서, 말하자면 “해방”되지 않으면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 역시도 해방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사실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도 굉장히 커요. 내가 배우로서 활동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몸을 해방 시키는 게 사실 제일 먼저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직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몸과 몸에 갇혀 있는 정신까지 해방을 시키려면, 그것도 치열한 싸움의 과정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공연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3. 장애 연극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



최: 단원들 모임이나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지?

김: 저희는 어차피 매일 모이지는 못하니까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데. 전에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만나서 뭐라도 했었어요. 그래도 꾸준히 스터디 형식의 모임을 해 왔는데, 공간이 없으니까 스터디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배우들도 사무실이나 연습실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고요. 저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공간 잡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배우들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 배우들이 연극을 하지 않을 때 이 사람들이 배우로서 자기를 계발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공간도 장도 없으니까 그게 안타깝고 미안해요. 어쨌든 매일 만나려고 해요. 요즘도 아카데미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있는데,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죠. 올해 두 번 공연을 해야 하는데 아직 공연장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초조해요. 공간을 잡아야 대관료 같은 걸 책정해서 예산을 정확하게 짤 수 있는데. 공간이 없어요. 연습실도 그렇고.

(*애인에서는 여전히 올해 8월과 11월 공연을 위한 공연장을 찾고 있습니다. 승강기나 경사로가 있어서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한 공연장이어야 하고, 적더라도 휠체어를 타는 관객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추천할 만한 공연장을 아시는 분들은 밑에 답글 하나 부탁드립니다!)

최: 접근성 문제가 있어서 더 그러실 것 같아요.

김: 네. 제가 휠체어를 타니까.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공간, 이런 건 정말 십년이 지나도 별로 해결이 안 되네요. 연습은 대본을 처음 받았다 하면, 1달 반에서 2달은 잡아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연습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초반에 대본 읽고 분석 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서 하다가, 실제로 움직임 연습 들어가면 한 달은 풀로 하죠. 다른 팀들 보다 연습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예요. 분명히 속도의 차이가 있고, 이해의 차이도 있고요.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랑 같이 작업할 때, 비장애인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있어요. 장애인 연극은 장애인 연극의 속도가 있거든요. 비장애인 배우들은 그런 속도를 같이 가는 걸 힘들어 해요.

최: 장애인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공연에서 장애 연극만이 가진 속도가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공연은 다 나름의 템포가 있지만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신체적, 물리적 특성이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들의 특성으로서 작용해서 시간과 공간이 독특하게 구성되어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게 가능한 곳이 극장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작품을 더 보고 싶어요.

김: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건 제 생각 이예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라는 최인훈 선생님의 작품이 있는데, 제가 꼭 하고 싶은 작품 이예요. 거기도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대사가 별로 없고 움직임이나 표현이 많이 있어요. 어떤 연출을 만나서 이런 작품을 언젠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품을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되어 있는… 저희들과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4. ‘애인’의 향후 방향과 계획


최: 애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계신가요?

김: 어쨌든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은, 저는 고전에서 찾고 싶어요. <고도를 기다리며> 처럼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고, 저희 단체와 절묘하게 잘 맞는 그런 작품이요. 그런 고전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연극을 하나의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또 하나는 장애인 극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이야기예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장애인 극단이기 때문에 의무감과 책임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최: 올해 계획은 어떻게?

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휠, 애인, 산 세 극단이 협업으로 아카데미를 하고, 8월에 공연을 해요. 또 서울시에서 지원받아서 강예슬 연출이랑 <무무>라는 단편 소설을 하려고 해요.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 소설인데 작품이 참 좋아요.


이미지출처: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최: 지금 대표님의 삶에 연극이란 어떤 것일까요?

김: (웃음) 어떤 걸까…? 연극을 한 지 8년 되었는데, 점 점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대학로에 수많은 극단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장애인 극단도 최소한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꼭 우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화에 어떤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인이 아니어도요. 저희 이면 더 좋겠지만. 문화 예술의 한 축에 장애인 극단이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극단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감... 너무 의무로만 가는 것 같은데. 저는 연극을 통해서 저희 배우들이나 제 삶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연극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하잖아요.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연극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안 되더라도. 꿈같은 얘기이고, 서울에서는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일 년에 한 번 이라도 나이 들어서도 우리들끼리 모여서 공연 하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최: 단원 분들도 행복 하실 것 같아요.

김: 저 때문이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행복 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사실 연극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장애인들도 가난하죠. 돈이 없죠. 그 중에서 연극해서 더 돈이 없고. 배우들한테 사실 미안하기도 해요. 이번에도 공연하면서 개런티 전혀 없이, 오히려 저희가 돈을 내서 했거든요. 어쩌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는데. 배우해서 돈은 못 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돈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비장애인 단원, 강예슬 연출은 18살에 저희 극단에 들어왔는데, 지금 26살이 되었어요. 작년에 연출로 데뷔 했지만,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고 있죠. 아르바이트하고 연극하고 하니까. 그 친구에게도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어떻게 그 친구가 좋은 연출이 될 지, 여기 있었던 시간이 그녀의 삶에 어떤 방향성이 될지가요. 작년에 (공연 한) <너는 나다>는 이연주 연출가가 강예슬 연출의 데뷔를 위해서 저희 극단에 맞추어 써준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저는 되게 복이 많아요. 같이 했던 사람들이 어쨌든 저희 극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그런 기회들이 있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최: 그렇게 운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저도 ‘나도 좋은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만드시는 힘이 아까 국토대장정에서 극단 단원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5. ‘애인’의 고민, 김지수 대표의 고민: “어떻게 우리들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날 것인가?”


최: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들은 거의 여쭤 본 것 같아요.

김: 그럼 제 고민을 조금만 얘기할게요. 사실 장애인 배우들의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을 가지고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늘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올해에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배우들 스스로의 신체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아까 말했던 해방도 필요하잖아요. 또 어쨌든 연출이나 작가나 대표가 공유하는 고민들도 필요하고, 여러 시도도 해 봐야 하는데, 그런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지금 팔 년 차인데, 올해가 저에게는 고비와 같이 느껴져요.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다시 그것을 토대로 우리가 우리만의 어떤 것을, 조금 더 나아진 어떤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되요. 이번 작품 <무무>를 만드는 일도 그렇고요.

최: 정말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아까 단원 분들의 눈도 비장애인에 맞추어져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교육 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화된 것일 수도 있는 시각이나 미적 관점이나 기준 같은 것들이 이런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항상 줄타기를 하셔야 하는 거잖아요. 어디까지를 훈련시키고, 어디까지를 연기자의 조건에 맞출 것인지를. 저도 사실 어디까지를 예술적 혹은 미학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어떤 틀, 어떤 시간과 공간의 틀을 짤 것인지와 어떤 훈련을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고 고민도 많이 되요.

김: 저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요. 어디까지 배우들에게 맞추어야 하고 어디까지는 대중들에게 맞추어야 하는지…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애기를 하는 게 맞는지, 또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실은 배우들이 더 많이 생각을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쉽지는 않고요. 배우들이 연극을 잘 안 보려고 해요. 연극을 보면 자기는 저렇게 못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대요. 저는 배우들에게 “그걸 버리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된다. 저 사람처럼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 극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다 거짓말이 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그래서 제가 그 말을 하는 것이거든요. “너의 눈도 비장애인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냐, 그 눈을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돌려서 우리를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게 사실 너무 힘들거든요. 외부에는 다 비장애인들의 것 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나의 몸과 나의 것을 가지고 표현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교감하고 소통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런 방법을 찾아 가는 게….

최: 저는 비장애인 배우들에게 장애 연극의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연기, 공연들이 좋은 자극과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많은 배우들이 와서 보면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장애인 배우들의 신체가 다르고, 그 중에서도 개개인의 신체가 너무도 다르지만, 사실 비장애인들도 모두 서로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모두가 어떤 특정한 이상적 신체나, 조건, 특성들을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자신의 특성을 말소시켜 가면서 까지. 물론 어디까지를 개인의 특성으로 볼 지,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런 가운데서 장애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큰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제가 (논문에서)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게 아직 설명이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그런 것이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연구를 하고 싶은 게 지금의 목표이자 꿈인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김: 잘 될 거예요. 열심히 해주세요. 저희는 그런 것을 행동으로 찾아가는 입장이고,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론으로 만드실 수 있는 거니까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또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웃음)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2014 수다연극-청춘인터뷰 (한토끼)


 보고 쓴 사람. 한토끼




보러가기 전엔 이영석 연출의 전작 <숨쉬러 나가다>와 같이 말의 밀도가 높은 연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레짐작하고 언어가 주가 되는 연극에 대한 서두를 신나게 미리 써두고 출발했는데. 보고 나니 <우리 사이>와 같은 사실주의적 노선에서 더 나간 쪽으로 분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쓰니 엄청 많이 본 것 같다. 사실 내가 본 4개 남짓 작품들을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나누어본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몇 개 안되는 정보라도 잘 나눠서 간수하고 싶어하니까. 아무튼 이영석 연출의 작품들은 당연히 다양했지만 대체로 말이 풍성했는데, 그 때문에 말과 연극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실제 인터뷰같은 수다들이 실제 어느 사람들의 모습들과 겹쳐있었다. 내가 그의 인터뷰를 들을 때에 리얼리티는 리얼리티의 조상이 되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로 이루어진 리얼리티 쯤이 되지 않을까.

<숨쉬러 나가다> 중에서
ⓒ극단신작로2011


연극은 배우를 업으로 결정해 준비 중이거나, 막 시작했거나, 한참 활동 중인 26~33세까지 9명의 배우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대에는 인터뷰 현장인 듯 책상과 물병만이 놓여있다. 각각의 배우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 소개를 하며 시작한다. 몇 살이고, 데뷔한 지 몇 년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니까 이 배우들은 자신이 그 배우인 동시에 그 배우를 연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인터뷰어가 있다. 바로 이 공연의 연출가이기도 한 이영석 연출인데, 그는 직접 무대에 등장해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는 어떤 생각에서 이 배우들을 모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지금의 청춘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이 공연의 시작이다.

이 과정은 마치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처럼 관객의 눈앞에서 벌어져서 이 상황이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터뷰인지 아니면 대본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풍부한 현장성을 띠고 있지만 사실 2% 빼고는 다 대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완벽하게 허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대본 자체가 실제 배우들의 삶과 성격에서 추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교하게 다시 쌓아올린 실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적인 허구는 기껏해야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연한 지점에서만 순간 생겼다가 사라진다.

이러한 형식으로 창작되는 연극을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라고 한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참여하는 창작 방법이다. 기존에 준비된 희곡 대신 배우들이 극의 주제 선정과 자료 조사 등 공연 준비의 첫 단계부터 함께 한다. 즉흥극이나 꼬메디아 델라르떼와 비슷하게 보이는 면이 있지만 디바이징 씨어터에서는 참여자들이 진행될 장면과 결말을 미리 합의하여 완성해둔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으로 인터뷰 현장을 재현하면서 이 공연에서는 재연의 이중성이라는 긴장감이 생긴다. 관객 모두는 이것이 재연이란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인터뷰 현장을 중계하는 듯 하지만 연극은 원래 짜고 치는 거니까. 관객이 모두 이것이 진짜가 아님을 의심하고 있는 긴장감. 여기에 더하여 어디까지 가정하고 어디까지 속아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관객의 이중적 고민. 이러한 지점은 모호함 속에서 관객의 집중을 구하며 극 전반적으로 유효하게 작용한다.

이들의 웃음은 지금 이 순간의 웃음인가, 그때 그 웃음의 재연인가?

이 공연에서 이 모호한 재연성을 지닌 구성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관객 앞에 풀어놓는 것은 원래의 소재였던 배우개개인의 잡담 섞인 신변이 오가고 진심 섞인 얘기와 넋두리가 오가는 부산스러운 인터뷰 현장이다. 인터미션이 지나 시작된 2막에서도 연기에 대한 생각에 이어 먹고사는 상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차분히 이어진다. 여기서 일반적인 연극에서 기대할법한 허구는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관객에게는 다소 김빠질 일일수도 있겠다.

실제 현장인지 아닌지의 진위를 알아내는 것은 이 공연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극에서 진짜 인터뷰로 보이도록 집중하면서 조명하는 것은 페이크 속의 새로운 허구적 이야기보다는 인터뷰이의 모습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다연극은 많은 말들로 현실의 어떤 순간과 대상을 다치지 않게 떠다가 정밀하게 다시 풀어놓는다. 이 바탕에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무척 면밀한 관찰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 중 하나는 대상에 대한 관찰이다. 한번 보고 선을 백번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백번 보고 선을 하나 그리는 것. 아마 이 공연을 위한 프로덕션 과정에서도 배우들에 대한 여러 겹의 면밀한 관찰과 이야기 듣기, 꺼내기가 있었을 것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바닥에는 현재를 함께 사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깔려있었을 것이고.

어떤 정황이나 사람을 한마디 말로 정의하는 것은 명쾌하지만 때로는 폭력적이다. 어떤 시각의 일방적 설정 자체가 그러하다. 때문에 어쩌면 무언가를 그대로 떠오고 함께 보기 위해서는 수없이 부유하고 떠도는 질문과 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테이블에서 마주하고 나누는 말은 부끄럽거나 솔직하지 못해서 미처 서로에게 다 닿거나 이해되지 못하더라도 그곳의 공기에는 어느 순간 함께 하고 있다는 리얼리티가 떠다니게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