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9일 월요일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



by 최희범

2013년 11월 29일(금) 저녁 8시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김현탁

무대는 도로처럼 가로가 긴 장방형에 가운데 노란 중앙선이 표시되어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약간은 흉물스럽기도 한 러닝머신이, 좌우 양 끝에는 스탠드 마이크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중년의 남자배우가 뭐라 중얼거리며 걸어 나와 러닝머신에 주목한다(정확히는 손전등으로 러닝머신을 비추며 한 참을 갈등하는 듯하다). 이내 러닝머신에 올라 뛰기 시작한다. 그의 ‘달리기’는 극의 중반부에 한 번 중단되고, 마지막에 그의 죽음과 함께 정지된다.

사실 윌리가 공연 내내 뛰는 것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이미 입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알고서도 공연을 보러 간 것은 당연히 “뛴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뛸까?”가 궁금해서였다. 심지어 공연장 로비에 비치된 리플릿도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주고 있었다. “본 공연은 윌리가 죽음으로 달려가는 원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하여 마치 플래시백처럼 지나간 장면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윌리는 무대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러닝머신 위에서 러닝타임 내내 달리기를 하고, 그의 주위에서 가족들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등장해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다른 공연에서는 몇 천 원씩 주고 사서 봐야 하는 프로그램북 대신 무료 리플릿을 배치한 것은 원작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을 배려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리플릿에 적힌 말대로 ‘감각적 체험’을 기대하며 공연을 지켜보았다.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극단 애인, 《손님》

by 에스티

<리어 왕> 4막에서 글로스터는 이제 그만 절벽에 몸을 던져 죽을 작정에 미치광이 톰에게 자신을 도버 해협으로 인도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생아 아들이자 배다른 동생인 에드먼드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글로스터-에드거 부자는 황야에서 그렇게 다시 만난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도버 근처의 들판에 도착하는데, 두 눈을 잃은 자신을 언덕 위로 데려가 달라는 글로스터에게 에드거는 이미 언덕에 도착했다며 언덕 아래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묘사해준다:
자, 바로 여기입니다. 가만히 서 계십시오.
저 밑을 내려다보니 무섭고 현기증이 납니다.
하늘 중간에 날고 있는 까마귀나 갈까마귀는
딱정벌레 크기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쯤 밑에는
바다 바위 틈에 나는 미나리를 캐는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
그것은 참 위험한 직업이군요! 제 생각으로는
그의 크기가 자기 머리밖에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바닷가를 거니는 어부들은 생쥐같이 보입니다.
저기에 닻을 내리고 있는 큰 배는 그 배에 달려 있는
작은 보트의 크기밖에 안 됩니다. 그 작은 보트는 또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부표와 같습니다. 이리저리로 밀리고 있는
수많은 자갈들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도 별로 크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아물거리어
거꾸로 굴러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리어 왕>, 4막 6장, 이경식 역)

이 순간 무대는 가상의 들판이었다가 높은 언덕 위가 된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글로스터는 그 말을 믿고 몸을 던지지만 실체없는 절벽은 그의 생명을 가져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아들인지도 모르는 사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열 개의 돛대를 이어 맨 것보다 높은 절벽에서 곤두박질해 떨어졌지만 기적같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살아 났다고.
상상력이 제대로 발동된다면 이 대목은 셰익스피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엄청난 장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시한 장면에 불과할 것이다. 나에겐 이 장면이 약간은 마술과도 같이 느껴진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지만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개막한 극단 애인의 다섯 번째 작품 <손님> (윤정환 작/연출, 대학로 달빛극장)을 보면서도 이 장면이 다시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