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부유하는 삶을 위한 한 편의 동화 : 영화 <젤리피쉬>

by 백인경


지난 11월 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아트시네마 (http://www.cinematheque.seoul.kr)에서 열린 이스라엘 영화제에서 5년만에 <젤리피쉬>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왠지 이스라엘 하면 모래바람이 부는 노란 빛의 하늘과 서걱거리는 공기를 떠올리며 이것이 LP판이 내는 따뜻한 잡음과 오래된 필름의 낡은 빛과 닮아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대규모도 아니고, 세련된 CG와도 무관한 영화지만 그래서 디지털 디바이스와는 더 어울리지 않는 영화 <젤리피쉬>.

무언가에 ‘대하여’ 쓴다는 것은 해석 보다는 번역의 여정이다. 비언어적인 것을 언어로 번역하는 동안 유실되는 것들. 문장으로 포획할 수 없기에 눈 앞에서 상실되어 가는 것들을 온 마음으로 애도하는 동안,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커서의 비트에 따라 키보드 위에 얹어진 손가락 끝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이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영화 <젤리피쉬>를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들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매우 낯선 나라이다. 성경 구절에서나 접해왔던 이스라엘에 대한 신성한 이미지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젤리피쉬>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소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살고 있을 뿐이며, 굳이 드러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군데군데에서 얼룩은 배어나기 마련이다. 이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이스라엘 영화가 우리에게 쉽게 공감되는 이유이자, ‘이스라엘 영화의 주목할 만한 현재를 웅변’하는 동시에 ‘내셔널 시네마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낯선 국가에 대한 지리적, 심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사는 그들의 모습이 여기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젤리피쉬>의 무대가 되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스라엘 제2의 도시로 감독인 에츠카 케렛의 고향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수도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루살렘과는 달리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텔아비브는 실상 이스라엘 최대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또한 중동의 가장 큰 분쟁지역으로 지금도 폭력과 테러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곳, 그 건너편엔 총기를 든 청년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곳. 아직도 민간인들과 아이들이 죽어나간다는 도시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견디고 있는 홀로코스트 후세대들에게 드리워진 그늘은 회색빛 마천루의 그것과는 다른 쓸쓸한 도시의 풍경을 자아낸다. 





- 바다 그리고 젤리피쉬

바다에서 유년시절의 자아와 마주하는 바티야, 결혼식장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카리브 해안으로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 해변가 호텔방에 머물게 된 카렌, 바다 건너에 있는 아들에게 모형 배를 선물하고 싶은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이. 카렌의 결혼식장에서 시작되는 세 개의 이야기 - 바티야는 결혼식장의 웨이트리스이며 조이는 카렌의 할머니의 도우미로 참석한다- 는 바다를 중심으로 각각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되며, 사연과 기억들이 조우하는 마법과 같은 순간들을 그려낸다. 

이스라엘에서 구원과 안식을 의미한다는 바다에 대하여 에츠카 케렛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시가 이성을 뜻한다면, 바다는 비이성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성이 승리하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항상 이기는 건 비이성입니다.” 

바다가 떠나가고 밀려오는 관계들이 얽혀있는 통제 불가능한 비이성의 세계, 혹은 삶을 나타낸다면, 바닷속을 부유하는 젤리피쉬(해파리)는 그 세계를 부유하는 인간 군상에 대한 환유이다. 이러한 비유법은 다음에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는 해변의 해파리(해파리는 이 영화에서 딱 한번 등장한다)와 바티야와 소녀의 수중신에서 오버랩된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독립적으로 전개되지만 파도에 부딫히고 멀어져가는 바닷속 해파리들처럼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은 우연히 마주치고 스쳐가며 서로의 풍경에 잔향을 남긴다.


- 감독 에츠가 케렛, 쉬라 게펜

<젤리피쉬>의 감독인 에츠카 케렛과 쉬라 게펜은 부부이다. 남편 에츠가 케렛은 이스라엘의 작가이자 만화가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의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단편영화들도 다수 제작되었다. 그의 아내인 쉬라 게펜 또한 직접 희곡을 쓰는 연극연출가이자 배우,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젤리피쉬>의 시나리오는 쉬라 게펜의 작품이다. 이스라엘의 문화와 예술을 이끄는 젊고 재능있는 부부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감독들에 의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직접 감독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전하였다. 그들은 <젤리피쉬>를 통해 제60회 칸느 영화제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데뷔작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과 젊은 비평가 상, 프랑스극작가협의회(SACD) 선정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다.

만화가와 작가로서 에츠가 케렛의 경력과 연극연출가이자 배우로서 쉬라 게펜, 그리고 부부로서 이 둘의 호흡은 영화에서 독특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젤리피쉬>를 처음 보았던 당시에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사진, 포스터 등 인쇄물의 사용과 이미지(기억 혹은 비실재)와 현재를 넘나드는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비주얼이었다면, 연극을 공부하는 지금 눈에 띄는 건 영화 프레임 안에 구성된 공간과 등장인물들의 배치가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과 같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조이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아랍인’이 ‘신체극’으로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은 세대 간의 가치와 이념의 갈등을 드러내는 소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어린 눈빛이 교환되는 특별한 장소로 사용된다.

바티야 역의 사라 애들러를 제외한 대부분이 비전문 배우들로서 감독들은 등장인물들과 살아온 여정이 비슷한 배우들을 쓰고 싶어 이들을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아이스크림 장수 역할을 맡은 에츠가 케렛의 아버지는 실제로 아이스크림 장수였으며, 카렌과 말카를 연기한 노아 크놀레르와 자리라 샤리파이는 원래 연극연출가이다. 쉬라 게펜이 현장에서 이들의 연기를 연출하였으며 배우들은 많은 부분 여기에 창조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감독 에츠가 케렛은 조이가 찾아가는 인력 사무소의 소장으로 잠깐 출연하며, 쉬라 게펜은 호텔 프론트 데스크의 여직원으로 등장해 카렌의 남편인 미카엘과 언쟁을 벌인다.


- Love. Longing. Magic. 

세 편의 이야기와 에츠가 케렛의 만화적 컷 프레이밍, 그리고 쉬라 게펜의 연극적 연출이 마치 직소 퍼즐처럼 잘 짜여진 이 소박한 동화는 초심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어떤 행운을 상기시킨다. 마법 같은 순간들, 그것은 하나의 진심과 또 하나의 진심이 서로 교감할 때 찾아오는 것임을 영화는 온 몸으로 담아낸다. (영화의 편집이 완성됨과 동시에 감독 부부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도 이러한 마법의 순간들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돛을 달고 저 거친 바다를 멋지게 항해하길 꿈 꾸지만 인생이란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찰싹찰싹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어딘가로 떠밀려 가고 마는 것. <젤리피쉬>에 행복한 결말은 없다. 귀향과 희망을 의미하는 조이의 모형 배조차 바닷속을 표류하는 해파리와 다름 아니다. 영화가 끝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는 "nothing".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게 인생이라면 산다는 건 어쩌면 파도에 휩쓸려 바다 밖으로 떠밀려나지 않도록 부단히 마음의 닻을 내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 볼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인생의 여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젤리피쉬는 네이버 n스토어에서 굿! 다운로드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nstore.naver.com/movie/detail.nhn?productNo=6588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