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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4일 화요일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이다: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 리뷰

양근애 (r......@hanmail.net)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렸어요. ‘미친존재감’이라는 센스있는 이름을 붙인 기획자는 누굴까 기대했고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하루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다섯 명 남짓이라고 했을 때는 살짝 긴장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게도 기회가 있었어요. 그날 저는 동행인과 대흥역에서 내려 저녁을 먹고 토정로라고 적힌 골목을 걸어 어느 주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화요일 저녁이었고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골목의 적요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그때 누군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극장이나 문화시설, 거리처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공연을 보러 가는 일도 처음이었습니다. 어느새 대문에 붙은 ‘ㅁㅊㅈ’이라는 초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어느 평범한 주택 앞에 도착했어요. 

흰색 페인트가 드문드문 벗겨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친집은 끝이 없어요. 미친집은 완벽하지 않아요. 미친건 특별하지 않아요. 미친집은 독특하지 않아요. 미친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미쳤다”이거 삶이거든요.”라는 손글씨가 보였어요. 어쩌면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라는 공연에 대한 설명은 이 글귀로 충분한지도 모르겠어요. 사회는 누군가를 ‘미쳤다’고 하지만 정신장애인에게 미쳤다는 건 극복할 수도, 완전히 치료될 수도 없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있는 몇 개의 방에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면이 전환되고 시점이 바뀌듯,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면서 정신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었어요. 첫 번째 방에서는 왈왈님의 노래 두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교회를 좋아하고 하루에 이만 보씩 걷는 왈왈님의 이야기 속에는 투쟁도 있고 편지도 있고 병원도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식물이 많았고 왈왈님이 모아둔 편지도 많았습니다. 거기엔 제가 미처 모르는 시간이 들어있었겠지요. 

연화님의 방에서는 작은 공연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오다 노부나가와 알렉산드라와 카산드라를 말하는 연화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이 아주 많았어요. 책을 쌓아 만든 그림자와 붉은 조명 아래서 우리는 차를 나누어 마셨습니다. 고유한 선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연화님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십 대였고 연화님의 이야기 속에는 저 먼 나라의 전설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고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할 때 도리어 달아나는 모양이 어지럽게 떠올랐습니다. 

연화님은 카산드라를 통해 미쳤다는 말을 전유했습니다. 확실하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예언을 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불린 카산드라. 연화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떠들었어도 아무도 안 믿잖아.”라는 일갈로 끝을 맺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있는 그대로 발화되는 순간 사회는 그것을 못 들은 척하거나 없는 일로 만들거나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습니다. 2021년 공연한 연극 <우리는 미쳤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이런 저를 부르는 호칭은 참 많습니다. 사이코, 정신병자, 미친새끼, 또라이, 정신질환자, 사회공포증, 엉망진창, 주의력결핍장애, 범불안장애, 분노조절장애……. 저는 유소한을 혐오합니다. 저는 유소한을 사랑합니다. 혐오했다가 사랑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합니다. 이런 제가 매드 프라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진요. 저는 계속 외치겠습니다. (쇳소리가 나도록 크게) “우리는 미쳤다.”*

실은 정신장애라는 말을 쓰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당사자의 ‘미쳤다’는 발화가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미친존재감의 지난 공연에 관한 정보와 몇 개의 논문을 찾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은 당사자의 삶을 배제한 의료적인 관점이며, 매드(Mad)는 퀴어(Queer)나 크립(Crip)처럼 차별과 낙인을 위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용어를 전유하는 전복적인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는 매드(Mad) 정체성을 드러내는 연극이고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의 다양한 경험을 정신의학의 담론에 밀어 넣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하나의 운동이기도 하겠지요. 

거실로 나와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 잠깐의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색함도 조금 가신 터라 두리번거리며 집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친척 집에 갔던 일이 떠올랐어요.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던 나무 계단을 통해 이층 다락방으로 갈 수 있었던 집이었고 어린아이였던 나와 사촌들은 그 계단을 올라가 어른들과 상관없이 우리끼리 속닥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잊은 줄 알았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일들은 사라지지 않고 나라는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있는 것만 같아요. 그 얼룩이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걸 알 것 같습니다.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이제 세상에 없는 도마라는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도마가 고유한 선님의 친구 수아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 놀랐어요.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지만 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황망하고 슬펐거든요. 고유한 선님이 준비한 이야기 속에서 도마의 노래를 듣고 또 부르는 동안 생각지 못한 어떤 연결이 틈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틈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목소리로만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의 생을 조금 엿본 느낌도 들었어요. 고유한 선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이들을 감지하는 일을 환시나 환청, 망상과 같은 양성증상이라고 치부하고 그것을 치료의 대상으로 다루는 일은 얼마나 간단한지요. 고유한 선님의 이야기를 통해 증상 자체보다 그것을 가짜라고 하거나 떨쳐내야 할 일로 취급하는 일이 더 속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유한 님의 등을 어루만지던 온기는 진짜였을 테니까요.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가까운 이의 집에 방문했을 때처럼 적당한 침묵이 드나들 거리가 있어 편안했어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집 안에 놓인 고유한 선님이 그린 그림들이 우리는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었어요. 왈왈님과 연화님의 브이로그도 보았습니다. 미친집으로의 초대는 완벽하지도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우리가 만난 것은 스스로를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매드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의 일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병원에 가고 일자리를 구하고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고 학교에 가고 그림을 그리는 하루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특정 질환이나 장애 여부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기도 하고 동시에 혐오하기도 하는 자기만의 고유성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이 오롯했습니다. 

사실 저는 장애를 잘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장애예술을 자주 만나고 장애학 관련 책을 읽고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장애에 관해 말하는 건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건 그저 작은 이유였을 거예요. 저는 글쓰기라는 것을 한 이후로 줄곧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이야기에 대해 말해왔으니까요. 그러나 장애연극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두렵고 괴로웠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겁이 많은 저는 어떤 날은 내가 쓴 어떤 문장이 차별과 배제의 문법을 반복하거나 그것을 묵인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또 어떤 날은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야 깨달은 무지를 자랑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 그렇다고 말하는 일이 장애라는 사실을 도리어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게 만들까봐 무서웠습니다. 급기야 모든 글쓰기가 다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글을 쓴다는 일이 사실은 내가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고쳐 쓰는 이 글이 어떻게 당도할지도 겁이 납니다. 그렇지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날 제가 느낀 환대가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꺼내는 용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날 초대한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이 마주 앉아 어색함과 공감과 다정함을 나누는 동안 저는 장애나 질병, 질환, 통증, 아픔 같은 말들이 일상에 내려앉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그것은 한편으로 저에게 이미 있거나 도래할 그 말들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과일과 시나몬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뱅쇼와 따듯한 차, 비건 쿠키와 케익과 감자를 나누어 먹으며 이웃이라는 낱말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웃이라고 해도 가족이라고 해도 아주 친한 친구라고 해도 당사자의 고통과 곤혹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옆에 앉아서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지도 모르겠어요. 때로 마음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라 무심한 동행으로 전달되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조심해서 외롭게 하기보다 민폐를 끼치더라도 묻고 듣고 답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두 조금씩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골목길을 돌아 나와 달라진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서울이 점점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쾌적하지도 편리하지도 않은, 사람이 살다간 흔적으로 얼룩진 소담한 주택들이 아직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세상엔 참 많은 집이 있고 집마다 다 다른 사연을 품고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 다름이 이 세계를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주는 거겠지요. 

미친집에 다녀왔습니다. 아름답지도 신기하지도 이상하지도 무섭지도 않은 진짜가 있었습니다. 

*송승연,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가 주도하는 연극 참여자들의 경험 및 인식에 관한 연구: 미친존재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비판사회정책』 제75호,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건강정책학회, 2022. 279쪽에서 재인용.

사진: 김원만


2014년 9월 5일 금요일

인터렉티브와 미래의 연극

2014 두산아트랩 리뷰 8
에스티

약 한 세기전 전기 조명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 아돌프 아피아는 장차 조명이 연극 무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 내다보았다: "라이트는 거의 기적적인 유연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밝기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으며, 팔레트처럼 색깔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것은 음영을 창조할 수도 있고, 음악이 그러는 것처럼 공간에 진동의 조화를 퍼뜨릴 수 있다. 우리는 조명에서 공간의 표현력 전부를 추출할 수 있다. 물론 그때 공간은 연기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1954, 파비스 <연극학 사전>에서 재인용). 다른 곳에서도 아피아는 조명의 "무한히 크고 다양한 효과"를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 전기 조명은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피아는 무대의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 통일성"을 갖춘 미래의 연극을 구상했고, 크레이그 역시 무대 위에서의 이미지, 동작, 리듬 등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이 연출가에 의해 총체성을 획득한 새로운 예술을 기대했다. 그들의 시대에 그것은 기대에 불과했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꾼 미래가 우리에게는 이미 현실로 자리하고 있다.

카입/황정은/이경화가 함께 만든 "타토와 토"를 보면서 우리 역시 아피아나 크레이그처럼 미래의 연극을 꿈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물론 이번 공연 제목 앞에 "다원"이란 레테르가 붙어야 한다는 건 아직 아피아/크레이그의 미래 조차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무대 예술이 다원적 요소들의 종합 혹은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다원연극"이란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다원이란 접두어는 여전히 연극이 텍스트와 배우의 연기 중심의 예술임을 방증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대에서 시도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는 미래 연극에서 시각적 요소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지 내다보게 해주는 기회로는 충분하다. 공연 중간에 하드 웨어 문제로 잠시 중단 되었던 것도 불편하기 보다는 그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말끔한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연의 일부같이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 같은 공간에서 터져버린 조명기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다.

우리가 좀더 나이가 든 미래에 보게 될 연극에서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고 있는 현란한 CGI(computer-generated imagery)가 사용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서 영화의 제작 환경이 연극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다. 장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과는 별개로 배우가 실제로 연기하는 환경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스틸컷으로 보게되는 영화 제작 현장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최종적으로 보게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배경은 온통 초록색 스크린 (크리스토퍼 리브가 수퍼맨이던 시절만 해도 파란색이었는데, 헐크가 만들어지는 지금은 초록색이다) 으로 뒤덮여 있고, 배우들은 텅 빈 공간에서 앞으로 후반작업에서 채워질 그 영상들을 상상하며 연기를 펼친다. 이순신 장군에게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었다고 하나, 명량은 단 세 척의 배만 제작한 다음 복사하기와 붙여넣기--훨씬 더 복잡한 실제 작업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로 채워넣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 빌>이 나왔을 때, 연극 공부를 갓 시작한 나로서는 그 영화가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가 마땅히 보여줘야 할 사실적 일루젼을 취하지 않고 믿기로 하기 make-believe 의 방식으로 그냥 거기 집이 있는 걸로 한다, 또는 무시무시한 셰퍼트가 짖고 있는 걸로 한다는 식으로 장면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뒤 우리가 보는 많은 영화들이 그런 식으로 촬영된 다음 후반 작업이란 걸 하면서 일루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같은 CGI를 보는 것도 분명 재미있는 일이지만, 나는 그 장면이 촬영되던 순간의 연극적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촬영장의 상황이 그대로 무대로 옮겨져 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무대 위에 그린스크린을 설치해 두고 배우들이 연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아무 것도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을 온전히 즐긴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 혹은 돌아가는 길에 유튜브로 CGI가 채워진 버전을 다시 보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난 지금 2100년대를 얘기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 초기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시도된 키노드라마가 기술의 발달로 요즘 재활성화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만큼 무대연극과 영상의 접목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도전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인터렉티브 연극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좀더 잘 알려진 텍스트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텍스트가 낯설 수록 관객은 텍스트에 주의하게 되고 결국 텍스트가 주도하는 연극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작하는 입장에서야 수개월간 그 텍스트가 익숙해졌겠지만 처음 보는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인 '나머지 요소'들로 전락한다. 무대 위에서 오로라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하지만 텍스트가 오로라를 반복적으로 선창하고 ("오로라, 라, 라, 라 ...") 그것을 비쥬얼로 보여준다면, 그러한 인터렉티브는 잠시 신기할지언정 그동안 재현적인 연극에서 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건투를 빈다. ㉦



***
이것으로 저의 2014 두산아트랩 리뷰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예술가 여러분과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4년 3월 1일 토요일

"난해한 예술을 위한 변명" : 박종빈, 박재평(DVOXAC) <전야> —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2014/02/20. 8 pm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 필록스

by 함스타

공연사진 http://dvoxac.blog.me/50189822185

독일의 문예학자 페터 뷔츠는 드라마 속 시간의 핵심을 ‘긴장’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영화나 연극에서 느끼는 이러한 긴장을 흔히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기다릴 때 생기는 ‘기대’나 ‘예감’에 가깝다.


태풍이 오기 전날 저녁, 어디 나갈 수도 없이 집 안에만 머무르는 시간, 사람들은 태풍을 기다린다.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아니라, 비극의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맞닥뜨리는 장면을 마음 졸여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 '불안'이라고 해야 할까.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 흔들림만으로 위태로운 시간. 그 흔한 새 한마리, 굉이 한 마리도 뵈지 않는 주택가의 거리. 풍경들의 쓸쓸함과,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대상을 기다리는 긴 지루함, 그리고 마음 속에 또아리 트는 불안을 박종빈, 박재평(DVOXAC)의 <전야>는 그려낸다.





공연은 화이트 큐브에서 이루어졌다. 아르코 미술관 스페이스 필록스에 들어가면, 비닐로 만든 천막 같은 공간 안에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있고, 그 테이블의 삼면에 관객들이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부러진 선풍기, 쟁반 위의 수많은 와인 병들, 널브러져 있는 형광등, 꽃과 화분 등 집안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 막 늘어놓은 것 같지만 결코 막 늘어놓지 않은 정제된 모습으로.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사람도 있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한 여자. 공연과 전시의 경계에 선 작품인 만큼 시각적인 요소들만으로도 눈을 끄는 ‘무대’였다.

두 개의 프로젝터가 관객들이 마주하는 벽에 두 개의 스크린을 쏘아서 영상을 보여준다. 남산이 보이는 서울의 어느 주택가. 그곳에 사는 한 커플. 왜 그랬을까, 흑백으로 촬영된 이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왕자웨이 감독의 <중경삼림>을 떠올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도 보이고, 날이 맑았더라면 길거리를 배회했을 작은 고양이들도 보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커플의 모습도 보인다.



스틸 컷을 나열하듯, 언뜻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한 장면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다 공연의 어느 한 시점에서, 테이블 위에 누워있던 여자의 숨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물이 떨어지고 조명이 어지럽게 명멸하면서, 여자가 일어난다. 일어나서, 걸어 나간다. 여자가 나간 뒤 얼마간 영상은 계속된다. 뒤집어진 새가 심장을 펄떡거리는 장면, 누군가의 맨발이 숲속을 헤치고 달려가는 장면 등이 보인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공연은 끝난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조명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박수를 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그냥’ 공연이 끝난다. 관객들 중 일부는 끝의 순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는 박수를 치려다가 주변의 반응을 살피고, 일부는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일어나려고 채비를 하는 옆 사람에게 의문스러운 눈빛을 던진다. 그렇다. 우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고, (물론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태풍은 무사히 지나갈 것이고, 그 때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거대한 운명의 물줄기가 아닌,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거기 흘러가는 일상일 테다.

주섬주섬 내려놓았던 가방과 코트를 챙겨서 미술관을 나서면서 뒷맛이 씁쓸하다. 무대 미술이나 영상 모두 감각적이라고 느껴졌고,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30분이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명석하지 않았다. 내러티브가 없어서, 혹은 장면들의 개연성이 없어서 명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이 ‘작품으로써’ 대답되지 않았다. 작가는 왜 태풍 전야의 분위기를 그리고 싶었는가? 왜 영상도, 전시도, 연극도, 무용도 아닌 일종의 ‘해프닝’이어야 했나?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관(람)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는가? 즉, 관(람)객들은 왜 30분의 시간을 내서 태풍 전야의 분위기와 불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 어떤 ‘왜’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런 ‘나쁜’ 의심이 들었다.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창작자에게 ‘현대 예술의 난해함’이라는 안전한 도피처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난해한’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 나는 관(람)객이 자신의 ‘무지’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지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생각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관(람)객은 작품을, 공연자를, 창작자를 사랑하고 싶어서 시간을 내어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찾는다. 작품으로부터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래서 마음 속에 준비해 간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관객의 책임일 수 없다.

물론 예술 작품은 얼마든지 난해할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제나 모두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다만 ‘이런 예술은 원래 난해하고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퉁치고’ 지나가는 순간은, (그래서 관객을 자신의 무지에 대한 회의로  몰아넣는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난해한 예술’을 애호하는 관(람)객들이 원하는 것은 말끔하게 마감된 그럴듯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고유한 문제 의식이며, 그것을 올곧게 밀고 나가는 창조적 힘이다. 겉보기에 조금 울퉁불퉁하더라도, 혹은 다소 엉성하더라도, 그런 작품들이 폭넓은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착한’ 관(람)객이 되기로 한다. 마음 속의 질문에 대해 작품으로부터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나의 오감과 정신이 온전히 열려있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전야>에서 나는 작가가 세계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예민한 감수성을 보았고, 영상과 무대를 다루는 세련된 감각도 보았다. 다음 번에 또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혹은 이 작품이 더욱 발전되어서 나온다면, 분명히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서 볼 것이다. 이번에는 단지 ‘전야’일 뿐이었지만, 다음번에는 ‘태풍’이길 기대하면서. ㉦


사진 출처 DVOXAC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dvox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