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6일 수요일

2014 수다연극-청춘인터뷰 (한토끼)


 보고 쓴 사람. 한토끼




보러가기 전엔 이영석 연출의 전작 <숨쉬러 나가다>와 같이 말의 밀도가 높은 연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레짐작하고 언어가 주가 되는 연극에 대한 서두를 신나게 미리 써두고 출발했는데. 보고 나니 <우리 사이>와 같은 사실주의적 노선에서 더 나간 쪽으로 분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쓰니 엄청 많이 본 것 같다. 사실 내가 본 4개 남짓 작품들을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나누어본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몇 개 안되는 정보라도 잘 나눠서 간수하고 싶어하니까. 아무튼 이영석 연출의 작품들은 당연히 다양했지만 대체로 말이 풍성했는데, 그 때문에 말과 연극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실제 인터뷰같은 수다들이 실제 어느 사람들의 모습들과 겹쳐있었다. 내가 그의 인터뷰를 들을 때에 리얼리티는 리얼리티의 조상이 되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로 이루어진 리얼리티 쯤이 되지 않을까.

<숨쉬러 나가다> 중에서
ⓒ극단신작로2011


연극은 배우를 업으로 결정해 준비 중이거나, 막 시작했거나, 한참 활동 중인 26~33세까지 9명의 배우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대에는 인터뷰 현장인 듯 책상과 물병만이 놓여있다. 각각의 배우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 소개를 하며 시작한다. 몇 살이고, 데뷔한 지 몇 년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니까 이 배우들은 자신이 그 배우인 동시에 그 배우를 연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인터뷰어가 있다. 바로 이 공연의 연출가이기도 한 이영석 연출인데, 그는 직접 무대에 등장해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는 어떤 생각에서 이 배우들을 모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지금의 청춘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이 공연의 시작이다.

이 과정은 마치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처럼 관객의 눈앞에서 벌어져서 이 상황이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터뷰인지 아니면 대본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풍부한 현장성을 띠고 있지만 사실 2% 빼고는 다 대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완벽하게 허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대본 자체가 실제 배우들의 삶과 성격에서 추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교하게 다시 쌓아올린 실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적인 허구는 기껏해야 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연한 지점에서만 순간 생겼다가 사라진다.

이러한 형식으로 창작되는 연극을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라고 한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참여하는 창작 방법이다. 기존에 준비된 희곡 대신 배우들이 극의 주제 선정과 자료 조사 등 공연 준비의 첫 단계부터 함께 한다. 즉흥극이나 꼬메디아 델라르떼와 비슷하게 보이는 면이 있지만 디바이징 씨어터에서는 참여자들이 진행될 장면과 결말을 미리 합의하여 완성해둔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으로 인터뷰 현장을 재현하면서 이 공연에서는 재연의 이중성이라는 긴장감이 생긴다. 관객 모두는 이것이 재연이란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인터뷰 현장을 중계하는 듯 하지만 연극은 원래 짜고 치는 거니까. 관객이 모두 이것이 진짜가 아님을 의심하고 있는 긴장감. 여기에 더하여 어디까지 가정하고 어디까지 속아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관객의 이중적 고민. 이러한 지점은 모호함 속에서 관객의 집중을 구하며 극 전반적으로 유효하게 작용한다.

이들의 웃음은 지금 이 순간의 웃음인가, 그때 그 웃음의 재연인가?

이 공연에서 이 모호한 재연성을 지닌 구성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관객 앞에 풀어놓는 것은 원래의 소재였던 배우개개인의 잡담 섞인 신변이 오가고 진심 섞인 얘기와 넋두리가 오가는 부산스러운 인터뷰 현장이다. 인터미션이 지나 시작된 2막에서도 연기에 대한 생각에 이어 먹고사는 상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차분히 이어진다. 여기서 일반적인 연극에서 기대할법한 허구는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관객에게는 다소 김빠질 일일수도 있겠다.

실제 현장인지 아닌지의 진위를 알아내는 것은 이 공연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극에서 진짜 인터뷰로 보이도록 집중하면서 조명하는 것은 페이크 속의 새로운 허구적 이야기보다는 인터뷰이의 모습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다연극은 많은 말들로 현실의 어떤 순간과 대상을 다치지 않게 떠다가 정밀하게 다시 풀어놓는다. 이 바탕에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무척 면밀한 관찰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 중 하나는 대상에 대한 관찰이다. 한번 보고 선을 백번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백번 보고 선을 하나 그리는 것. 아마 이 공연을 위한 프로덕션 과정에서도 배우들에 대한 여러 겹의 면밀한 관찰과 이야기 듣기, 꺼내기가 있었을 것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바닥에는 현재를 함께 사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깔려있었을 것이고.

어떤 정황이나 사람을 한마디 말로 정의하는 것은 명쾌하지만 때로는 폭력적이다. 어떤 시각의 일방적 설정 자체가 그러하다. 때문에 어쩌면 무언가를 그대로 떠오고 함께 보기 위해서는 수없이 부유하고 떠도는 질문과 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테이블에서 마주하고 나누는 말은 부끄럽거나 솔직하지 못해서 미처 서로에게 다 닿거나 이해되지 못하더라도 그곳의 공기에는 어느 순간 함께 하고 있다는 리얼리티가 떠다니게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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