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7일 목요일

[극장과 내외하는 사이 1] 극장을 만나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

by 서유미


남산도큐멘타: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출: 이경성 (크리에이티브VaQi)

텍스트에 봉사하는 연극?!?!??

얼마 전 수업 과제로 ‘텍스트에 봉사하는 연극’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장 자크 루빈, 『연극 이론의 역사』) 글의 필자는 연극의 기저가 되는 텍스트(여기서 텍스트는 연극의 문학적 텍스트, 즉 희곡을 의미함)가 연극에서 가지는 절대적인 권위에 대해 서술하면서, 연출가의 창조적 기량조차도 텍스트의 힘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연출가는 ‘텍스트의 공명상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 연극이 서야 할 자리인 무대 위에서, 종이 위에 있어야 할 텍스트가 그 힘을 휘두른다면 연극은 무대 저편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편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연극은 ‘오로지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들’로 무대를 가득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연극만이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배우들은 “우리 연극은 연출이 중요합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흥미롭고, 텍스트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기능을 연극 내에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즉, 텍스트에 봉사하기는커녕, 텍스트를 완전, X무시해버린 연극이다.

도큐멘타  (*줄거리 노출*)

이 연극의 주인공은 62년 드라마센터로 개관하여 현재 남산예술센터로 불리는 ‘극장’이라는 공간이다.
드라마센터 개관공연인 <햄리트>의 독백을 하는 배우가 무대 한 가운데 서 있다. 신파조의 독백을 하는 도중, 배우 한 명이 무대 뒤편에서 한 무리의 관객들을 이끌고 오며 그들을 객석으로 안내한다. (이들은 ‘유령산책’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객들로 사전에 신청을 하면 배우들과 함께 극장 주변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하나씩 방문한다) 독백을 마친 배우 앞에 서서히 조명기가 내려오고 배우는 그 조명기 중 하나를 뺀다. 여섯 명의 배우들은 “우리의 연극은-”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연극을 소개한다. 그 중 핵심은, “우리의 연극의 주인공은 극장입니다” 일 것이다. 다음으로 62년 <햄리트> 장면, 극장이 자금난을 겪었던 당시 설립자인 유치진과 김종필의 대화 장면, 자금난으로 연극이 상연되지 못하고 결혼식, 연주회장, 연희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역사적 고증 재현 장면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 빈 무대. 텅 빈 무대에 극장의 이 곳 저 곳을 보여주는 영상이 투사된다. 무대, 객석, 무대 천장의 조명기, 조명기가 내려갈 때 맞물리는 철제 기기들, 바닥, 무대 뒤편 공간, 기계적 무대, 헐벗은 공간, 배우도, 관객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존재하는 극장 그 자체의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극장의 ‘독백’. 막간극으로 유치진의 희곡 <대추나무> 한 장면이 끝나면 배우와 연출이 극장 주변을 다니면서 인터뷰 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투사된다. 이어지는 ‘남산 오디션’ 장면에서는 ‘오디션‘이라는 극장과 조우하는 특정 형식을 빌려 극장 주변에 위치한 역사적인 장소인 중앙정보부의 고문 장면을 연극적으로 재현한다. 다시 한 번 <햄리트>. 마지막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 장면, 모두가 죽어 버리는 그 순간이 펼쳐진다. 무대감독(여자 배우)은 햄릿과 레어티즈가 쓰러져 죽은 곳에 (교통사고 현장에서 그러하듯) 흰색 분필로 마킹한다. 배우들은 “우리의 연극은”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텅 빈 무대, 극장 미니어쳐가 놓여 있다. 무대 조명이 이것을 협소하게 비추고, 조명기가 (마치 인사하듯) 무대 바닥까지 내려오면, 암전. 연극이 끝난다.




극장과의 첫 만남, 감상

프로그램북에서는 이 연극을
“기존의 서사적 구조, 텍스트 재현적인 연극 양식을 벗어나 아카이빙과 인터뷰, 다큐멘터리와 토론 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 형식으로 극장의 빈 무대를 활용하여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극장의 안과 밖을 여는 남산예술센터에서만 볼 수 있는 연극”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글만 보더라도 텍스트에 봉사하는 연극에 제대로 반기를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극장이 주인공인 연극에서 극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텍스트 외부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 중 특히 좋았던 것은 여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깜깜한 극장 안에 조용히 울려 퍼졌던 극장의 독백 장면이다. 극장의 이 곳 저 곳을 조명이 비춘 후, 암전이 되면 극장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왔다가 한꺼번에 떠나는 장소. 그러나 그들과 상관없이 늘 이 곳에 꿋꿋이 존재하는 극장. 이 극장이 그 짧은 순간 동안, 처음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공연에서 공연 그 자체를 위해 숨겨져야 했던 것들이 노출되는 순간들, 예를 들면 조명기가 바닥 끝까지 내려오는 장면은 극장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대 천장에 숨어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해오던 투박하고 묵직한 조명기들이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순간, “숨겨왔던 나의~” 노래가 떠오르면서(?) 극장과 처음으로 가장 솔직한 상태로 대면하였다. 희한하리만큼, 괜히 통쾌하기도, 후련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조명기가 무대 바닥까지 천천히 내려올 때에는 마치 그것들이 우리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듯 했으며, 커튼콜 때 여섯 명의 배우들이 무대에서도 굳이 조명기 뒤에 서서 인사를 하는 것 또한 이 연극의 주인공이 극장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극장이 주인공인 연극”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지시적인 장면은 좀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극장 모형이 빈 무대 위 홀로 남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지막 장면. 모형은 단지 모형일 뿐이고, 극장이라는 진짜 주인공이 그 뒤, 그 앞과 그 옆, 온 곳을 둘러싸고 있는데…… 자신을 그대로 모방한 모형 극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본 진짜 극장이 조금 섭섭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우들은 유쾌했다. 완전히 비-재현적인 연극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 방식은 철저히 재현적이라는 점은 또 다른 재미를 낳았다. 중간 중간에 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보고 느꼈던 진솔한 이야기들도 들었으며, 배우들의 말로 극장을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극장이 주인공인 이 연극에서 배우들은 단지 극장을 더 드러내고 극장에 의해 소비되는 기호에 불과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가끔은 웃음을, 때로는 불편함을 낳았지만, 그 장면들이 생산해내는 모든 감정들은 내가 배우의 연기를 보았을 때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과 관계하는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여기, 이 연극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새로운 지점에서, 극장과 나는 만났다.


+남산예술센터, 극장을 나오며

프로시니엄무대가 주류인 요즘의 극장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특히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설렌다. 반원형 돌출 무대인 이 극장에서는 어느 자리에서도 무대와의 거리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깝게 느껴진다. 이는 배우와 무대, 연극에 더욱 쉽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이 곳에서 본 연극들은 그 내용과는 상관 없이 왠지 모르게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샤우뷔네 극단의 <햄릿>은, 안팎으로 제대로 미쳐서 극장 공간을 여기 저기 누비고 다니던 싸이코 햄릿의 정신질환이 내게 옮겨 올 것만 같은 두려움을 남겼었고, <천개의 눈>을 보면서는, 타로의 미궁 속에 나 또한 자로와 함께 갇혀버린 상태에서 깜깜한 극장 안, 마치 천 개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남산예술센터에서 본 연극의 기운과 그 여운이 나에게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은, 이곳의 특수한 공간적 구조가 연극에게 주는 힘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극장을 나오며 갑자기 체홉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가 떠오른다. 스베뜰로프는 몇 십 년 동안이나 연기 생활을 했던 그 극장을, 아무도 없는 밤 홀로 남아 처음으로 마주한다. 조명이 꺼지고 모든 소도구들이 제멋대로 놓인 무대는 더 이상 환상을 자아내지 못하고 모든 것이 노출된 채로, 단지 텅 빈 죽은 공간으로 처참히 전락한다. 만약, 스베뜰로프가 극장의 숨소리를 들었더라면, 극장이 건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자신이 이끌어 온 희극 배우로서의 인생이 절대 허황된 시간들의 모음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

(* 사진 및 동영상 출처는 남산예술센터 공식웹사이트(www.nsartscenter.or.kr) 및 남산예술센터 페이스북(www.facebook.com/namsan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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