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8일 토요일

450년만의 3색 만남 1 - <맥베스>

국립극단 <맥베스>

2014년 3월 8일(토)~23일(일)
명동예술극장
공연문의 1688-5966 (국립극단)

에스티의 첫날밤에 (프레스 리허설)


(재)국립극단에서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작품 세 편을 연속해서 무대에 올린다. <맥베스>는 그 선두 주자로 3월 8일부터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병훈 연출은 텍스트에 직접적인 변형이나 가공없이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거짓말 연기를 강조하지 않는 이상 말콤과 맥더프의 대화 장면이 생략된 것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유혹"을 중심 키워드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혹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세 마녀들은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과 짙은 화장을 한 팜므 파탈 무리로 그려진다. 



물론 맥베스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여성은 언제나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이다. 지난 겨울 국립극단에서 해경궁홍씨 역을 맡았던 김소희가 이번에는 사도세자보다 더 무서운 남편을 둔 여성을 연기한다. 사실 이 역할은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지만, 인물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연출의 말을 통해 이 공연이 어떤 방향을 선택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맥베스 부부는]사랑하는 ... 사이지만 아이가 없음으로 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기 어렵다. 관계 유지를 위해 아이를 대체할 조건을 찾아야 한다. 게다가 남편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쟁터에 나가있는데다 아이가 없으니 맥베스 부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무기력과 외로움에 젖어있던 맥베스 부인에게 마녀의 유혹은 재밌는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일순간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 남편에 대한 맥베스 부인의 사랑은 강력할수록 파괴력도 크다. ...악행을 저지르던 맥베스 부인은 왜 두려워졌을까.  저 깊은 곳에서 왕좌를 얻었으나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이 몰려왔을 것이다. 남편이 등을 돌리는 순간 철저히 혼자로 남게 되는 그 고적감,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내 "연출 인터뷰" p.29)

글래머러스한 여인을 마녀로 설정하고, 아이가 없는 무기력한 여인이 왕을 죽이는 모험을 감행한다고 해서 이번 공연이 연출가의 여성혐오가 두드러진다고 말하지는 말자. (작가가 이미 그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비극은 온전히 맥베스가 책임질 일이지 마녀나 부인 때문에 파멸했다고 말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혹"이 아니라 "핑계"라 말하고 싶다.) 물론 덩컨 왕을 시해하기까지, 그리고 그 직후까지도 맥베스는 갈등하고 손에 묻은 피를 보며, 그리고 그 순간 들려오는 문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하면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맥베스는 아주 능청스러운 연기를 거뜬히 해내고 왕좌에 오른다. 박해수가 연기한 맥베스는 이 장면에서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 이후로 맥베스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누가 자신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양심에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맥베스는 잠을 대가로 내놓음으로써 범인들의 도덕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반까지 등장하던 침대는 이후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맥베스의 자리는 이제 침대가 아니라 왕좌로 고정된다. 비록 잠시 동안이라도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렵고 오히려 그 자리를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데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소품으로 사용되는 검이나 방패, 그리고 타공된 철제 패널로 만든 스크린 등이 관객들에게 무게감을 전달한다.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검이 상당히 무거워 벌써부터 한쪽 팔만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고 한다.) 철제 스크린에는 이미지나 영상이 투사되기도 하고, 움직이는 버남 숲 또한 철제 방패 위에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얼핏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요즘 시대에 영상을 사용하는 게 어느 누군가의 독점적인 아이디어일 수는 없듯이, 그것이 어떤 면에 투사되느냐 또한 누가 먼저인지를 굳이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컴의 병사들은 군인이라기 보다는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를 연상하게 한다. 시국에 민감한 관객은 이 장면이나 몇몇 대사들에서 우리의 정치 현실과 접점을 찾고 싶을 수도 있고, 그래서 더 노골적이지 못한 게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갑갑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유산인 셰익스피어를 보러 왔는데, 극장안에서마저 바깥의 지리멸렬을 떠올려야 하는 게 피곤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정치 싸움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임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맥베스>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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