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7일 금요일

[두산아트랩-4] 지호진 작/연출 "왕의 의자"

by 에스티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연극을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액션 스펙터클로 설명하는 지호진은 야망이 큰 연출가이다. 두산아트랩의 2014년 네 번째 공연 <왕의 의자> 또한 그가 지향하는 “피지컬 씨어터”의 노정에 있는 작품이기에 관객은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 활극’을 코 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로 본다는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연출이 설명한 대로의 “피지컬리티”, 즉 배우들의 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액션은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편이었다. 70분 공연의 마지막 10분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은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했지만 앞서 60분의 공백이 그만큼 크게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물론 공백이란 표현이 꼭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배우들의 군무와 아크로바틱이 장면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배우들은 뺨을 적잖이 맞기도 하고 등짝을 맞기도 한다. 왕에게 주어진 장검은, 비록 이가 나간 게 보이는 모조품이라 하더라도, 꽤 근사한 바람소리를 만들어내고, (실수로 보이긴 하지만) 잘못 휘두른 칼은 객석으로 향해 날아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반대편 객석에 앉은 관객은 코 앞에서 풀스윙으로 휘두르는 골프채 때문에 적지않은 ‘신체적’ 긴장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서사이다. 짧은 공연 시간과 프로덕션의 목적을 고려할 때 서사는 “피지컬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봉사하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할텐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할애되고 말았다. 연출이 제작노트에 쓴 다음의 문장에는 많은 고민이 들어 있다:

“더욱 간결해진 서사로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움직임과 무대 활용을 통해 피지컬 씨어터의 특징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사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작품 제목에 완벽하게 압축 요약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게다가 객석에 앉은 이후 약 15분 가량 무대 벽면에 이글거리는 형상으로 영사된 제목을 보고 난 후에는 더더욱, 이 작품에서 전개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는 특별한 흥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작가이기도 한 연출의 입장에선 할 수 있는 한 간결하지만 전형적이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겠지만, 공연의 목적이 이야기의 재미에 있는 게 아니었다면 관객이 당혹스러울만큼 불친절한 스토리텔링이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불면증에 시달리는 왕은 나로서는 맥베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차라리 <맥베스>를--<햄릿>이나 <보리스 고두노프>라도 상관없다--필요한 만큼만 가져와 신체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짧은 공연이라도 이야기를 완결되어야 한다는 부담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모든 극작가에게 던져진 저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고전적 올가미는 결국 드라마가 연극 전체를 지배하고 나머지 요소들은 이야기를 재현하는 데 봉사하도록 이끄는데,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탈춤의 쓰다만 듯한 스토리텔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탈 속에서 웅얼웅얼하는 대사들은 잘 알아듣기도 힘들고 앞뒤 설명도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관객이 알아야 할 이야기는 대체로 명쾌하게 전달되고 그 속에서 연희자들의 몸과 춤사위는 빛을 발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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