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8일 금요일

[두산아트랩-6] 바바서커스 <외투, 나의 환하고 기쁜 손님>

by 에스티


처음엔 좀 의아했다. 두산아트랩 공연이 만7세 이상 관람가일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실제로도 오늘 공연에는 7세 어린이가 참석하지 않았고 앞으로 남은 이틀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의문은 공연을 보고나니 금새 해결되었다. 바바 서커스는 남녀노소 다 즐길만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을.


노문학도들은 기뻐해야 한다. 신체극을 지향하면서 가면까지 손수 만드는 이 재능 많은 연출가가 하필 고골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고골 이야기의 그로테스크함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가면들로 전달되고, “공중에 붕 떠서 흔들거리는 [고골의] 도시와 사람”을 표현하고자 배우들은 무대에 매달린 공중그네를 타고 논다. 뿐만 아니라 첫 장면에서 무대 뒷 벽면에 투사된 눈송이들 사이를 다 헤어진 외투로 힘겹게 헤쳐나오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모습은 흡사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을 극속으로 인도한다. 그동안 아트랩에서 신체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여러 팀을 봐온 터라 움직임 자체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오래전 읽었던 소설을 되뇌이게 하는 솜씨가 퍽 유쾌하다. 아까끼가 새외투를 입게되는 시점까지가 대략 공연의 전반부인데, 후반부에 비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1) 초저녁잠이 많은 나의 탓도 있을 테고 2) 또한 아까끼가 새 외투 하나 장만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고 고된 일인지 요즘같이 옷이 흔한 시대에는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연에서 밝혀준 대로 하급 공무원 연봉의 대략 3분의 1이라고 환산해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옷은 옷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 인간 복사기 노릇을 했던 하급 관리 아까끼의 인생은 외투를 입는 그 순간 아주 잠시 행복의 극치를 맛본다. 영화 <매트릭스> 셋째 편에 보면 네오와 트리니티가 기계 도시(the Machine City)로 비행해 가는 길에 아주 잠시 구름 위를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오는 장면이 있는데, 시종일관 어두웠던 그 장면에서 단 한순간 밝은 빛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트리니티의 감탄사가 인상적이었던 그 순간을 지나면 그들은 다시금 어두 침침한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아까끼 또한 잠시잠깐 지복(至福)의 상태를 경험하고선 이내 그 옷을 빼앗기고 마는데, 새옷을 강탈당하는 그 모습보다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아까끼가 다음날 (실제로는 다음다음날) 예전 외투를 입고 다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 이후로부터는 이 이야기가 결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뻬쩨르부르그에서외투를 강탈당한 아까끼는 소치에서 금메달을 빼앗긴 김연아와 겹쳐진다. 아까끼의 탄원을 듣고도 자기 머리 만지기에 바쁜, 공약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건 잘하지만 정작 그 자리(공중그네)에 앉아 있는 것도 잘 하지 못하는, 그 여 기관장에 대한 불만은 우리 사회에서도 낯익은 모습이다. 공연은 아까끼는 외침으로 끝난다. 새 외투를 강도당했다고. 좀더 크게 한번 더 "새 외투를 강도당했다"고. 난 이게 열린 결말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외투는 빼앗겼고, 다시 찾을 방법은 없는데 무슨 가능성이 있단 말인지 모르겠다. 김연아는 금메달을 빼앗겼고 올림픽은 끝이 났다. 선거는 끝이 났고 김연아를 본받아 결과에 승복하라 한다. 다른 가능성이 있는가?




(두산아트랩 2014 상반기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개:

  1. 일부러 페이스북에 메세지도 남겨주시고 힘이되는 공연평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발전된 공연으로 연락드리지요.
    -극단 바바서커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