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5일 수요일

[두산아트랩] <외투, 나의 환하고 기쁜 손님>

by 백인경

미래주의의 창시자 필리포 마리네티는 

“The Variety Theatre”(1913)에서 연극이 다양성과 서커스 쇼의 원칙에 따라 “놀라움, 레코드 세팅, 그리고 신체의 광기에 대한 연극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연극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려는 이탈리아 미래파의 이러한 시도는 러시아의 아방가르드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연극에서의 연극성”에 대한 그들의 탐구 또한 서커스 형식에 의지했다. 서커스는 단순히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행위가 가진 순수한 물질성으로 -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연약한 신체 또는 고도로 훈련된 강인한 신체 - 관객들에게 즉각적인 효과를 생산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문학에 종속되어온 연극을 연극 고유의 매체성에 입각하여 “재연극화” 함으로써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지각방식과 경험방식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커스’라는 단어가 들어있긴 하지만 바바서커스는 실제로 서커스 공연을 하는 극단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하는 ‘연극’이 무엇인지 그 이름을 통해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바바서커스는 다음과 같이 자신들을 소개한다: “드라마를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며, 무대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형식과 연극성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드라마와 연극성,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는 그들의 야심찬 포부는 고골의 텍스트를 통해 실험된다.

<외투, 나의 환하고 기쁜 손님>은 

단편소설 <외투>를 원작으로 한다. 텅 빈 무대 위에서 흔들거리는 공중 그네와 다양하게 제작된 가면들의 사용은 새롭고 신선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적절하다거나 자연스러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거센 러시아의 찬바람을 뚫고 등장하는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공연 내내 유일하게 얼굴 전체를 덮는 가면을 사용한다.





공허한듯 멍한 가면의 고정된 얼굴은 그러나 의상과 조명, 배우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추어에 따라 그 어떤 배역들보다도 풍부한 표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아기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면의 사용은 대사 전달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다른 배역들이 적극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반면 아까끼의 대사 분량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있는데, 그 제한된 대사 마저도 가면을 뚫고 나와야하는 바람에 다른 음성들과 어우러지기 힘들게 들렸다. 이러한 여건이 아까끼의 캐릭터를 더 명확하게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모를까, 특별히 그러한 선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몇 장면에서는 아까끼가 하고싶은 말들을 코러스들이 상황극으로 재현하며 장면을 끌고가기도 했는데 차라리 그러한 선택이 더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바바서커스의 신체 사용이 빛나는 장면을 꼽으라면, (공중그네의 사용보다는) 바람을 표현하는 코러스들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매서운 찬바람은 아까끼의 낡은 외투를 파고들고 결국 그에게 새 외투를 사야만하는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이때 직접 바람이 되어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코러스들의 움직임은 무대 위의 신체가 꼭 기이하거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행위를 통해서만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구르거나 또는 회전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신체들의 리듬은 재현을 너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림책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표정과 제스추어, 그 정서를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코러스들의 움직임이 극의 전반부를 지배했던 반면, 극 후반은 다소 밋밋하게 진행된다. 외투를 사기 전의 설렘과 기대, 새 외투를 장만했을 때의 황홀감이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찼다면 외투를 강탈당하는 장면은 이 모든 것들을 무참히 깨뜨리기에는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다. 외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모습이 절박해 보이기 보다는 우당탕탕 한 판의 소극처럼 보이는 것은 아쉬움과 씁쓸함을 남겼다. 보이지 않는 것을 눈 앞에 펼쳐지게 했던 신체들은 그 마법적 에너지를 잃고 땅위로 내려앉아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는 데 소비되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미처 듣지 못하고 나와 바바서커스가 추구하는 피지컬 시어터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바바서커스는 텍스트가 품고있는 어떠한 분위기를 구체적 형태로 현재하게 하는 데 슬랩스틱, 서커스, 무용 등 신체를 극대화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텍스트를 읽는 것과는 다른 고유의 효과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연극성을 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모든 장면, 매 순간들을 무언가로 가득 채우는 것은 빼곡하게 밑줄 그어진 텍스트를 읽는 것과도 같다. 드라마가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도 행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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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안녕하세요. 정신없이 공연 작업을하고 나서 한달이 지나서야야 공연평을 확인하게 되는군요. 디테일한 공연평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작업에 큰 도움이되고 힘이 되는군요. 기회가 된다면 뵙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세요. 다음 공연에 꼭 연락 드릴게요.
    -극단 바바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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